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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157)화 (156/1,192)

제157화

학평관의 윽박에 하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수원상이 천천히 다가오더니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총 관리인 어르신 오셨습니까.”

학평관은 곧장 예를 갖춰 인사를 올렸지만 마음속으로는 그녀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다. 이렇게 큰일이 났는데도 자신에게 기별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소식을 알았다면 비가 아니라 칼이 내리꽂힌다 해도 서둘러 돌아왔을 것이었다.

수원상은 다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모르는 척 물었다.

“아침부터 하인들을 불러 무얼 하고 있으신 것입니까?”

“왕비 마마께서 사라지셔서 소인이 하인들을 불러 모아 함께 찾으려던 참이었습니다.”

“어젯밤 본비가 이미 하인들에게 지시했는데도 못 찾질 않았습니까? 본비가 보기에는 왕비 마마께서 저택 밖으로 나가신 듯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나타나지 않으시다니요?”

그녀가 하인들을 훑으며 말했다.

“어젯밤 거의 밤을 새며 고생했는데 무슨 정신으로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두 시진 정도는 휴식을 취하고 기운을 차린 뒤에 다시 찾는 게 좋을 듯합니다. 어르신께서는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월향과 월규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

“소인들은 힘들지 않습니다. 왕비 마마만 찾을 수 있다면 죽음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추문이 입술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힘들겠지요. 뼈가 강철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다른 이들의 의견도 물어보십시오.”

앞뜰 하인들은 또다시 웅성거리며 불만 가득한 기색을 내비쳤다. 측왕비가 뒤에서 버팀목이 되어 주니 학평관도 그녀의 체면을 살필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두 시진까진 아니더라도 한 시진만이라도 잘 수 있는 시간을 주면 더 바랄 게 없었다.

하지만 학평관의 생각은 달랐다. 백천범 때문에 두 차례나 곤장을 맞은 그였다. 특히나 두 번째 곤장은 무려 스무 대에 달해 목숨을 잃을 뻔했다. 감히 왕비를 소홀히 대할 수 없었던 그는 하인들에게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다들 반란을 일으키고 싶은 것이로구나? 원치 않는 자가 있다면 내 앞에 나오거라. 강요하지 않겠다.”

물론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안 되었다. 강요하지는 않겠지만 중벌을 면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그의 앞으로 나가 스스로 화를 자초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다들 성이 난 표정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고청접이 자신의 하인들을 데리고 오더니 초조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르신, 제 하인들도 함께 찾겠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힘을 보태야지요. 어떻게 해서든 왕비 마마를 찾아야 합니다.”

수원상은 그녀를 곁눈질로 흘겨보더니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우님이 참으로 인자한 마음씨를 가졌습니다.”

고청접도 담담하게 받아쳤다.

“과찬이십니다. 형님께서 사라지셨더라도 이 아우는 지금처럼 똑같이 했을 것입니다. 두 분 모두 제 형님이시니까요. 한 분이라도 계시지 않는다면 이 아우 괴로워 참을 수 없을 것입니다.

왕비 마마를 존경하고 극진히 대하긴 하지만, 아직 어리고 단순하신 탓에 마음속으로는 제 여동생처럼 마음이 쓰입니다. 이렇게 갑작스레 사라지시다니… 너무나 걱정될 따름입니다.”

수원상이 말했다.

“그렇다면 본비도 질 수 없지요. 왕비 마마를 향한 우리의 마음은 똑같을 테니까요.”

그녀는 잠시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추문아, 총 관리인께서 인원을 나눌 수 있게 낙성각에서 하인들을 모두 데려오너라.”

학평관이 서둘러 두 왕비에게 인사를 올렸다.

“두 분 모두 참으로 인자한 마음씨를 지니셨습니다. 사람이 많을수록 좋지요. 부디 하늘이 굽어 살피시어 왕야께서 오시기 전 왕비 마마를 찾기만 바랄 뿐입니다.”

그는 다시 인원수에 맞게 구역을 나누었다. 구석구석 놓치지 않게 서로 교차하여 찾는 방식이었다. 여기에 명호를 수색하는 조도 꾸렸다. 어젯밤 내린 큰비에 왕비가 발을 헛디뎌 호수에 빠졌다면 아무리 저택 안을 뒤져도 헛수고였기 때문이다.

하인들이 모두 흩어지자 학평관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건 몰라도 제발 어린 왕비가 살아 있기만을 바랐다.

* * *

잠에서 깬 묵용감의 오른쪽 눈꺼풀이 파르르 떨려 왔다. 까닭 없는 불길한 예감이 또다시 그를 엄습했다.

막사 밖으로 나간 그는 주위를 둘러싼 높은 산자락을 바라보았다. 그는 몇몇 참령을 불러 순찰 병력을 추가로 투입하라고 분부했다. 막바지에 다다를수록 더욱 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비록 지금은 조정이 안정되고 백성들도 평안한 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적국의 간첩이 잠입하여 반란을 꾀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했다. 황제가 직접 나서는 순행이었으니 조금도 경계를 소홀히 해선 안 되었다.

정오가 되자 묵용감은 황제와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 그의 막사로 가려던 참이었다. 그때 가동이 들어와 고했다.

“왕야, 주 참령이 뵙기를 청합니다. 왕야를 뵈어야 한다고 떠드는 수상쩍은 사내를 붙잡았다고 합니다.”

묵용감이 미간을 찌푸렸다.

“뭐 하는 작자란 말이냐?”

“아직 압송되지 않아 그것까진 소인도 잘 모르겠습니다.”

“주자명에게 당장 데려오라고 이르거라.”

묵용감의 오른쪽 눈꺼풀이 또다시 떨려왔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그가 다급히 말을 이었다.

“아니다. 본왕이 직접 가야겠다.”

가장 외곽을 지키는 군영을 향해 가는데 멀리서 포승줄에 결박된 채 입에 재갈이 물려 있는 머슴이 보였다. 할 말이 있는지 마구 소리를 지르며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눈이 밝았던 영구가 말했다.

“왕야, 순자順子와 닮았습니다.”

묵용감의 불안감이 더욱 커져만 갔다. 순자는 말을 잘 몰고 발이 빨라 저택의 심부름을 도맡는 머슴이었다. 학평관이 순자를 보내다니, 설마 큰일이라도 난 것이란 말인가?

그가 빠르게 걸어가 분부했다.

“풀어 주거라. 내 하인이다.”

사병들이 급히 그를 풀어 주자 순자가 털썩 무릎을 꿇고 고했다.

“왕야, 학평관 어르신께서 왕야께 소식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왕비 마마께서 사라지셨습니다!”

머리를 얻어맞은 듯 웅웅거리는 소리가 묵용감의 뇌리를 울렸다. 한참이 지난 뒤에야 정신을 차린 그가 머슴에게 물었다.

“사라졌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어디로 떠났다는 말이냐?”

“소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왕비 마마께서 어제 오후에 후원을 산책하셨는데 갑자기 사라지셨습니다. 소인이 저택을 떠날 때까지 찾지 못하였습니다.”

사라졌다니……? 어떻게 하룻밤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대체 무슨 일이 난 것이란 말인가? 묵용감은 마치 불 위에서 타들어 가는 듯 혼란스럽기만 했다. 그가 서둘러 영구에게 분부했다.

“말을 대령하라!”

가동이 깜짝 놀라 물었다.

“왕야, 저택에 돌아가시려는 것입니까? 황제 폐하께서 이곳에 계시는데…….”

“본왕 대신 네가 황제 폐하께 급한 일로 먼저 돌아간다고 죄를 고하거라.”

“…….”

어째서 이렇게 어려운 일은 늘 그에게 돌아온단 말인가.

묵용감은 그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말에 올라타더니 채찍을 휘두르며 홀연히 떠났다. 영구도 서둘러 말에 올라타 그의 뒤를 쫓았다.

* * *

오전 내내 이어진 수색 작업에선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 학평관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가만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식사 때가 되었지만 밥을 넘길 수도 없었다.

몇몇 관리들이 그를 찾아와 말했다.

“어르신, 오전 내내 찾았는데 뭐라도 먹을 걸 좀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체력을 보충해야 오후에 다시 기운을 내어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학평관이 힘없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다들 돌아와 밥을 들라 하거라.”

이렇게 해도 찾지 못한다는 것은 왕비가 저택에 없다는 의미나 다름없었기에 초왕이 돌아와 해결하기만을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어림잡아 보니 초왕은 대략 신시申時쯤 돌아올 것이었다. 하지만 대문에서 들려오는 머슴의 외침 소리에 그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왕야께서 돌아오셨습니다. 왕야께서 돌아오셨습니다!”

학평관은 매무새를 가다듬고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묵용감의 말은 이미 회림각 대문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급하게 멈춰 선 말이 앞발을 높게 들어 올린 탓에 학평관은 하마터면 말발굽에 걷어차일 뻔했다.

그가 급히 예를 갖춰 인사를 올렸다.

“왕야, 돌아오셨군요.”

“왕비는 찾았느냐?”

묵용감이 말에서 뛰어내리며 말했다.

“어찌 된 일인지 직접 확인해야겠으니 관련된 자들을 모두 불러오거라.”

학평관은 서둘러 머슴에게 이 일과 관련된 사람들을 모두 불러오라고 분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관리들이 도착했다. 그들은 묵용감에게 예를 갖춰 인사를 올린 뒤, 잔뜩 위축되어 한쪽에 물러나 있었다.

뒤이어 기홍과 녹하가, 그 다음은 월향과 월규가 도착했다. 월향과 월규는 들어서자마자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감히 울 수도 없었던 두 시녀는 머리를 땅에 조아리고 사시나무 떨 듯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마지막으로 수원상과 고청접이 도착했다.

상황을 들은 묵용감은 그제야 모든 게 명확해졌다. 그는 돌아오는 길 내내 백천범이 제 발로 저택을 떠난 것은 아닐지 고민했다. 그가 떠나기 전 보인 행동으로 인해 홀연히 떠나 버렸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후 사정을 연결해 보니 그의 추측은 틀렸다. 어린 계집은 분명 이 저택 안에서 실종된 것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많은 하인들이 저택을 샅샅이 뒤졌는데, 어떻게 찾지 못할 수 있단 말인가?

그가 매서운 눈빛으로 방에 모인 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훑었다. 마지막으로 그의 시선이 월향과 월규의 몸에 닿았다.

“일어나거라. 왕비를 찾기 전까진 살려 줄 테니 왕비가 무사하길 바라는 게 좋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둘 다 죽음을 면치 못할 테니!”

월향과 월규는 바들바들 떨며 대답을 올린 뒤, 서둘러 한쪽으로 물러났다. 묵용감의 형벌은 원망스럽지 않았다. 백천범이 정말 변고라도 당했다면 두 시녀는 죽어 마땅했다.

이렇게까지 찾아도 나타나지 않는 것은 하인들 탓이 아니었다. 백천범이 저택 안에 없다는 의미였다. 만약 잘못되었다면 시신이라도 발견되어야 했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그가 어두운 목소리로 영구를 불렀다.

“친위병을 저택으로 들여 샅샅이 살피라고 이르거라.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본왕이 확실한 소식을 들어야겠다.”

“예.”

영구는 명을 받들고 밖으로 나섰다.

묵용감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의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두 시진이 걸리는 거리를 한 시진 만에 달려온 그였다.

객지에서 온갖 고생을 겪다 돌아왔으니 피곤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었지만, 가슴에 천불이 난 듯 초조하고 불안한 기분이 가득하다 보니 피로를 느낄 새가 없었다.

백천범이 스스로 떠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지금 그의 걱정은 극에 달해 있었다. 이렇게 불안한 기분은 난생 처음일 정도였다. 그저 그녀가 아무 사고 없이 무사하기만을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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