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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612)화 (611/1,192)

제612화

식사가 끝난 후 그녀는 익은 소고기를 챙겨 위중청이 있는 방으로 갔다. 황제는 당연히 그녀 곁에 바싹 붙어 있었다. 문을 열자 이상한 냄새가 풍겼고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린 위중청이 보였다. 그는 황제와 황후를 보자 급히 예를 갖췄다. 백천범은 황제에게 그를 맡기고 바로 방 안으로 들어갔다.

탁자 위에 있는 표범은 밧줄로 칭칭 감겨 있었다. 백천범은 얼굴을 굳히며 고개를 돌려 물었다.

“이게 다 뭐예요?”

위중청은 황제와 황후 앞에서 거짓을 고할 수 없어 솔직하게 대답했다.

“마마, 신 겁이 많아 밤에 표범과 같이 자는 것이 무서워 어쩔 수 없이 한 것입니다.”

“의원님이 상처를 치료해 준다는 건 이 애도 다 알고 있어요. 시비를 가릴 줄 안다고요. 어서 풀어요!”

좀처럼 화를 잘 내지 않는 백천범의 얼굴에 분노가 서렸다. 황제가 눈짓을 보내자 호위 병사 둘이 밧줄을 풀었다.

“뭐 좀 먹였어요?”

백천범은 다가가 표범을 살폈다.

“부상이 심해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습니다.”

백천범은 격분하였다.

“짐승도 사람처럼 먹어야 빨리 낫는데, 의원이면서 그것도 몰라요?”

질책을 받은 위중청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곁눈으로 황제의 차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놀란 그는 몸서리를 치며 뒤로 물러났다. 백천범은 표범의 머리를 조심히 쓰다듬었다.

“점박아, 배고프지? 일어나서 뭐라도 조금 먹고 다시 자렴. 네가 제일 좋아하는 소고기야. 조금이라도 먹어 봐.”

그녀가 고기를 입에 올려 두었지만 표범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표범의 배를 만져보니 미세한 움직임만이 느껴졌다. 상태가 매우 안 좋아 보였다. 그녀는 다급하게 손으로 표범의 입을 벌렸다. 황제는 그녀의 행동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친밀해도 맹수인데, 잘못해서 물기라도 하면 백천범의 손은 날아가지 않겠는가.

“내가 하리다. 내가 먹이겠소.”

황제가 부드럽게 설득했다. 하지만 백천범은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낯설어서 물 수도 있어요. 모두 뒤로 물러나요. 낯선 냄새에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아요.”

“자칫 잘못해서 그대가 다칠까 두렵소…….”

“그럴 일 없어요. 점박이는 내가 누구인지 알아요.”

다들 물러설 기색이 없자 그녀는 급한 마음에 발을 구르며 화를 냈다.

“모두 나가요!”

황제는 결국 모두를 내보냈고 혼자 그녀 곁에 남았다.

“당신도 떨어져요.”

백천범이 그에게 말했다. 황제가 무기력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천범, 짐승에 불과하오.”

“점박이는 내 아이예요.”

백천범은 끝내 울먹였다.

“린아 대신 내 곁에 있어 줬다고요.”

“울지 마시오. 내 멀리 떨어져 있겠소.”

그녀가 우는 것이 가장 두려웠던 황제는 뒤로 물러났다. 백천범은 표범의 입을 열어 작은 고기 한 조각을 밀어 넣었다. 이윽고 감정이 북받친 그녀가 작게 흐느꼈다.

“점박아, 착하지. 걱정되게 이러지 말고 조금이라도 먹어 봐. 네가 빨리 나아야 내가 슬프지 않지. 점박아, 점박아. 내 목소리 들려? 어서 먹어 봐. 배가 불러야 힘이 생기지. 나랑 같이 궁으로 가자. 이제 널 혼자 두지 않을 거야. 어때, 점박아?”

그녀의 눈물이 얼굴에 떨어지자 표범은 천천히 눈을 떴다. 표범의 커다란 두 눈이 백천범을 향했다. 탁한 눈빛이 점차 맑아졌다. 백천범은 표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계속 달랬다.

“점박아, 먹어 봐. 어서 먹어야 빨리 낫지.”

마침내 표범은 입술을 움직였고 천천히 씹기 시작했다. 결국 백천범은 기쁨의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황제가 그녀를 말리려고 다가오는데, 표범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백천범과의 좋은 시간을 방해하지 말라는 듯 보였다. 백천범은 표범의 머리를 급히 쓰다듬으며 그렁그렁한 눈으로 황제를 보았다.

“나가 있어요. 고기 좀 먹이고 나갈게요.”

아들에 이어서 표범까지 자신의 부인을 빼앗으려 하다니! 황제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점박이에게 고기를 먹이고 나온 백천범은 묵용린을 발견했다. 아이 뒤에는 사희와 장량 말고도 다른 청년이 뒤를 쫓고 있었다. 냉철해 보이는 분위기가 영구를 닮은 듯했다. 그녀가 황제에게 물었다.

“저자는 누구예요?”

“영구가 린아를 밀착 보호하기 위해 뽑은 호위 무사요.”

“가동은요?”

“잠시 산에 갔소.”

“산에는 왜요?”

“당신이 버린 화살을 주우러 갔소.”

백천범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조화가 맞았던 그 화살이요? 설마……?”

황제가 코웃음을 쳤다.

“고의든 실수든 짐이 용서치 않을 것이오.”

백천범이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아마 고의였을 거예요.”

“어찌 알았소?”

“직감으로요.”

“…….”

그래, 그녀의 직감은 늘 정확했다. 이때 묵용린이 허리를 꼿꼿이 펴고 황제와 황후 앞까지 걸어왔다.

“소자, 부황과 모후를 뵈옵니다. 모후, 일어나셨군요. 몸은 편안하신가요?”

백천범은 묵용린이 어른스럽게 굴 때마다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녀가 아이를 번쩍 안아 올리며 말했다.

“모후는 아주 좋단다. 린아는, 재미있게 놀았니?”

묵용린은 조금 난처한 표정이었다.

“모후, 어서 내려 주세요. 소자가 몇 살인데 아직도 안아 주시는 거예요. 아랫것들이 보면 비웃어요.”

백천범이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누가 감히 태자를 비웃을까? 린아가 아무리 커도 내 아들인데, 어머니가 아들도 안지 못한단 말이야?”

황제가 헛기침을 했다.

“내려 주시오. 태자도 자존심이 있을 터이니.”

하지만 백천범은 내려 주기는커녕 아이를 끌어안고 입을 맞췄다.

“벌써부터 어머니에게 거리를 두다니.”

그때, 숲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가동이었다. 황제는 멀리서 가동에게 눈짓을 보내고는 몸을 돌려 방으로 들어갔다. 그가 자리를 뜬 후에야 태자는 백천범의 목을 끌어안으며 애교를 부렸다.

“어머니, 일어나셨네요. 어머니가 해 주시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부황께서 어머니를 성가시게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백천범이 웃으며 물었다.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어머니랑 호랑이가 싸운 이야기요.”

“그래, 어머니가 들려줄게.”

백천범은 태자를 내려놓고 서관의 이야기꾼처럼 한 손을 들어 올리고 목을 꼿꼿이 세웠다.

“때는 바야흐로 바람이 불고 햇볕이 내리쬐던 날 아침, 조화라는 말에 올라타 다그닥다그닥 산을 오르는데…….”

옆에 있던 사희가 박수를 보내며 활짝 웃었다.

“마마, 설서說書(설창문학의 하나로, 장편의 이야기를 강설하는 것)도 할 줄 아시는군요.”

태자가 사희를 걷어찼다.

“이야기 끊지 마.”

어린아이의 발길질이라 아프진 않았지만, 그 기세만큼은 황제와 제법 닮아 있었다. 백천범은 문득 궁금해졌다. 발길질하는 습관도 유전이란 말인가?

* * *

방 안에서는 가동이 황제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

“가장 흔한 회색 깃 화살이었습니다. 누구의 것인지 알아내긴 좀 어려울 듯합니다.”

황제가 그를 흘겨보았다.

“뜸 들이지 말고 어디 한번 실력을 자랑해 보거라. 하룻밤이 지나긴 했지만 네 눈빛을 보아하니 어느 정도 수확이 있구나.”

“예.”

가동이 히죽거리며 말했다.

“신이 자세히 살펴보니 마마가 타신 조화의 말발굽 말고 두 개의 특제 말발굽이 나 있었습니다. 각각 이 귀인의 말 이화梨花와 덕비의 말 매화梅花의 말발굽이었습니다.”

다들 가동이 화살만 주우러 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말발굽 자국을 살펴보러 간 터였다. 가동은 흔적을 살피는 데 독보적인 안목을 지닌 덕에 아주 작은 실마리에서 큰 단서를 찾아내곤 했다. 황제가 코웃음을 쳤다.

“겁도 없구나. 감히 사냥 중에 손을 쓰다니.”

“아직은 어떤 분이 손을 쓰셨는지 확실치 않습니다.”

가동이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황상, 이렇게 하시는 게 어떠신지요.”

가동은 황제에게 가까이 다가가 몇 마디 건넸다. 그의 말을 들은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대로 진행하거라.”

* * *

점심 식사 후, 이 귀인은 황제의 방으로 불려갔다. 다시 방을 나올 때,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화에게 활을 쏜 사람이 이 귀인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그러나 그녀는 절대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이 귀인의 시중을 드는 궁녀 동매冬梅는 침대에서 숨을 거둔 자신의 주인을 발견했다. 입가에는 피가 흐른 흔적이 남아 있었다. 아연실색한 그녀는 허겁지겁 뛰쳐나와 소리를 질렀다.

가동은 방 안으로 들어가 이 귀인의 상태를 확인했다. 사망하고도 시간이 제법 흐른 뒤였다. 황제는 담담히 가동에게 눈짓을 보냈다. 가동이 손짓을 하자, 시위들은 곧장 덕비의 처소를 포위했다. 백천범은 복도에 서서 가만히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황제가 가까이 다가온 뒤에야 그녀가 물었다.

“덕비가 확실해요?”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철저히 속인 자요. 하마터면 짐도 속을 뻔했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저자도 양비의 전철을 밟는구려.”

덕비는 방 안에서 가동의 심문을 받고 있었다.

“괜히 고생하지 마시고 다 털어놓으십시오.”

덕비는 차가운 얼굴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본궁은 가 대인의 말뜻을 이해 못 하겠소.”

“이 귀인은 이미 사실을 털어놓았습니다. 덕비께서 그 화살을 이 귀인에게 준 거라고요.”

“웃기는 소리, 이미 죽었으니 더는 증인도 없는 말 아닙니까? 이는 날 모독하는 것이 아니오?”

가동이 웃음을 터뜨렸다.

“마마께선 이 귀인이 이미 실토했다는 사실을 모르셨지요. 해서 이 귀인이 사실을 털어놓으면 덕비 마마의 일까지 자백할 테니, 먼저 선수를 치려고 차에 독을 타셨고요. 그리하면 증인을 없앨 수 있을 거라고 여기셨으니까요.”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그리 함부로 말하는 것인가? 본궁은 황상을 만나야겠소!”

“황상께서는 마마처럼 악랄한 여인을 만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난 인정할 수 없소. 그 말에게 화살을 쏜 적도 없고, 이 귀인에게 화살을 준 적도 없소. 난 아무 짓도 안 했단 말이오!”

“이 귀인에게 화살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화살에 가려움증을 일으키는 약도 발라 두셨지요. 해서 말이 산속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게다가 사냥터 관리인 사촌에게서 산속에 호랑이가 있다는 사실을 미리 전해 들으셨지요. 그러니 황후 마마의 명이 정말 그리 긴지 확인해 보기로 하신 게 아닙니까? 공교롭게도 황후께선 정말 호랑이와 마주치셨고요.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표범이 나타나 황후 마마를 구했습니다. 결국 마마의 노력은 헛수고가 되었지만 대수롭게 여기지 않으셨더군요. 흠잡을 데 없는 계획이니 전부 하늘의 뜻처럼 보일 거라 생각하셨을 테지요. 설령 황상께서 의심을 품으신다 해도 이 귀인이 한 짓이니 본인과는 상관없을 거라 여기셨지요. 덕비 마마, 제 말이 틀립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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