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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689)화 (688/1,192)

제689화

다른 점원들은 폭소를 터뜨리다 급기야 조롱을 퍼부었다.

“꼬마 아가씨, 그 주머니에 있는 은자로 이 주루를 살 수 있겠어? 살 수 있다면 마음대로 해봐.”

“허풍 치는 것 좀 봐. 입조심해야지.”

“꼬마 아가씨를 판다고 해도 부족할 판에, 하하하…….”

“아이고, 나 관리인, 앞으로 소인들 좀 잘 부탁드립니다!”

“…….”

자신을 조롱하든 말든 아이는 침착하게 점원들의 얼굴을 살폈다.

“내 자네들을 해고할 걸세.”

“하하하.”

점원들은 더욱더 오만방자하게 웃었다.

“대체 어느 집 자식이야? 정신이 완전히 나갔나 본데.”

“썩 돌아가거라. 밖에서 사기 치며 돌아다닐 생각하지 말고.”

“얼굴은 예쁜데 바보였구먼.”

“…….”

인정 많은 나삼은 그들의 조롱에 자신이 다 민망할 지경이었다. 그가 얼른 아이를 위로했다.

“저들이 하는 말은 신경 쓰지 마세요. 시답잖은 소리를 하는 것뿐이니까.”

다른 점원이 혀를 쯧쯧 찼다.

“어이, 나삼, 애가 관리인을 하랬다고 진짜 관리인이라도 된 줄 아나 보지? 정신 차리라고.”

그때, 또 다른 이들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부부 한 쌍에 아들 한 명이었다. 부인은 빼어난 미모를 자랑했고 남편은 기골이 장대하고 늠름했다. 아들은 까만 두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게 아주 똘똘해 보였다. 그 뒤로는 시종처럼 보이는 네 사람이 뒤따랐다. 점원들은 서둘러 활짝 웃는 낯으로 그들을 맞이했다.

“아이고, 귀한 손님이 오셨군요. 나리, 부인, 이쪽으로 드시지요.”

남자아이는 어머니와 맞잡은 손을 놓더니 먼저 앉은 여자아이 옆으로 달려갔다.

“누나, 벌써 왔어?”

그 순간, 점원들은 민망함에 서로 눈치만 주고받았다. 방금까지 정신이 이상하다며 놀려 댔는데 아이의 가족들이 뒤따라오다니. 다행히 아이는 부모에게 고자질하는 대신 나삼을 불렀다.

“여기서 가장 유명한 요리를 하나씩 가져다주시오. 한번 맛 좀 보게.”

나삼은 곧장 대꾸하고는 목청을 높여 부엌에 소리쳤다.

“돼지고기 편육, 소고기 조림, 삼색 채소볶음, 매향육사, 시금치 두부탕…….”

다른 점원들의 눈엔 참으로 희한한 광경이었다. 무슨 아이가 부모 앞에서도 저리 노숙하게 군단 말인가. 더 이상한 건 가족들도 아이를 어른처럼 대하는 눈치였다. 꼭 아이 혼자서도 충분히 일을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여덟 명은 두 탁자에 나눠 앉았지만 음식은 주인과 종의 구분 없이 전부 똑같은 것으로 주문했다. 밥을 먹는 동안 그들은 끊임없이 음식 맛을 평가했다. 부인이 먼저 여자아이에게 물었다.

“돼지고기가 조금 딱딱한 것 같은데, 봉봉이 네 생각은 어때?”

“맞아요, 너무 딱딱해요. 아마 찔 때 불이 약했겠죠. 이가 약한 사람은 먹기 더 힘들 거예요.”

이번엔 늠름한 사내가 말했다.

“소고기는 조금 물컹한 게 씹는 맛이 없는 듯하구나.”

사내아이가 말을 받았다.

“탕은 너무 싱거워서 맛이 하나도 안 느껴져요.”

다른 탁자에 앉아 있던 이들 중 전병처럼 얼굴이 너부데데한 시녀가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육사가 왜 이렇게 질긴 거야, 가죽을 씹는 것도 아니고.”

나이가 좀 더 있는 아낙은 한결 차분한 어투로 말했다.

“그릇 테두리를 깨끗이 닦지 않은 듯하네.”

“전 그리 나쁘지 않은데요.”

건장한 하인이 어수룩하게 웃었다.

“그래도 고향의 기름 떡이 먹고 싶긴 하지만요.”

곱상하게 생긴 하인이 모두의 말을 한 번에 정리했다.

“채소는 싱싱하지 않고, 육사는 너무 질기고, 탕은 아무 맛도 안 나고, 돼지고기는 잘못 삶았고, 소고기는 물렁하고… 맛있는 게 하나도 없네!”

이러쿵저러쿵 음식 평가를 듣고 있으려니 점원들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행색을 보아하니 외지에서 온 것 같았다. 게다가 거무튀튀한 몰골이 고생깨나 한 듯한데 도성에 와서는 저리 허세를 부리다니. 도대체 뭐 하는 사람들이란 말인가?

식사를 마친 뒤에도 그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제집처럼 오고 다녔다. 부인은 곱상한 하인은 데리고 부엌으로 갔고, 여자아이는 남동생을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여종은 그 뒤를 따르며 아이들을 돌보았다. 아낙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는지 천으로 상을 닦기까지 했다. 건장한 하인은 말없이 문 앞에 서 있었고, 늠름한 사내만 홀로 탁자를 지키며 차를 마셨다.

점원들은 또다시 할 말을 잃고 눈빛만 주고받았다. 참으로 기이한 가족이었다. 밥을 다 먹고도 떠나기는커녕 가게를 들쑤시고 다니지 않는가. 게다가 돈을 낼 생각도 없어 보였다.

계산대에서 한참을 기다리던 장부 선생은 결국 점원들에게 눈치를 주었다. 하지만 차를 마시는 사내의 위엄 앞에서 점원들은 차마 계산을 독촉할 수 없었다. 그들은 서로 미루고 미루던 끝에 나삼에게 장난치듯 말했다.

“자네가 새 관리인이 되었으니 자네가 가서 말하게.”

장사도 안 되는데 모처럼 온 손님들에게 돈을 받지 못한다면 손해가 막심할 터였다. 걱정이 된 나삼은 차를 마시는 사내에게 다가가 완곡히 청했다.

“나리, 혹시 남은 여정에 건량이 더 필요하진 않으신지요…….”

사내가 손을 저었다.

“도성에 사는데 무슨 건량이 필요하겠는가?”

“아, 소인이 잘못 생각했군요.”

나삼은 웃으며 계산대 쪽으로 팔을 뻗었다.

“더 필요하신 게 없으시다면 계산을 해 주시겠습니까? 저희 장부 선생이 장부를 정리해야 해서요.”

사내가 담담히 미소를 지었다.

“점원들을 다 모아 주게. 우리 부인이 할 말이 있을 걸세.”

나삼은 속으로 중얼댔다. 아무리 할 말이 있다 한들 계산은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는 할 수 없이 동료 점원들을 전부 불러 모았다.

그때, 부인이 뒤쪽 부엌에서 나왔다. 그녀는 조용히 하인에게 분부를 내렸다. 하인은 곧장 목청을 높여 장부 선생을 불렀다.

“선생, 번거롭겠지만 선생도 잠시 오시지요.”

장부 선생은 그들이 계산하려는 줄 알고 재빨리 앞으로 나왔다. 하지만 부인은 그에게 옅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다들 내가 누군지 모를 걸세. 난 이곳 여의루의 주인장 사씨네.”

여의루? 도성에 여의루라는 주루가 또 있단 말인가? 다들 순간 넋을 놓았다. 그렇다면 정말 주인마님이 오신 거란 말인가!

여의루는 개업한 지 일 년이 다 되었지만 주인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관리인 말로는 주인이 외지에 있어 자신에게 잠시 맡겼다고 했다. 다만 장사가 이 모양인 걸 보면 원 관리인은 주루를 운영할 재목이 못 되었다. 그간 점원들은 주인이 누군진 몰라도 마음이 참 넓은 사람이라며 농을 던지곤 했다.

한데 이렇게 주인이 나타났으니 별수 있나. 가장 훌륭한 점원은 입을 잘 놀리는 사람이니 서둘러 입담을 뽐내는 수밖에.

“주인마님이셨군요. 안 그래도 아침부터 문 앞 나무에서 까치가 그렇게 울어 대더니… 이리 좋은 일이 생기려 그랬나 봅니다.”

“안녕하십니까, 주인마님. 젊고 예쁘신 건 물론이거니와 한눈에 봐도 침착하고 대범하십니다. 큰일을 하시는 분이란 걸 단번에 알겠습니다.”

“아가씨도 얼마나 대단한지 모릅니다. 역시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더니 어린데도 보통이 아니십니다.”

“앞으로 주인마님께서 저희를 잘 이끌어 주시면 여의루도 손님들로 넘쳐날 겁니다.”

“…….”

사앵앵은 그들이 아첨을 다 떨 때까지 기다렸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손님들로 넘쳐나는 것은 당연지사지. 하나 우리 딸이 들어왔을 때 접대를 하지 않았다더군. 오히려 조롱하고 비웃기까지 했지. 이는 업무 태만이자 손님을 업신여긴 것일세. 게다가 가게 간판엔 먼지가 쌓여 있고, 탁자는 기름이 묻어 미끌거리고, 식기와 집기는 지저분하기까지 하네.

이는 자네들의 게으름을 보여 주는 게 아닌가. 이것만 봐도 자네들이 주루 점원에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네. 장부 선생, 이자들의 삯을 계산해 주고 열다섯 냥씩 더 얹어 오늘부로 가게에서 내보내게.”

점원들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꼬마 아가씨가 점원들을 해고하겠다고 했을 땐 비웃었지만, 어느 순간 현실이 되고야 말았다. 순간 넋을 놓았던 점원들은 곧 울상이 되었다. 여의루는 봉급도 높았고 빈둥빈둥 놀기에도 좋아서 편히 돈을 번다며 다른 가게 점원들이 부러워할 정도였다. 한데 이 직업을 어찌 잃을 수 있단 말인가? 요새는 일자리 찾기도 힘든데!

그때, 한 점원이 나삼을 힐끔 바라보았다. 꼬마 아가씨가 나삼을 관리인으로 삼는다 하였는데 정말일까? 때마침 사앵앵이 나삼에게 말했다.

“자네는 남게. 자네는 우리 딸을 무시하지 않았으니 태만히 일한 것은 아니지. 게다가 제법 잽싸기도 하고…….”

옆에 있던 사장풍이 끼어들었다.

“괜찮은 사람이오. 이들 중 이자만 내게 계산을 요구했소.”

얼굴이 붉어진 나삼이 웅얼거렸다.

“소인은 주인 어르신인 줄 모르고…….”

“괜찮네.”

사앵앵이 웃으며 말했다.

“누구든 밥을 먹었으면 돈을 내야지. 무섭다고 계산을 하지 못하면 안 될 일이야. 자네가 잘한 걸세. 우리가 가게에서 밥을 먹는다고 해도 장부에 걸어 두어야 하네. 나삼, 우리 딸이 자네에게 관리인을 맡으라 했으니 그리하게.”

나삼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정말 관리인을 맡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점원 일만 했던 그가 어찌 관리인이 된단 말인가? 그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주인마님, 안 될 일입니다. 제가 어찌, 저는 못 합니다.”

“우리 딸이 어리긴 해도 사람 보는 눈은 좋네. 저 애가 자넬 골랐다면 자네도 할 수 있는 일이야. 다만.”

사앵앵이 말머리를 돌렸다.

“자네가 그리 싫다고 한다면 계속 점원으로 쓰겠네. 기회는 자네 손에 달렸어. 관리와 점원 중에 무얼 할지 잘 고민해 보게.”

사앵앵은 벌벌 떨고 있는 그에게 웃음을 보이며 덧붙였다.

“사람은 높은 곳으로 가고 물은 아래로 흐른다 했지. 기회가 주어졌다면 누구든 위로 가려 할 것이야.”

나삼은 자신이 이렇게 운이 좋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저 얼떨떨해하는데, 사장풍이 어깨를 다독였다.

“관리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 점원은 제대로 된 점원이 아니지! 난 자네가 할 수 있을 거라고 보네.”

나삼은 그의 손길에 몸이 절로 수그러들었다. 너무 과한 총애를 받는 듯한 기분이었다. 주인 어르신과 마님이 이렇게 높이 평가해 주니, 그도 더 분발하여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마침내 나삼은 마른 입술을 축이며 말했다.

“주인마님, 하겠습니다.”

“더 큰 목소리로.”

사앵앵이 말했다.

“관리인은 기개가 넘쳐야 하네.”

“예, 주인마님!”

나삼은 목청을 높여 답했다. 그러고 나니 까닭 없이 자신감이 생겨났다. 사앵앵이 만족스러워하며 말했다.

“장부 선생을 도와 저들에게 봉급을 계산해 주게. 또한 부엌 일꾼들도 함께 내보낼 것이니 전부 자네가 도맡아 처리하게.”

“…….”

어찌 관리인이 되자마자 미움 사는 짓을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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