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5화
매지가 쏘아붙이자 진씨는 얼굴이 벌게졌다.
“매지 아가씨, 말을 어찌 그런 식으로 합니까? 우리 아가씨께서는 배 속에 공자 아기씨를 품고 계십니다. 게다가 몸도 편치 않으시니 부군께서 곁에 계시면 한결 편안해지시겠지요. 그게 매지 아가씨와 무슨 상관입니까?”
그녀는 가동이 직접 시장에서 데려온 여종이라 말을 내뱉을 땐 거침이 없었다. 아가씨인 매지는 부끄러워 얼굴까지 빨개졌지만 계속 쏘아붙였다.
“아이고, 아직 우리 대인과 혼사도 치르지 않았는데 어찌 그런 말을 한답니까? 소문이라도 나면 오히려 아가씨의 체면만 깎일 테지요!”
점점 얼토당토않은 말로 다투는 두 시녀를 보던 가동이 결국 호통을 쳤다.
“다들 그만하지 못해! 피곤하지도 않아? 어서 가서 자도록 해.”
말은 마친 그는 매지가 들고 있던 등불을 빼앗아 자신의 처소로 향했다. 매지는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진씨에게 코웃음을 치고는 서둘러 그의 뒤를 따랐다. 남겨진 진씨는 성을 내며 욕을 퍼부었다.
“망할 년, 성질이 저리 괴팍해서야. 시집가긴 글렀네, 글렀어.”
* * *
이튿날 오후, 녹하가 궁에서 돌아오자 매지가 그녀를 맞이했다.
“부인, 어서 가 보셔야 합니다. 그 뻔뻔한 진씨가 등나무 가지로 수아秀兒를 때리고 있습니다.”
수아는 어제 심열에게 엿을 줬다던 시녀였다. 녹하는 미간을 찌푸리며 곧장 심열의 처소로 향했다. 그녀가 매지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때린다더냐?”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어제 일 때문이지요. 고약한 심보로 공자 아기씨를 해하려 했다고 말입니다.”
매지가 투덜거렸다.
“수아가 얼마나 성실한 애인지 저택에서 모르는 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저 실수였으니 부인께서도 혼을 내는 데서 그친 것인데, 진씨가 무슨 자격으로 손찌검을 하려는 것인지요. 그 심보를 누가 모를 줄 아나.”
“심열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더냐?”
“물론 말렸지요. 하지만 진씨가 어찌나 드센지 아가씨 말은 듣지도 않더라니까요. 아가씨는 성격도 여린 데다 배 속에 공자 아기씨까지 있으니 더 말릴 수도 없었지요. 다른 이들도 아무 말 못 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진씨가 저리 오만방자하게 구니 관리인마저 속수무책입니다.”
심열의 처소에 가 보니 난장판이 펼쳐져 있었다. 진씨는 등나무 가지를 든 채 수아를 뒤쫓느라 여념이 없었다. 녹하가 큰소리로 외쳤다.
“멈추거라!”
수아는 얼른 녹하에게 달려와 애걸복걸했다.
“부인, 살려 주시어요. 진씨가 소인을 때려죽이려 합니다.”
주인도 가만히 있는데 노비가 날뛰다니… 위아래도 없는 것이란 말인가? 녹하는 분을 참지 못하고 진씨의 뺨을 내리쳤다.
차진 소리가 울려 퍼지고 진씨의 얼굴엔 붉은 손자국이 선명히 남았다. 진씨는 얼굴을 감싸 쥔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저택에 들어온 후 부인이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음흉한 마음을 품었다. 부부 사이가 아무리 좋다 한들 아이가 없는 것과 있는 것은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아이는 부부간의 연결 고리이기 때문에 부부 사이를 더 가깝게 했다. 오죽하면 아이 덕분에 어머니가 더 귀해진다는 옛말이 있었을까. 심열은 선녀처럼 예쁜 얼굴에 성격도 좋으니 가씨 저택에 큰 변화가 생길지도 모를 일이었다. 모시는 주인이 정실이 된다면 진씨의 신분도 자연스레 높아질 터였다.
다만 제아무리 날뛴다 한들 정실부인인 녹하는 무서웠다. 뺨을 맞은 진씨는 심열을 향해 억울한 눈빛으로 호소했다.
심열도 제멋대로인 진씨 때문에 화가 나긴 마찬가지였지만, 자신의 시종이 남들 앞에서 괄시를 받는 걸 두고만 볼 순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녀가 녹하에게 다가갔다.
“언니, 화내지 마시어요. 진씨가 성질이 조금 괴팍해서 그런 것이니 제가 잘 타이를게요. 이런 일로 화를 내다 언니 몸이 상할까 걱정입니다.”
녹하의 안색이 대번에 누그러졌다.
“심열이 넌 마음이 너무 여려서 아랫것들을 통제하기 어려운 거야.”
그녀가 하인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오늘은 나도 이곳에 머무를 테니 또 소란을 피워 아가씨를 놀라게 하는 자가 있거든 용서치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진씨는.”
그녀가 진씨의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우리 저택은 너무 작아서 자네처럼 큰 인물은 거둘 수 없으니… 왔던 곳으로 돌아가게.”
그제야 겁을 먹은 진씨가 풀썩 무릎을 꿇었다.
“부인, 부디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두 번 다시 이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부디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심열도 녹하에게 사정했다.
“진씨도 잘못한 걸 알고 있으니 이번만 용서해 주시어요. 진씨 가족들은 진씨가 벌어온 돈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심열까지 나서니 녹하도 더는 체면을 깎기 힘들었다. 그녀가 진씨에게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 체면을 봐서 오늘만 용서해 주겠다. 아가씨의 도움을 받았다는 걸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이야. 또다시 아가씨에게 폐를 끼쳐서도 안 될 것이고.”
“예, 예, 예! 반드시 그리하겠습니다.”
진씨는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답했다. 한바탕 불어 닥친 파장은 그렇게 지나가는 듯 보였다. 다만 가동은 이 일을 모르고 있었다. 황제의 명으로 인근 마을에서 며칠 동안 업무를 처리하다 돌아왔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온 그는 그가 자리를 비운 동안 녹하가 심열을 괴롭혔다는 소식을 접했다. 심열이 슬피 애원하지 않았다면 녹하가 그녀의 가장 가까운 측근을 내쫓았을 거란 말도 더해서. 게다가 지난번 심열이 복통을 일으킨 것도 녹하의 지시라는 말까지 들었다. 자신과 심열의 사이를 질투한 녹하가 심열에게 본때를 보여 주려 했다는 것이다.
녹하의 사나운 성격은 가동도 잘 알고 있었다. 더욱이 녹하는 상대가 방심하길 기다렸다가 뒤늦게 본때를 보여 주는 데 능한 사람이었다. 그래도 이런 짓을 할 성격은 아니었다.
곰곰이 생각에 잠긴 가동은 아주 근거 없는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녹하의 성질이라면… 정말 손을 썼을지도 몰랐다.
지금 녹하와 그는 얼굴을 볼 기회도 드물었고 대화를 나눌 일은 더더욱 없었다. 지금이야말로 부부간에 제대로 된 대화가 필요한 시기였다. 가동은 아침을 먹자마자 서둘러 불당으로 향했다. 입궁하기 전 녹하를 만나기 위해서였건만, 불당에 도착하기도 전에 하인이 돌아와 고했다.
“대인, 부인께선 이미 출발하셨답니다.”
“이렇게나 일찍?”
가동이 물었다.
“언제 떠났다더냐?”
“석동 아가씨 말이 일각쯤 전에 떠나셨답니다.”
가동은 속으로 시간을 헤아려 보았다. 그가 말을 빠르게 몬다면 궁 문에 들어서기 전에 그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른 아침이라 행인은 그리 많지 않았다. 가동은 궁 문 앞까지 말을 재촉했지만, 그의 시야에는 개미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가 혼자 구시렁거렸다.
“이렇게 빨리 왔는데도 놓치다니, 가마꾼들 다리 힘이 언제 이렇게 좋아진 거야?”
그는 우선 당직실에서 자질구레한 업무들을 처리한 뒤, 승덕전으로 향했다. 황제는 조회에 갔기 때문에 안에는 황후 마마뿐이었다. 그는 황후와의 친분만 믿고 여느 때처럼 통보도 없이 불쑥 들어가려 했다.
그때, 월규가 가동의 앞을 가로막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가 대인,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무슨 일로 오셨어요?”
가동이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허 참, 본 대인은 종이품이거늘, 예의도 없구나.”
월규가 그를 흘겨보았다,
“양심은 개나 줘 버린 사람도 있는데, 제가 예를 갖춰 무엇 합니까?”
가동은 한참 동안 고민한 끝에 입을 열었다.
“누가 양심을 개한테 줬는데? 위 태의?”
얼굴이 굳어진 월규가 그를 매섭게 쏘아보았다.
“대체 무엇 하러 오셨냐니까요?”
그녀의 태도에 가동은 제 추측이 정확했다고 생각했다. 둘이서 싸워 놓고 자신에게 화를 낼 건 또 뭐람.
“마마께서는?”
“표범 정원에 가셨습니다.”
“왜 넌 안 갔어? 마마 곁을 지켜야 하잖아?”
“녹하 언니가 가셨으니까요.”
가동은 흠칫 놀라며 발걸음을 돌렸다. 월규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을 희번덕였다.
“가 대인, 되도록 오지 마시고 잘 가십시오!”
서둘러 표범 정원으로 향한 가동은 바깥에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고요할 뿐이었다. 그는 입구를 지키는 보초에게 물었다.
“마마께선 안에 계시느냐?”
보초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들어가신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정원은 매우 넓었고 숲과 언덕까지 있으니 입구에서는 내부를 정확히 볼 수 없었다. 가동이 말했다.
“잠시 들어가 봐야겠다.”
보초가 시시덕거리며 말했다.
“대인, 정말 들어가실 겁니까?”
보초가 웃는 이유를 가동도 잘 알고 있었다. 어찌하겠는가, 인복이 넘쳐 점박이마저 그를 좋아하는 것을. 그가 들어갈 때마다 점박이는 그를 바닥에 넘어뜨리고 한바탕 장난을 쳤다. 표범에게 놀아나는 것은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 때문에 되도록 이곳에 발길을 주지 않았지만, 녹하를 만나야겠다고 결심하니 용기가 생겼다. 가슴을 활짝 펴고 근엄한 표정을 지은 그가 보초에게 말했다.
“당연히 들어가야지. 문을 열거라.”
보초가 육중한 창살 문을 열고 그를 들여보내 주었다. 가동은 조심스레 발걸음을 내디디며 주변을 살폈다. 조금도 긴장을 늦출 순 없었다. 점박이는 무방비 상태일 때 급습하는 걸 좋아했기 때문이다.
가동이 천천히 나아가니, 나무 사이로 표범 우리가 언뜻 보였다. 그는 가볍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황후 마마께서 저곳에 계신다면 점박이도 감히 그를 괴롭히지 못할 것이다.
겨우 한숨을 내쉬었을 뿐인데, 머리 위 나뭇잎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상황을 파악했을 땐 이미 늦은 뒤였다. 거대한 짐승이 그를 바닥으로 넘어뜨렸고, 털이 북슬북슬한 머리가 그의 얼굴을 짓눌렀다. 크고 샛노란 눈동자가 가동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을 게슴츠레 뜨는 게 꼭 미소를 짓는 것 같았다. 가동은 매섭게 호통쳤다.
“비켜, 안 그럼 한 대 맞을 줄 알아. 어서 비켜!”
크고 흉포한 목소리였지만, 점박이에게는 놀자는 외침처럼 들린 모양이었다. 점박이는 발로 그의 얼굴을 건드리는 것도 모자라 머리로 밀치고 입으로 그를 한 번씩 물며 그가 나뒹구는 모습을 신나게 지켜보았다. 가동으로서는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품 고관인 그가 점박이의 놀잇감이 되지 않았는가!
그는 몸을 틀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그것이 크나큰 실수였다. 맹수는 빠르게 움직이는 모든 것들에게 치명적인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점박이는 공중에서 호선을 그리며 우아하고 힘 있게 뛰어오르더니 몇 발짝 만에 그를 따라잡았다. 또다시 가동을 넘어뜨리는데, 어찌나 세게 누르는지 가동은 피를 토할 뻔했다. 울상이 된 그가 투덜거렸다.
“대체 나한테 왜 이래? 난 네 장난감이 아니라고.”
점박이는 거대한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끊임없이 입김을 내뿜었다. 퀴퀴하고 비릿한 냄새에 정신을 차릴 수 없던 가동이 고함을 내질렀다.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마마, 살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