제694화
사앵앵이 맘껏 먹고 마시자고 했지만, 나삼은 농담으로 여겼다. 한데 그녀가 정말로 시내에서 가장 유명한 주루인 금정각에 데려갈 줄이야.
금정각은 임안성에서 오랫동안 명성이 자자한 주루로, 고관귀족들이 가장 즐겨 찾는 곳이었다. 이런 곳에서 밥 한 끼를 먹으려면 적어도 은전 한두 문紋(화폐 단위)이 넘게 들었다. 나삼은 금정각 앞을 수도 없이 지나다녔지만,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은 없었다. 그저 멀찌감치 떨어져서 고개를 쭉 빼고 구경했을 뿐이다.
실제로 안에 들어와 살펴보니, 금정각 내부는 으리으리한 장식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사앵앵이 사봉봉, 여종 금천아 그리고 나삼과 함께 들어가자, 종업원이 웃으며 그들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몇 분이십니까? 일 층 대청에 앉으시겠습니까? 아니면 위층 별실로 올라가시겠습니까?”
나삼은 총명한 사람이기에 사앵앵이 이곳에 온 이유가 단순히 먹고 마시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쯤은 눈치챌 수 있었다. 새로 채용된 가게 관리인으로서 그는 종업원을 자세히 살폈다. 깔끔한 청포삼을 입은 종업원은 밝은 미소를 유지했고, 어깨에 걸친 수건은 새것처럼 하얘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사앵앵의 시선이 대청을 가볍게 훑었다.
“오늘은 대청에 앉겠네. 난 시끌벅적한 걸 좋아하니까 너무 외지지 않은 자리로 안내해 주시게.”
종업원이 얼른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부인께서 시끌벅적한 걸 좋아하시니 가운데 좌석에 앉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 점원들이 소리 지르며 왔다 갔다 하는 게 다 보이실 겁니다. 너무 시끄럽다고 화내지 말아 주십시오.”
“화내지 않겠네.”
사앵앵은 웃으면서 덧붙였다.
“난 남들이 고함치는 걸 좋아하니까 말일세.”
그들을 탁자로 안내한 종업원은 이미 깨끗한 탁자를 어깨에 걸치고 있던 수건으로 한 번 더 닦았다.
“손님들께서는 뭘 드시겠습니까?”
사봉봉이 얼른 끼어들었다.
“여기 제일 맛있는 게 뭐죠?”
어린 소녀가 물었지만, 종업원은 대충 대답하지 않고 곧장 정중한 태도를 취했다.
“저희 가게에는 생강어포, 오향비둘기, 탕수연근, 소고기 파 볶음, 백화오리 혀…….”
재빨리 음식 이름을 나열하는 종업원을 보고 사앵앵은 얼른 손사래를 쳤다.
“됐네. 방금 나열한 것까지 주문하겠네. 우리는 넷뿐이니 더 시켜도 다 못 먹을 걸세.”
종업원은 꾸벅 허리를 굽히며 웃었다.
“네, 맞는 말씀입니다. 네 분이 다섯 가지 요리를 주문하시면 충분할 겁니다. 혹시 아가씨들을 위한 후식은 어떠신가요?”
사앵앵이 물었다.
“추천할 만한 거라도 있는가?”
“지금은 연밥이 한창 무르익는 시기라서 저희 가게의 연자갱蓮子羹(연꽃 열매로 만든 죽)이 아주 맛있습니다. 매일 아침 호수에서 채취한 연밥을 가져와서 주방장님께서 직접 만드십니다. 맛이 깔끔하고 부드러운데 차가운 상태로 제공하기 때문에 많은 손님이 그걸 드시러 찾아오실 정도입니다.”
사앵앵은 시원시원하게 말했다.
“그렇게 맛있다면 한 사람당 한 그릇씩 주시게.”
“예!”
종업원은 새하얀 수건을 어깨에 탁 걸치더니 목소리를 높였다.
“생강어포, 오향비둘기, 탕수연근, 소고기 파 볶음, 백화오리혀 그리고 연자갱 네 그릇!”
점원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주문을 전했다. 그는 꼭 끝 음을 길게 늘어뜨렸다. 나삼은 자기도 모르게 찬사를 내뱉었다.
“활기가 넘쳐서 정말 보기 좋군요.”
사앵앵이 한마디 했다.
“저들을 잘 관찰한 후 자신을 돌아보게. 우리에게 부족한 건 바로 저런 점원이네.”
나삼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어른 말씀이 맞습니다. 제가 지인들을 수소문해서 부지런하고 영리한 점원을 몇 명 찾아달라고 하겠습니다.”
“좋네. 항상 그런 일을 명심해야 가게 관리인이라고 할 수 있네.”
요리는 굉장히 빨리 나왔다. 새로운 요리가 나올 때마다 점원은 목소리를 높여 요리 이름을 외쳤다. 다섯 접시의 요리가 꽃잎 모양으로 탁자에 차려졌고, 후식은 손님들이 식사를 다 마치길 기다렸다가 가져다주었다.
사앵앵이 오늘 하려는 일은 요리를 맛보는 것이었다. 그녀는 주루를 경영한 적이 있지만, 지방마다 사람들의 입맛은 각기 달랐다. 그러니 처음 가는 지방이라면 현지인들의 입맛부터 파악해야 했다.
요리를 하나씩 맛보는데, 확실히 아주 맛있었다. 먹는 걸 제일 좋아하는 금천아는 양 볼이 불룩해지도록 음식을 밀어 넣고 눈을 지그시 감더니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삼도 먹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의 말을 쏟아냈다. 원체 입맛이 까다로운 사봉봉도 맛이 괜찮다고 말했다.
금천아가 사방을 둘러보더니 목소리를 낮춰 사앵앵에게 말했다.
“부인, 우리 여기에서 일하는 주방장을 빼 올까요? 그러면 장사가 분명 잘될 거예요.”
사앵앵이 나삼에게 반문했다.
“나 관리인의 생각은 어떠한가?”
“그건 말입니다…….”
나삼은 사앵앵의 의도를 짐작하기 어려웠지만 침착하게 답했다.
“제 생각에는 금천아 아가씨의 의견도 나쁘지 않지만, 이곳의 주방장들은 몸값이 비싸서 빼 오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금정각의 뒷배가 대단하다고 들었습니다. 우리가 저들의 주방장을 빼 오려고 하면 귀찮은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도성 사람인 나삼은 성내의 여러 가지 사정을 자세히 알고 있었기에 좀 더 주도면밀하게 상황을 살필 수 있었다.
“그들의 뒷배가 누구일 것 같나?”
“정체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금정각의 주인장은 워낙 신출귀몰해서 행적이 묘연하고, 그저 소문만 무성하지요.”
“사람을 시켜서 좀 더 알아보게.”
사앵앵은 관아에 뒷배가 있다는 말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의 남편인 사 대인도 관리가 아닌가.
후식을 먹을 때, 사봉봉은 금천아와 위층을 한 바퀴 돌고 내려와서 전했다.
“위층을 아주 멋있게 꾸며 놨지만, 별실에는 들어가 보지 못했어요. 다음에 다시 오면 살펴봐야겠어요.”
그 말에 금천아가 활짝 웃었다.
“그래요, 다음에 또 다른 요리를 먹어 봐요.”
식사를 마치자 사앵앵이 나삼에게 물었다.
“이곳에서 식사를 해 보니 느낌이 어떤가?”
나삼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역시 유명한 주루답습니다. 요리도 좋고 점원들의 태도도 괜찮고 환경도 훌륭하지만… 음식값이 좀 비쌉니다.”
“그리고?”
나삼은 더 이상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주루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건 바로 이런 것들이었다. 그 외에 또 뭐가 있지? 사앵앵은 금천아에게 물었다.
“네가 말해 보거라.”
“깨끗해요. 수건도 새것 같았고 젓가락도 칠이 벗겨진 게 하나도 없었어요.”
“그리고 또 뭐가 있지?”
이번엔 사봉봉이 대답했다.
“다른 손님들이요. 제가 살펴보니 위층은 물론, 대청에 있는 손님들도 하나같이 옷차림이 깔끔하고 말투도 점잖았어요. 다들 집안 형편이 넉넉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금정각에 와서 식사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사앵앵이 고개를 끄덕였다.
“봉봉의 말이 맞네. 여기 온 사람들은 모두 집안이 부유한 사람들이야.”
그녀는 다시 나삼에게 물었다.
“그럼 살림이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은 어디에 가서 밥을 먹을까?”
나삼이 곰곰이 생각했다. 아무래도 그런 사람들은 수준이 그리 높지 않은 주루를 찾기 마련이었다.
그날 이후, 사앵앵은 며칠에 걸쳐 그들을 데리고 여러 음식점에서 식사를 했다. 시내에서 가장 좋은 주루부터 일반적인 주루에 이르기까지 두루두루 살폈다. 나중에는 나삼에게 좀 더 수준이 낮은 점포를 알아보라고 시켰다.
골목 안에 있는 한 칸짜리 작은 점포에서 파는 요리는 매우 독특했지만,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서 너무 북적거리고 시끄러웠다. 게다가 늦게 가면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그래도 사앵앵은 지루한 기다림을 이겨 내고 낮고 작은 탁자에 앉아서 음식을 맛있게 즐겼다.
그와 동시에 사앵앵은 후식 가게도 자세히 살폈다. 서로 다른 가게에서 산 여러 종류의 후식을 집으로 가져온 그녀는 하인들에게 나누어 주고 어디가 맛있는지 평가하게 했다.
오늘날의 사씨 저택은 이미 제법 번창했다. 서북에서 데려온 하인 넷을 제외하고도 어린 시종과 여종들을 더 데려왔다. 주루 경영은 못 하지만, 상대를 운영한 경험이 있는 원천림은 저택에 남아 관리인이 되었다. 사장풍은 늘 성 밖에 있는 주둔지에 머물렀지만, 사앵앵이 집안을 잘 이끌어갔기에 바깥주인의 부재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나삼은 사앵앵이 매일 돈을 물 쓰듯 쓰는 것이 조금 걱정스러웠다. 이미 보름이 다 되어 가는데 주인어른은 언제 다시 개점하겠다는 말은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그저 매일 밖에서 먹고 마시며 돈을 헤프게 쓸 뿐이었다. 계속 이렇게 하다간 정말 큰일이 날지도 몰랐다.
그렇게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한가롭게 먹고 마시다 보니 며칠이 또 지났다. 그 끝에, 마침내 여의루에 변화가 나타났다. 사앵앵은 여의루의 확장을 위해 바로 옆집인 옷감 가게를 사들였다. 나삼은 깜짝 놀랐다. 예전엔 아래층에 손님 몇 상이 있으면 수입이 괜찮은 편이었고, 위층에 있는 별실은 비어 있기 일쑤였다. 당장 주방장과 점원을 구해서 개점은 하지 않고… 어찌 가게를 확장하려 한단 말인가?
나삼은 며칠 동안 사앵앵과 함께 지내면서 호탕하고 결단력 있는 그녀는 진정 장사꾼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이런 결정에는 그도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옷감 가게를 사서 벽을 뚫으니 공간이 예전보다 부쩍 트였다. 사앵앵은 원천림에게 내부 수리를 맡기고, 목재를 사고 장인을 데려오는 일 등을 모두 감독하게 했다. 장사는 할 줄 모르지만, 관리에는 일가견이 있는 원천림은 보름 안에 완공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나삼은 주루를 수리하는 동안 급히 주방장과 점원들을 수배했다. 점원들은 구하기 쉬웠지만, 주방장은 좀처럼 좋은 이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가 사앵앵을 찾아가 상의하자 그녀는 명단 한 장을 건네주었다. 명단에는 음식점 이름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무슨 수를 쓰든지 여기에 적혀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오게.”
명단을 훑어본 나삼은 조금 의아했다.
“주방장을 여덟 명이나 고용해야 합니까?”
다른 주루에서 사람을 빼 오려면 많은 돈이 든다. 그런데 한 번에 여덟 명이나 빼 오려면 그 비용이 상상 이상일 터였다.
사앵앵이 대답했다.
“이들은 주방장이 아니라 점원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