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7화
녹하가 저택에 돌아오지 않다니… 진씨의 예상이 적중했다. 진씨는 녹하에게 뺨을 맞았던 일을 절대 잊을 수 없었다. 맞은 걸 물릴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 녹하가 이 집 문턱을 두 번 다시 넘지 못하게 할 작정이었다.
그녀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집안일에 관여했다. 다른 시녀들은 그녀를 무서워했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석동은 녹하를 따라 궁으로 들어갔고, 매지 홀로 진씨와 맞설 뿐이었다.
두 사람은 사흘이 멀다고 말다툼을 했고 닷새가 멀다 하고 싸웠다. 한 사람은 심열과 가장 가까운 시녀였고 다른 한 사람은 부인과 가장 가까웠으니, 관리인도 두 사람을 막지 못했다. 결국 이 일은 가동에게까지 들어갔다.
떠들썩한 걸 가장 좋아하는 가동으로서는 다른 집에서 부부싸움이 났다면 신나게 구경을 했을 터였다. 그러나 막상 자신의 집에서 싸움이 났다는 말을 듣자 머리가 아팠다. 관리인이 그에게 보고를 할 때마다 그는 습관적으로 녹하에게 모든 일을 넘겼다.
“난 그리 자질구레한 일들은 신경 안 써. 부인이 하자는 대로 해.”
관리인이 그를 일깨웠다.
“대인, 부인께서는 저택에 안 계십니다.”
가동은 흠칫 놀랐다. 그제야 녹하가 궁에 머문다는 사실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성가셔 죽을 것만 같았다. 그의 화는 괜스레 관리인에게 돌아갔다.
“관리인이 돼서는 대체 뭘 하는 거야? 관리인답게 집안을 잘 돌봐야지, 관리인이 처리 안 하면 누가 처리해?”
관리인이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인, 두 여인이 말다툼만 했다 하면 저 같은 사내는 끼어들지도 못…….”
“본 대인은 사내가 아니란 말이야?”
“대인께서는 조정의 고관이 아니십니까. 대인께서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나서주신다면 그들도 겁을 먹을 것입니다.”
가동은 어쩔 수 없이 다툼을 말리러 갔다. 사실 다툼의 원인은 정말로 자질구레했다.
날이 더워져서 저택에 부채가 새로 들어왔다. 사람 수대로 부채를 나누는데 매지와 진씨가 하필 똑같은 부채를 마음에 들어 했고 서로 가지겠다며 다투게 되었다. 한 사람은 망할 년이라고 욕을 퍼붓고 한 사람은 늙은 여편네라고 소리쳤다. 얼굴이며 목이며 할 것 없이 새빨개진 두 사람은 당장이라도 서로 할퀴고 머리채를 쥐어뜯을 기세였다.
가동이 굳은 얼굴로 호통을 치자 두 사람은 입을 다물었지만, 대신 서로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가동은 두 사람 사이에 서서 서로의 시선을 차단하려 했지만, 눈에 핏발이 선 두 시녀의 분노까지 막을 순 없었다. 둘다 눈빛이 어찌나 매서운지 자신의 몸에 몇 군데나 구멍이 뚫리는 것 같았다.
그가 좋게 타일렀건만, 두 사람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맞섰다. 결국 화가 난 그는 두 사람이 원하던 부채를 부러뜨렸다.
“이제 그만 싸워. 둘 다 갖지 못할 테니까! 앞으로 또다시 서로 갖겠다고 싸워 대면 본 대인이 다 부서뜨릴 거야. 그래도 싸울 수 있을까?”
이내 가동은 진씨는 내버려 둔 채 매지를 끌고 가며 꾸짖었다.
“부인도 없으니 다들 널 내버려 두었지? 왜! 네가 저택 꼭대기에 올라가고 싶은 거야?”
매지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대인께서 부인을 돌아오게 하면 되지 않습니까? 저도 진씨랑 싸우기 싫습니다. 한데 진씨가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며 싸움을 걸고, 제게 주인도 없다면서 업신여깁니다. 흥, 두고 보십시오, 대인. 앞으로 진씨가 얼마나 많은 계략을 짜낼지 셀 수도 없을 겁니다.
저택 하인들은 전부 진씨를 무서워합니다. 도적이 따로 없다니까요. 그렇게 제멋대로 날뛰는 하인은 본 적이 없습니다. 대체 자신이 누구라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다니까요. 왜 저희가 진씨한테 전부 양보해야 한단 말입니까? 심열 아가씨는 마음이 너무 무릅니다. 진씨를 통제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부인뿐입니다. 다른 이들은 아무도…….”
그녀의 잔소리는 가동의 마음을 더 번잡하게 할 뿐이었다.
“알았어, 그만해. 조용히 좀 있자.”
그러나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진씨와 매지와의 싸움뿐만 아니라 관리인도 매일 그를 찾아와 성가시게 굴었기 때문이다. 저택의 수입과 지출, 물건 구입, 조정 관료들의 방문, 집안 어르신들의 건강, 장인 장모와의 왕래까지……. 사소한 일 모두 그의 지시를 받으러 찾아왔다.
가동이 언제 이런 걸 신경 써봤겠는가. 그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부인이 오거든 그때 처리하게.”
하지만 마냥 기다릴 수 없는 시급한 문제들도 쌓여 있었다. 하는 수 없이 가동은 녹하를 찾아갔다. 사실 몇 차례 찾아가 그녀의 동태를 살피려 했지만, 녹하는 그의 그림자만 봐도 곧장 발걸음을 돌려 버렸다. 가동도 자신이 그녀의 미움을 샀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뻔뻔하게 다가가지 못했다. 예전엔 그렇게 두껍던 낯짝이 지금은 종이 한 장만큼이나 얇아진 것 같았다.
정이 깊었던 부부가 이렇게 되다니… 그는 정말 괴로웠다. 화해하고 싶은 마음은 태산 같아도,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기에 온종일 멍하니 넋을 놓았다.
이제는 심열과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고, 아이에 대해서도 묻지 않았다. 혼자 멍하니 앉아 있을 땐 다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찌 이리 사사건건 일이 틀어진단 말인가? 마음 깊은 곳에서 까닭 없는 화가 치밀었지만, 발산할 수 없으니 대충 살다 죽느니만 못했다.
* * *
궁 안 길목을 지키던 가동은 마침내 녹하를 발견하고 길을 가로막았다. 부부는 거의 열흘 가까이 만나지 못한 상태였다.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하니 두 사람 모두 조금 부자연스러웠다. 녹하의 얼굴은 차갑게 굳었고 가동은 잔뜩 찡그린 얼굴이었다.
“녹하야, 집에 돌아와.”
“어째서?”
녹하가 담담히 말했다.
“바쁜 일 아직 안 끝났어.”
“그래도 이렇게 오랫동안 집을 비우면 안 되지.”
가동이 말했다.
“당신이 처리해야 할 일도 좀 있고.”
“당신은 집안의 기둥이잖아. 집안일 하나 처리 못 해?”
“난…….”
사실 그가 잡았을 때 녹하는 기분이 좋았다. 마음속에 옅은 기대가 맺히는 듯했다. 한데 정작 자신을 보고 싶어서도, 잘못을 인정해서 온 것도 아니었다. 그저 집안일을 처리하러 돌아오라니! 지금 자신을 저택 관리인으로 여기는 것이란 말인가!
“난 일이 있어서 먼저 가 볼게.”
녹하는 그를 피해 승덕전으로 향했다.
가동도 화가 나긴 마찬가지였다. 집안일은 그에게 내팽개치고 자신 혼자 궁에서 편히 지내겠다니, 그의 입장을 생각하긴 하는 것이란 말인가?
“그럼, 대체 언제 올 건데?”
그가 다급히 캐물었다. 녹하는 여전히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가동이 쌀쌀맞은 말투로 그녀에게 말하는 건 처음이었다. 며칠 못 봤다고 제법이었다. 그녀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일이 다 끝나야 가지. 난 내가 모시는 주인의 노비니까 버르장머리 없이 굴 순 없잖아?”
“그럼 내가 마마께 물어볼게. 대체 당신한테 무슨 일을 주셨길래 집에도 못 돌아가는지!”
“어딜 감히?”
녹하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마마께서 그리 한가한 분이셔? 언제든 찾아가서 네 멋대로 굴 만큼? 난 내가 돌아가고 싶을 때 돌아갈 거야.”
녹하가 눈을 부릅뜨면 늘 무서워하던 가동이지만, 그간 짜증이 쌓인 탓에 화를 억누르지 못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오겠다고? 잊고 있나 본데, 당신은 나 가동한테 시집온 부인이야. 세상 어느 부인이 날마다 집을 비워? 말도 안 되는 짓이지.”
“내가 그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겠다는데, 당신이 어쩔 건데?”
녹하가 코웃음을 쳤다.
“게다가 저택에 심열이도 있잖아. 집안일은 심열이한테 맡기면 되겠네? 내가 없으면 둘 다 더 편할 거 아니야.”
그녀의 말은 가동의 화를 부채질하고 있었다.
“이제야 진심을 말하네. 내가 심열이한테 잘해 주는 게 질투 나나 본데, 심열이는 내 아이를 가진 사람이야. 한데 어떻게 푸대접을 해. 그렇게 통 크던 사람이 지금은 어찌 이리 소인배가 된 거야? 그동안 우리가 아이를 가지려고 얼마나 고생했어. 몇 년이나 기다리던 아이가 겨우 찾아왔는데, 당신은 그 애 몸조리 도와줄 생각은커녕 궁에서 숨어 지내다니, 진짜 실망이다.”
가동의 마지막 말에 녹하는 결국 눈물을 흘렸다. 그건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아이를 가진 건 기쁜 일이지만, 아이 때문에 그녀를 내팽개치고 방치하진 말았어야지. 그녀에게 상처를 준 데다 그녀를 질책하고, 오해하고, 그녀야말로 그런 가동에게 깊은 실망을 느꼈다. 막대한 실망은 그녀를 억누르고 또 억눌렀다.
그녀의 눈물 앞에서 가동은 당황해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달래 줄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녹하는 쓸쓸하게 눈물을 닦고 목청을 가다듬었다.
“실망시켜서 미안해. 당신이 싫다면 이혼하자. 이제 당신은 처자식도 있겠다,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거야. 나도 당신 인생에 피해를 주고 싶진 않아. 만났을 때처럼 기쁘게 헤어지자.”
이 괴로움을 어찌 말해야 할까. 가동은 우두커니 서 있는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 그의 심장을 있는 힘껏 쥐어짜는 듯했다. 끊임없이 쥐어짜고 으스러트려 부스러기로 만드는 듯한 통증에 입이 꾹 다물렸다.
오랜 시간 함께한 두 사람은 황제와 황후만큼 달콤한 나날을 보낸 건 아니지만, 여러 일을 함께 겪으며 제법 견고한 연을 이어왔다. 이 인연만큼은 절대 끊어지지 않을 만큼 견고하다 믿었는데, 아이 문제가 두 사람을 괴롭게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고생 끝에 드디어 아이가 생겼는데, 그녀가 이혼을 요구하다니!
화가 난 그는 손을 치켜들었다. 그러나 녹하의 또렷하고도 진지한 눈빛을 보니 저절로 손이 내려갔다.
결국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반대 방향으로 멀어져 갔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녹하는 입을 틀어막은 채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가 침대에 엎드려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사무를 담당하는 고고였기에 그녀가 울자 어린 궁녀들은 어쩔 줄 몰라 했다. 결국 궁녀들은 월규에게 이 사실을 고했고 월규는 자연스레 황후에게 알렸다. 얼마 뒤, 황후가 월규를 데리고 녹하를 찾았다. 녹하가 이렇게까지 우는 일이라면, 물어볼 것도 없이 가동 때문이리라.
황후가 가볍게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그만 울어. 운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잖아. 속상한 게 있으면 말해 봐. 내가 대신 분풀이를 해줄 테니까.”
“맞아요.”
월규가 얼른 거들었다.
“언니, 그만 울고 마마한테 맡기세요.”
한바탕 울고 나니, 녹하의 기분도 한결 나아진 듯했다. 그녀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마마와 월규에게 못난 꼴을 보여 드렸습니다. 전 정말 쓸모없는 사람입니다. 그저 우는 것밖엔 방법이 없으니, 정말 부끄럽습니다.”
“이게 뭐 그리 부끄러운 일이라고.”
황후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속상한 적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계속 마음에 담아 두고 참으면 병 나. 어서 말해 봐. 무슨 일인데?”
잠시 머뭇거리던 녹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마, 가동과 이혼을 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