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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652)화 (651/1,192)

제652화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보름이 지났다. 날은 점점 더워지기 시작했고 언제부터인지 두형은 우리 집 손님이 되었다.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는 매번 내가 가지고 놀 만한 신기한 물건들을 가지고 왔다. 늘 홀로 지낸 탓에 심심했던 나는 그가 준 것들을 가지고 놀며 시간을 보냈다. 점점 더 그의 손에 들려 있는 놀 거리를 볼 때마다 그를 돌려보내기 어려웠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에는 두형과 함께 거리에서 밥을 먹기도 했다. 백장간의 말이 맞았다. 소라의 음식 솜씨는 확실히 조금 떨어졌다. 결국 외식을 하는 일이 신나는 일과 중 하나가 되었다.

두형은 먹는 걸 중시하는 사람이라 유명한 식당은 물론이고 골목에 숨어 있는 독특한 식당들까지 훤히 꿰고 있었다. 인생이 뭐 별거 있나, 잘 먹고 즐거우면 그만이지. 두형은 그런 면에서 모든 것에 정통한 동무였다. 난 그와 점점 더 친해졌고 거의 호형호제를 해도 될 만큼 가까워졌다.

또 다른 한 사람도 천천히 내 삶에 들어왔다. 바로 마부였다. 어디에서 그리 낭만적인 걸 배워왔는지 우리 집 문 앞을 지날 때마다 몰래 꽃다발을 두고 갔다. 오늘은 장미 두 송이라면 내일은 두견화 한 다발, 그다음날은 나팔꽃 한 다발…….

이런 식으로 매일 다른 꽃을 두고 갔다. 매일 말을 몰고 여러 곳을 다니니 꽃을 꺾어오는 게 그리 힘든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매일 다른 꽃을 꺾어 온다는 건 그만큼 내게 섬세하게 신경을 쓴다는 뜻이 아닌가.

그가 마차를 타고 돌아오는 소리가 들리자 난 서둘러 대문으로 달려갔다. 문틈으로 몰래 내다보니, 역시나 그는 마차를 세우고 자색이 도는 야생 국화를 문턱에 두고 갔다. 사실 그의 마음에 정말 감동했다. 사내가 여인에게 꽃을 선물하는 일이 보기 드문 건 아니었지만, 꾸준히 선물하는 건 쉽지 않았으니까.

한데… 얼굴에 왜 저리 상처가 났단 말인가? 꼭 누군가 손톱으로 할퀸 자국 같았다. 저렇게 할퀸 상처는 가동 대인의 얼굴에서도 본 적 있었다. 마침 지나가던 이웃이 그에게 말을 건넸다.

“이보게 마부, 또 군주께 꽃을 드리는 건가. 자네 마누라가 또 얼굴을 쥐어뜯어 놓을까 겁나지도 않는단 말인가?”

다른 이도 거들었다.

“자네 얼굴 좀 보게. 상처가 낫지도 않았는데 또 새 상처가 생기고 말이야. 군주께선 얼굴도 한번 보여 주지 않는데 그렇게까지 해야겠나?”

마부가 헤헤 웃으며 말했다.

“군주께서는 마음이 편치 않아 돌아오셨을 겁니다. 꽃을 보시고 기분 전환 좀 하시라는 거지요.”

“기분 전환을 하실지 어찌 아는가? 자네가 성가실지도 모르지.”

“아닙니다. 군주께선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바보같이 굴지 말게. 군주께선 예전의 여소쌍이 아니네. 아직도 자네에게 마음이 있다고 여기는 것인가?”

마부의 얼굴은 붉게 물들었다가 금세 창백해졌다.

“군주께 무얼 바라는 게 아닙니다. 그저 군주께서 꽃을 보시고 기분이 좋아지시면 그만입니다.”

그때, 덩치 큰 부인이 불쑥 달려오더니 그의 귀를 붙잡았다.

“아이고, 이 망할 인간아. 내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는 생각이나 해 봤어? 망신당할 짓 하지 말고 얼른 들어와!”

마부는 자신의 부인에게 귀를 붙잡힌 채 고통스러운 얼굴로 끌려갔다.

“이 마누라야, 조용히 해. 군주께서 다 들으신다고.”

그의 부인이 코웃음을 쳤다.

“우리 집 서방을 넘보는데 내가 왜 무서워해야 해!”

얼굴이 시퍼레진 마부가 서둘러 그녀의 입을 막았지만, 오히려 뺨을 맞고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나도 더 이상 숨어 있을 수만은 없어 대문을 열고 호통쳤다.

“어찌 이리 소란스러운 것인가?”

이미 많은 구경꾼이 모여들어 있었다. 시시덕거리며 마부 부부의 싸움을 지켜보던 이웃들은 내 모습을 보자마자 입을 다물었다. 마부의 볼은 이미 붉게 부풀어 올랐다. 그는 나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기 부끄러웠는지 부인 뒤에 숨어 있었다. 내가 그를 불렀다.

“이리 오세요.”

그의 부인은 그를 붙잡으려 했지만, 내 매서운 눈길에 마부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난 알면서도 일부러 물었다.

“누가 마부의 얼굴을 이 꼴로 만든 것인가?”

물론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다시 마부에게 물었다.

“누가 이리 한 겁니까? 말해 보세요. 내가 혼쭐을 내줄 테니.”

마부는 입술을 들썩거렸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봤소?”

난 마부의 부인에게 시선을 주었다.

“이런 꼴이 되도록 맞아도 당신 짓이라고 말하지 않았소. 이자의 마음속에 당신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이젠 알 테지.”

부인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했다. 화가 나는 한편 겁이 나고, 겁이 나면서도 부끄러웠을 터이다.

“마부는 내 이웃이자 날 도와준 은인이니 앞으로 어떤 이도 마부에게 손댈 수 없다. 또다시 마부에게 상처가 난 모습을 본다면 반드시 엄벌에 처하고, 황상께 데려가 구족을 멸하게 해 달라 청할 것이다!”

사실 황상이 누군가에게 구족을 멸한다고 하는 걸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황후 언니의 심기를 건드리는 자가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도 남겠지. 다들 내 말에 깜짝 놀라 몸을 파르르 떨더니 무릎을 꿇으려 했다. 난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되었으니 그만 돌아들 가시게.”

이웃들은 순식간에 흩어지더니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난 마부를 불렀다.

“꽃 고마워요. 하지만 앞으로는 부인에게 가져다주세요. 나보다 더 좋아할 테니까요.”

마부는 흠칫 놀라며 자신의 부인을 바라보았다. 그의 부인은 습관적으로 그의 귀를 잡으려다 내 눈치를 보더니 손을 내려놓았다. 부인이 그에게 팔짱을 꼈다. 두 사람은 내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뒤, 팔짱을 낀 채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이후로 마부의 얼굴에 상처가 보이는 일은 없었다. 더는 꽃을 가져다주지도 않았다. 대신 사나흘에 한 번꼴로 대문 앞에 대바구니를 가져다 두었다. 바구니에는 직접 만든 주전부리가 들어 있었는데 맛을 보니 제법 맛있었다. 소라는 전병을 집어먹는 날 보더니 황급히 대바구니를 빼앗아 갔다.

“군주, 아무것이나 드시면 어찌합니까? 독이라도 탔으면 어찌하려고요?”

난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날 뭐 하러 독살하겠어? 누구랑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꼬투리를 잡힌 적도 없는데…….”

“있잖습니까.”

소라가 말했다.

“백 장군님께 미움을 사셨지요.”

난 눈을 희번덕이며 말했다.

“마부의 부인이 갖다 놓은 게 틀림없다니까. 못 믿겠으면 가서 물어봐. 아, 바구니 돌려줄 때 지난번 황후 언니가 주신 비단 한 필도 갖다줘. 맛있게 잘 먹었다는 말도 잊지 말고.”

소라는 신기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마부의 부인이 보냈다는 건 어찌 아신 겁니까? 바구니에 이름이 쓰여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난 머리를 가리켰다.

“머리를 굴려보니까 마부와 싸우는 것보다 이게 더 낫다는 걸 안 거지. 정말 가르친 보람이 있다니까.”

소라는 물건을 챙겨 반신반의하는 얼굴로 대문을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라는 다시 대바구니를 든 채 돌아왔다.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을 꺼내 보니 집에서 직접 만든 반찬이었다. 말린 무 무침, 콩꼬투리 절임, 짠지 등등. 소라가 활짝 웃었다.

“군주 말씀이 맞았습니다. 마부의 부인이 가져다 놓은 것이더군요. 군주께서 비단을 주셨다니까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더니 부엌을 구석구석 뒤져 찬거리를 싸 주었습니다. 오늘 저녁엔 콩꼬투리 절임을 넣어 고기를 볶고, 짠지로 탕을 끓여 드리겠습니다. 말린 무 무침까지 곁들여 먹으면 아삭아삭하니 정말 맛있을 겁니다.”

반찬을 보고 있으니 군침이 돌았다. 아주 옛날, 어머니께서 자주 해 주시던 것들이었다. 나는 그중에서도 말린 무 무침을 특히 좋아해, 한 동이 가득 담아두면 몰래 훔쳐 먹곤 했다. 결국 얼마 가지 않아 바닥이 보일 때면 어머니는 아버지가 술 안주로 다 먹어 버렸다며 불평을 하셨다.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찌르고 있으니 참을 수가 없었다. 난 곧장 접시와 젓가락을 가져와 소라와 함께 집어먹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마부가 가져다주던 꽃보다 마부 부인이 보내준 반찬이 훨씬 더 좋았다.

점점 내 삶에서 사라지는 마부 대신 그의 부인이 자리를 메워 갔다. 그녀가 음식을 보내 주면 난 예쁜 옷감과 연지, 머리 장신구 등을 보내 주었다. 우린 자주 만나진 않지만 선물을 주고받으며 좋은 친구가 되었다.

두형과는 여전히 자주 만났는데, 누가 말한 건진 몰라도 그 소식이 황후 언니의 귀에도 들어간 듯했다. 언니는 날 불러들였고, 황상과 함께 나를 마주했다. 백장간이 황상을 종이호랑이에 비유하긴 했지만 오직 황후 언니 앞에서만 종이호랑이일 뿐이었다. 황후 언니가 없다면 사람을 물어뜯을 수 있는 진짜 호랑이가 될 것이다.

난 깍듯하게 예를 갖췄다. 황제가 자리를 권한 뒤에야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았고 두 눈을 내리깐 채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소쌍아.”

황후 언니가 날 불렀다.

“언니가 지난번에 시간을 두고 고민해 보라고 했던 건 생각해 봤어? 계속 이렇게 지내는 건 아무래도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아.”

난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나조차도 알 수 없었다. 사랑에 빠져드는 건 한순간일지언정, 잊는 것은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마 십 년이 지나도 내 마음을 알 수 없으리라.

“듣자니 요즘 두 승상 댁 공자와 가깝게 지낸다며. 애당초 두 승상이 황상께 혼담을 꺼냈었어. 그리고 춘위에서 두 공자가 황상께 너에 대한 마음을 말씀드렸고. 하지만 시합에서 지는 바람에 큰오라버니가 너와 혼인을 하게 되었지? 네가 정말 두 공자를 원하는 거라면 도와줄게. 예전 계획처럼 큰오라버니는 두씨 아가씨와 혼인을 올리고 말이야. 이렇게 하면 너와 오라버니 모두에게 좋은 결과겠지?”

“그건 좀 그렇지 않을까요? 어쨌든 전 혼인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괜찮아. 언니가 알아서 해 줄게.”

줄곧 묵묵히 듣고 있던 황제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짐이 보기에도 그건 도리에 어긋난 것 같소. 만약 그리한다면 두 승상은 우전원대장군을 사위로, 존귀한 군주를 며느리로 맞게 되는 것 아니오? 승상 홀로 세력을 키우는 것은 심히 걱정스러운 일이오. 그러다 백여름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소. 지금껏 외척 세력은 조정에 분쟁을 야기하는 요인 중 하나였소.”

황후 언니는 황상처럼 그렇게 멀리 내다볼 줄은 몰랐는지 존경스러워하는 표정으로 황제를 바라보았다.

“역시, 황상께서는 생각이 깊으시다니까요. 그럼 이 일은…….”

“짐은 군주와 백 장군이 화해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결말이라고 생각하오. 백 장군과 군주는 황후의 가족이자 짐이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이니 절대 소란을 일으키는 일은 없을 것이오.”

마침내 황후 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상 말씀이 맞아요.”

난 슬쩍 시선을 올렸다. 어느새 황제는 추궁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심장이 뜨끔했던 나는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황제에게 내 근심을 들킬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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