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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265)화 (264/1,192)

제265화

겉으로 보기에 두 형제는 우애가 참으로 깊었다. 그러나 황제는 묵용감의 모든 행동에 일일이 의미를 부여했다. 그렇다면 묵용감도 황제가 자신에게 쉽게 손쓸 수 없도록 방안을 마련해 두어야 했다. 그 또한 이런 식으로 서로를 견제하는 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평온할 땐 다툼 없이 지내다가 모종의 일로 균형이 깨지면, 바닷물에 휩쓸리듯 그가 황제를 파묻거나, 황제가 그를 넘어뜨려 뿌리를 뽑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러므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중재자가 필요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황후였다.

그동안 황후는 누구보다 뛰어난 중재자였다. 그러나 황제와 황후의 사이가 어긋났으니 지금의 균형은 얼마 가지 못할 터. 황제의 마음은 그리 강인하지 못했다. 그의 곁에서 그를 이끌어 줄 사람이 필요하지만, 그 사람이 백 귀비가 된다면……. 묵용감은 훗날의 조정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간신을 몰아내고 숨어 있는 모든 폐단을 없애, 지금처럼 평온한 날들을 이어 갈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황제는 그에게 맞서려 하고 있다. 수많은 시간을 참고 견디던 황제가 마침내 초왕에게 칼을 겨누려 하는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그는 가슴이 아려 왔다. 그러나 한탄만 할 수는 없었다. 그게 바로 황제의 숙명이었다.

황실 종친은 어려서부터 무정한 성격으로 자라야 했다. 황제의 권력에 위협을 가하는 이들은 그 누구라도 목숨을 구걸할 수 없도록. 군주가 되기 위해서 고독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이었다. 어느 시대든 형제가 서로를 배척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 증거로 선황의 대에서는 나이가 어렸던 예왕만 살아남았다. 지금의 황제에게는 그와 진왕이 있었다. 총명한 진왕은 자신의 재능을 능숙히 숨기고 한량을 자처했다. 하지만 묵용감, 그는…….

묵용감은 주홍색 궁 문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가 곧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묵용감이 남서방에 도착하자 입구에 서 있던 고승해가 미소를 지으며 예를 갖췄다.

“왕야를 뵈옵니다.”

묵용감은 짧게 대답한 뒤,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하지만 고승해가 슬쩍 몸을 틀며 그의 앞을 막아섰다.

“왕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폐하께서 장 대인, 황 대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계십니다. 소인이 들어가 여쭙겠습니다.”

묵용감은 그를 한번 바라보더니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부터 그가 남서방에 들 때 허락을 받았단 말인가……. 묵용감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폭풍전야였다. 그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것들이 바뀌고 말았다.

밖에서 한참을 서 있었지만 고승해는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기분에 그는 뒷짐을 지고 주변을 서성였다. 그때, 그는 한 소태감이 안에서 자신을 감시하는 걸 알아차렸다. 그는 무슨 상황인지 단번에 깨달았다. 황제가 그에게 기선 제압을 하려는 것이었다.

참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유치한 행동을 하다니, 황제답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무릇 붉은빛을 가까이하면 붉게, 검은빛을 가까이하면 검게 변하는 법이다. 지금 황제의 곁을 지키는 이가 누구던가. 백 귀비가 황제의 내면에 있던 어둠을 수면 위로 끌어내는 데 성공한 모양이었다.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척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승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야, 폐하께서 안으로 들라 하십니다.”

푸대접 좀 당했다고 그가 언짢아하겠는가. 묵용감은 속으로 황제를 비웃으며 태연히 안으로 들어섰다.

대리사경 장기생과 형부 상서 황중원이 황제의 양옆에 서 있었다. 황제가 고개를 들어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봐 온 황제였지만, 어딘가 낯선 눈빛이었다.

그가 정중히 예를 갖췄다.

“폐하께서 이 아우를 급하게 찾으시다니,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황제는 묵용감에게 앉으라고 청하지도 않고 내버려 두었다. 내내 종잡을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던 황제가 한참이 지나서야 황중원에게 손짓했다.

“황 대인이 말해 보거라.”

형부 상서 황중원이 두 손을 맞잡고 명을 받들었다. 자그마한 두 눈에 총기가 돌았지만 태도는 매우 공손했다.

“폐하께서 왕야를 부르신 것은 예왕의 사건 때문입니다. 예왕이 참혹하게 살해된 후 폐하께서 소관과 장 대인에게 이번 사건을 낱낱이 조사하라 명하셨습니다. 소관과 장 대인은 한 치 소홀함도 없이 다방면으로 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실종 전, 궁 안에서 초왕비와 마찰을 빚었던 일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예왕의 모습입니다. 그 후로 예왕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황중원의 시선이 잠시 묵용감에게 머물다가 떨어졌다. 황중원이 낮은 목소리로 보고를 이어갔다.

“그 후 초왕께서 예왕의 저택에 두 차례나 찾아갔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예왕비의 말에 따르면 살기가 등등하여 난입하셨다고 하더군요. 부하들을 시켜 후원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모습이 예왕과 불구대천의 원수 같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예왕이 아끼던 수석까지 가져가시고 돌려주지 않으셨다더군요.”

예상했던 대로 화살이 점점 저에게로 향하자 묵용감은 속으로 조소했다.

“왕야께서 왜 그리 급하게 예왕을 찾으셨는지 소관도 조사해 보았습니다. 서 태비의 탄일 밤, 예왕께서 술김에 초왕비께 해선 안 될 일을 하셨지요. 그때 황제 폐하와 서 태비, 귀비, 현비까지 모두 현장에 계셨던 것으로 압니다.

조정의 모든 이들이 초왕야께서 애처가이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초왕비께서 모욕을 당하셨으니 왕야께서도 크게 화가 나셨을 테고, 화를 참지 못해 예왕을 찾아가시는 것도 당연합니다. 술이 깬 예왕은 잘못을 알고 어딘가에 숨어 있었을 테지요. 그 후 예왕의 시신이 성호城壕(성 주위에 둘러 판 못)에서 발견되었고…….”

황중원이 말하는 동안 황제는 줄곧 묵용감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평온하기만 할 뿐 아무런 노기도 내비치지 않았다. 밖에서 푸대접을 받았으니 기분이 나빴을 테고, 거기에 죄상을 밝히면 그가 노발대발하리라 예상했던 황제였다.

감정이 격해진 묵용감이 대신들 앞에서 소란을 피우면, 설사 예왕을 살해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해도 천자에 대한 불경죄는 물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초왕은 지극히 평온한 모습으로 이 일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처럼 황중원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 순간, 황제는 갑작스레 무력감에 휩싸였다.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자는 위용이 넘쳤고 눈빛도 강인했다. 심지어 제왕의 모습마저 엿보였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자신에게 부족한 요소였다.

황제는 줄곧 그에게서 뿜어 나오는 위엄을 없애고 싶었다. 그를 자신의 발밑에 복종시키고 싶었다. 그가 두려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자신에게 애원하길 바랐다. 그러나 이 순간, 황제는 그 바람이 헛된 희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말을 마친 황중원이 초왕을 바라보며 물었다.

“왕야, 소관이 드린 말씀에 이의 있으십니까?”

“없네.”

묵용감이 평온하게 말했다.

“모두 사실이네. 서 태비의 탄일 밤, 예왕이 초왕비에게 법도에 어긋나는 짓을 했고 폐하와 서 태비, 귀비와 현비도 그 상황을 보았지. 본왕은 그 자리에 없었지만 그 사실을 듣고 화가 났네.

이는 인지상정이라 딱히 해명할 필요도 없군. 대인의 부인이 그런 모욕을 당했다면 대인도 그 금수만도 못한 자를 때려죽이고 싶지 않겠나?”

황중원은 조금 울컥했다. 무엇 하러 자신의 부인까지 들먹인단 말인가. 그가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그래서 예왕을 살해하셨지요. 원한을 풀기 위해!”

“황 대인, 그런 말은 증거를 가져온 뒤에 해야지!”

“왕야의 동기가 너무 명확합니다!”

“동기가 살해와 같은 말이던가?”

묵용감은 황중원을 바라보며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말했다.

“황 대인의 셋째 부인이 예전에 한 광대와 바람이 났다지. 나중에 그 광대는 아무도 모르게 실종되었다던데. 하면 본왕도 황 대인이 그자를 죽였다고 말해도 되는 것인가?”

“왕야……?”

황중원은 초왕이 이 자리에서 그런 일까지 들추고 나올 줄은 몰랐다. 결국 성을 참지 못한 황중원이 이를 악물었다.

“초왕야께서도 증거를 대십시오.”

“그게 바로 본왕이 황 대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라네.”

“되었다.”

황제가 불쑥 호통을 쳤다.

“다들 그만하거라.”

그가 묵용감을 바라보았다.

“서 태비의 탄일 밤, 초왕비의 곁을 지키지 않고 어딜 갔었느냐?”

묵용감은 치밀어오르는 경멸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으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폐하께서도 보시지 않았습니까? 황후 마마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무슨 말이길래 그 밤중에 한단 말이냐?”

묵용감이 오히려 황제에게 반문했다.

“폐하께서는 이상하게 여기지 않으십니까? 폐하와 서 태비, 귀비, 현비까지 모두 예왕이 초왕비를 모욕하는 광경을 목격한 것도 모자라 저와 황후 마마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까지 보셨지요. 어찌 그리 교묘하게 마주쳤을까요?”

황제는 그의 얼굴에서 시선을 거두고 금색 벽돌을 바라보았다. 묵용감의 말로 인해 깊은 고민에 빠진 듯했다.

줄곧 침묵을 지키던 대리사경 장기생이 입을 열었다.

“폐하, 신도 몇 말씀 올리겠습니다.”

황제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말하거라.”

장기생이 목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이 사건은 소관과 황 대인이 함께 조사했습니다. 황 대인의 말은 모두 사실입니다. 왕야께서는 살해 동기가 명확합니다. 소관도 그간 왕야의 행보를 면밀하게 조사하였습니다. 그러나 별다른 점은 포착할 수 없었습니다.

손을 쓴 뒤에는 반드시 흔적이 남는다고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면, 예왕의 죽음과 왕야께서 아무 관련이 없다는 의미지요.”

황중원이 벌컥 성을 내었다.

“장 대인, 이는 명확한 범죄 은폐입니다.”

“황 대인, 소관은 대리사경입니다. 중요한 사건을 판결한 일이 수도 없이 많지요. 돌이켜 보아도 부끄러운 짓은 단 한 번도 한 적 없습니다. 하지만 형부는요?”

그가 코웃음을 치며 황중원을 응시했다.

“가혹한 형벌로 자백을 강요하여 허위 사건을 수도 없이 만들어 내지 않았습니까?”

“장 대인!”

황중원은 눈을 부릅뜨더니 황제를 향해 두 손을 맞잡았다.

“폐하, 소신 생각에…….”

황제가 손을 내저어 보였다.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말하지 말거라. 이번 일은 오래 끌 것 없다. 예왕비에게 잘 설명하고 알아서 처리하거라. 예왕은 친왕이자 짐의 황숙이다. 종실 체면과 관련된 일이니 흉하게 보여선 안 된다.”

그 말은 묵용감이 이번 사건의 혐의를 벗는다는 의미였다. 장기생과 황중원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알아들었을 것이다.

예왕을 죽인 자는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닐 터. 초왕이 아니라 해도 초왕처럼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 분명했다. 이 일이 조정 내부와 연관된 이상, 큰 혼란을 가져올 게 분명했다. 황제의 성격이라면 차라리 사건을 덮을지언정 남들에게 황실의 썩은 밑바닥을 보이진 않으려 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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