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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339)화 (338/1,192)

제339화

사장풍은 쓴웃음을 짓는 수밖에 없었다. 취선루의 사람들을 어찌 말로 당해낼까.

사앵앵의 주변은 사내들의 떠들썩한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사씨 아가씨,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더운 날 시원한 차를 가져다주시다니요.”

“아가씨, 앞으로 이런 일은 점원만 보내십시오. 이렇게 볕이 뜨거운데 아가씨를 고생시킬 순 없습니다. 저희가 너무 송구합니다.”

“주인 어르신께서는 정말 정이 넘치는 분이십니다. 보전이가 장가를 가던 날에도 동전 한 닢 안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맛있는 음식을 한가득 내어 주시지 않았습니까. 역시 부전여전이라고, 아가씨께서도 아버지를 닮아 마음이 아주 따뜻하십니다!”

사앵앵은 다른 이들과 목이 터지게 싸우는 일은 자신 있었지만, 칭찬 앞에서는 수줍음을 이길 수 없었다. 그녀의 얼굴은 어느새 빨갛게 물들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부끄러움이 담겼다. 그녀는 차를 대접하며 그들의 말에 전부 대답해 주었다.

“시원한 차는 더위를 식히는 데 좋으니 많이 드십시오. 땀을 많이 흘리셨으니 수분을 보충해야 합니다……. 괜찮습니다. 마을 밖으로 나가는 일도 아닌걸요. 조금만 걸으면 됩니다. 아버지께서 매일 가져다주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나라를 위해 애쓰시니 저도 할 도리를 해야지요. 혹여 끼니를 거르셨을 땐 돈은 걱정하지 마시고 취선루로 오십시오.”

“아이고, 주인 어르신께서 저희에게 그리 예를 갖추시다니요. 아가씨도 정말 호탕하십니다. 아가씨께 누가 장가를 갈진 몰라도 엄청난 행운아가 아닙니까!”

사앵앵이 얼굴을 붉히며 나무 아래를 힐끔거렸다. 사장풍은 손에 찻잔을 들고 서서 은근슬쩍 대화를 듣는 듯했다. 그러나 그늘에 가려진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일부러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시집은 못 갈 듯하니 희망도 품지 않아야지요. 아버지께서 내치지만 않으신다면 집에서 지내면 됩니다.”

사앵앵과 사장풍의 일을 알고 있던 몇몇 이들은 일부러 목청을 높였다.

“아가씨, 걱정하지 마십시오. 초왕야께서 직접 중매를 서 주셨으니 아무 문제 없습니다. 저희 장군님께서 부끄러움이 많으셔서 그렇지, 사실 아가씨를 볼 때마다 속으로는 기뻐하신다니까요.”

다들 사장풍을 바라보며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한순간에 놀림거리가 된 사장풍은 얼굴을 구겼다. 무려 장군인 그가 수하들에게 비웃음을 사다니! 이래서야 앞으로 저들을 어찌 이끌겠는가?

“되었다! 다 마셨으면 어서 집합하거라!”

그는 찻잔을 점원에게 넘기고 사앵앵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말했다.

“차 고맙습니다. 이제 훈련을 해야 하니 그만 돌아가십시오.”

사앵앵이 도끼눈을 뜨더니 들으란 듯 중얼거렸다.

“정말 별꼴이야!”

그녀는 점원을 불러 찻잔과 물통을 챙기고 발걸음을 옮겼다.

사내들을 집결시킨 사장풍은 서둘러 지시 사항을 전달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사앵앵을 곁눈질했다. 아리따운 그녀의 모습이 시야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 * *

묵용감이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바람에 백천범은 저녁 시간은 한없이 무료해졌다. 결국 그녀는 기홍과 녹하, 월규를 불러 마조를 했다.

한 판도 끝나기 전에 영구가 들어와 기홍 옆에 섰다. 그는 평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건조하게 말했다.

“잠시 밖으로 나오십시오.”

말을 마친 그는 곧바로 발걸음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영구의 행동에 깜짝 놀란 이들에게서 곧 웃음이 터져나왔다. 녹하는 아예 탁자에 엎드려 한바탕 웃기 시작했다.

“영구 무사님은 정말 재미있는 분이라니까. 만나자고 약속을 잡을 때마저 정색한 얼굴이라니. 단둘이 있을 때도 저런 표정이셔? 입을 맞출 때도 그래?”

기홍의 얼굴이 어찌나 빨갛게 물들었는지, 손만 대도 톡 터질 듯했다. 녹하의 말은 무시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이번엔 백천범이 그녀를 붙잡고 활짝 웃는 얼굴로 물었다.

“정말 입을 맞출 때도 저런 얼굴이에요?”

“왕비 마마!”

기홍의 눈이 커지더니 어쩔 줄 몰라 했다.

“어찌 그런 걸 물어보십니까?”

그녀가 고개를 돌려 녹하를 혼냈다.

“마마에게 나쁜 물 들이지 마. 그러다 왕야께 혼쭐이 날 테니까.”

녹하가 코웃음을 치더니 곧 히죽 웃었다.

“내가 물들였다고? 왕비 마마께서는 출가한 몸이지만, 난 아니라고. 마마께서 나보다 아는 게 훨씬 더 많으실걸?”

녹하와 말다툼만 하면 기홍은 그녀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다들 기홍을 보며 히죽거리고 있으니, 결국 그녀는 씩씩거리며 밖으로 달려 나갔다.

막상 나오긴 했건만… 영구가 어디에서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기홍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으니 발걸음을 돌리려는데, 옆에서 팔이 불쑥 나타나 그녀를 잡아끌었다. 그녀는 빙그르르 돌며 나무 뒤로 끌려갔다.

커다란 나무 주변에는 수풀이 높게 우거져 있어 정원의 등불 빛조차 새어들지 않았다. 이런 곳에 있으니 다른 이들이 어찌 알까. 기홍의 시야엔 겨울밤 별처럼 빛나는 그의 눈망울만 떠올랐다. 고요한 어둠 속에서 그가 올곧은 시선을 보내더니, 이내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그녀가 서둘러 뒤로 물러서자 영구는 손을 거두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반짝이는 그의 눈망울에 촘촘하고 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이윽고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왕야께서 강북에 다녀오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곧 떠나야 하기에 잠시 인사를 하러 왔습니다.”

겁에 질린 기홍은 자신도 모르게 그의 옷소매를 꼭 붙들었다.

“강북이라면, 위험하지 않습니까? 부디 조심하셔야 합니다.”

처음으로 그녀가 가까이 다가온 순간, 그의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 올랐다. 그가 가볍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

“최근 강북은 아무도 관여하지 않는 곳이 되었습니다. 북방인과 현지 세력, 떠돌이까지 뒤섞여 있지요. 그중 누구도 저를 해할 순 없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임무를 마치는 즉시 돌아오겠습니다.”

기홍은 그와 처음으로 떨어진다고 생각하니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영구는 그녀의 모든 처음이었다. 그녀가 어지러운 머릿속을 황급히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제, 제가 짐을 챙겨 드릴게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이미 다 챙겼습니다.”

그는 손에 힘을 주어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그저 떠나기 전… 그대를 보고 싶었습니다. 그대의 모습을 마음에 새겨 그곳에서 천천히 되새겨 보려 합니다.”

과감한 데다 냉철하기까지 한 예전의 그였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곁에 그녀가 있다. 하늘 위를 훨훨 날던 독수리가 밧줄에 묶인 것처럼 아무리 높게 날아도 줄곧 애가 타고 마음이 쓰였다. 그는 영영 헤어 나오지 못하는 늪에 빠진 듯, 은애하는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맑은 향이 훅 끼치니 그제야 기홍은 그의 품에 안겨 있음을 깨달았다. 금세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영구가 이렇게 다정한 행동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어둡고 고요한 밤중에 그녀의 심장 소리만이 요란하게 울리는 듯했다.

그녀는 그의 품 안을 벗어나려 꼼지락거렸지만, 그의 손은 그녀의 허리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그의 반짝이는 눈이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알고 싶지 않습니까?”

“무엇을요?”

“입을 맞출 때도 정색을 하는지 말입니다.”

기홍은 부끄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밖에서 다 듣고 있었다니! 그녀가 어쩔 줄 몰라 말을 더듬거렸다.

“그, 그저 농, 농담을 했을 뿐입니다. 신, 신경 쓰지…….”

그의 입술이 어느새 숨결이 느껴질 만큼 가까이 다가왔다. 어두운 밤에도 그는 곱고 붉은 입술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녀가 입술을 움직일 때마다 엿보이는 자그마한 혀까지도…….

그녀의 입술을 순식간에 머금은 그가 속으로 숨을 들이켰다. 역시… 그의 상상보다 더 감미롭고 아찔했다!

두 사람 모두 처음이니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녀의 이가 그의 입술에 닿았고, 달콤한 향이 입 안을 가득 메웠다. 그녀가 밀어내려 할 수록 그는 그녀를 뒤쫓았다. 불꽃이 얼굴 앞에서 타오르는 듯 뜨거운 숨결이 기홍의 얼굴을 스쳤다.

기홍은 물에 빠진 사람처럼 그의 옷깃을 꽉 붙들었다.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나는 듯 어지러우면서도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곤 했다. 한편으로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달콤한 기분이 솟아나 그녀의 혀끝을 간질였다. 자신을 향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그의 존재가 두려우면서도 찬란했다.

마침내 그가 그녀를 놓아주었다. 순간적으로 힘이 빠져 휘청거리는 그녀를 그가 곧장 부축했다.

“조심하십시오.”

그녀는 붉게 물든 얼굴을 차마 들어 올릴 수도, 무어라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영구가 작게 헛기침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먼저, 들어가십시오. 들어가는 걸 보고 돌아가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기홍이 몇 발짝 걷다가 멈춰 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붉게 물든 얼굴과 달리, 두 눈에 미련과 근심이 가득했다.

“…부디 몸조심하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강북에서 맛있는 걸 가져올 테니 기다리고 계십시오.”

기홍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녀가 방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영구는 묵용감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초왕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더니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늦었구나.”

영구가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말했다.

“소인, 잠시 일이 있어 조금 늦었습니다.”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가동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영구 너, 입술이 다 찢어졌어, 피가 난다고!”

영구의 손이 입술을 완전히 덮자 묵용감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무엇 하러 가리느냐. 안 그래도 네게 중요한 일이 있을 것 같아 재촉하지 않았다. 어떠냐, 제법 좋지 않더냐?”

가동이 놀렸다면 무시하면 그만이지만, 초왕이 이렇게나 흥미로워하니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왕야께 아룁니다. 예, 그러하옵니다.”

“내가 뭐라고 했어. 여인의 입술이 가장 달다니깐! 내 말은 믿지도 않더니.”

가동이 활짝 웃으며 물었다.

“이젠 내 말 이해하겠지?”

“형님 말이 맞습니다.”

그러나 영구는 평소처럼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며칠간 자리를 비워야 하니 형님께서는 왕야 곁을 잘 지키고 계십시오. 날마다 녹하 아가씨만 바라보시면 안 됩니다. 무슨 일이 생겼다간 가만두지 않겠습니다!”

“하, 왕야 들으셨지요? 영구가 소인을 위협합니다.”

가동은 여전히 시시덕거리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모르겠단 말이야. 영구 너도 일급 호위 무사고, 나도 일급 호위 무사인데… 왜 네가 더 품급이 더 높은 느낌이지?”

영구가 그를 힐끗 보더니 건성으로 답했다.

“형님이 모자라니까요.”

“넌 어떻게 그런 말을…….”

“되었다.”

기분이 좋았던 묵용감은 두 호위 무사의 소란에도 성을 내지 않았다. 그가 책상을 가볍게 책상을 두드렸다.

“이번에 가면 일이 어떻게 되든 약속한 날짜에 반드시 돌아오거라. 한시도 지체해서는 안 된다. 알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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