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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401)화 (400/1,192)

제401화

사장풍은 연거푸 한숨만 내쉬었다. 그가 무엇을 하든 사앵앵과 다른 식구들은 혼사를 척척 준비해나가고 있었다. 이제 정말 방도가 없는 듯했다.

뜻밖에도 그에게 다가온 구원의 손길은 초왕의 것이었다. 때마침 초왕이 사장풍에게 교지를 내려주었다.

「교만하고 안하무인인 사장풍은 불경한 죄까지 저질렀으니, 그 죄를 좌시할 수 없다. 사장풍은 죄인의 신분으로 서북으로 이동할 것을 명하며, 영원히 돌아올 수 없다.」

교지를 받아든 사장풍이 슬쩍 웃음을 지었다. 이제 가야 할 때가 되었다. 그것도 아주 먼 곳으로! 게다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니, 그녀에게 해방된 셈이다. 그간 겪었던 모든 일들을 한바탕 꿈으로 여길 수도 있게 되었으니, 홀가분할 따름이었다.

반면 사앵앵은 명을 전하러 온 한통 대장군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찌 떠난단 말입니까? 이제 저와 혼인을 할 거라고요!”

한통이 사장풍에게 물었다.

“사실이냐? 그렇다면 본 장군이 왕야께 사정을 말씀드려 보겠다. 먼저 혼사를 올린 뒤에…….”

“아닙니다.”

사장풍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소인, 바로 떠나겠습니다.”

“안 돼요!”

사앵앵이 그의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

“못 가요. 정말 가야 하거든 절 데리고 가세요.”

그녀가 슬픔에 젖은 눈으로 사장풍을 바라보았다.

이번엔 정말 상심이 큰 기색이었다. 사장풍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손을 뿌리쳐야 하건만, 어쩐지 내키지 않았다. 곧 떠나게 될 텐데… 그녀를 더 힘들게 할 필요는 없었다.

“앵앵, 바보 같은 말 마십시오. 서북에선 고단한 생활을 보낼 게 뻔한데, 그곳에 무엇 하러 간단 말입니까? 죄를 지어 벌을 받아야 하는 저 같은 사람만 마땅히 가는 곳입니다.”

“안 돼요. 사 장군님이 어딜 가든 저도 함께할 거예요!”

사앵앵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한통을 바라보았다.

“가족은 데려가도 되나요?”

한통이 난처한 표정으로 코끝을 만지작거렸다.

“그것이… 아마 될 겁니다. 함께 가면 왕야께서도 더욱 마음을 놓으시겠지요. 왕야께 여쭤보고 올 테니 며칠만 기다리십시오.”

* * *

소식을 접한 사성성은 대번에 말을 타고 달려왔다. 놀라기도 놀랐지만, 귀한 딸이 사장풍을 따라갈까 봐 겁이 났다. 그는 사앵앵을 아무 데도 보낼 수 없었다. 자신이 잘 데리고 있다가 나중에 데릴사위를 맞으면 그만 아닌가!

그러나 그가 아무리 간곡하게 타일러도 사앵앵은 망할 저울추를 삼킨 것처럼 기울어진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침묵으로 일관하며 대답을 대신 했다.

결국 사성성은 사장풍에게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자넨 입이 없는가? 말 좀 해 보게! 그렇게나 혼사를 치르기 싫어했잖나? 그럼 앵앵이가 못 따라오게 해야지. 우리 앵앵이는 절대 서북 같은 곳에선 못 지내네. 대체 우리 딸을 어찌 홀렸길래 이 꼴이 되었단 말인가?

시집도 가지 않은 여인이 매일 자네 옆에 붙어 있으려고만 하고. 마을 사람들이 우리 앵앵이를 두고 얼마나 쑥덕거리는지 아는가? 자네가 떠나고 나면 아낙네들이 또 얼마나 떠들어 댈지 눈에 훤하네.

그런다 한들 난 앵앵이를 절대 보낼 수 없네. 그런 명예보다 앵앵이의 행복이 더 중요하니까. 애당초 복을 누리라고 낳은 아이지, 자네를 쫓아가서 고생이나 하라고 낳은 게 아닐세!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네. 사장풍, 감히 내 딸을 데려가거든 내가 서북까지 쫓아가 끝장을 보고 말 걸세!”

“아버지!”

사앵앵이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 하세요. 제가 불효막심한 딸이에요. 제가 마땅히 효를 다해야 하는데, 아버지를 혼자 계시게 하면 안 되는데…….”

그녀가 소매로 입을 가리더니 말을 잇지 못했다. 어느새 맺힌 맑은 눈물이 그녀의 뺨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사앵앵이 울음을 터뜨리니 사성성은 어쩔 줄 몰라 하며 그녀를 달랬다.

“앵앵아, 울지 말거라. 널 탓하는 게 아니다. 다 사장풍 저자 때문이지. 저자가 널 홀린 게다.”

사앵앵은 조용히 흐느끼며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버지, 이 불효녀를 용서하세요. 종종 뵈러 올게요. 아버지는 이곳에 가업도 있고 시중을 드는 하인도 많지만, 사 장군님 곁에는 아무도 없어요. 제가 도무지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그래요.

아버지, 아버지도 새로 좋은 분 만나세요. 반대하지 않을게요. 씩씩한 아들도 낳으셔서 우리 사씨 집안의 가업을 물려주시어요…….”

“그만하거라, 제발 그만해라, 앵앵아.”

결국 다리에 힘이 풀린 사성성도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부녀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

묵묵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장풍이 입을 열었다.

“…합시다, 혼사.”

그의 말에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방금 뭐라고 했어요?”

“혼사를 치르자고요.”

사장풍이 힘주어 말했다.

“과부가 될지도 모르지만, 혼사도 치르지 않은 사내와 어울렸다는 말보단 낫지 않겠습니까.”

사앵앵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깜박였지만, 곧 눈물을 닦고 사성성을 부축하며 일어났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과부라니요. 설마…….”

겁에 질린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못된 마음을 먹고…….”

“그런 게 아닙니다.”

사장풍이 옅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이대로 떠나면 사람들이 더 심하게 떠들어 대지 않겠습니까? 그럴 바에는 혼인합시다. 그 후에 아가씨는 이곳에 남고 저는 떠나겠습니다. 나중에 괜찮은 사람을 만나거든 저 같은 놈은 죽었다 여기고 그자와 평안히 사십시오. 제게 알리지 않아도 됩니다.”

사앵앵이 그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얼굴로, 그녀를 가만히 마주 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가에서 또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참 후, 그녀가 침묵을 깨트렸다.

“좋아요. 그렇게 해요.”

사성성은 어안이 벙벙했다. 어떻게 키운 딸인데, 그의 귀한 딸이 혼인하자마자 과부가 된다니! 그래도 더는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차라리 과부가 되는 편이 서북으로 떠나는 것보단 나았다.

이미 혼사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 더 걸릴 게 없었다. 사장풍은 최대한 간소하게 치르자고 했지만, 사앵앵은 절대 그럴 수 없었다. 평생 한 번뿐인 혼례가 아닌가. 온 동네 사람들이 그녀의 혼사를 알 수 있도록 성대하게 치르고 싶었다.

비록 사장풍은 초왕에게 미움도 사고 관직도 잃었지만, 초왕에게 맞서는 그 용기와 배짱만큼은 천하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가 아닌가. 그녀는 많은 이들이 사장풍의 그러한 면을 봐주길 원했다.

그녀는 사장풍이 그녀를 위해 혼인을 결정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뭐 어떠랴! 다른 문제들은 혼사를 치른 후에 생각해 보면 될 일이었다. 앞으로 남아 있는 일들을, 그녀는 다 감수할 자신이 있었다.

* * *

혼삿날이 되자 초왕이 직접 혼례식에 찾아왔다. 그는 사장풍을 불러 한참 동안 단둘이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중에는 사성성까지 불러들였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온 세 사람의 표정은 각양각색이었다. 초왕은 여느 때처럼 태연했고, 사장풍은 엄숙해 보였다. 마지막으로 사성성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장풍이 초왕을 모시고 따로 술을 마시는 동안, 사성성은 한달음에 신방으로 달려갔다.

“앵앵아, 아비는 네가 사장풍을 따라간다 해도 더는 반대하지 않으마.”

잔뜩 들뜬 목소리에, 사앵앵이 붉은 면사포를 걷어 올렸다.

“아버지,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예요?”

“초왕께서 아주 큰 선물을 주셨다.”

사성성이 두 팔로 커다란 원을 그려 보였다.

“아주 큰 선물이라니까!”

사앵앵은 그의 말에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아버지, 뜸 들이지 말고 어서 얘기해 보세요!”

“초왕께서 서북 지역에 큰 역참을 지으셨다더구나. 그런데 그곳의 운영을 너와 사장풍에게 맡기겠다고 하셨다! 너도 알지 않느냐? 조정 관할의 역참은 세금을 낼 필요가 없으니, 수입은 온전히 너희에게 돌아오는 것이지.

게다가 앞으로 서북 지역을 중점적으로 개발하실 예정이라고 하셨다. 그렇게 되면 서북 지역을 찾는 이들도 늘어날 테고, 조정에서 인력을 많이 파견한다고 하니 밑지는 장사는 아닐 게다.

왕야께서 너희가 운영을 잘하거든 분점을 내어 홍정상인紅頂商人(관리를 겸하는 상인)이 될 수 있게 해 준다고 하셨다. 앵앵아, 이 아비는 한평생 장사하면서도 홍정상인의 자리에는 오르지 못했는데, 너는 분명히 아비보다 더 훌륭한…….”

장사꾼의 딸 아니랄까 봐, 곧바로 사앵앵의 눈이 반짝거렸다.

“정말이에요? 왕야께서 정말 저와 그이한테 역참을 맡기신대요?”

“정말이고말고. 무엇 하러 널 속이겠느냐? 왕야께서 이 아비와 사장풍 앞에서 직접 약속하셨는데, 그게 거짓이겠느냐?”

“그이는 뭐라는데요?”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 사앵앵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진지하게 물었다.

“절 데려가겠대요?”

“초왕께서 그리 말씀하셨으니 감히 거부할 수 있을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니 암묵적으로 동의했다고 할 수 있지.”

그래, 반대만 하지 않았으면 되었다. 사앵앵은 솟구치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어찌 되었든 사장풍을 따라갈 생각이었지만, 그가 끝까지 반대할까 봐 걱정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초왕이 모든 걸 다 해결해 주었다!

“아버지, 몇 시진이나 되었어요? 왜 아직도 술자리가 끝나지 않나요?”

“왜 그리 조급하게 구느냐? 왕야께서 아직 술을 드시는 중이다.”

“한번 가 보세요. 그이한테 술은 조금만 마시라고 전해 주시고요. 늦어지면 안 되니까요.”

사성성이 어리둥절하게 사앵앵을 바라보았다.

“무엇이 늦어진다는 말이냐? 혼사도 이미 치렀는데?”

“아버지!”

사앵앵이 얼굴을 붉히며 그를 불렀다.

그제야 그녀의 말뜻을 깨달은 사성성은 민망해진 듯 헛기침을 하며 슬그머니 밖으로 나갔다.

사앵앵은 떨리는 마음으로 사장풍을 기다렸다. 그러다 침대에 기대어 잠시 졸았지만, 사장풍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시녀를 보내 바깥 상황을 확인하게 했다. 돌아온 시녀는 작은 어르신이 홀로 술을 마시고 있다고 전했다.

소식을 들은 사앵앵은 한참 동안 무거운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시녀에게 환복을 도와 달라고 분부했다. 예복을 벗은 그녀는 화장대 앞에 앉아 봉관도 벗었다. 비록 그와 함께 서북 지역으로 간다는 기쁜 소식이 있었지만, 어느새 그녀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사라져 있었다.

그래, 사장풍에게 이 혼사는 그저 눈속임이 아니던가. 그러니 그녀의 면사포를 걷어 주지도, 그녀와 합환주를 나눠 마시지도 않을 테지. 게다가 초야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지금쯤 그는 괴로워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자신의 마음은 저버리고 다른 여인과 혼사를 치렀으니, 그 괴로움을 달래려 홀로 술을 들이켜는 게 뻔했다.

사앵앵은 거울에 비친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녀도 제법 아리따운 여인이었다. 그런데도 사장풍은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대체 왜? …되었다, 어쨌든 혼사는 치르지 않았는가. 그녀는 애써 자신을 다독였다.

세상일은 십중팔구가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었다. 어떻게 모든 이가 다 만족하는 일만 일어날까. 두 사람 중 한 명이라도 기쁘니, 결과는 나쁘지 않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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