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5화
방 안은 어두컴컴했다. 켜켜이 드리워진 장막이 황후의 영원한 잠을 지켜 주고 있었다.
발판에 앉아 있는 황제는 하얗게 질린 얼굴에 흐리멍덩한 눈을 하고 있었다. 수척해진 두 볼과 검푸른 턱, 초췌한 몰골이 황후를 뒤따르기라도 할 듯 위태로웠다.
묵용감이 조용히 목소리를 내었다.
“폐하.”
황제가 느릿하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흐릿한 눈망울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그는 낯선 사람을 마주한 듯 멍하니 묵용감을 응시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가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왔구나. 네 황수가… 갔다.”
소식을 듣고 왔음에도 황제의 입으로 들으니 묵용감은 칼로 가슴을 베어내는 듯했다.
“폐하, 부디 비통함을 거두시고… 옥체를 보존하시옵소서.”
황제가 힘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불빛은 희미했지만 그의 두 눈에 넘쳐흐르는 눈물이 선명하게 반짝였다.
묵용감은 가만히 그를 지켜보았다. 그간 황제가 황후를 어떻게 대했든, 이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진심으로 슬퍼하고 있었다. 황후가 떠나자 그의 혼도 함께 떠나 버린 건 아닐까. 지금의 그는 천자의 자리에 오른 황제가 아닌, 사랑하는 아내를 잃어 실의에 빠진 사내에 불과했다.
“황후가 생전에 널 신임했으니 황후가 가는 길은 네가 도맡거라. 다른 이는 믿지 못하겠다.”
“예. 이 아우, 폐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입관은 사흘 후에 하거라, 황후 곁을… 좀 더 지키고 싶다.”
“…예.”
“며칠간 궁에 지내면서 모든 일을 처리하거라. 짐에게 물을 필요는 없다.”
“예.”
황제가 힘겹게 손을 내저었다.
“그만 나가 보거라.”
묵용감은 허리를 굽힌 뒤 밖으로 향했다. 등 뒤에서 문이 소리 없이 닫히고 있었다. 그는 문득 몸을 돌려세우고 좁은 틈으로 황제를 바라보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황제가 비틀거리며 침대로 다가가고 있었다.
이 세상에 방도가 없는 일이 있다면 바로 생사의 이별일 터. 설령 황제라 해도 생사의 이별 앞에서 무력한 인간일 뿐이다.
희미하게 탄식을 내뱉은 묵용감이 결심을 굳혔다. 황후의 장례를 마친 후 백천범을 데려오겠노라고. 그의 미래에 아무리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라도 그녀를 그의 곁에, 늘 그의 시야가 닿는 곳에 두겠다고 다짐했다.
* * *
새해까지 나흘이 남은 날 아침, 임안성 백성들은 어슴푸레한 새벽녘에 별안간 울린 조종弔鐘 소리를 들으며 깨어났다. 길게 이어지는 종소리가 한 번 울리자 곧 또 한 번 긴 종소리가 울렸다.
백성들은 대경실색하며 뛰쳐나와 서로에게 물었다.
“누가 죽은 거야? 대체 누가 죽은 거냐고?”
마차에 타고 있던 백천범도 근처 산에서 들려 오는 조종 소리에 깜짝 놀라 월규와 월향을 바라보았다.
월규가 얼른 고개를 내밀고 마부에게 물었다.
“누가 돌아가신 거예요?”
마부도 놀라긴 마찬가지인지 고개를 주억거렸다.
“폐하께서는 혈기 왕성할 때이시니 분명…….”
사찰에서 조종을 울렸다면 황제이거나 황후의 일이 분명했다. 황후의 병약한 모습이 떠올라, 백천범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황후 마마야.”
월규와 월향이 흠칫 놀랐다. 황후가 죽었다니…….
“세워 주세요!”
백천범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그녀의 두 눈에서 눈물이 넘쳐흐르며 두 볼을 적셨다.
마부는 그녀가 의아하기만 한 듯 고개를 돌렸다.
“아가씨, 어찌…….”
백천범이 아예 마차에서 펄쩍 뛰어내리더니 임안성을 향해 절을 올렸다. 고개를 든 그녀의 얼굴은 온통 눈물로 젖어 있었다.
황후는 정말 상냥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그녀를 보면 늘 활짝 웃으며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과실즙을 좋아하는 그녀를 위해 특별히 과실즙을 보내 주지 않았던가. 백천범도 황후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랐다. 그렇게 좋은 사람이 어찌… 어찌하여 이리도 빨리 세상을 떠났단 말인가?
그녀는 깊은 슬픔에 목 놓아 울며 연신 절을 올렸다. 월규가 눈시울을 붉히며 그녀를 잡아끌었다.
“마마, 아직 임안성 경계입니다. 갈 길이 멀어요.”
백천범은 흐느낌을 주체하지 못하고 월규의 손에 이끌려 마차로 돌아왔다. 월규의 한쪽 팔을 감싸 안은 그녀는 고개를 묻은 채 끊임없이 통곡했다.
한참이 지나도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마부가 조심스레 물었다.
“대체 누가 돌아가셨길래 아가씨가 저리도 슬프게 운답니까?”
월향이 재빨리 말을 지어냈다. 혹여 정체를 알아차리기라도 하면 안 된다.
“제 동생이 마음씨가 워낙 착해서요. 개미 한 마리를 밟아 죽여도 한나절을 슬퍼한답니다. 높으신 분이 돌아가셨으니 더 서러워하는 거예요. 어서 가요. 다음 마을에 도착해서 밥을 먹어야지요.”
마부가 고개를 내저으며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천하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이라 해도 죽음은 피할 수 없는 법이지요.”
이른 아침의 하늘은 어슴푸레한 빛이 스며 뿌연 회색을 띠었다. 길 양쪽으로는 우뚝 솟은 산뿐이었다. 맑은 방울 소리와 마차 바퀴가 지면을 굴러가는 소리가 유유히 울려 퍼져, 제법 운치가 있었다.
그러나 백천범은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월규의 소매가 흠뻑 젖어 축 늘어질 정도였다. 월규가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조용히 위로했다.
“울지 마십시오. 죽음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마마께서는 병을 오래 앓으셨으니, 고통에서 벗어나 편안함을 찾으셨을지도 모릅니다.”
백천범은 황후의 죽음 때문에 울기 시작했지만, 나중엔 자신의 처지가 서러워 눈물이 쏟아졌다.
황후와는 죽음을 통한 이별이지만 묵용감과의 이별은 다르다. 두 사람은 살아 있음에도 생이별을 하지 않았던가. 그간 그녀는 머지않아 사라질 고통으로, 언젠간 잊혀질 일로 여기며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임안성과 멀어지는 이 순간 생이별의 고통이 절절히 끓어올랐다.
결심을 내린 이후, 그녀는 늘 새로운 삶을 바라고 고민하면서 도망칠 방법을 준비해 왔다. 다른 생각이 끼어들지 않도록 대부분의 시간과 마음을 탈출 준비에 쏟았다. 막상 기다렸던 순간을 맞이하니 그녀의 마음에 거센 파도가 일었다. 그간 억누르고 있던 감정이 한순간에 그녀를 집어삼켰다. 감정의 파도는 차라리 죽음을 바랄 정도로 고통을 안겨 주었다.
그녀는 이제 그를 볼 수 없다. 그의 삶에서 그녀의 존재가 깨끗하게 지워지는 순간이자 그와 다시 낯선 타인이 되는 순간이다.
그녀는 묵용감을 사랑했지만 사랑 때문에 자신을 잃을 수 없었다. 수원상처럼 저택 한구석에서 침울하게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반드시 떠나야만 했다.
이별은 끈을 길게 늘어뜨리는 듯했다. 한쪽 끝은 그녀의 손에, 한쪽 끝은 초왕의 저택에 묶인 채로. 마차에 이끌려 점점 더 길게 늘어나는 끈을 느낄 수 있었다. 언젠가 어느 낯선 곳에서, 이 끈은 처음부터 없던 것처럼 끊어지리라.
한동안 울고 아파하고 나면 누구나 조금씩 성장한다. 유모가 떠났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럴 테지. 그녀는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결연한 눈빛으로 밖을 응시했다.
떠오르는 해가 산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어두운 구름이 걷히고 금빛 줄기가 온 대지에 쏟아져 내렸다.
* * *
황후의 발인 날, 모든 이들이 소복을 갖춰 입었다. 집마다 흰 천을 내걸었고, 하나같이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새해를 앞둔 명절의 즐거움마저 묽게 희석되었다.
황후의 관은 장생전長生殿에 놓였다. 텅 빈 관이라는 사실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높다란 문 위에는 상을 알리는 흰 천과 흰색 등불이 걸렸다. 조문을 위해 설치된 천막은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조정 대신들과 비빈들, 태감, 궁녀 등등 모두가 한마음으로 황후의 명복을 빌었다.
사내들은 줄곧 엄숙한 표정이었고, 여인들은 고운 자태로 눈물만 흘렸다. 그간 황제의 총애를 독차지한 황후를 질투했었다 한들, 인생을 마감한 그녀 앞에서는 비빈들마저도 슬픔을 이기지 못했다.
황후의 죽음을 기다렸던 백 귀비도 무릎을 꿇고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황후가 죽었으니 그녀가 원하는 대로 되었다. 그런데도 생각했던 것만큼 후련하지 않았다.
묵용감은 한쪽에 우두커니 서서 자리를 지켰다. 하룻밤을 꼬박 지새운 탓에 눈빛도 흐릿하고 얼굴도 수척했지만, 발인이 있을 이레까지는 쉴 틈이 없다. 그는 황제를 대신해 크고 작은 일을 처리해야 했다.
각종 제사 음식이 차려지자 소태감들이 계속 향과 초를 갈았고, 빈소 뒤편에서 스님들이 경을 외웠다. 적동赤銅 그릇에는 끊임없이 지전이 타올랐다. 검붉은 불길이 황금빛 지전을 삼키고 까만 재를 토해냈다. 지전이 타는 냄새, 향 냄새, 여러 사람의 곡소리가 한데 섞이면서 묵용감의 마음은 더욱더 가라앉았다.
그는 밖으로 나가 잠시 바람을 쐬었다. 힐끔 곁눈질을 하니 누군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안색이 좋지 않구나. 너무 피곤하거든 내 궁으로 가서 쉬려무나.”
묵용감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태비 마마야말로 자리를 지키실 필요 없습니다. 그만 돌아가 쉬십시오.”
서 태비가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 밑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못 본 사이에 얼굴도 많이 수척해졌고, 그녀와의 사이도 크게 벌어져 버렸다.
“감아, 지난번 일로 날 원망하고 있겠지. 사실…….”
“그 일은 말씀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묵용감이 앞만 바라보며 쌀쌀맞게 말했다.
“지금은 그 일을 이야기할 때도 아닙니다.”
단호한 그의 태도에 서 태비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왕비는 어찌하여 오지 않은 게야?”
“오면, 어떻게 해 보시려고요?”
“감아!”
“…일이 있어 그만 가 보겠습니다.”
그녀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묵용감이 그대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서 태비가 깊은 탄식을 흘렸다. 혹 그녀가 세상을 떠난다면 그가 저리 슬퍼하며 그녀의 가는 길을 배웅할까. 확신이 서지 않았다.
영 마마는 그가 떠난 뒤에야 나무 뒤에서 나와 서 태비를 부축했다.
“태비 마마, 그만 돌아가 쉬시어요. 오래 계시면 몸이 상하십니다. 저녁에 다시 오십시오.”
서 태비가 슬픔이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영아, 애가가 잘못한 것이냐? 애가는 정말 저 애를 위하는 마음이었거늘!”
“태비 마마, 왕야의 일에는 관여하시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후손들은 저마다의 복을 갖고 있다 하지 않습니까. 왕야께서 알아서 하시도록 내버려 두시지요.”
“요즘 황제와 사이가 좋지 못하다고 들었다. 연유를 묻고 싶었는데 애가에게 눈길도 주지 않더구나…….”
“태비 마마, 부디 마음 놓으십시오. 폐하께서는 여전히 왕야를 신임하십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황후 마마의 장례를 왕야께 맡기셨겠습니까?”
“황제도 걱정이구나. 애가의 곁에서 몇 년 지냈으니 정이 많은 성격임을 애가도 안다. 갑자기 황후가 떠났으니 충격이 클 게다. 봉명궁에 틀어박혀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던데, 끼니는 제대로 드시는지 모르겠구나. 곧 새해인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황후도 참 박복하지…….”
“참으로 그렇습니다.”
영 마마도 안타까운 듯 눈썹을 늘어뜨렸다.
“황후 마마처럼 현명하고 올곧은 분이 참 안 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