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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672)화 (671/1,192)

제672화

비밀이 밝혀지니 가 대인은 대놓고 우쭐대며 다녔다. 게다가 심열이 저택에 들어오고 녹하가 그녀를 세심하게 살피니 그는 아무것도 신경 쓸 필요가 없어졌다. 그저 이름만 가장일 뿐, 그는 또다시 걱정 없는 바보 가동으로 돌아왔다.

그는 매일 저택에 돌아오면 심열의 처소를 찾아가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다. 이따금 시장에서 재미난 놀 거리를 사와 건네기도 했다. 대화를 하면서도 그의 눈은 줄곧 심열의 배에 고정되어 있었다. 매일 보는데도 하룻밤 사이에 배가 조금 더 부풀어 오른 것만 같았다.

시종인 진씨는 충심이 강했다. 심열과 함께 지내니 자연스레 모든 걸 그녀 위주로 생각하게 됐다. 식사 시간이 되자 그녀가 공손히 말했다.

“대인, 식사를 차렸으니 함께 드시고 가시는 게 어떠신지요.”

가동이 심열을 바라보자 심열이 말했다.

“이곳의 음식은 대인 입맛에 맞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안채에 돌아가서 드시지요.”

가동이 물었다.

“여기선 무얼 먹는데?”

“담백하면서 몸에 좋은 음식을 먹습니다. 언니께서 특별히 제 음식을 따로 만들라고 분부하셨어요. 아이에게 좋은 것들로요.”

아이에게 좋은 음식이라는 말에 가동은 호기심이 일었다. 자신도 아이가 먹는 음식을 맛보고 싶어진 터라, 진씨 부인에게 말했다.

“나도 여기서 먹고 갈 테니 내 것도 차리라고 전하게.”

심열도 더는 돌아가라고 할 수 없었다. 어쨌든 그의 저택이니 대인이 어디에서 밥을 먹든 대인 마음이었다.

평소 입이 짧은 심열은 아이가 생겼어도 새 모이만큼 먹었다. 가동은 계속 그녀의 그릇에 음식을 덜어 주었다. 그의 마음을 거부하기 어려웠던 심열은 어쩔 수 없이 과식을 했고, 배가 너무 부른 나머지 끊임없이 딸꾹질을 했다.

가동은 그녀를 데리고 정원을 산책하며 소화를 시켰다. 초여름의 선선한 밤공기는 그렇게 상쾌할 수 없었다. 서늘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고, 달빛도 유난히 밝았다. 한쪽에서 자라난 비취색 대나무가 흔들거리며 바닥에 얼룩덜룩한 그림자를 남겼다.

심열은 시선을 내리깔고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 피곤해서 그만 쉬어야겠으니, 대인께서도 그만 돌아가십시오.”

“알겠어, 들어가서 쉬어.”

가동은 따스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가 발걸음을 돌릴 땐, 가볍게 부축도 해줬다. 그는 한참 동안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본 뒤에야 발걸음을 돌렸다.

방에 들어오니 녹하가 보이지 않았다. 녹하의 시녀인 매지梅枝는 그를 발견하고 어딘가 냉랭한 얼굴로 인사를 올렸다.

“다녀오셨습니까, 대인.”

가동이 물었다.

“부인은?”

“부인께서는 불당에 가셨습니다. 공자를 위해 기도를 올리신다고요.”

가동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래? 가서 차 좀 내어 와.”

매지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심열 아가씨께서 대인께 차도 내어 드리지 않았습니까?”

가동이 말했다.

“당연히 마셨지. 좀 걸었더니 목이 말라서 그래.”

“해서 벌써 소화가 다 되신 겁니까? 소인이 식사라도 내어 올까요?”

“아니, 그 정도는 아니야.”

기분이 좋았던 가동은 자신을 비꼬는 매지의 속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심열이 처소에 갔다가 모처럼 이렇게 배불리 먹었는걸.”

가동의 말을 들을수록 매지는 더 화가 났다.

“심열 아가씨 처소에서 드실 땐 배가 부르고, 이곳에서 드실 땐 부족하단 말씀이신지요?”

그제야 살벌한 분위기를 눈치챈 가동이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매지야, 누가 네 성미를 돋운 거야? 어서 말해 봐. 이 대인이 혼을 내줄 테니까.”

매지는 정말이지 화가 나 죽을 것만 같았다. 이렇게나 사리 분별도 못 하는 바보 부군이라니, 부인이 너무 아까웠다. 여기에서 더 화가 나면 위아래도 가리지 못할 것 같았기에 그녀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뒤에서 가동이 그녀를 불렀다.

“야, 어디 가는 거야?”

매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차를 가져오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차 타러 갑니다.”

가동은 히죽거리며 손을 흔들었다.

“아, 어서 가 봐.”

화가 난 모양새가 꼭 누군가와 싸우러 가는 것 같았다. 매지의 성질은 날이 갈수록 괴팍해졌다. 녹하가 너무 오냐오냐한 탓이었다. 그는 조만간 녹하와 이 문제를 의논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차를 마신 뒤, 가동은 정원에서 검술과 권법을 연습했다. 요즘 그의 생활은 너무 평안했기에 조금 나태해진 게 사실이었다. 예전처럼 황상 곁을 늘 지킬 필요가 없으니, 자연스레 황제가 그를 지켜보는 일도 적었다.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되었다. 훗날 아들에게 좋은 모범이 되려면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봐야 했다.

한바탕 땀을 흘린 그는 목욕을 마친 뒤 방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여전히 녹하는 보이지 않았고 매지 홀로 모퉁이에서 향을 피우고 있었다. 가동이 물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예불을 드린단 말이야?”

“진심을 다한다는 걸 보이기 위해 공자께서 태어나시기 전까지 불당에 계실 거라고 하셨습니다.”

가동이 깜짝 놀라 물었다.

“계속 불당에서 지내겠다고?”

“예.”

“시중을 들 사람은 있고?”

“석동腊冬이가 함께 있습니다.”

가동은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곁에 누군가 있다면 다행이고.”

녹하는 뭐든 다 잘하고 똑똑하니, 그리 걱정할 것 없었다.

* * *

침소에 든 가동은 한밤중에 별안간 눈이 떠졌다. 옆은 텅 비어 있었고, 그의 허리에 발을 올리는 사람도 품에 안기는 사람도 없었다. 날마다 잠을 청하는 침대였지만, 어쩐지 오늘은 낯선 곳에서 깨어난 듯했다. 눈을 뜨는 찰나의 순간, 그는 멍하니 넋을 놓았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도 모를 당혹감이 느껴졌다.

녹하가 불당에 갔다는 사실을 떠올린 후에야 그는 붕 뜬 마음을 다잡았다. 다시 잠을 청해보려 했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전병을 뒤집듯 뒤치락거리던 그는 날이 어렴풋이 밝아올 때가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들 수 있었다.

얼마나 달콤한 잠에 빠진 걸까? 관리인의 목소리가 아주 멀리서 들렸다.

“대인, 대인, 일어나셔야 합니다. 근무를 서셔야지요!”

그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몽롱한 정신으로 물었다.

“몇 시진인데?”

“진시입니다.”

가동은 날아오를 기세로 튕겨 일어나더니 성을 내며 소리쳤다.

“왜 이제 깨운 것이냐? 망했다, 망했어. 황상께 욕을 얻어먹겠네! 또 내 가슴팍을 걷어 차실지도 모를 일이지. 이게 다 너 때문이다, 이런 쓸모없는 놈 같으니…….”

그의 호통에 얼굴이 벌게진 관리인은 서둘러 해명했다.

“대인, 소인도 계속 깨웠습니다. 묘시에 찾아왔더니 제게 꺼지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가동은 흠칫 놀랐다. 하지만 전혀 기억나지 않는 일이었다.

“허튼소리, 내가 어찌 꺼지라 했겠어.”

“정말입니다요. 못 믿으시겠다면 매지에게 물어보십시오.”

관리인은 불쌍한 얼굴로 허리를 굽실거렸다. 가동이 묻기도 전에 매지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총관리 말이 맞습니다. 대인께서 썩 꺼지라고 하셨습니다.”

가동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허겁지겁 옷을 걸쳤다.

“어서, 머리를 빗기거라. 밥은 됐으니 대문 앞에 말을 준비하라 이르거라.”

매지는 묵묵히 가동의 머리를 빗겨 주었다. 그는 구리거울 속 제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녹하가 있을 때가 좋았구나. 녹하가 있었다면 분명 제때 일어났을 텐데.”

일어나지 않으면 녹하가 귀를 잡아당길 테니 늦잠을 자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하인들이 어찌 감히 대인의 귀를 잡아당길 수 있겠는가. 매지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이제야 부인의 좋은 점을 아시는군요.”

가동이 입을 헤벌쭉 벌리며 웃었다.

“우리 부인이야 늘 최고지.”

매지가 말했다.

“대인, 심열 아가씨와 혼인을 하셔도 부인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가동이 투구를 쓰며 말했다.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

매지는 그의 등 뒤에서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뻔뻔하긴, 부인이 불당에 갔는데 찾아가 보지도 않았으면서. 일어나고도 부인의 안부 한 마디 묻지 않았으니, 정말 양심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때, 가동이 매지에게 물었다.

“부인은 입궁했어?”

“예, 이미 출발하셨습니다.”

가동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엥, 한데도 날 깨우지 않은 거야? 정말 양심도 없지. 내가 욕먹을 걸 뻔히 알면서!”

매지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대체 누가 누구더러 양심이 없다고 한단 말인가!

* * *

궁에 도착하니 이미 조회가 시작된 뒤였다. 조회 중인 황상을 대신해 영구가 그를 맞이했다. 얼굴을 굳힌 영구가 뒷짐을 진 채 가동을 꾸짖었다.

“가 대인, 이 시간에 입궁하다니 점심 식사를 하러 오는 겁니까?”

가동이 멋쩍게 웃으며 맞잡은 두 손을 들어 올렸다.

“미안, 늦잠을 자 버렸네.”

“제게 미안해할 거 없습니다. 황상께 죄송해하셔야지요. 나라의 녹봉을 먹는 자는 응당 그 도리를 다해야 합니다. 군주께서 근심에 잠기셨는데 어디에 있었다고요? 침대요?”

가동은 그만 얼굴이 빨개졌다. 이유를 막론하고 지각은 절대 해선 안 될 일이었다. 황상은 워낙 근면 성실하여 아무리 황후 마마와 떨어지기 싫다 해도 조정에 피해가 가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런 황상을 떠올리니 신하로서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영구가 아무리 꾸짖어도 그는 마음에 담아 두지 않았다. 영구는 그의 친구가 아니던가, 다 그를 위해 하는 말일 것이다. 가동은 넉살 좋게 웃으며 영구의 어깨에 팔을 두르더니 그를 한쪽으로 데려갔다.

“영구야, 화내지 마. 전부 내 잘못이지만, 고의로 그런 건 절대 아니라고…….”

마음을 잘 숨기지 못하는 그는 어젯밤 일을 전부 영구에게 말해 주었다.

“아무래도 적응이 안 돼서 그런 것 같아. 혼자 뒤척이다 보니 잠이 통 안 와서 아침에야 잠들었다니까. 그래서 늦었지. 다음부턴 조심할게. 진짜야.”

영구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녹하가 불당에서 묵는다고요? 그간 녹하가 예불을 드린다는 말은 못 들어 봤는데요?”

“얼마나 기다리던 아이인데, 혹여 잘못될까 봐 걱정이 돼서 그런가 봐. 매일 불당에서 아이를 보살펴 달라고 기도를 드릴 거래.”

영구는 그 말을 듣자 우스워졌다.

“정말 그 이유 때문이랍니까?”

“안 그럼?”

가동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그럼 왜 불당에서 지내는 건데?”

영구는 당사자가 아니니 함부로 말할 수 없었다. 만약 그의 예상과 다르면 부부간에 벽이 생길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영구는 어쩔 수 없이 말을 돌렸다.

“녹하도 힘들겠습니다. 짬이 날 때마다 찾아가 말동무가 되어 주십시오.”

“녹하가 힘든 건 나도 잘 알지.”

가동이 감격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집안일도 전부 관리하는데 이제 심열이랑 배 속 아이까지 돌봐야 하잖아. 이제는 더 주도면밀하게 살펴야 하니, 힘들 거야.”

“…….”

누가 지금 그 일로 힘들다고 한 줄 아나……. 정말 바보가 따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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