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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394)화 (393/1,192)

제394화

점심은 옥당춘玉堂春에서 먹었다. 금릉에서 가장 오래되고, 명성이 드높은 가게였다. 점원 두 명이 둥근 광주리에 게를 가득 담아 왔다. 태자의 말처럼 푸르스름한 등껍질에 하얀 배, 노란 털이 난 집게발을 가진 게들은 하나같이 살이 꽉 차 있었다. 어젯밤에 징양호에서 잡아 올린 게가 그들의 눈앞에 놓였다.

게를 생강과 마늘에 버무렸다가 이 집만의 비법이 담긴 계화주를 넣고 쪄낸 요리가 상에 올라온 순간,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주변에 있는 이들은 절로 군침이 돌았다.

백천범도 침을 꼴깍 삼켰다. 다만 위중청의 당부가 있으니 구경밖에 할 수 없었다. 묵용감이 점원을 불러 다른 음식의 추천을 받았다. 점원은 가게에서 직접 발효한 계화즙을 추천했다.

술이 아니라 계화꽃 향이 나는 과즙이라는 말에, 묵용감은 흔쾌히 계화즙을 주문했다. 그녀가 게를 먹지 못하니 과즙이라도 마음껏 먹게 해 줄 생각이었다.

그들은 식탁에 함께 앉아 떠들썩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이어갔다. 백천범의 왼편엔 묵용감이, 오른편엔 월규가 앉아 양쪽에서 그녀를 챙기기 바빴다. 백천범은 월규에게 바짝 붙어 게가 무슨 맛인지, 맛은 있는지, 먹기 힘들진 않은지, 이에 들러붙진 않는지 등을 조용히 캐물었다.

귀를 쫑긋 세우고 그녀의 말을 듣던 묵용감은 그저 웃음만 흘렸다. 내년에 다시 이곳을 찾아, 그녀에게 게를 원 없이 먹여 주리라.

그리고 오후 무렵, 백천범은 갑자기 배가 아프다며 자지러졌다. 얼굴이 창백해진 그녀가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적잖이 놀란 묵용감이 서둘러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영구에게 의원을 데려오라 외쳤다.

* * *

상황은 묵용감의 생각보다 심각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피까지 비쳤고,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백천범이 받은 충격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녀가 몸을 떨기 시작하자, 묵용감이 서둘러 그녀를 달래주었다.

“괜찮소. 피곤해서 그런 듯하오. 의원이 약을 지어 주면 금방 나아지지 않겠소?”

그도 초조하긴 마찬가지였지만 백천범을 위해 애써 태연한 얼굴을 보였다. 문 앞에 다가간 그가 목소리를 낮춰 가동에게 분부했다.

“가서 의원을 불러오너라. 성안의 유명한 의원은 전부 데려와야 할 것이다. 어서!”

가동도 잔뜩 굳은 얼굴로 대꾸했다.

“예. 바로 다녀오겠습니다.”

시녀들이 침대 옆에 서서 백천범을 달래주었다. 그러나 월규가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몇 마디 만에 눈시울을 붉혔다. 묵용감이 곧바로 그녀에게 물러나라는 눈짓을 보냈다. 대신 기홍이 나긋나긋하게 말을 건네고, 녹하가 종종 농담을 던져 백천범을 안심시켰다. 덕분에 백천범도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잠시 후,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의원일 거라는 생각에 묵용감이 서둘러 문 앞으로 향했다. 그러나 들어온 이들은 의원이 아니라 태자와 황보주아였다.

“어찌 된 것이냐? 왕비가 몸이 편치 않다던데, 의원은 불렀느냐?”

“예. 기다리는 중입니다.”

태자 앞에서는 묵용감도 감정을 숨기지 않고 걱정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

황보주아가 침대 옆으로 다가가 백천범을 살펴보았다.

“왕비 마마, 어떠십니까? 배가 아프시다고 들었습니다. 좀 나아지셨습니까?”

백천범은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머리카락은 이마에 들러붙어 있었고,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팔짝팔짝 뛰어다니던 오전의 모습은 떠올리기도 힘들었다.

“…조금 괜찮아졌어요.”

백천범은 차마 크게 말하지도 못했다. 힘을 주어 말하다 또 피가 나올까 봐 겁이 났다.

“신경 써 줘서 고마워요, 주아 언니.”

“왕비께서 회임을 하신 몸이니 당연히 그리해야지요.”

황보주아가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

“혹 점심에 무얼 잘못 드셔서 배탈이 나신 건 아니십니까?”

백천범은 고개를 젓기만 했다. 단순히 배탈이라면 피가 비쳤을 리가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그녀가 두려워하는 건 자신이 잘못되는 게 아니었다. 혹여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 두려움이 그녀를 잠식했다.

태자도 한마디 거들었다.

“주루를 먼저 통제하는 게 좋겠구나. 그곳의 음식을 먹고 초왕비가 배탈이 났으니, 절대 가볍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제가 보기엔 의원의 진료부터 받아야 할 듯합니다.”

황보주아가 말했다.

“많은 사람을 동원하는 건 좋지 않은 방법입니다. 온 성이 시끄러워지지 않겠습니까?”

“주아 말이 맞습니다.”

묵용감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의원의 진맥부터 받고 결정하겠습니다. 분명 아무 문제 없을 것입니다. 꽃구경을 너무 열심히 한 탓에 피곤한 것이겠지요.”

그것은 그의 바람이기도 했다. 그때, 영구가 의원을 데려왔다.

서둘러 백천범의 맥을 짚은 의원이 조금 엄숙한 표정으로 입을 뗐다.

“유산을 할 때의 증세입니다.”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백천범의 커다란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의원님, 제발 아이를 지켜 주세요! 제발 우리 아이 좀 살려 주세요…….”

힘없이 애원하는 그녀의 모습이 묵용감의 가슴을 찢어 놓았다. 서둘러 그녀의 손을 붙잡은 그가 억지로 미소를 보였다.

“걱정하지 마시오. 의원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 줄 것이오.”

황보주아도 의원에게 애원하듯 말했다.

“제발 아이를 지킬 방법을 알려 주십시오. 절대, 절대로 문제가 생기면 안 되는 아이입니다!”

의원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묵묵히 맥을 다시 짚던 의원이 한참 후에야 굳은 얼굴로 입을 뗐다.

“혹 부인께서 점심에 게를 드시진 않으셨는지요?”

“안 먹었어요.”

백천범과 묵용감이 거의 동시에 답했다.

“먹지 않았소.”

“그렇다면, 참으로 이상합니다.”

두 손가락을 가볍게 백천범의 손목 위에 올려놓은 의원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증세는 임부가 게를 먹었을 때 나타나는 유산기가 분명합니다.”

그가 묵용감을 돌아보며 설명했다.

“매년 임부들이 게를 잘못 먹어 유산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노부는 금릉에서 수십 년간 의원 생활을 해 온 터라 이런 상황을 수도 없이 보았습니다. 한데 부인의 증상도 그들과 같습니다. 만약 게를 드시지 않았는데 이런 증상이 나타났다면,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점심을 먹을 당시 백천범의 옆에 앉았던 묵용감이니, 그녀가 게를 먹지 않았다는 건 그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의원의 단호한 처방에 순간 확신이 서지 않았다. 혹여 마음이 약해진 월규가 그녀에게 게를 주었던 거라면…….

그가 다시 월규를 불렀다.

“점심을 먹을 때 부인에게 게를 주었느냐?”

“그럴 리가요.”

월규가 당치도 않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부인께서 게를 드시면 안 되는 걸 알고 소인도 내내 지켜보았습니다. 정말로 게는 한 입도 들지 않으셨습니다.”

묵용감은 손을 휘저어 월규를 내보낸 뒤, 의원에게 말했다.

“잠시 저쪽에서 이야기 좀 나누겠소?”

그러나 백천범이 그의 도포 자락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가지 말고 여기서 얘기하세요.”

그녀가 자그마한 얼굴을 들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의원님, 아이를 지킬 수 있을까요?”

의원은 난처한 표정으로 말할 뿐이었다.

“그것이… 이전의 경험을 비추어 보면, 아무래도 어려울 듯합니다. 부인께서는 젊으시니, 또 기회가…….”

백천범은 눈을 질끈 감았다. 눈꼬리를 타고 맑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힘겹게 넉 달을 버텼건만, 아이를 지킬 수 없다니……. 그녀는 거대한 슬픔의 풍랑에 휩쓸리고 말았다. 그간 느꼈던 고통도 이리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이리 슬프지는 않았다.

그녀의 아이였다. 그의 아이였다. …그녀와 그의 아이였다. 아직 품에 안아 보지도 못했는데, 곧 잃을지도 모른다니.

“천범, 이러지 마시오.”

묵용감이 허리를 숙이고 그녀를 부둥켜안았다.

“걱정하지 마시오. 분명 아이를 지켜낼 방법이 있을 것이오.”

가녀린 몸이 그의 품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녀는 소리 내어 울진 않았지만, 입술 사이로 흩어지는 가느다란 흐느낌을 들을 수 있었다. 차라리 목 놓아 울면 좋으련만, 마음을 칼로 도려내는 듯 시리기만 했다.

감정을 겨우 억누르고 있던 묵용감마저도 그녀의 모습에 더는 견디기 힘들었다. 아이를 지키지 못하면 백천범의 눈물은 그치지 않을 것이었다. 어디 눈물뿐일까. 그녀는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지도 모른다. 슬픔과 분노,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이 그의 안에서 어지럽게 뒤엉켰다.

고개를 든 그의 얼굴엔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가 칼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의원을 노려보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아이를 지키거라. 어떤 일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리하지 못한다면, 널 매장시키겠다!”

순간 의원은 다리에 힘이 풀리고 말았다. 놀란 가슴이 쿵쿵 뛰었다. 대체 뭐 하는 사람이기에 이리 살기를 내뿜으며 화를 낸단 말인가? 어느샌가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대, 대체 어, 어찌 그리도 무리한 요구를 하십니까?”

의원이 말을 더듬으며 겨우 내뱉었다.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매년 게를 맛보고 아이를 잃는 임부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말에 백천범이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들어 올렸다.

“전 먹지 않았어요.”

“그대를 믿소.”

묵용감이 그녀를 끌어안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

“먹지 않은 걸 나도 잘 알고 있소. 저자가 돌팔이 의원이라 그런 것이오. 가동에게 의원을 많이 불러오라 했으니, 다른 의원에게 진맥을 받아 봅시다.”

백천범이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약속해 줘요. 아이를 지켜 주겠다고. 아이는 제 목숨과도 다름없어요. 만약 아이가 잘못되면 전…….”

“허튼소리!”

묵용감이 나직하게 호통쳤다.

“자녀와 부모 간에도 인연이 있소. 아이가 세상에 나올 복이 없다면 우리와도 연이 닿지 않은 것뿐이오. 그저 마음 편히 다른 아이를 기다려야 하오.”

“아뇨. 전 이 아이여야만 해요. 제 첫 아이라고요.”

그의 말에 백천범의 감정이 격하게 요동쳤다.

“이 아이여야 해요, 전 이 아이여야만 한다고요!”

“알겠소, 알겠소.”

묵용감이 황급히 그녀의 어깨를 꼭 감싸 안았다.

“아이를 지킬 것이오. 내가 약속하오!”

한편 면전에서 돌팔이라는 평을 들었으니, 의원은 심히 불쾌했다. 그가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

“다른 의원들이 온다니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그래도 진료비는 주셔야 합니다.”

묵용감의 매서운 시선이 의원을 훑었다.

“누가 가도 좋다고 하였느냐? 잠시 저쪽에서 기다리거라. 일을 해결하지 못하면 누구도 나갈 수 없다.”

의원이 눈을 부릅떴다. 수십 년간 의술을 펼쳐 왔지만, 이런 황당한 일은 난생처음이었다. 그의 의관醫館은 금릉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곳 중 하나였다. 일찍이 여러 스승에게 배웠고, 지위가 높은 고관들과도 인맥이 두터웠다. 개중 이런 손님은 없었다. 맥을 다 짚고 진료비도 주지 않을뿐더러 돌아가지도 못하게 하다니!

부티 나는 행색을 하고 객잔에 묵은 걸 보면 금릉에 관광 온 여행객이 분명했다. 외지인이 이렇게 제멋대로 굴다니, 정말 무법천지가 따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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