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2화
집안에 아이가 태어나니 달라진 게 너무 많았다. 특히 가동처럼 오랫동안 아이를 바라던 집은 더더욱 그러했다. 아이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은 물론 변을 보는 것까지 즐거운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녹하는 원래 냉담한 태도를 보였기에 하인들 모두 그녀를 무서워했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아침부터 밤까지 늘 웃는 얼굴이었고 공자에 대한 얘기만 나오면 입이 귀에 걸릴 듯 활짝 웃었다. 다른 이들을 혼내거나 욕하지도 않고, 만나는 사람마다 미소를 보였다. 하인들은 그간 받아 보지 못한 주인마님의 총애에 몸 둘 바를 모를 정도였다.
가 대인은 반대였다. 평소 그는 시시덕거리며 점잖지 못한 모습을 보였지만, 지금은 뒷짐을 지며 무게를 잡았고 걸음걸이도 천천히 내딛는 게 제법 관리 나리다웠다. 다들 뒤에서 대인이 아버지가 되더니 철이 든 것 같다고 쑥덕댔다.
녹하는 저택에 있을 땐 아이와 거의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에게 젖을 먹일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품에 안았다. 분홍빛 살갗의 갓난아이가 어찌나 귀여운지, 차마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그녀가 낳지 않았더라도, 가동의 혈육이자 그들 부부의 장자였다. 자연히 금쪽같이 귀한 아들인데 또 어찌나 예쁘게 생겼는지 모른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아무리 봐도 다른 집 아이보다 훨씬 더 예뻤다. 녹하에게 아이는 보배 같은 존재라 잠시라도 눈에 보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다. 그녀는 가동에게 의견을 물었다.
“아예 마마께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릴까 봐. 집에서 아이를 돌봐 줄 사람이 없잖아.”
가동이 눈을 흘기며 말했다.
“이리 못나서야, 아이를 돌봐 줄 사람이 왜 없어? 유모랑 시녀들은 사람도 아니야? 아이 때문에 앞날을 다 망칠 생각이야? 누가 뭐래도 이품 고관 모자는 써 봐야지.”
아이에게 온 신경이 쏠려 있는 녹하는 그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공명을 떨쳐서 뭐 해. 아이를 보는 사람은 많아도 자기 집 아이처럼 세심히 봐 주는 사람은 없잖아. 다른 이에게 아이를 맡기는 게 도무지 마음이 안 놓여.”
가동이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그래도 심열이가 있잖아?”
가동의 말에 녹하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며칠간 너무 큰 기쁨에 잠긴 나머지 심열이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줄곧 방에 누워 산후조리를 하던 심열은 아이를 보여 달라는 말도 전하지 않았다. 화가 난 건 아니겠지? 산후조리를 하는 동안 화를 내면 몸에 좋지 않을 텐데. 그녀는 뒤늦게 자신을 책망했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다니!
그녀는 서둘러 아이를 안고 옆방으로 향했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은 심열은 천장을 바라보며 멍하니 넋을 놓고 있었다. 안색이 조금 창백하여 유독 허약해 보였다. 그 모습에 죄책감이 든 녹하는 웃으며 아이를 건넸다.
“아이가 태어나니까 준비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 찾아오지도 못했네. 부디 마음에 담아 두지 마. 자, 어서 안아 봐.”
심열이 아이를 안았다.
“언니께서 아이를 이렇게 잘 돌봐 주시는데, 어찌 마음에 담아두겠습니까? 그저 감사할 따름인걸요. 언니께서 고생이 많으십니다.”
“내가 고생은 무슨.”
녹하가 말했다.
“우리 동생이 고생이지. 몸은 좀 나아졌어? 아이를 낳느라 기력이 다했을 테니 산후조리를 잘해야 해.”
“이렇게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해요. 부엌에서 매일 보양식을 가져다주어서 괜찮습니다. 다 언니께서 마음 쓰신 덕분이에요.”
“당연히 그리해야지.”
녹하가 웃으며 말했다.
“심열이 네가 우리 집안에 얼마나 큰일을 해 주었는데.”
심열은 고개를 숙여 한동안 아이를 바라보더니 녹하에게 말했다.
“언니가 안고 가시어요. 전 팔에 힘이 없어서 너무 무겁습니다.”
녹하는 혹여나 심열이 아이를 떨어뜨릴까 봐 서둘러 데려왔다. 아이는 까만 눈을 반짝이며 그녀에게 활짝 웃어 주었다. 또다시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린 녹하는 참지 못하고 아이에게 입을 맞추었다.
“정말 너무 예뻐. 여자아이보다 더 예쁜 것 같아.”
즐겁게 아이를 어르는 녹하를 바라보던 심열의 두 눈엔 물기가 아른거렸다. 녹하가 베푼 엄청난 은혜를 마침내 갚은 기분이었다. 녹하가 말했다.
“며칠 동안 제대로 신경을 못 썼지만 앞으로는 매일 아이를 데려와서 보여…….”
“제발 그러지 마시어요.”
심열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
“방에 비릿한 냄새가 다 빠지지 않아 혹여 아이에게까지 냄새가 밸까 걱정입니다. 아예 언니가 아이를 데려가시어요. 매번 아이를 보러 오가면 언니도 힘드실 테니까요. 저도 아직 몸이 좋지 않아 아이를 돌보지도 못하는걸요.
어쨌든 유모가 있으니 아이가 굶는 일은 없을 겁니다. 게다가 언니께서 정성을 다해 돌봐 주시니 저도 마음을 푹 놓을 수 있고요. 그 애는 대인의 아이이기도, 언니의 아이이기도 하니 부디 친아들로 여겨 주시어요.”
그녀의 말에 녹하는 옅은 서글픔을 느꼈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알겠어. 우선은 심열이 네 몸이 나아지면 그때 다시 얘기하자. 아이가 만월이 되거든 심열이 너와 대인의 혼사도 준비할게. 그땐 우리 자매가 함께 아이를 돌보는 거야.”
심열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네, 언니 말대로 할게요.”
채 몇 마디도 나누지 못하고 지친 심열의 모습에, 녹하는 시녀들에게 그녀를 잘 돌볼 것을 당부한 뒤, 아이를 안고 방을 나섰다. 심열이 이렇게까지 말해 준 만큼, 녹하는 아이와 아이에게 필요한 물건을 전부 자신의 처소로 옮겼다.
궁에서 돌아온 가동은 안채에 가득 모인 하인들을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방 안에는 아이 물건이 한가득 있었고 침대에는 요람까지 놓여 있었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그는 기쁜 마음에 옷자락을 걷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러나 하인들의 눈빛을 의식하곤 곧장 얼굴을 굳히며 미간을 찌푸렸다.
“아이가 어찌 이곳에 있는 거야?”
녹하는 그의 말이 우습기만 했다.
“왜 여기 있으면 안 되는데? 이렇게 어린아이가 아버지 어머니 곁에 없으면 어디 있어야 하는데?”
그녀는 심열이 해 준 말을 전하며 아이가 이곳에서 지낼 것이라고 했다. 물론 가동도 속으로는 기뻤다. 안 그래도 매번 심열의 처소에 찾아가 아이를 봐야 하는 게 번거로웠던 참이었다. 앞으로 아이가 그의 방에서 지낸다면 보고 싶을 때마다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녹하가 화제를 돌렸다.
“참, 아이 이름은 생각해 봤어? 계속 아이라고 부를 순 없잖아. 금방 만월이 올 텐데 어서 이름을 지어 줘야지. 황상께서는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름을 지어 주셨잖아. 당신도 이제 아버지인데 황상께 좀 배우지.”
가동은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내가 지은 이름들은 다 마음에 안 들어 했잖아.”
그 일을 꺼내자 녹하는 화를 냈다.
“마마한테서 작명하는 법을 배워온 거야, 뭐야? 가소북賈小北, 가소남賈小南이라니, 나중에 남북을 횡단하라는 거야?”
가동이 멋쩍게 말했다.
“행군과 전투를 하려면 남북을 횡단해야 하잖아?”
“하, 난 아이한테 행군이나 전투는 절대 못 하게 할 거야. 이렇게 고운 얼굴로 군대를 가라니. 분명 대학사가 될 상이라고. 글재주도 뛰어날 테지. 당신을 닮아 어리바리한 사람으로 자라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
가동은 그녀의 말이 달갑지 않았다.
“행군이나 전투를 한다면 장군이 되는 건데, 그게 뭐가 나빠. 어리광만 부리고 훌쩍대는 겁쟁이로 키울 생각은 하지 마.”
녹하가 벌컥 화를 내었다.
“어떻게 그런 말을! 아이한테 사과해! 대체 당신 같은 아버지가 어디 있어?”
어찌 강보에 싸인 갓난아이에게 사과를 하겠는가, 그는 이품 고관인 것을. 절대 할 수 없는 짓이었다.
녹하는 아이에게 하는 나쁜 말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그가 사과할 생각이 없어 보이자, 그를 때리지 않겠다던 약속은 내팽개친 채 먼지떨이를 들고 그를 뒤쫓기 시작했다…….
* * *
가동네 집안 공자는 마침내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녹하의 부탁을 받은 황후가 이름을 지어 달라며 황제에게 청한 덕에 난청瀾淸이란 이름을 하사받았다. ‘효와 우의가 깊고 지조 있게 처신하며, 내면은 옥처럼 윤기가 흐르고 외면은 물처럼 맑다’는 경전의 구문 중 물처럼 맑다는 의미를 빌려 지은 이름이었다.
비범한 이름을 하사받은 녹하는 가동을 이끌고 황제를 찾아가 공손히 절을 올리며 황제의 성은에 감사 인사를 올렸다.
돌아오는 길 내내 녹하는 가동을 놀렸다. 황상도 무관 출신인데 어째서 소북이 같은 이름을 짓지 않는단 말인가. 아들에게 좋은 이름이 생겼으니 가동도 기쁘긴 마찬가지였지만 이번에도 티를 내지 않았다.
“이름만 들었을 땐 학식이 깊을 것 같지만 아버지가 무관이니 나중엔 부업을 이을 거야.”
“두고 보면 알겠지.”
녹하가 말했다.
“지금 그런 말을 하는 건 시기상조야. 크면 자연스레 알게 될 테니까. 어쨌든 그 누구도 강요해선 안 돼. 스스로 선택하게 해야 된다고.”
가동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내 아들은 내가 알아, 어디 두고 보라지.”
부부는 서로 노닥거리며 저택으로 돌아왔다. 가마에서 내린 녹하는 아이 생각에 성큼성큼 안채로 향했다.
가동은 그녀의 뒤를 태연히 따라갔다. 시월의 가을 하늘은 유난히 광활하고 푸르렀다. 드넓은 하늘에 솜털 같은 구름이 듬성듬성 떠다녔고, 서쪽으로 기울어진 태양은 붉은 피처럼 새빨갰다. 그는 시선을 거두고 뒷짐을 진 채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문득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한 처소가 눈에 들어왔다.
심열의 처소였다. 아이가 태어난 날 이후로 그녀를 본 적이 없었다. 지금은 산후조리 기간이라 심열은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아이를 보러 몇 차례 그녀의 처소를 찾긴 했지만 아이가 있는 방만 들렀을 뿐 그녀의 방은 찾지 않았다. 아이를 안채로 데려온 뒤론 아이를 어르는 녹하만 볼 뿐 심열의 존재는 거의 잊고 있었다.
오늘은 황제께서 아이의 이름을 하사했으니 친모인 그녀에게 마땅히 알려야 했다. 잠시 망설이던 그는 그녀의 처소로 향했다. 조심스레 문을 밀자 시녀 금지가 그를 발견하고 서둘러 예를 갖췄다.
“오셨습니까, 대인.”
침대 쪽을 바라보니 장막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가 조용히 물었다.
“아가씨는 잠들었느냐?”
금지가 답했다.
“예, 지금은 주무십니다.”
“잠든 지 얼마나 되었느냐?”
“제법 지났습니다. 이제 곧 깨워야 할 듯합니다.”
“아가씨 몸은 많이 나아졌느냐?”
“다른 건 괜찮은데 자꾸만 나른해하시면서 기운을 차리지 못하십니다.”
가동은 조금 걱정이 되었다.
“몸이 시원치 않은 것 아니더냐? 의원의 진맥은 받아 본 것이냐?”
“부인께서 분부하셔서 사나흘에 한 번씩 의원이 찾아오십니다. 다행히 회복은 아주 잘하고 계시답니다.”
금지는 이내 목소리를 낮췄다.
“대인, 아가씨께서 방 안에만 계시니 답답하실 겁니다. 짬이 나시거든 이곳을 찾아 아가씨와 말씀 좀 나눠 주시어요.”
잠시 침묵하던 가동이 천천히 답했다.
“나도 안다.”
자리를 뜨려는데 장막 안에서 심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인께서 오신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