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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224)화 (223/1,192)

제224화

그가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려 가볍게 깨물었다.

“누가 경험이 많다는 것이오. 난 왕비와 입을 맞춘 일밖에 없소.”

“거짓말.”

백천범이 조금 성이 난 듯 말했다.

“기방에서 여인들을 끌어안으시는 걸 보니, 그런 곳에 많이 가 보신 것 같던데요.”

묵용감이 소리 없이 웃었다.

“딱 두 번 가 보았소. 하지만 다른 여인에게 입을 맞춘 적은 없소. 난 내 아내에게만 입을 맞추니까.”

그는 그녀를 거의 집어삼킬 기세로 이마를 맞대고 코를 비볐다. 누군가와 이토록 가깝게 붙은 적이 없어 백천범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어색함을 이기지 못하고 몸을 비틀며 발버둥 쳤다.

“왕야, 이러지 마세요. 덥단 말이에요. 숨을 쉴 수가 없어요.”

묵용감도 슬슬 걱정이 일었다. 자신의 몸이 더욱 뜨거워질 듯했다. 아니, 이미 어딘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겨울이라 두꺼운 옷을 입었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쥐구멍을 찾아야 했을지도 몰랐다. 그가 힘을 풀고 그녀의 손을 쓰다듬었다.

“이것 보시오. 이렇게 하니 손이 금방 따뜻해지지 않소.”

백천범이 천진하게 웃으며 까맣고 큰 눈동자로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답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묵용감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좋소. 허락하지. 앞으로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백천범은 소리를 지르며 뛰어나갔다. 그가 급히 손을 뻗어 보았지만 그저 허공을 스칠 뿐이었다. 그는 어쩔 도리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녹하의 일을 청하려고 입을 맞춘 그녀의 수작을 알고도, 그는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낫지 않은가. 최근 그녀는 살이 맞닿을 때도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다. 더욱이 지난번 기방에서의 일을 언급하는 걸 보니, 그녀도 조금은 그를 신경 쓰는 듯했다.

묵용감은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녹하의 일은 그도 홧김에 내린 명이었다. 녹하가 백천범을 위험한 곳으로 데려간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다만 결과적으로 이강의 계획을 막았기에 오히려 속 시원한 일이 되었다. 녹하가 아니었다면 이강을 제거할 기회가 언제 왔겠는가.

이강을 없앴으니 백여름의 한쪽 팔을 없앤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간 백여름이 이강을 보호해 주고 있었다는 사실은 묵용감도 다 알고 있었다. 대신, 백여름이 나서기 곤란한 일들은 전부 이강이 손을 썼다. 백여름은 청렴결백한 승상이었고, 이강은 악질 난봉꾼으로 소문이 나 있었기 때문이다.

묵용감은 두 사람의 협력 관계와 그들이 저지른 일들을 훤히 꿰고 있었다. 황제는 속일 수 있을진 몰라도 그에게는 어림도 없었다. 모든 잘못은 이강이 감당했지만, 그로써 얻는 이득 중 절반은 백여름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이번 녹하의 일은 공과 잘못이 나란히 있으니, 벌은 한 달 봉급을 제하는 것으로 그쳤다.

* * *

이강이 참살됐다는 소식에 임안성 백성들은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이 소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서 태비에게도 전해졌다.

다만 그녀가 들은 소문은 조금 달랐다. 초왕비가 친위병을 이끌고 거리에서 싸움을 벌였다고 했다. 대체 왜 그런 일을 벌였단 말인가?

서 태비의 얼굴이 단단히 굳었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이냐? 일품一品 왕비라는 사람이 싸움을 벌여 백성들의 비웃음을 사다니! 가문에 먹칠을 해도 유분수지.”

유모 영 씨가 그녀를 달랬다.

“노여움을 푸십시오. 왕비께서는 자유분방한 성격이니 조금 버릇이 없으시지 않습니까. 그래도 다 큰 아가씨인데 거리에서 싸움을 벌였다는 것은 근거 없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어찌 근거 없는 말일까!”

서 태비는 줄곧 백천범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난번에도 행실을 바르게 하지 않아 예왕과 초왕이 다투지 않았는가? 그녀가 또다시 이런 구설에 오르내리자 서 태비는 도무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애가가 보기에는 분명 사실이야. 안 되겠다. 초왕비를 불러 물어야겠어.”

영 씨가 입을 떼려는데 마침 황유도가 들어와 예를 갖췄다.

“태비 마마, 귀비께서 뵙기를 청하십니다.”

그제야 서 태비의 굳은 얼굴에 환한 웃음이 떠올랐다.

“고맙게도 애가를 늘 찾아와 주는구나. 어서 안으로 모시거라.”

황제의 생모는 일찍이 세상을 떠났다. 반란이 일어났을 때 태자가 목숨을 잃자 태후는 대들보에 목을 매달아 태자를 뒤따랐다. 정식 태후 자리는 비워졌고, 그녀와 몇몇 태비만 남아 있었다.

동월국 황궁에는 서로의 아들을 바꿔 기르는 풍습이 있다. 서 태비는 황제 묵용한墨容瀚이 어릴 때 그를 길렀고, 그때의 정으로 황제는 늘 그녀에게 살가웠다. 그 영향 덕분에 황후와 후비들도 그녀에게 자주 문안을 하러 왔다.

그중에서도 그녀에게 가장 자주 오는 이가 백 귀비였다. 영리한 데다 언변이 능숙한 귀비는 황후보다 더 서 태비의 호감을 샀다. 만약 서 태비가 원하는 게 있다면 백 귀비는 무슨 수를 써서든 효를 다하려 할 터였다.

황유도가 말을 전하자마자 옥구슬이 굴러가듯 맑은 웃음과 함께 백 귀비가 들어왔다. 갸름한 얼굴과 고운 눈썹, 치켜 올라간 눈꼬리를 가진 그녀는 몹시도 아름다웠다. 흰여우 털을 댄 외투가 그녀를 우아함을 돋보였다.

그녀가 절을 올리며 말했다.

“소첩, 태비 마마를 뵈옵니다!”

“어서 일어나게, 어서.”

서 태비가 그녀를 일으키는 시늉을 하며 반겼다.

“식구끼리 허례를 차릴 필요 없다네. 그저 가벼운 인사면 되지, 어찌 절을 하려는 겐가. 애가는 그 정도로 고령이 아니라네.”

농담을 던지는데도 서 태비의 표정은 어딘가 어두웠다. 백 귀비가 웃으며 답했다.

“태비 마마께서는 아직 젊으시지요. 실례되는 말씀이긴 하나, 모르는 이들이 보면 소첩과 자매라고 여길 것입니다.”

서 태비가 기뻐하며 손을 내저었다.

“애가를 놀리지 마시게, 귀비. 얼굴에 이리 주름이 가득하니 누가 봐도 할머니라고 믿을 걸세!”

백 귀비가 살포시 웃었다.

“초왕야께서 아기씨를 보시면 그때야 할마마마라 불리시겠지요.”

묵용감의 이야기가 나오자 서 태비의 미소가 옅어졌다. 그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초왕야가 대를 잇는 모습을 보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네.”

“올해 두 명의 왕비를 들이셨으니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태비 마마. 내년 봄쯤이면 분명 좋은 소식이 들릴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그만하는 게 좋겠네. 애가의 마음이 번잡해지는 이야기라서 말일세.”

그러다 서 태비가 한숨을 푹 내쉬며 속마음을 드러내었다.

“초왕이 귀비의 동생을 끔찍이 아끼지만, 애가가 보기에 초왕비는… 철이 없는 것 같네. 얼마 전엔 거리에서 싸움을 벌였다는데, 귀비가 한번 말해 보시게. 왕비라는 사람이 왈패처럼 길거리에서 싸움을 벌이다니,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이 늙은이는 부끄러워서 고개를 못 들겠네.”

백 귀비도 한숨을 내쉬었다.

“소첩도 면이 서질 않습니다. 동생은 친정에서도 사고뭉치였습니다. 어머니가 어찌 그 애를 내키지 않아 했겠습니까. 얌전한 구석이라고는 조금도 없고 늘 사내아이들과 어울려 다녔지요. 싸움은 그나마 낫습니다. 심지어는…….”

그녀가 문득 말을 멈추고 민망하다는 듯 웃었다.

“아닙니다. 좋은 일도 아닌데 소첩의 말이 길었습니다.”

말을 끊으면 더욱 궁금해지는 법이었다. 서 태비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찌 애가에게 감춘단 말인가? 애가는 왕비의 시어머니라네. 당사자는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할 때가 있는 법이지. 초왕이 깨닫지 못하는 점도 있을 테니, 애가라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백 귀비는 난처하다는 듯 머뭇거렸다.

“그것이, 차마 말씀드리기 부끄러운 일이라…….”

“어서 말해 보시게. 애가가 마음 졸이길 바라는가?”

한참을 머뭇거리던 백 귀비의 입이 열렸다.

“지난달쯤의 일인데, 초왕야께서 안 계신 틈을 타 초왕비가 새벽에 저택을 빠져나와… 외간 남자와 밀회를 가졌다고…….”

쨍그랑!

서 태비가 들고 있던 찻잔이 떨어져 산산이 조각났다. 그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초왕도 아는 일인가?”

“초왕야께서도 그날 소식을 들으시고 성 밖에서 급히 돌아오셨다고 합니다. 순포까지 동원해 성을 샅샅이 뒤진 끝에 왕비를 찾긴 했지만, 진노하신 초왕께서 관청 옥사에 가두셨답니다. 하지만… 마음이 여리신 초왕께서 금방 풀어 주셨다고 합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으나, 서 태비는 속에서 불길이 이는 듯했다.

“우리 불쌍한 감이.”

백 귀비가 그녀의 안색을 살피다가 말을 이었다.

“왕비는 옥사에 갇혔을 때도 반성은커녕… 옥을 빠져나가기 위해 옥사쟁이를 꾀어냈다고 합니다. 마침 초왕야께서 보시고 칼로 그자의 팔을 자르셨다지요. 그 옥사쟁이는 파면을 당해 지금은 거리에서 구걸하고 있다 하옵니다.”

“그런 일까지 있었다?”

서 태비는 한참이나 말을 잇지 못했다.

“추악한 일만 벌이는데 감이는 어찌 그 애를 책벌하지 않는단 말인가?”

백 귀비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제 동생을 흠 잡으려는 건 아니지만, 어려서부터 이런 쪽으로 재주가 뛰어났습니다. 마음에 든 사내가 있으면 어떻게든 제 사람으로 만들었지요. 열 살 즈음에는 이급二級 집사를 꾀려다가 어머니께 붙잡혀서 혼쭐이 날 뻔했습니다. 발에 기름칠을 한 듯 도망쳐 버려 현장을 잡진 못했지만요.”

“세상에나, 열 살에…….”

서 태비가 기가 막힌 듯 말을 잇지 못했다.

“태생이 여우 같은 아이구나. 예왕에게 한 짓도 이유가 있는 것이었어. 세상에, 감이가 이런 아내를 두었을 줄이야. 우리 감이는 앞으로 어찌 살라고.”

그녀가 원망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애인 걸 알면서도 백 승상은 그 애를 초왕에게 보냈단 말인가?”

백 귀비가 난처한 듯 얼굴을 붉혔다.

“아버지는 초왕께서 그 애를 오래 두시지 않으리라 생각하였습니다. 초왕야와 아버지는 줄곧 사이가 좋지 않으셨으니까요. 황제 폐하께서 친히 하명하신 일을 거절할 수가 없어서 하는 수 없이…….”

서 태비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애가가 이 일을 알았으니 지켜만 볼 순 없네. 감이는 차가워 보여도 속이 여린 아이지. 그 애가 손을 놓지 못한다면 애가가 하는 수밖에. 우리 감이 같은 영웅이 단정치 못한 부인 때문에 스스로를 망치게 둘 순 없네.”

그녀가 백 귀비를 바라보며 말했다.

“귀비, 내가 초왕비를 폐위해야겠네. 괜찮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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