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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417)화 (416/1,192)

제417화

어두컴컴한 하늘 아래 모래와 돌멩이가 세차게 날렸다. 거센 모래 폭풍이 사방을 휩쓸고 있었다. 한참 후에야 어두운 흙먼지가 조금씩 걷히고 밝은 빛이 차츰차츰 새어 들어왔다.

사앵앵은 힘겹게 일어나 모래가 잔뜩 묻은 머리를 털었다. 그녀가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사, 사 장군, 어디 있어요? 사장풍! 어디 있냐고! 사장풍…….”

한참이나 그를 불렀지만,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누군가의 흐느낌 같은 바람 소리만 요란하게 들려왔다.

어느새 수만 가닥의 금빛 햇살이 머리 위로 드리웠다. 사방에 솟아오른 모래 언덕을 오르기가 쉽지 않았다. 천천히 고요함이 밀려들었다. 조금 전 악몽 같았던 장면은 그녀가 만들어 낸 환영처럼 느껴졌다.

그렇다면 사장풍은? 분명 함께 있었는데, 어찌 그녀만 남아 있단 말인가?

그녀는 치맛자락을 붙잡고 정신없이 사장풍을 찾아다녔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모래가 허겁지겁 그녀의 발을 집어삼켰다.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든 사막을 헤집고 다니며, 사앵앵은 쉴 새 없이 외쳤다.

“사장풍, 대답 좀 해 봐요. 사장풍, 대체 어디 있냐고…….”

그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정말 그를 찾지 못한다면 목 놓아 엉엉 울어버릴 기세였다.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길을 떠날 때 사성성이 시녀와 하인을 붙여 주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아무도 필요 없다고 했다. 오히려 어찌 그리 눈치가 없냐며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의지하며 감정을 쌓아나갈 시기인데, 하인이 붙으면 분위기가 제대로 형성되겠는가?

그러나 지금은 하인이든 시녀든 절실했다. 사성성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곁에 그들이 있었다면 함께 사장풍을 찾아 주었을 텐데.

모래 언덕 뒤에 숨어 있던 사장풍은 비틀거리며 뛰어다니는 그림자를 무표정하게 지켜보았다. 만약 그녀가 이대로 그를 죽었다고 생각하면 모두에게 잘된 일이 아닐까?

서쪽으로 향하던 두 사람은 관청에서 낸 큰길을 따라 걷다가 역참에서 묵곤 했다. 제법 순탄한 여정이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녀가 역참 점원에게 마을 밖의 사막 이야기를 듣더니 호기심을 못 이기고 그를 끌고 나왔다.

난생처음 광활한 사막을 마주했을 때, 두 사람은 가슴이 벅차오르는 듯한 감동에 어쩔 줄 몰랐다. 하지만 예상이나 했을까. 광활한 사막 너머에서 불어닥쳐 오는 모래 폭풍을.

사실 그는 사앵앵과 함께 가고 싶지 않았다. 사성성도 어떻게든 자신의 딸을 붙잡아 두려 했지만, 뻔뻔한 초왕이 서북 지역 최대 규모의 역참으로 사씨 부녀를 홀려 버렸다.

그들에게 휘황찬란한 미래를 약속하니 사성성은 곧장 마음을 바꾸고 사앵앵의 동행을 찬성하는 게 아닌가. 서북 지역에 도착하기만 하면 엄청난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믿는 눈치였다.

오는 길 내내 그는 대쪽 같은 행실로 사앵앵과 거리를 두었다. 반면 사앵앵은 서방님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어떻게든 그를 건드려 보려고 애썼다. 그는 정말, 참을 만큼 참았다. 계속 이럴 바엔 차라리… 여기서 끝장을 내는 게 더 나을 성싶었다.

그때, 그의 시야에 있던 그림자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재빠르게 몸을 일으킨 그녀는 몇 차례 모래를 뱉어내고는 다시 그를 부르며 사방을 돌아다녔다.

사장풍은 모질게 마음을 먹었다. 그의 모든 온정은 단 한 사람을 향하고 있었다. 다른 여인들에게는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사나운 사씨 아가씨에게는 더더욱.

햇빛이 머리 위를 뜨겁게 내리쬐었다. 모래 언덕 그늘에 있어도 흘러내린 땀으로 등이 흠뻑 젖을 정도였다. 사앵앵은 당황해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계속 주변을 빙글빙글 맴도느라 머리는 산발이 되었고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이마에 맺힌 콩알만 한 땀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그래도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초조함이 고스란히 드러났을지언정 계속해서 그를 찾았다. 눈망울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그렇다고 큰소리로 목 놓아 울진 않았다.

결국 사장풍은 그녀의 부름에 대꾸하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그가 입을 열려는 순간, 사앵앵이 크게 휘청이더니 또다시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일어날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깜짝 놀란 사장풍이 황급히 달려갔다.

“앵앵, 눈 좀 떠보세요. 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사앵앵! 눈 좀 떠보라니까!”

그가 그녀의 얼굴을 찰싹찰싹 때렸지만, 그녀는 눈을 감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사장풍은 빠르게 냉정함을 되찾았다. 그녀는 예전의 그처럼 더위를 먹었으리라. 그는 서둘러 허리춤에 차고 있던 물병을 꺼내 그녀의 입가에 대고 물을 흘려 주었다.

그러나 물은 입가를 타고 연신 흘러내릴 뿐이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주변은 온통 하얗게 빛났다. 서둘러 그녀를 깨워 데려가지 않으면, 그도 견디지 못할 터였다.

조급해진 그는 자신의 입에 물을 머금고 사앵앵의 입에 직접 넣어 주었다. 그러나 꼭 다물린 입술은 물 한 방울도 허락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혀로 틈을 벌렸고, 겨우 첫 모금을 먹일 수 있었다.

그가 입을 떼려는 순간, 그의 혀끝과 그녀의 혀가 맞닿았다. 이상하리만치 부드러운 느낌이 입안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깜짝 놀란 그는 넋이 나간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고, 까닭 없이 얼굴을 붉혔다.

다만 지금은 쓸데없는 마음을 펼쳐놓을 때가 아니었다. 그는 다시 물을 머금고 그녀에게 먹여 주었다.

사앵앵이 정신을 차릴 무렵, 그녀는 자신에게 입을 맞추는 사장풍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가 손을 뻗어 사장풍의 옷을 잡아끌었다. 어렵사리 한 입맞춤을, 아직 제대로 맛보지 못했다.

그녀의 움직임에 화들짝 놀란 사장풍이 그녀를 밀쳐냈다.

“무슨 짓입니까?!”

사앵앵이 한 점 부끄러움도 없이 말했다.

“당신이 나한테 입 맞추는 건 되고, 제가 맞추는 건 안 돼요?”

“내가 입을 맞추다니요?”

사장풍이 격분하며 열을 올렸다.

“물을 제대로 마시지 못하니 그리 한 것 아닙니까?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그렇다 한들 사앵앵은 조금도 민망하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사앵앵은 몸에 묻은 모래를 탈탈 털며 시시덕거렸다.

“제가 걱정된 거예요?”

사장풍이 대꾸도 하기 전에 그녀가 그의 어깨를 툭툭 토닥였다.

“이렇게 부인을 아끼는 사내였다니, 시집 한번 잘 왔네요.”

“…….”

어느새 몇 걸음 앞서 걸어가던 사앵앵이 고개를 돌려 그를 불렀다.

“멍하니 서서 뭐 하는 거예요? 얼른 가요. 당신까지 더위를 먹으면 저도 물을 먹여줘야 하잖아요.”

그 말에 사장풍은 몸서리를 치며 재빨리 그녀의 뒤를 좇았다.

“사 장군.”

사앵앵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진지하게 말했다.

“고마워요. 날 그냥 버리고 가지 않아 줘서.”

사장풍의 표정이 다소 어색해졌다. 사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그녀가 더위를 먹지 않았다면 끝끝내 모습을 감추었을지도 몰랐다.

“당신도 걱정하지 마세요. 무슨 일이 생기든 제가 당신을 버릴 일은 없으니까요.”

그녀는 갑작스러운 맹세를 던지며 진지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

그녀가 그를 버리겠다고 했다면 참으로 감격스러웠을 텐데.

한참을 걸은 끝에, 두 사람은 역참으로 돌아왔다. 엉망진창인 두 사람을 보고 점원이 깜짝 놀라 물었다.

“이게 무슨 꼴입니까? 설마 모래 폭풍을 만난 것입니까?”

“네. 모래 폭풍이 덮쳤지 뭐예요.”

사앵앵은 별일 아니었다는 듯 호탕하게 웃으며 사장풍을 가리켰다.

“다행히 우리 서방님이 워낙 용맹해서 절 구해 주었어요. 안 그랬음 사막에 파묻혀 저세상 사람이 되었을걸요.”

점원이 웃으며 맞장구쳤다.

“두 분은 사이가 무척 좋으신가 봅니다. 사실 어려움이 닥치면 각자 살길만 찾는 부부들도 많거든요. 여기는 늘 장사꾼들로 붐비지 않습니까. 부부가 같이 오는 경우도 많은데 둘이 나갔다가 혼자 돌아오는 이들이 있습죠.

사실 이곳 모래 폭풍은 그리 심한 수준도 아닌데 말입니다. 폭풍이 지나간 다음에 사람을 찾아 데려오면 그만인데, 중원中原에서 온 사람들은 폭풍을 겪어 본 적이 없으니 도망치는 데만 급급하지요. 부인은 사막에 내버려두고 말입니다.

그 와중에 코와 입이 모래로 막혀 졸도하는 사람도 있고, 길을 잃어 그대로 실종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일이 잦은 편이었는데, 두 분은 무사히 함께 돌아오시니 참 보기 좋습니다.”

사앵앵이 웃으며 자랑스레 말했다.

“저희 서방님은 그런 사람들과는 달라요. 저를 얼마나 아껴주시는데요.”

“크흠……. 소고기 조림 한 근이랑 노백간老白干(백주 중 하나) 두 근 주십시오.”

더 들을 바에는 차라리 코가 삐뚤어질 때까지 술에 취하는 편이 더 나았다.

* * *

서북 경계에 들어서자 황량한 분위기가 두 사람을 맞이했다. 사막을 마주했을 때의 경이로움은 점점 시들해지고 있었다. 이곳은 중원과는 전혀 달랐다. 대지는 광활했지만 사람은 적었다. 이전처럼 객잔이나 역참에서 쉬어갈 수도 없으니 사앵앵과 사장풍은 노숙을 해야 했다.

저녁놀이 하늘을 붉게 물들었다. 모닥불을 피우니 하얀 연기가 끊임없이 하늘로 솟구쳤다. 사앵앵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떠들었다.

“사막은 외롭고, 연기는 치솟네. 강은 흐르고 해는 둥글구나.”

사장풍이 뜻밖이라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앵앵이 기세등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왜요, 제가 책 같은 건 안 읽는 줄 알았어요?”

사장풍은 묵묵히 한 번 웃고는 모닥불에 나뭇가지를 더 넣었다.

사앵앵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쫑알거렸다.

“날이 추운 것도 아닌데 왜 불을 피우는 거예요?”

“…….”

“밥이라도 지어 먹으려고요? 가진 거라곤 찐빵이랑 소고기 조림이 다인데, 굳이 데우지 않아도 먹을 수 있는걸요.”

“…….”

“말 좀 해 보세요!”

“…….”

내내 대답이 없는 그를 보자 사앵앵은 불쑥 심술이 났다.

“사실 그날 사막에서 절 버리고 가고 싶었죠? 혼자 가 버리고 싶었죠?”

사장풍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닙니다.”

“절 제대로 보지도 못하는 걸 보니 역시 켕기는 거잖아요.”

사앵앵이 코웃음을 쳤다.

“모를 줄 알았나요? 제가 더위만 먹지 않았다면 나오지 않았을 거면서.”

사장풍이 그녀를 빤히 응시했다.

“더위를 먹은 것도 가짜였습니까?”

“설마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했을까 봐요.”

사앵앵이 그를 흘겨보았다.

“저는 주루를 관리하던 사람이에요. 그간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그런 잔꾀도 못 알아챘을까요? 사실 정신을 차렸을 때 당신이 보이지 않을까 봐 얼마나 무서웠는데요. 그래도 당신이 양심은 안 팔아먹었으니 다행이네요.”

잠시 입을 다물었던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동고동락하고 서로에게 의지한 셈이잖아요. 나한테 정말 털끝만큼도 마음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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