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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346)화 (345/1,192)

제346화

그때, 양보전이 안으로 들어왔다. 할멈과 몸종에게 대강 이야기를 들은 듯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었다.

“부인, 괜찮아요? 어떻게…….”

월향은 있는 힘껏 그의 뺨을 때렸다. 볼을 감싸 쥔 양보전이 큰 소리로 울지도 못하고 작게 흐느꼈다.

“부인, 왜 때리는 거예요…….”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뭘 잘했다고 뻔뻔하게!”

화가 치솟은 월향이 또다시 손을 들어 올렸지만 위축된 그를 마주하자 천천히 손을 떨궜다.

힘을 잔뜩 실은 탓에 양보전의 얼굴엔 선명한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 와중에도 그의 시선은 월향이 쥔 가위에 고정되어 있었다. 방금 그의 뺨을 때리다가 월향은 가위 끝에 목을 긁혔다. 살갗이 베이진 않았지만 붉은 자국이 선명했다.

“부인, 얼마든지 때려도 돼요. 하지만 가위는 내려놓고 날 때려요. 네?”

월향은 눈을 치켜뜬 채 입술을 앙다물고 있었다.

아내가 이렇게나 화가 났으니, 전진곤이 무슨 짓을 한 게 틀림없었다. 형이고 뭐고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양보전이 전진곤에게 달려들었다. 죽을힘을 다해 전진곤을 짓누른 양보전이 눈을 부릅떴다.

“무슨 짓을 한 거야? 왜 부인이 저렇게 화가 나서 죽으려고 하는 건데, 어서 말해. 말 안 하면 내가 죽여 버릴 거야!”

싸움이라고는 전혀 할 줄 모르는 그였지만, 앞뒤 돌볼 틈도 없이 전진곤을 힘껏 짓눌렀다. 전진곤이 곧 죽을 듯 시뻘겋게 얼굴이 달아오르자 결국 월향이 가위를 내려놓았다.

“그만하세요. 그러다 숨 막혀 죽습니다.”

“형이 어쨌길래 그렇게 화가 난 거예요, 부인?”

자신이 저지른 일이면서 뻔뻔하게 묻다니! 대꾸도 하기 싫어진 월향은 몸을 돌려 의자에 앉기만 했다.

상처의 통증에 숨까지 막혀 죽을 지경이었던 전진곤이 헐떡거리며 내뱉었다.

“내, 내가 말할게…….”

“어서 말해!”

양보전이 다시 힘을 주자 전진곤이 소리쳤다.

“이렇게, 누르는데 어, 어떻게 말을 하라는 거야.”

그제야 양보전의 손에서 힘이 살짝 빠져나갔다.

“이제 말해.”

“우리가 상의했던 일을 향이가 거절한 거야. 가위로 내 손을 찌르기까지 했다니까. 봐, 어쨌든 난 하나도 안 건드렸어.”

양보전은 어리둥절해 하더니 천천히 전진곤을 놓아주었다. 이내 그가 쭈뼛거리며 월향을 바라보았다.

“부인, 날 때려요. 이 일은 제, 제가 형한테 해 달라고 한 거예요.”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월향은 그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욕을 퍼부었다.

“이런 바보 천치! 아무리 그래도 정도가 있지! 이런 짓거리를 승낙했다니, 내가 어쩌다 시집을 와서… 흑흑…….”

월향이 흐느껴 울면 양보전은 심장을 칼로 도려내는 듯 아팠다.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지만 그녀가 있는 힘껏 밀어내는 바람에 더는 다가가지 못했다. 그가 우물쭈물하다 말을 흘렸다.

“부인이 부끄러워할 건 알았지만, 형이… 형이 옷은 벗기지 않는다고 하길래…….”

양보전의 말은 월향을 더욱더 깊은 절망으로 빠트렸다. 이런 바보에게 시집을 왔으니 어찌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그녀는 구슬피 울 수밖에 없었다.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느낀 양보전이 몸을 돌려 전진곤의 옷깃을 끌어당겼다.

“우리 부인 옷을 벗긴 거야?”

바보가 이토록 화를 내니 놀랄 정도로 무서웠지만, 월향 앞에서 발뺌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전진곤이 시선을 피하며 웅얼거렸다.

“옷, 옷을 벗지 않고 어떻게…….”

“그래서 옷을 벗겼다고?”

양보전이 다시 전진곤을 넘어뜨리고 주먹을 마구 휘둘렀다.

“감히 우리 부인한테 그따위 짓을 해? 이런 망할 놈! 죽여 버릴 거야……!”

전진곤은 한쪽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돼지 멱따는 소리를 냈다.

“악, 내 눈! 내 눈을 멀게 할 셈이냐……!”

“멀면 멀라지! 아쉬우면 내 눈을 갖든가!”

양보전은 분노가 담긴 주먹을 쉬지 않고 휘둘렀다.

한참 동안 때리는 소리가 나니 월향의 마음에도 걱정이 일었다. 야수로 변한 듯한 양보전의 모습도 낯설었다. 정말 전진곤을 때려죽이기라도 한다면 상황이 더욱 곤란해진다. 어쩔 수 없이, 월향이 그를 잡아끌었다.

“그만 해요. 정말 때려죽일 셈이에요?”

“그럼 나도 죽으면 돼요, 죽어서 대가를 치르면 그만이에요!”

어찌나 완강하게 버티는지, 도무지 끌어낼 수가 없었다. 결국 월향은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당신이 죽으면 난 어떡하라고요? 재혼이라도 하란 말이에요?”

양보전의 손이 우뚝 멈췄다. 거친 숨을 몰아쉬던 그가 충혈된 눈으로 전진곤을 노려보더니 천천히 손을 떨궜다.

* * *

사장풍의 거처는 이장의 집보다 멀었지만, 월향의 소식을 듣자마자 말을 타고 달려온 터라 이장과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몸종에게서 상황을 전해 들은 이장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려 있었다. 그는 전진곤을 보자마자 발길질을 퍼부으며 악을 썼다.

“이런 후레자식을 봤나! 기어이 아비를 화병으로 죽일 작정이냐? 향이에게까지 그딴 짓을 하려 들어? 다들 향이를 보살이라고 떠받드는데 네가 어찌… 오늘 널 죽이고 나도 죽어야겠다, 이 금수만도 못한 놈아!”

사나운 발길질 앞에서 전진곤은 울부짖으며 매달렸다.

“아버지, 용서해 주세요. 전 손도 다쳤다고요! 아, 아버지!”

고작 가위에 찔려 상처가 난 걸로 어찌 다쳤다고 운단 말인가. 이장은 오늘 일이 밖으로 전해질까 두려웠다. 소문이 나면 대체 무슨 낯으로 마을 사람들을 보겠는가? 평생 쌓아온 명예가 한순간에 무너질 게 뻔했다.

전진곤은 아예 머리를 감싸 쥐고 방 안에서 요리조리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버지, 때리지 마시고 말로 하세요. 이번 한 번만 봐주세요. 다음엔 절대로…….”

이장은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이 망할 놈, 다음? 다음이라니! 거기 서, 거기 서란 말이다! 거기 서라고!”

방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한스럽다는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다들 이 방탕아를 흠씬 두들겨 패야만 화가 가라앉을 듯했다.

양보전은 도망치는 전진곤을 필사적으로 막으며 소리쳤다.

“외숙부, 여기요. 어딜 도망가는 거야! 하, 또 도망가시겠다. 외숙부, 어서요.”

나이가 어렸던 몸종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옆에 선 할멈이 눈을 부릅뜨자 몸종이 곧장 고개를 숙였다.

나이가 지긋했던 이장은 결국은 힘이 빠져 멈춰 섰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손가락질만 한참을 해 대다 겨우 입을 열었다.

“두고 봐. 절대 이대로 안 넘어간다.”

이장이 월향에게 다가가 사죄했다. 그때 뒤에서 전진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사 장군님, 용서해 주십시오. 아버지, 살려 주세요!”

어느새 사장풍이 검을 뽑아 전진곤에게 겨누고 있었다. 비록 불효막심한 자식일지언정 그래도 혈육이 아닌가. 화들짝 놀란 이장이 서둘러 사장풍에게 예를 갖추고 사정했다.

“사 장군님, 노여움을 푸십시오. 백 번이고 죽어 마땅한 짓을 저질렀지만, 저를 봐서라도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오. 사 장군님……!”

“월향은 왕비께서 직접 혼수를 챙겨 찾아오실 만큼 아끼는 사람이오. 월향을 모욕하는 일은 곧 왕비에게 불경을 저지르는 일과 마찬가지네.”

사장풍이 손을 움직이자 날카로운 검날이 빛을 뿜어냈다. 그가 차디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왕비께 불경을 저지르는 자는 죽어 마땅하다!”

전진곤은 아예 바닥에 엎드려 통곡했다.

“아버지, 전 죽기 싫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아버지……!”

그가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얼굴로 두리번거리더니 월향에게 기어가 매달리다시피 애원했다.

“향이, 목숨만 살려 주시오. 내가 죽어 마땅한 금수라는 것 아오. 앞으로 눈앞에 얼씬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겠소. 제발, 제발 목숨만 살려 주시오…….”

그가 혐오스럽기 짝이 없어, 월향은 아예 몸을 틀어 시선을 돌려 버렸다. 사장풍이 전진곤의 손 위로 칼을 겨누었다.

“아직도 손을 대려 하다니, 정녕 손이 잘려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어쩔 수 없이 이장이 월향에게 허리를 숙이며 사정했다.

“향이, 못난 아들놈 때문에 자넬 볼 면목이 없네. 염치없는 부탁인 줄 아네만, 내 얼굴을 봐서라도 한 번만 살려 주게. 내가 저놈을 멀리 보내 다시는 눈에 띄지 않게 하겠네. 향이, 부탁일세. 저 애의 목숨이 자네의 말 한마디에 달렸네…….”

월향은 속으로 긴 탄식을 흘렸다. 이장은 늘 그녀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게다가 전진곤도 그녀에게 손을 대진 못했으니 목숨까지 뺏을 수는 없었다. 그녀가 마침내 전진곤을 바라보았다. 뛰어다닌 탓에 상처가 벌어졌는지 온몸이 피로 울긋불긋했다. 그의 비참한 꼴에 결국 월향이 고개를 저었다.

“죽이진 마십시오.”

월향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관아로 데려가 관리 나리께 벌을 내려 달라 청하겠습니다.”

사장풍이 단호하게 외쳤다.

“안 되오. 저자가 그대를 모욕했으니 죽어 마땅하오!”

“그렇다고 정, 정말 한 건 아니니까요…….”

“그런 생각을 가진 자체로 용서할 수 없는 일이오. 왕비 마마의 사람에게 손을 대는 자가 있거든 곧장 그자의 목을 치겠소!”

그간 쌓인 게 많았던 사장풍은 마침내 분출구를 찾은 듯했다. 그는 백천범의 모든 게 사랑스러웠다. 그녀와 가까운 사람이 모욕을 당했다면, 그가 반드시 그 수치를 갚아야 했다. 오늘 피를 봐야만 가슴을 억누르는 이 답답함이 해소될 것만 같았다.

사장풍이 완강하게 나오니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월향도 이런 상황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목숨을 잃는 건 이치에 맞지 않으니,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전진곤이 저지른 짓은 법률로 따지면 추행과 저속한 행위에 속했다. 동월국의 법도에도 죽음으로 다스리는 죄는 아니건만, 사 장군은 너무나 극단적으로 몰아가지 않는가.

사장풍의 칼날은 여전히 전진곤을 향해 있었다. 그 와중에도 전진곤은 더럽게 재수가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몰래 정을 나누고 싶었던 게 뭐 그리 잘못이라고, 목까지 베려 한단 말인가.

이장 역시 머리가 지끈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살면서 수많은 난관을 만났지만, 이렇게 운수가 사나웠던 적이 있을까. 아들이 눈앞에서 죽게 생겼는데, 정작 그는 무엇도 할 수가 없다.

사장풍이 전진곤을 싸늘하게 내려다보았다.

“남길 말이 있거든 어서 말하거라. 듣고 나서 황천길로 고이 보내주마.”

전진곤이 벌벌 떨며 고개를 내저었다.

“저, 전… 죽기… 싫습니다.”

“그건 네 마음대로 정할 수 없다.”

사장풍의 인내심은 이제 바닥이 난 터였다. 칼을 들어 전진곤을 내려치려는 순간, 월향이 소리쳤다.

“잠시만요!”

사장풍이 미간을 찌푸리며 돌아보았다.

“뭔가 할 말이 있소?”

“전 왕비 마마의 사람이니, 이 일은 왕비 마마께 해결해 달라고 청하겠습니다.”

말끝마다 왕비를 언급하고 있으니, 그를 멈출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월향은 백천범을 떠올리며 그를 제지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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