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6화
태자 묵용린은 황제뿐만 아니라 황궁의 모두가 애지중지하는 존재였다. 종인부와 내무부는 태자를 황실 족보에 올리고 그의 궁전을 정돈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중에서도 가장 바쁜 곳은 상의감으로, 모두가 팔을 걷어붙이고 태자가 입을 옷을 만드느라 분주했다.
겨울이었기 때문에 갖춰 입어야 할 옷의 종류가 너무나 많았다. 작은 옷이라 금방 만들 수 있을 것처럼 보여도 태자의 옷을 허투루 만들 수 없는 법이었다. 상의감의 모든 인원은 황제의 명을 받들어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녹하도 집에 가지 않고 침수감에서 태자의 옷에 수를 놓았다. 다른 이들은 쏟아지는 졸음과 추위, 배고픔까지 견디느라 죽을상이었지만, 그녀는 그 모든 것들을 잊은 지 오래였다. 아침까지 꼬박 수를 놓은 그녀의 얼굴에는 여전히 활기가 넘쳤다.
다른 이들과는 느끼는 감정이 다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에게는 일에 불과했지만, 그녀에게는 온 정성을 쏟아도 부족했다. 자수 한 땀 한 땀에 그녀는 진심을 오롯이 새겨 넣었다.
기홍은 예친왕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혼삿날을 조금 더 미뤘다. 지금 태자의 입맛을 아는 사람은 그녀밖에 없었다. 그녀는 홀로 콩 한 바구니를 까느라 허리가 끊어질 듯했지만 손을 멈추지 않았다. 껍질을 깐 콩은 찬물에 불려놓았다가 삶고 자그마한 뱅어는 머리와 꼬리를 일일이 제거하며 깨끗이 손질해 두었다.
닭고기는 부드러운 살만 발라 잘게 다지고, 삶은 콩이 한소끔 식은 후 재료를 한데 섞어 푹 삶았다. 그 뒤엔 반죽을 한 그릇씩 덜어 다시 쪄야 했다. 만드는 방법이 번거롭긴 해도 맛이 뛰어나고 영양가가 높아 한창 자라날 아이에게 특히 좋은 음식이었다. 이를 아는 기홍이 어찌 만들지 않고 넘어가겠는가.
월규는 자연스레 태자의 보모가 되었다. 그녀는 묵용린을 데리고 궁 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대부분 가동이 태자 근처를 지키며 산책을 함께했다. 종종 가동은 아이를 안아보고 싶은 마음에 손을 뻗었지만, 묵용린은 매정하게 그의 손을 쳐내느라 바빴다. 가동은 아이에게 맞고도 싱글벙글 웃기만 했다.
늘 무표정하던 영구마저 묵용린을 바라볼 때면 따스한 표정을 보였다.
서 태후도 바쁘긴 마찬가지였다. 예전에는 모든 이가 자안궁에 문안 인사를 갔었다면 지금은 그녀가 매일 같은 시간에 승덕전을 찾았다. 묵용린이 자안궁을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월규가 묵용린을 안고 몇 차례나 자안궁에 들었지만, 묵용린이 소란을 피우는 통에 서 태후가 직접 오기로 했다.
위중청은 묵용린의 몸 상태를 꼼꼼하게 확인했다. 다행스럽게도 태자는 아픈 곳 하나 없이 튼튼한 몸이었다. 또래보다 발육이 더 빨라서 두 돌이 훨씬 지난 아이처럼 덩치도 컸다. 다만 눈동자에 있어야 할 생기가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 게 모두의 걱정거리였다. 더욱이 월규를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경계심을 보이기에, 사람들은 막연히 태자가 겪은 일 때문이리라고 추측했다.
묵용감은 남원 조정에 서신을 보내 묵용린과 관련된 일을 물었다. 물론 아이 어머니의 행방도 함께 물었다.
남원에서 온 답장에는 남원과 동월을 오가는 한 상대商隊(먼 곳으로 다니면서 특산물을 교역하는 상인의 집단)가 동월 서남북쪽 국경 근처에서 묵용린을 주웠다고 적혀 있었다. 당시 아이는 혼자 있었다고 한다. 서신에는 대략적인 위치가 적혀 있었는데 태자가 백천범 모자를 가두었던 화염산과 그리 멀지 않았다.
묵용감은 남원의 서신을 읽고 또 읽었다. 이로써 그 당시 산이 무너진 일이 우연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누군가 일부러 여인과 아이 시신을 준비해 그를 기만하려 든 게 틀림없었다.
그럼 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의 큰형님이었던 태자? 그러나 당시 태자는 옥에 가둔 상태였다. 그는 온갖 고문을 겪으면서도 백천범 모자의 위치를 절대 실토하려 하지 않았다. 백천범 모자가 살아 있어야 그 또한 살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는 자연스럽게 제외되었다. 묵용감은 또다른 가능성을 짚어보았다.
제갈겸유? 그는 태자의 최측근이자 백천범 모자가 갇힌 장소를 자백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의 자백과 동시에 그쪽에서는 산을 붕괴하기로 했고, 백천범 모자가 죽은 것처럼 꾸몄다.
다만 백천범 모자가 죽으면 자신이 살아남을 방법이 없다는 걸 제갈겸유도 잘 알고 있었을 터. 그런데도 그가 한 짓이라면… 어떠한 사명감 때문에 기꺼이 목숨을 희생했다고 볼 수밖엔 없었다.
묵용감은 제갈겸유가 죽기 직전 보였던 그 기이한 웃음이 줄곧 께름칙했던 터였다. 그가 죽은 뒤 배후를 샅샅이 조사했지만, 아무런 실마리도 찾을 수 없었다. 지금에 와서 꼼꼼하게 되짚어 보니 의문점이 점점 늘어날 뿐이었다.
그래도 잘된 일이다. 의문점이 늘어날수록, 백천범이 살아 있을 가능성이 커진다. 적어도 산에서 발견한 시신은 그녀가 아니지 않을까.
동월의 지도를 책상 위에 펼치라고 분부한 그는 주홍색 붓으로 서남쪽에서 서북쪽 경계에 걸친 국가에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남원, 몽달, 북제北齊, 서하西夏…….
그는 지도를 한참 동안 빤히 바라보다가 서신을 썼다. 다 쓴 뒤에는 직접 봉랍으로 봉한 뒤, 호위병을 불러 서북 지역의 이천행 장군에게 급히 보낼 것을 명했다.
호위병이 명을 받들고 방을 나서자 월규가 묵용린을 안고 들어왔다. 황제가 매일 정해진 시간에 아들을 보기 위해 정한 규율 때문이었다. 그는 아이가 월규 곁에만 있다가 영영 그를 가까이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었다.
뜻밖에도 묵용린의 시선이 책상 위 지도 위로 향했다. 월규는 묵용린을 안고 책상 옆으로 다가가 놀리듯 말했다.
“아기씨, 뭘 그리 보세요. 나중에 선생을 모시고 글부터 배우셔야 알아보시지요…….”
묵용린은 몸을 아래로 숙이더니 손을 뻗었다. 책상 위에 올라가고 싶어 하는 듯했다. 월규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어찌 황제의 책상을 어지럽히겠는가. 다만 이곳의 황제는 아들에게만큼은 무엇이든 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내버려 두거라. 린아가 좋으면 그만이다.”
결국 월규가 묵용린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아이는 고개를 숙이고 지도를 빤히 바라보더니 오른쪽으로 한 발, 왼쪽으로 한 발씩 내디디며 걷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한참 동안 주시하던 묵용감은 아이가 일정한 방향을 가지고 걷는다는 걸 깨달았다.
자그마한 발로 각각 동월과 남원, 몽달, 북제를 디뎠고, 서하 쪽에는 발걸음을 주지 않았다. 지도를 밟고 또 밟았지만 순서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묵용감은 그 모습에 점점 눈을 크게 떴다. 대체 이것이 무슨 의미란 말인가……?
* * *
날짜가 조금 미뤄지긴 했지만, 결국엔 이날이 오고야 말았다. 기홍이 예친왕의 저택으로 시집을 가는 날이 된 것이다. 어제 황제는 기홍의 휴가를 허가했고, 학평관은 가마를 준비한 뒤 기홍을 본가로 보냈다.
기홍의 본가는 성 외곽의 시골 마을이었다. 그녀는 마을의 자랑거리가 되어 있었다. 궁녀이긴 해도 계급이 높아 4품 이하의 관원들은 모두 그녀에게 예를 갖추는데, 마을 촌장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그녀의 꽃가마가 오가기 편하도록 특별히 길을 넓히고 평평하게 닦았다. 길가 나무에는 홍등을 달고 그녀의 집도 새로 수리했다. 정갈하게 정돈한 방 곳곳에는 붉은색 쌍희 자를 붙였다. 그녀의 부모와 오라버니, 올케는 새 옷을 갖춰 입고 기홍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서왕비로 시집을 가면 ‘서’자가 붙긴 해도 왕비라는 두 글자가 따라붙는 법이었다. 황제가 특별히 허락까지 해 준 자리니, 마을 전체에 크나큰 영광이 아니겠는가. 어디에 가더라도 으스댈 수 있는 경사였다.
기홍은 화장대 앞에 앉아 구리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거울에 비친 그녀는 아름다웠지만, 멍하니 넋을 놓고 있었다. 온화한 성격의 그녀는 녹화나 월규와는 달랐다. 해야 할 일은 담담히 받아들이는 여인이었다.
나이가 찼으니 시집은 가야 했고, 사정이 어떻든 누구나 다 겪는 일일 뿐이었다. 그녀는 평범한 사람인지라 관습에서 벗어나 살 배짱은 없었다.
예친왕과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언행에서 무례한 점은 찾아볼 수 없었으니 믿을 만한 사람일 터였다. 게다가 황제는 출가 후에도 어선방에서 계속 일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지 않았던가. 일도 하고 녹봉도 받으면 남편에게 굳이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되었다. 무엇보다 저택 후원에서 벌어지는 일에 개입하지 않을 수 있으니 그리 나쁜 삶은 아니리라.
그녀는 소리죽여 한숨을 내쉬었다. 서로 감정이 통해 혼인을 하는 이들이 세상에 몇이나 된다고. 그녀의 부모님과 오라버니, 올케만 봐도 그랬다. 혼사 전까지 얼굴도 모르던 이들이 부부의 연을 맺지 않았던가. 자연히 감정의 깊이를 말하진 못해도 천천히 서로를 알아가면서 아이를 낳고 살다 보니 마음이 통하게 되는 법이었다.
철이 들면서 자신의 분수를 깨달은 그녀는 조금 억울한 일을 당해도 마음에 두지 않았고 늘 규율에 맞게 행동했다. 황제는 그런 그녀를 높게 평가했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그녀를 존중했다. 그 덕분에, 그녀는 지금껏 그녀 자신을 위해 산 적이 없었다.
단 한 번, 영구와의 일을 제외하고. 임안성을 떠날 당시, 그녀는 깊게 고민도 하지 않고 영구와 함께 가겠다고 대답했다. 나중에서야 자신의 마음이 동요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부모님도 뵈러 오지 않고 곧장 좋아하는 사내와 함께 길을 나서는 모험을 벌였다.
비록 아무것도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그녀는 후회하지 않았다. 적어도 한 번은 자신을 위해 살아 보았으니. 그저… 결말이 그리 만족스럽지 않을 뿐이다.
어렴풋이 들리는 인기척에 그녀는 멍하니 파란 하늘을 내다보았다. 그녀는 평소 자신의 감정을 잘 억눌러 왔지만, 오늘만큼은 슬프고 속상한 마음이 자꾸만 솟구쳤다. 이렇게 시집을 가다니…….
큰올케가 활짝 웃으며 문턱을 넘어왔다.
“어서요, 어서, 새 신부를 맞이하는 행렬이 마을에 도착했으니 어서 면사포를 내리세요. 예친왕께서 아주 커다란 말을 타고 아가씨를 맞이하러 왔어요.”
기홍은 그 자리에 앉은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올케 임 씨는 커다란 붉은색 면사포를 그녀 머리 위에 얹어 주었다. 약간은 버거운 무게와 함께 면사포가 얼굴 앞에 드리워지는 순간, 그녀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씁쓸한 기운이 목구멍을 타고 솟구쳤다. 신부가 시집갈 땐 다들 울면서 보내는 풍습이 있으니, 무슨 이유에서든 마음껏 울 수 있는 구실은 마련된 셈이었다.
예친왕은 그녀를 중요하게 여겼다. 첩이긴 해도 구색은 전부 갖추었고 복잡한 과정도 일일이 거쳤다. 덕분에 신부를 맞는 측이나 보내는 측 모두 크게 기뻐했다. 가마에 올라탄 기홍은 가볍게 흔들리며 여생을 지내야 할 곳으로 향했다. 그곳이 오랜 시간 돌고 돌아, 그녀가 마침내 정착할 곳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펑펑 눈물을 쏟을 줄만 알았다. 그러나 두 눈은 건조하기만 했다. 황제의 곁에 너무 오래 있어서인지 감정을 추스르는 데에는 그녀도 도가 튼 모양이었다. 겨울바람처럼 마음을 아릿하게 했던 기분이 지나가자, 그녀는 다시 얼어붙은 겨울 호수처럼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앞만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