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5화
가동에게는 한 가지 걱정거리가 있었다. 녹하 때문에 가난청이 청양 공주처럼 포악한 성격을 지닐까 걱정이었다. 그러나 그의 걱정과는 별개로, 가난청은 패기가 넘치고 올바른 아이로 자라났다. 다만 생김새는 조금 달라졌다. 처음엔 친모를 닮았었는데 녹하와 함께한 시간이 길어서인지 지금은 녹하를 많이 닮아 있었다.
가 대인은 엄한 아버지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끝끝내 수포로 돌아갔다. 열심히 얼굴을 굳히고 말을 아끼며 근엄한 모습을 보였지만, 아이를 가르치려 할 때면 가난청은 멍한 표정을 지으며 좀처럼 알아듣지 못했다. 반면 녹하가 입을 열면 가난청은 곧장 말뜻을 알아듣고 신이 난 발걸음으로 자리를 떴다.
가동은 아이가 아직 어려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라고, 좀 더 크면 나아지리라고 애써 스스로를 위안했다.
가난청이 두 돌을 맞이할 때쯤, 아이는 제법 말귀를 알아듣고 말을 할 수도 있었다. 아쉽게도 엄한 아버지 역할은 여전히 실현 불가능했다.
비가 그친 어느 날 저녁, 가난청은 정원에서 신나게 물놀이를 했다. 물방울이 높게 튈수록 아이는 더 즐거워했다. 그 모습을 발견한 가동이 아이에게 호통쳤다.
“청아, 그리 함부로 날뛰어선 안 된다. 어서 들어오거라.”
어찌나 즐겁게 노는지 아이는 그의 말을 아예 듣지 않았다. 가동은 하는 수 없이 아이에게 다가가 얼굴을 굳힌 채 허리를 숙였다.
“청아…….”
순간, 구정물이 그의 입안으로 날아들어 왔다. 그 모습을 본 가난청은 까르르 웃었다. 화가 난 가 대인은 손을 드는 척했지만 가난청은 고개를 빳빳이 세운 채 활짝 미소를 지었다. 가 대인이 어찌 아이를 때릴 수 있었겠는가. 그는 이를 꽉 깨물 뿐 어쩔 도리가 없었다. 복도에 서 있던 녹하가 가볍게 호통쳤다.
“청아, 또 말썽을 피우면 어떡해? 온몸이 진흙 범벅이 되었네. 그만 놀고 어서 오렴. 어머니가 씻겨 줄게.”
꾸지람을 들은 가난청은 얌전히 어머니에게 달려갔다. 가 대인은 연거푸 침을 뱉은 뒤에야 성질을 부렸다.
“이런 망할 놈! 빨리 들어갔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음 내가 혼쭐을 내줬을 거다!”
옆에서 지켜보던 시녀는 입을 가리고 웃었다. 공자가 돌아가지 않았다고 해도 누가 누구를 때릴 수 있었겠는가.
가난청이 두 돌하고도 삼 개월이 지났을 무렵, 가 대인은 아이에게 무술을 가르쳤다. 녹하는 이렇게 어린아이가 무슨 무술이냐며 반대했지만, 가 대인은 당차게 말했다.
“안 될 게 뭐 있어. 청양 공주도 두 돌이 되기 전에 권법이랑 발차기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녹하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말했다.
“어떻게 청양 공주랑 비교할 수 있어. 세상에서 그런 분은 딱 하나라고. 황상조차 공주를 어찌하지 못하는데.”
가동은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고 가난청에게 무술을 가르쳤다. 두 살이 갓 넘은 아이가 뙤약볕 아래에서 기마 자세를 하니, 가동의 가슴이 저절로 미어졌다. 그는 녹하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아이를 나무 그늘에 세워 두었다.
가동의 품에 안겼다가 내려올 때도 가난청의 기마 자세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해가 조금씩 기울어질 때까지 가 대인은 끊임없이 아이를 이곳저곳으로 옮겼다. 옆에서 지켜보던 녹하와 시녀들은 그 모습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가난청은 무술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아버지를 따라 며칠 장난을 치며 배워 보았지만 금세 흥미를 잃었다. 가 대인이 아이를 정원에 데리고 나오자 아이는 곧장 몸을 틀고 앞으로 달려갔다. 가 대인은 호통을 치며 불러 세웠지만, 아이는 들은 척도 않고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아이 뒤를 쫓았다. 아버지가 자신을 쫓아오자 신이 난 가난청은 더욱 잽싸게 달렸다. 아버지와 아들은 쫓고 쫓기며 정원을 한바탕 들쑤셨고, 길을 지나던 하인들은 다들 그 자리에 서서 두 사람을 구경했다.
가 대인이 어찌 두 살짜리 아이를 따라잡지 못하였겠는가. 다만 저 때문에 아이가 넘어질까 봐 걱정이었다. 아이를 붙잡고 싶으면서도 빠르게 달릴 수는 없으니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결국 가난청은 방 안으로 들어가 녹하의 품에 안겼고 두 사람의 소동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녹하가 가난청을 보며 말했다.
“아이고, 세상에, 이마에 땀 좀 봐.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술래잡기라도 한 거야?”
가난청이 입을 삐죽삐죽 내밀었다.
“어머니, 무술 연습 싫어요.”
“알겠어. 하지 말자.”
“안 돼.”
가동이 말했다.
“청아, 훗날 넌 부업을 이어받아야…….”
“가 대인, 그 일은 예전에 얘기했을 텐데.”
녹하가 그의 말을 끊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걸 할 수 있게 해 주자고, 누구도 아이에게 강요해선 안 된다고 말이야.”
하지만 가동은 아이에게 무술을 가르치면서 자신의 진짜 능력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가 곧장 대꾸했다.
“이렇게 컸는데 노는 것만 밝히잖아. 우리가 잘 가르쳐야 제대로 된 길로 갈 수 있다고. 될지 안 될지는 좀 더 시켜 보고 결정해. 내일부터 날이 밝기 전에 아이를 깨울 테니까…….”
“어딜 감히?”
녹하가 눈을 부릅떴다. 그 순간, 녹하는 별안간 입을 틀어막으며 헛구역질을 했다. 가난청이 잽싸게 걸어와 아버지를 발로 한 대 걷어찼다.
“왜 어머니를 화나게 해요.”
가동은 아이와 신경전을 벌일 겨를이 없었다. 그가 황급히 녹하를 의자에 앉혔다.
“부인, 왜 그래? 어디가 아픈 거야?”
녹하는 가슴을 치며 어디가 불편한지 확인했지만 별 이상 없는 듯했다. 그녀가 대수롭지 않게 아들의 말을 따라 했다.
“당신이 화나게 하니까 그렇지.”
가동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의원을 부르는 게 낫겠어.”
마침 위중청은 좋은 술 한 주전자를 들고 가동의 저택에 온 참이었다. 안에서 들리는 소리에 그가 문 앞까지 성큼 다가왔다.
“의원이 왔소이다. 어느 분이 불편하신지요.”
가동이 문 앞을 바라보았다. 때마침 태의가 오다니! 그가 서둘러 말했다.
“어서 와서 녹하 좀 봐주게. 방금 몸이 좀 이상했으니까.”
위중청은 녹하 앞으로 다가와 그녀의 팔목에 두 손가락을 얹고 맥을 짚었다. 점점 어두워지는 그의 안색에 깜짝 놀란 가동이 다그쳤다.
“의정, 대체 무슨 일인가?”
“이런, 이런, 이런…….”
위중청은 엄숙한 얼굴로 같은 말을 반복하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대단하군요.”
어찌나 초조한지, 가동은 다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의정, 대체 무슨 일인지 어서 말해 보게. 대체 우리 부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위중청의 엄숙한 표정은 점차 당혹감으로 바뀌었다.
“어찌 태맥이 잡힌단 말입니까?”
가동이 단호히 말했다.
“그건 불가능하네. 다시 한번 짚어보게.”
위중청은 맥만 짚을 뿐 아무 말도 없었다.
“이보게 위 의정, 제대로 보는 게 맞는가? 잘 모르겠으면 다른 의원을 불러오겠네.”
위중청이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제 인품은 의심하시더라도 의술은 의심하시면 안 되지요. 전 황상이 직접 봉하신 의정입니다. 절 의심하는 건 황상을 의심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가 손을 내려놓더니 확고히 말했다.
“제대로 알려 드리지요. 부인께서 회임을 하셨습니다.”
“그건 불가능하네.”
가동은 여전히 그의 말을 믿지 못했다.
“날 놀리지 말게. 녹하의 상황을 자네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줄곧 아무 말도 없던 녹하가 별안간 헛기침을 하더니 매지를 불렀다.
“청아를 데리고 나가 놀래?”
가난청이 밖으로 나가자 그녀는 그제야 가동을 흘겨보았다.
“아이 앞에서는 말 좀 조심해 주시죠.”
가동이 멋쩍게 웃었다.
“어차피 아직 어려서 못 알아들어.”
“어려도 얼마나 똑똑한데.”
녹하가 말했다.
“당신은 청아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늘 귀를 쫑긋 세우고 어른들 얘기를 들었다가 전부 새겨 둔다고. 언젠가 당신한테 그 얘길 꺼낼지도 몰라.”
“정말?”
“정말이고말고. 나한텐 벌써 몇 번이나 그랬어.”
위중청은 뜻밖의 임신 소식에 두 사람이 언제쯤 놀라고 기뻐할지 지켜보았다. 그러나 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상적인 대화만 나누었다. 그 모습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설마 너무 기뻐서 사리 분별이 안 되는 것일까?
가동이 믿든 안 믿든, 녹하는 임신한 게 확실했다. 가동은 위중청의 의술을 의심하진 않았지만, 그가 자신 부부를 놀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다른 의원을 불러 진맥을 받아보았는데 그 의원도 녹하에게서 태맥이 잡힌다고 했다.
가동은 너무 기뻐 어쩔 줄 몰랐다. 그는 녹하 주위를 빙빙 도는 것 말고는 무얼 해야 할지 몰랐다. 녹하는 어지럽다며 방에서 나가라고 소리쳤다. 그가 나간 뒤에야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한편으로, 가 대인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간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오지 않던 아이였다. 한데 어떤 연유로 갑자기 찾아온 걸까? 그는 위 태의를 찾아가 연유를 물었다. 위 태의는 턱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기더니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예부터 그런 말이 있지요. 아이 없는 부부가 아이를 하나 데려오면 그 아이가 다른 아이를 데려온다고요.”
가 대인도 들어 본 적 있는 말이었다. 그는 절로 마음이 든든해졌다. 뛸 듯이 기뻐하는 가동에 비해, 녹하는 평온했다. 그간 그녀의 마음은 전부 가난청에게 쏠려 있었으니까. 가난청에게 동생이 생긴다면 아이가 살아가는 데 더 좋지 않겠는가.
그날 밤, 가동은 조상들의 위패 앞에서 한참 동안 무릎을 꿇고 있었다. 다리가 마비될 때가 되어서야 그는 조금씩 안정을 되찾았다.
그와 녹하 사이에서 생긴 첫 자식이었다. 그는 온 정성을 다해 키우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이제 그는 녹하를 볼 때마다 눈물이 맺히곤 했다. 절로 여느 때보다 다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녹하야…….”
그런 가동 때문에 몇 차례나 닭살이 돋은 녹하는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좀 정상적으로 행동할 순 없어? 어찌 그리 섬뜩하게 하는 거야.”
가난청은 할 수 있는 말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감정을 어찌 표현해야 하는지 잘 몰랐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아버지를 향해 눈을 희번덕였다. 물론 녹하에게서 배운 행동이었다. 눈을 희번덕거리는 데 재미를 느낀 아이는 눈동자를 이쪽저쪽 움직이며 흰자위를 보인 뒤, 한참 동안 눈을 감았다 뜨는 걸 반복했다.
가동은 가난청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절 보는 걸 좋아했다. 그 모습을 보지 못하면 몸이 쑤셨기에 일부러 장난을 걸기도 했다. 녹하가 그를 혼내면 가난청이 곧장 눈을 희번덕이는데, 모자가 어찌나 호흡이 잘 맞는지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 모습을 즐길 새가 없었다. 그의 온 정신은 녹하의 배에 쏠려 있었다. 첫째는 자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둘째에게라도 잘 보여야 했다. 더욱이 무술을 싫어하는 첫째를 대신해 둘째에게 무술을 가르쳐 훗날 제자로 키울 속셈이었다. 그날이 되면 첫째는 분명 후회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