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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420)화 (419/1,192)

제420화

승냥이들은 본능적으로 재빨리 달아났고, 도망치지 못한 놈들은 그 자리에서 피를 튀기며 쓰러졌다.

피비린내가 주변으로 퍼져 나가자 남은 승냥이 떼가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잔뜩 흥분한 승냥이들이 서로 먹이를 건 다툼을 벌였다. 그 광경에 사앵앵은 절로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더 중요한 게 있지 않은가. 그녀는 다리가 다 풀리기 전에 사장풍의 목덜미를 끌어안았다. 사장풍도 아직 제대로 몸을 가누기 전이었다. 그녀가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돌아왔군요! 정말 무서웠어요. 당신이 조금만 늦었어도 전 저놈들 밥이 되었을 거예요! 흑, 으흑, 많아 봤자 일고여덟 마리라더니, 서른 마리도 넘는 것 같았어요. 정말 너무 무서워서,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어요. 다신 당신을 볼 수 없을까 봐, 흐어엉…….”

마침 땔감을 지고 바삐 돌아오던 사장풍은 기이한 장면을 마주했다. 승냥이 수십 마리가 먹이를 쟁탈하는 난장판 속에서, 사앵앵이 한 사내를 부둥켜안고 대성통곡하고 있었다…….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사앵앵의 품에 안긴 사내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두 볼이 발그레 물든 그가 그녀의 귓가에 또박또박 내뱉었다.

“아가씨, 사람을 착각하셨나 봅니다.”

사앵앵은 찬물을 뒤집어쓴 듯한 심정이었다. 서둘러 다시 살펴보니 그는 사장풍이 아니었다. 날카롭게 치켜 올라간 눈썹을 가진 낯선 청년은 키도 훤칠하고 외모도 준수하여, 사장풍과 똑 닮은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사앵앵이 워낙 거침없는 성미를 가지고 있긴 했으나, 그녀가 사납게 달려드는 대상은 사실 사장풍 뿐이었다. 다른 사내를 껴안았다는 사실에 그녀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녀는 서둘러 물러났다. 옆을 힐끔 바라보니 멍하니 서 있는 사장풍이 보였다. 그녀가 곧장 해명을 늘어놓았다.

“오해하지 말아요. 저는 정말 당신인 줄 알고. 다른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요. 정말 오해하지 마세요. 너무 위험한 상황이었잖아요. 보세요. 여기 승냥이가 이렇게 많이…….”

그녀는 허둥지둥 말하며 시선을 돌렸다. 한바탕 전쟁을 치르던 승냥이들은 먹이를 다 먹어 치웠는지 입맛을 다시며 그들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세 사람의 얼굴이 빠르게 굳었다. 사장풍은 서둘러 가져온 땔감을 넣어 꺼져 가는 불씨를 살렸다. 사앵앵도 옆에서 그를 도왔다. 칼을 뽑아 든 협객은 음흉한 눈빛을 보내는 승냥이와 대치했다. 그가 휘두른 칼의 위력이 두려웠는지, 승냥이들은 쉽사리 다가오지 못했다.

모닥불이 다시 활활 타오르자 승냥이들은 조금씩 뒷걸음질 쳤지만, 완전히 멀어지진 않고 주변을 배회했다. 그래도 모닥불 주변은 안전해졌기에, 세 사람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사장풍이 먼저 청년에게 두 손을 모아 예를 갖췄다.

“감사합니다, 협객.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남제화藍霽華입니다.”

청년도 맞잡은 손을 가슴 위로 올리며 예를 갖췄다.

“두 분께서는 어느 곳에서 오셨습니까? 또 어디로 가실 예정이신지요?”

사장풍이 선뜻 대답했다.

“저는 사장풍이라고 합니다. 강남에서 왔고 청목채淸木寨로 가는 길입니다. 남 형께서는요?”

“저는 세상을 집으로 삼고 정처 없이 떠돌고 있습니다. 늘 사막의 풍경을 보고 싶었던 터라 이곳으로 와 보았지요.”

“혹 강호에 계신 분이십니까?”

“그런 셈입니다.”

남제화가 웃으며 사앵앵에게 물었다.

“아직 아가씨의 성함은 묻지 못했군요.”

사앵앵은 다른 사내를 껴안았다는 사실에 아직도 수치와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주먹을 들어 얼굴을 가린 채 빠르게 답했다.

“저는 사앵앵이라고 합니다.”

사장풍이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지금껏 다른 이들에게 제 아내라고 소개했는데, 어찌 이번엔 말을 못 하는 것일까? 설마… 남제화의 준수한 외모에 반한 것일까? 그의 인생에 실낱같은 희망이 생겨나는지도 몰랐다! 그가 얼른 남제화에게 권했다.

“정해진 목적지가 없으시다면 저희와 동행하는 게 어떠신지요. 서로 도와줄 수도 있고 말입니다.”

남제화는 흔쾌히 그리하겠다고 답했다.

“아주 좋은 제안입니다. 서북 지역은 경치가 뛰어나지만, 예상치 못한 일들이 자주 일어나지요. 서로 도우면서 안전히 갈 수 있겠습니다.”

기분이 좋았던 사장풍은 남제화와 자리를 깔고 앉아 즐겁게 담소를 나누었다. 사앵앵은 옆쪽의 작은 모닥불 앞에 앉았다. 그녀는 무릎을 껴안고 조용히 먼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던 사장풍이 슬쩍 사앵앵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그녀의 상태가 이상했다. 그간의 사앵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승냥이 떼에 놀라 성격이 변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사앵앵은 조용히 앉아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사장풍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가끔은 그녀에게 관심을 보일 때도 있었다. 예를 들면 그녀의 요구대로 그녀를 안아 주었던 일이나 그녀가 더위를 먹었을 때 도와주었던 일이 그러했다. 분명 그도 그녀가 신경 쓰였던 적이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방금은… 그녀가 다른 사내를 안고 있는 걸 보고도 화를 내기는커녕 남제화를 반갑게 맞이한 데다, 동행하자는 제안까지 했다. 그가 무슨 생각인지 모를 줄 알고? 이번 일로 그녀의 자존심에 커다란 금이 가고 말았다.

그녀는 솟구치려는 눈물을 꾹 참았다. 아무리 속상해도 울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근처에서 승냥이 떼가 서성이고 있으니 아직 위험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는 없었다.

사장풍이 멀찍이 있는 승냥이 떼에게 시선을 주었다.

“이 정도 땔감이면 날이 밝을 때까지 버틸 순 있을 것입니다. 해가 뜨면 제가 엄호할 테니 남 형께서는 사씨 아가씨와 마차를 타고 출발하십시오.”

사앵앵은 그가 자신을 부르는 호칭에 입을 삐죽거렸다. 그래, 다른 이 앞에서 자신을 모른 척하시겠다…….

남제화가 고개를 저었다.

“엄호는 제가 하겠습니다. 사 형께서 아가씨와 마차를 타십시오. 애당초 함께 온 일행이니 만에 하나라도 서로 떨어지면 안 될 것입니다.”

사장풍은 만에 하나라도 그녀와 떨어지면 참 잘될 거라고 생각했다.

사앵앵이 한마디 거들었다.

“차라리 제가 엄호할게요. 두 분이 마차를 타고 가시는 건 어때요?”

사장풍은 그녀가 비꼬고 있다는 걸 곧장 알아차렸지만, 남제화는 어리둥절하게 물을 뿐이었다.

“사씨 아가씨도 무술을 할 줄 아십니까?”

“아뇨.”

“한데 어찌…….”

“승냥이 밥이나 되려고요.”

사앵앵이 사장풍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승냥이처럼 뻔뻔한 놈들 배 불리는 걸 워낙 잘해서요.”

“…….”

사장풍이 어색한 웃음을 머금었다.

“아가씨가 원래 농담을 좋아합니다.”

마침내 동쪽 하늘부터 희끄무레한 빛이 퍼지더니 붉은 태양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승냥이 떼는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야행성인 승냥이는 햇빛을 싫어했다. 머리 위로 떠오르는 밝은 햇살은 동굴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었다.

일부는 걸음을 돌렸지만, 몇몇 승냥이는 고기 맛을 보지 못해 아쉬웠는지 끈질기게 서성거렸다. 모닥불도 어느새 꺼져 희뿌연 연기만 내뿜자 몇 마리가 이빨을 드러내고 사앵앵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승냥이는 영리한 동물이었다. 그들은 일행 중 그녀가 가장 약한 상대라는 걸 알아챈 듯 사나운 기세를 내뿜었다. 그러나 무서워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사앵앵은 연기가 나는 나뭇가지를 집어 들고 있는 힘껏 승냥이에게 던졌다. 승냥이는 재빨리 흩어져 나뭇가지를 피했지만 금세 몰려들었다.

남제화가 검을 뽑아 들고 그녀 앞을 가로막았다.

“아가씨는 마차에 타십시오. 사 형, 어서 마차를 모십시오. 뒤따라가겠습니다.”

상황이 다급한 만큼, 사장풍이 곧장 사앵앵의 손목을 잡았다. 그녀를 빠르게 마차 안으로 밀어 넣은 사장풍은 서둘러 말 위에 올라타 서쪽을 향해 질주했다.

무언가 빠르게 움직이면 승냥이들은 본능적으로 쫓아가곤 했다. 그들이 빠르게 움직이니 승냥이들도 마차를 따라 질주했다.

결국 승냥이 떼는 전력을 다해 마차를 뒤쫓았다. 마차에 타고 있던 사앵앵은 가슴을 졸이며 슬쩍 밖을 내다보았다. 때마침 승냥이 한 마리가 커다란 입을 벌린 채 힘껏 뛰어올랐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마차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헐떡거렸다.

위기의 순간, 또다시 긴 검이 날아들었다. 그는 검을 휘둘러 마차 주변의 승냥이를 처리한 뒤, 재빨리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가 사앵앵을 일으켰다.

“괜찮으십니까?”

사앵앵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물밀 듯 밀려오는 실망감이 또다시 그녀를 괴롭게 했다.

남제화가 처음 구해 주었을 땐 사장풍이 곁에 없었으니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지금은, 마차 앞에 있으면서도 남제화가 그녀를 구해줄 때까지 내버려 두었다. 그녀는 또다시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었다.

그때, 앞쪽에서 사장풍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괜찮습니까?”

사앵앵이 언짢은 말투로 대꾸했다.

“살아는 있습니다.”

그 말에 사장풍이 눈을 깜빡였다. 왜 골이 난 목소리지?

어쨌든 괜찮다니 다행이었다. 사장풍은 양쪽에서 달려드는 승냥이 떼를 뚫고 마차를 몰았다. 말들도 힘을 내 준 덕에 무사히 승냥이의 포위망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태양이 점점 더 높게 떠오르자 마침내 승냥이 떼의 추격이 멎었다.

죽었다 살아났지만 사앵앵은 그리 기쁘지 않았다. 부드러운 좌석에 가만히 기대앉은 그녀는 보자기에서 차가운 찐빵을 꺼내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남제화가 앞에 있는 사장풍에게 물었다.

“사 형, 아가씨의 상태를 확인해 봐야 하지 않습니까?”

사장풍이 별일 아니라는 듯 답했다.

“아닙니다. 다른 여인들과 똑같이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내와 다를 것 없으니까요. 잠시 쉬고 나면 괜찮아질 겁니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칠월이 되었다. 사방에 불덩이가 떨어지기라도 한 듯 무더운 날씨였다. 땅광에 얼음을 저장해 두어도 금세 동이 났다. 세자 묵용린은 더운 걸 무척 싫어했다. 조금만 옷을 두껍게 입히면 곧장 짜증을 내며 버둥거렸다.

백천범은 하는 수 없이 세자에게 두두肚兜(배두렁이)만 입혔다. 밖으로 내놓은 하얗고 오동통한 팔다리는 꼭 연근 같았다. 동글동글한 머리에 한 줌 정도 되는 머리카락을 남겨 두니 민속화 속 물고기를 안고 있는 아기를 쏙 빼닮았다. 그녀는 아들이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날이 더워지면 몸이 축축 처지기 마련이었다. 걸음도 제대로 걷기 힘든 더위가 계속되었지만, 묵용린은 활기가 넘쳤다. 요람에 누워 손발을 끊임없이 흔들며 가만히 있을 줄 몰랐다. 새하얀 얼굴엔 늘 미소가 걸려 있었고, 모든 게 신기한 듯 새까만 눈동자를 쉼 없이 굴려 댔다.

세자에게 부채질을 해 주던 백천범은 자부심이 넘쳤다. 아기를 처음 기르고 있지만 사람들은 볼 때마다 그녀를 칭찬했다. 다부진 몸에 예쁜 얼굴을 가진 덕에 누구든 한 번씩 세자를 안아 보고 싶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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