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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407)화 (406/1,192)

제407화

묵용감은 미심쩍은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예쁘다고? 아무리 봐도 예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새빨간 새끼 쥐처럼 보이는데, 대체 어디가 예쁘단 말인가?

백천범이 아기를 안으려 하자, 그가 극구 만류했다.

“지금 아이를 안을 힘이 어디 있소? 가만히 누워 있으시오. 아이를 낳은 후엔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고 들었소. 그러지 않으면 나이가 들어 병이 생길 수도 있다고 하오.”

그녀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런 말은 누구한테 들으셨어요?”

“위 의원.”

묵용감이 지어낸 말이 아니었다. 위중청에게 산후에 주의해야 할 점 등을 꼼꼼하게 물어보고 기억해 둔 터였다.

한 아낙이 옆에서 끼어들며 그를 거들었다.

“왕야의 말씀이 맞습니다. 기력을 되찾으신 후에 세자 아기씨를 안아 보시지요.”

묵용감이 손을 휘저었다.

“되었네. 왕비가 아이를 봤으니 어서 데려가시게.”

백천범이 울상이 되어 아이를 바라보았다.

“제 곁에 두어야지요. 배가 고프면 모유도 먹여야 하는걸요.”

월규가 나긋하게 그녀를 달래기 시작했다.

“왕비 마마, 잊으셨습니까? 관저에 유모를 불러 두었습니다. 마마께서 직접 먹이시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를 낳기 전, 학평관은 유모도 관저에 불러놓았다. 당시 백천범은 무엇 하러 남의 손에 맡기냐며 크게 반대했다.

그러나 학평관은 청산유수로 말을 늘어놓으며 그녀를 설득했었다.

“동월국에서는 일반 부호의 부인들도 유모를 부르지요. 적어도 두세 명은 부릅니다. 황궁은 말할 것도 없지요. 총애를 받는 비들도 황자를 낳으면 유모를 여덟 명 정도는 둔답니다. 어찌 초왕비께 유모를 두지 않겠습니까?”

그녀는 그의 말이 의아하기만 했다.

“무엇 하러 그리 많이 부르는 거예요? 한 명으로는 부족한가요? 유모들이 일렬로 서서 한 모금씩 먹이기라도 하나요?”

엉뚱한 말에 학평관이 웃으며 말했다.

“다들 겉치레일지언정 그런 격식을 차리길 원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그녀의 반대에도 한사코 유모 한 명이 관저로 들어오게 되었다.

묵용감도 그녀의 수유를 반대했다. 그녀가 힘들까 봐 걱정되는 게 제일 컸다. 듣자니 아기들은 한밤중에도 젖을 달라고 울어 산모가 제대로 잠을 잘 수 없다고 하지 않는가. 출산을 하고 쇠약해진 그녀가 잠조차 제대로 자지 못한다면 얼마나 괴로울까. 더욱이 그녀가 직접 젖을 물리면 아침부터 밤까지 아이만 신경 쓸 게 틀림없었다.

그럼 그는 어찌한단 말인가? 억지로 밀려날 게 뻔한 일이 아니던가? 그는 왕비의 모유 수유를 끝끝내 반대했다.

백천범은 그와 다툴 힘도 없어, 유모를 부르러 가는 아낙의 뒷모습을 멀거니 지켜보았다.

묵용감은 학평관을 시켜 하인들에게 상금을 내리도록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 안은 텅 비었고 부부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고생스러웠지만, 쾌거를 이루었다는 생각에 백천범이 활짝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묵용감은 하인들 앞에서는 어떻게든 감정을 억눌렀지만, 이제 견딜 수가 없었다. 이제는 그와 그녀만 있는 자리가 아니던가. 그 사실이 그를 충동적이고, 솔직하게 만들었다. 그는 밀려오는 슬픔을 받아들이며 그녀의 손에 얼굴을 댔다.

“천범, 고생했소.”

어느새 그의 눈망울은 안개가 서린 듯 희뿌옇게 변해 있었다.

백천범은 어쩐지 웃음이 나오려 했다.

“그러지 마세요, 왕야. 비웃을 거예요. 아이도 안 우는데 왕야가 우시면 어떡해요.”

그녀가 비웃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조금도 두려운 일이 아니었으므로. 그는 그녀의 손을 더 위쪽으로 가져가 자신의 눈가를 덮었다. 손에 물기가 묻어나자 백천범이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왕야, 이러지 마세요. 전 멀쩡해요. 아이도 잘 낳았고요. 이제 세 식구가 되었으니 앞으로 얼마나 즐겁겠어요. 네? 그러니 울지 마세요.”

이번이 그녀 앞에서 두 번째로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그는 소매로 눈물을 닦은 뒤, 단호하게 말했다.

“부디 약속해 주오. 아이는 하나로 족하오. 둘째는 없소.”

백천범이 슬쩍 그를 흘겨보았다.

“왕야께서 그렇게나 부지런하신데, 또 아이가 생기면 어쩌시려고요?”

그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가 시무룩하게 대꾸했다.

“…어쨌든 무슨 수가 있을 것이오.”

아이를 낳는 건 초왕이 도와줄 수 없었어도, 산후조리만큼은 그가 적극적으로 나섰다. 백천범이 목숨을 걸고 아이를 낳아 주었으니, 그가 정성을 다해 몸조리를 돕는 게 마땅했다.

묵용감은 그녀의 몸을 닦아 주고, 깔고 있던 요도 바꿔 주었다. 요는 피로 얼룩져 있었지만, 그는 미간 한 번 찌푸리지 않고 묵묵히 일했다. 시녀들이 할 일도 뺏어서 하는 그의 모습에 백천범은 미안함이 앞섰다. 그녀가 계속해서 그를 타일렀다.

“왕야, 좀 쉬세요. 이런 일은 하인들이 도와주면 되어요. 왕야가 이런 일을 한다고 소문이 나면 좋지 않을 거예요. 비웃음을 살 거라고요.”

“비웃고 싶으면 비웃으라고 하시오. 그저 부인의 시중을 들고 싶은 것뿐인데, 그들이 무슨 상관이란 말이오?”

밤이 되자 목욕을 마친 그가 침대 위로 올라왔다. 백천범이 깜짝 놀라 고개를 내저었다.

“왕야, 여기서 주무시면 안 돼요.”

“어찌 안 된다는 말이오?”

묵용감이 어리둥절하게 물었다. 아이를 낳기 전에도 한 침대에 누웠는데, 왜 아이를 낳고는 떨어져 자야 한단 말인가?

백천범이 마지못해 웅얼거렸다.

“…침대가 깨끗하지 않으니까요. 다른 곳에서 주무셔요.”

그는 곧바로 말뜻을 알아들었다. 아직 오로가 끝나지 않았으니 침대가 엉망이었다.

“난 괜찮소.”

그는 혹시라도 그녀가 난감해할까 봐 따로 이불을 가져와 덮고 그녀의 곁에 바짝 붙어 누웠다.

“무슨 일이 있거든 곧장 날 깨우시오.”

그가 그녀의 얼굴을 상냥하게 어루만졌다.

“얼굴이 야위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오. 얼굴마저 야위었다면 속이 상해서 죽었을지도 모르오.”

백천범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도 미에 관심이 많은 나인데, 지금처럼 퉁퉁 부은 얼굴이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왕야는 밀가루 반죽처럼 큰 얼굴을 좋아하셨던 거군요!”

“그대가 어딜 봐서 밀가루 반죽이라는 거요.”

그가 진지한 눈으로 그녀를 들여다보았다.

“찐빵이 조금 더 어울리오. 희고 통통한 게 한 입 베어 물고 싶게 생기지 않았소.”

그녀가 손을 뻗어 그를 때리려고 했지만, 오히려 그에게 손을 붙잡혀 입맞춤을 당했다. 그가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찌 화를 내는 것이오? 난 찐빵 같은 얼굴이 좋소. 동그랗고 윤기가 흐르니 얼마나 예쁘오?”

눈을 부릅뜬 채 그를 노려보던 그녀가 갑작스레 한숨을 내쉬었다.

“왜 아직 모유가 안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유모가 있는데 왜 걱정하오?”

묵용감이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

“다른 집 부인들은 타락차를 마시며 억지로 젖을 말린다는데, 그대는 나오지 않으니 하늘이 굽어살핀 것이오.”

백천범은 그 말에 안색이 어두워졌다.

“제 아이에게 무엇 하러 남의 젖을 물려요. 제가 먹이고 싶어요.”

묵용감은 심하게 반대할 수도 없어 달래듯이 말했다.

“젖이 나오지 않으니 먹일 수 없지 않겠소.”

“기홍 언니한테 젖을 잘 나오게 하는 요리를 해 달라고 할 거예요. 족발이 좋다고 들었는데, 내일 그걸 해 달라고 해야겠어요.”

“그렇게 느끼한 음식을 어찌 먹는단 말이오.”

그가 조심스레 타일렀다.

“나오지 않으면 그대로 두시오. 어쨌든 유모가 있으니 아이가 굶을 일은 없지 않소? 한 명으로 부족하면 유모를 더 구하면 되오.”

그녀가 매섭게 그를 흘겨보았다.

“무엇 하러 많이 불러요? 왕야께 좋은 구경만 시켜드리게요?”

“…….”

하늘에 대고 맹세하건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어찌 그런 쪽으로 그를 몰아세운단 말인가?

그는 곧 넉살 좋게 웃으며 그녀의 이불 밑으로 손을 슬쩍 집어넣었다. 그녀가 신경 쓰지 않는 틈을 타 그녀의 가슴에 손을 얹은 그가 입을 열었다.

“누구든 대놓고 보여 준다 해도 보지 않겠소. 나에겐 오직 이뿐이오.”

아직 몸부림을 칠 힘도 없었던 그녀는 그를 내버려 두었다.

묵용감은 오랫동안 그녀를 가까이하지 못했다. 달이 찰수록 그녀는 편히 잠들지 못했고, 몸을 돌아눕는 것마저 힘들어했다. 그 또한 잠을 자던 중에 뒤척임을 느끼면 곧바로 일어나 그녀의 몸을 돌려주곤 했다. 혹시나 그녀가 불편하진 않은지 살피느라 잠을 설치는 나날이었다.

그런 와중에 어찌 다른 마음을 먹을 수 있을까! 그는 빨리 아이가 나오기만을 바랐다. 아이를 낳아야 그녀도 편해지고, 그의 형편도 더 나아지지 않겠는가.

하지만 기력이 쇠한 그녀에게 손을 대선 안 될 일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쯤은 괜찮지 않을까……? 그는 조용히 손을 가져갔다. 혹시라도 그녀가 의도를 알아챌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었다.

오랜 시간 함께한 백천범이 어찌 그의 마음을 못 알아차리겠는가. 그녀는 웃음을 참으며 애잔한 표정을 지었다.

“왕야께서도 힘드셨지요. 참는 게 많이 힘드시면…….”

그가 황급히 그녀의 말을 막았다. 무슨 말이든, 그리 듣기 좋은 말이 아닐 테니.

“괜찮소. 그대는 회복에만 신경 쓰시오. 위 의원 말로는 한 달 넘게 몸조리를 해야 회복할 거라더군.”

백천범이 울상이 되어 입술을 달싹였다.

“다른 건 괜찮은데 가위로 찢은 상처가 벌어질까 봐 걱정이에요.”

가위? 찢은 상처? 묵용감이 눈을 부릅뜨더니 말까지 더듬었다.

“찌, 찢다니, 어딜?”

백천범이 그를 흘겨보았다.

“어디겠어요. 어머니들 말이 통로가 좁아서 찢어야 한댔어요.”

그가 곧바로 이를 악물었다.

“대체 어느 아낙의 생각이오? 어찌 묻지도 않고 그런 짓을…….”

“왕야한테 물어서 뭐 하겠어요. 아이 낳는 걸 잘 알지도 못하시잖아요?”

그녀가 입꼬리를 올리며 키득거렸다.

“왕야께서 반대하시면, 아이를 어떻게 낳겠어요?”

순간 말문이 막힌 그는 모든 책임을 아이 탓으로 돌리며 성을 냈다.

“태어나자마자 큰 죄를 범하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낳지 않았을 것을!”

그녀가 못마땅한 얼굴로 받아쳤다.

“내 아이에게는 살이 문제가 아니라 목숨을 내어 준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참으로 단호했지만, 그녀의 얼굴은 파리하기 짝이 없었다. 묵용감이 그녀의 얼굴을 조심스레 살폈다.

“천범, 대체 얼마나 아팠소.”

죄책감이 밀려온 그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얼굴에 입을 맞췄다.

“그대에게 두 번 다시 이런 고통을 주지 않겠소. 내일 위 의원에게 어찌해야 회임을 막을 수 있는지 알아보겠소.”

“그래요.”

백천범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터울 없이 낳는 것보단 두 해나 세 해 정도에 한 명씩 낳는 게 좋겠어요.”

“…….”

그의 말은 아예 들은 체도 않았다. 그래도 두세 살 터울을 두자고 한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은 성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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