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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419)화 (418/1,192)

제419화

잠시 고민하던 사앵앵은 결국 나뭇가지를 들고 마차로 향했다.

마차는 사성성의 혼인 선물이었다. 좋은 원목으로 만들어져 말이 빠르게 달려도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마차를 끄는 말 두 마리도 체격이 좋아 위용이 넘쳤다. 다만 수천 리를 빠르게 달린 탓에 많이 지쳐 있었다. 윤기가 흐르던 털은 어느새 푸석푸석하게 일어나 있었다. 하지만 사앵앵은 하루 이틀 쉬게 할지언정 말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그녀가 길을 나설 때 사성성은 연신 눈물을 훔쳤다. 그녀는 웃음꽃이 만개한 얼굴로 길을 떠났다. 다른 이들의 눈에 그녀는 신랑을 얻어 아버지를 잊은 배은망덕한 딸로 보였으리라. 어찌나 단호하게 떠나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아무도 모를 테지만, 그녀는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에 차마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사장풍에게마저 이렇게 무심한 사람은 본 적이 없다는 말을 들어야 했지만, 무너져 내리는 마음을 더욱더 환한 미소로 덮으며 길을 떠나 왔다.

이 마차는 그렇게 떠나온 가족을 이어 주는 끈이나 다름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수해야 했다!

그런데… 모래 언덕 뒤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무리를 발견했다.

“사 장군…….”

“왜요?”

“여기에도 승냥이가 있는 것 같아요.”

바람결에 흩날려 오는 그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떼를 지어서 온 게 아닐까요?”

늘 시원시원하던 그녀의 목소리는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조금 가여운 느낌이 들어, 사장풍이 그녀를 달랬다.

“아뇨. 승냥이는 많아 봤자 일고여덟 마리만 무리 지어 다니니 떼 지어 오진 않았을 겁니다.”

“이, 일고여덟 마리요……?”

그걸 지금 위안이라고 한단 말인가?

사앵앵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고 싶었지만 차마 움직일 수 없었다. 모래 언덕 뒤에 있던 승냥이는 인내심에 한계가 온 듯 어둠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승냥이의 체격은 늑대보다는 작았고, 조금 마른 체격에 머리와 귀가 뾰족했다. 그리 크지 않아 개와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였다.

오수진에서 개는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이다. 그녀가 사는 곳이 주루이다 보니 이웃집 개가 종종 뼈다귀 따위를 얻어먹으러 취선루를 찾곤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상상보다 무섭게 다가오진 않았다. 그녀는 승냥이를 동네 개라고 속으로 되뇌며 불붙은 나뭇가지를 꼭 쥐었다.

사장풍은 눈과 귀가 누구보다 민첩한 사람이었다. 승냥이가 그녀를 향해 다가오려고 하자 그가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러나 사앵앵이 먼저 나뭇가지를 휘둘렀다. 불빛이 스친 그녀의 얼굴은 차갑고도 침착했다. 두 눈은 맑은 겨울밤의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녀의 매서운 기세에 승냥이는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다.

그는 마음을 놓고 주변을 살폈다. 조금 전 한 말은 정말로 그녀를 위로하려 한 것이었다. 승냥이가 매번 일고여덟 마리씩 무리 지어 다니지는 않지만, 대치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 많이 모여들 게 뻔했다.

사앵앵이 문득 입을 열었다.

“마차를 타고 이곳을 뜨는 건 어떨까요?”

“안 됩니다. 지금은 너무 어두워서 말이 길을 잃고 말 겁니다.”

사장풍이 고개를 저었다.

“날이 밝은 뒤에 떠나야 합니다.”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칠흑같이 어두웠다. 날이 밝으려면 제법 시간이 걸릴 터였다. 공교롭게도 모닥불은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땔감을 더 넣지 않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꺼질 듯했다.

그는 바닥에 놓인 마른 나뭇가지를 훑어 전부 모닥불에 던져 넣었다. 얼마 되지 않은 양이지만 순간적으로 불길이 거세게 타올랐다. 승냥이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이는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서둘러 땔감을 구해오지 않으면 두 사람은 이대로 승냥이의 먹잇감이 될지도 몰랐다.

사앵앵도 난처한 상황을 인지한 듯 입술을 달싹였다.

“어떡해요? 땔감이 없어요.”

사장풍이 망설이다 말했다.

“땔감을 구해 올 테니 혼자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는 사앵앵이 당연히 반대하리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당차도 귀하게 자란 아가씨가 아닌가. 이곳에 혼자 있는 게 쉬운 일일 리 없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녀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금방 돌아와야 해요.”

조금 전까지 그의 품에서 벌벌 떨던 여인은 어디 갔단 말인가? 그녀는 정말 다양한 얼굴을 가진 듯했다. 사장풍은 의외라고 생각하면서도 모닥불에서 나뭇가지 두 개를 꺼내 들었다.

거의 다 타들어 간 그녀의 불씨와 맞바꾸며 그가 주의를 주었다.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금방이면 됩니다.”

사앵앵이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이렇게 가시는 거예요?”

“또 다른 일이라도 있습니까?”

“이렇게 용감하게 행동하는데 칭찬도 안 해 주시는 거예요?”

그녀는 불타는 나뭇가지를 손에 쥔 채 두 팔을 활짝 벌렸다. 꼭 불길 속에서 부활한 커다란 새처럼 보였다.

“안아 주고 가요.”

“…….”

“얼른요. 돌아왔을 때 제가 없어져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작별 인사라고 생각해요.”

“허튼소리!”

사장풍이 낮게 호통쳤다.

“이런 상황에서도 농담이 나옵니까.”

“농담 아니에요. 진심이에요.”

사앵앵은 더욱더 크게 팔을 벌렸다.

“사 장군, 설령 승냥이한테 잡아먹힌다 해도 당신과 혼인한 거, 당신을 따라온 거 절대 후회하지 않아요. 전 지금껏 제멋대로 살았고 원하는 걸 갖지 못 하는 일도 거의 없었어요. 천범이는 오해였다지만, 당신은… 제가 유일하게 갖지 못하는 존재예요.

뭐, 그래도 결국 당신한테 시집을 오긴 했지만요.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당신의 진정한 아내로 태어나고 싶어요.”

사장풍은 잠시 넋을 놓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런 상황에 승냥이 두 마리를 증인으로 삼아 마음을 고백하는 여인이 또 어디 있을까.

그는 거의 반강제적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허리를 숙이고 그녀를 꼭 안아 준 뒤, 다시 그녀를 놓아준 그가 다시 당부했다.

“내가 돌아오기 전까진 잡아먹히면 안 됩니다. 그리할 수 있겠지요?”

“네.”

그녀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게요.”

그는 고개를 돌려 모닥불 앞쪽에 조용히 서 있는 승냥이를 바라보았다.

“저놈은 내가 유인할 테니 한 마리만 잘 지키고 있으십시오. 그래도 다른 승냥이가 올지도 모르니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합니다.”

“잔소리 그만하고 얼른 가요.”

그녀가 그를 재촉했다.

“얼른 다녀와야 해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공중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몇 차례 높게 뛰어오르자 모닥불 옆에 있던 승냥이도 그를 뒤쫓았다. 그와 거의 맞먹는 속도였다.

그 모습에 사앵앵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늘 자기 자신부터 걱정하던 그녀였지만, 지금은 사장풍이 더 많은 승냥이 떼를 만날까 봐 걱정이었다. 사장풍은 불도 없는데… 만약 돌아오지 못하기라도 하면…….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듯했다. 그녀가 주시하던 승냥이는 어느새 마차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그녀가 나뭇가지를 매섭게 휘둘렀다.

“썩 꺼져!”

승냥이는 불빛에 놀란 듯 몇 걸음 뒤로 물러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곤 마차 주위를 빙빙 돌기 시작했다. 사앵앵은 승냥이의 의도를 알 길이 없으니, 승냥이가 움직일 때마다 같이 움직였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두 바퀴쯤 돌았을 때, 모래 언덕 뒤에서 또 다른 승냥이 두 마리가 나타났다. 앞뒤로 나란히 걸어오는 두 승냥이를 발견한 그녀가 속으로 탄식했다. 사장풍이 금방 돌아오진 못할 텐데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그녀는 버틸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그녀가 궁리하는 틈을 타, 어느새 승냥이 두 마리가 그녀의 앞까지 다가왔다. 나중에 온 두 마리는 좀 더 흥분한 상태처럼 보였다. 몸이 근질근질한지 꼬리를 움직이며 그녀에게 더 가까이 다가오려고 했다.

마음이 급해진 사앵앵은 나뭇가지 하나를 승냥이에게 내던졌다. 불꽃이 허공을 가로지르자 깜짝 놀란 승냥이는 재빨리 거리를 두었다. 그러나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멈추더니, 다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사앵앵은 불씨를 나누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는 불을 여러 개로 나누어 마차 주변에 놓았다. 이렇게 하면 적어도 말은 안전할 터였다.

다만 그 시간이 매우 짧으리라는 것을, 그녀도 직감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저 사장풍이 좀 더 서두르기만을 기도했다. 그가 돌아오지 않으면 그녀는 정말 승냥이들에게 잡아먹힐지도 몰랐다.

하지만 재앙은 늘 한꺼번에 닥치는 법. 어둠 속에서 푸르스름한 불빛들이 아른거리며 떠올랐다. 승냥이의 눈이었다. 또 두 마리가 이쪽으로 걸어오는 듯했다. 사장풍, 많아 봤자 일고여덟이라더니! 운이 나빠 이토록 많이 만난 것일까.

‘잠깐… 저편에도 짐승들이 있는 것 같은데……?’

그녀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감각을 느꼈다. 어둠 속에서 점점 더 많은 불빛이 점멸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계속해서 푸른 초를 늘어놓는 듯했다. 대체 이게 몇 마리란 말인가. 한 마리당 한 입씩 그녀의 살점을 베어 먹는다 해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이제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그녀는 황급히 마차 앞으로 다가갔다. 마차를 몰고 도망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더욱이 생사는 하늘에 맡겨야 했다.

말 옆에 선 그녀는 승냥이 떼를 바라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설마, 말이 씨가 되었단 말인가? 사장풍과는 정말 다음 생에나 인연을 맺을 수 있다고?

그녀는 천천히 허리를 숙이고 치맛자락을 잡아 있는 힘껏 찢었다. 치마 앞뒤를 길게 찢어야 보폭을 넓힐 수 있었다. 그녀는 마지막 순간이 오기 전까진 여러 가능성을 열어 두기로 했다.

어느새 작은 불더미 하나가 완전히 꺼졌다. 나머지 불씨들도 머지않아 꺼질 터였다. 포위망 하나가 뚫리자 승냥이들은 전부 꺼진 모닥불 쪽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사앵앵은 끊임없이 마른침을 삼켰다. 얼굴의 핏기도 점점 사그라들었다. 죽음을 앞둔다는 게 이런 기분이라니. 뭐라도 손을 쓰고 싶었지만 이젠 너무 늦어 버린 것 같았다.

그저, 너무나도 아쉬웠다. 사장풍이 돌아오기 전까지 잘 버티겠다고 약속했는데. 아무래도 더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중에서도 그녀가 가장 아쉬웠던 것은, 끝내 그를 갖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허공을 가르며 그림자가 나타났다. 달빛 아래, 흩뿌린 물처럼 빛나는 긴 검이 그녀를 에워싼 승냥이들을 휩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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