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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148)화 (147/1,192)

제148화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돈구멍이 정말 일을 내고 말았다. 은냥을 탐내려다 수원상에게 적발되었고, 벌로 곤장 스무 대가 내려졌다.

이 소식을 들은 월향은 서둘러 앞뜰로 향했다. 전씨가 곤장을 맞는 것은 전혀 걱정이 되지 않았지만, 그에게 부탁한 물건을 가져왔는지 확인해야 했다. 처소에 다다르자 그는 침대에 누워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월향은 안으로 곧장 들어서지 못하고 문 앞에 서서 그를 불렀다.

“전씨, 제가 부탁한 물건은요?”

전씨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한 번 바라보더니 잔뜩 울상인 얼굴로 말했다.

“말도 마십시오. 측왕비께서 가져간 돈을 메워야 한다고 그 돈도 홀라당 가져가 버리셨으니깐 말입니다.”

월향이 조급해하며 말했다.

“왕비 마마의 돈을 가져가시다니요? 설명 안 드리셨습니까?”

“왜 말 안 했겠습니까? 하지만 먹은 돈을 다 토해 내라고만 하실 뿐, 제 말은 절대 듣지 않으셨습니다.

사실 먹긴 뭘 먹었겠습니까? 장부를 적는다 해도 조금씩 여분이 생기기 마련인데 말입니다. 게다가 물건도 아니고 다 식자재인데 그 근량을 어찌 그리 세세하게 나눌 수 있었겠습니까. 조금이라도 차이가 없는 게 더 이상하지요.”

월향에게 그의 핑계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그것은 모르겠고, 어쨌든 돈은 돌려주셔야 합니다. 왕비 마마의 돈이니까요.”

“제가 무슨 돈이 있어 돌려주겠습니까? 월향 아가씨, 지금은 가진 돈을 측왕비께 전부 빼앗겨서 주머니가 낯짝보다도 더 깨끗할 정도입니다. 정 돈을 받아야겠으면 측왕비를 찾아가 받으십시오.”

전씨는 곤장을 맞아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에 그를 찾아와도 소용이 없었다. 월향은 발을 굴리다 결국 발걸음을 돌렸다. 어쨌든 측왕비를 찾아 상황을 잘 설명해 돈부터 찾는 게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급히 낙성각을 들어서자 마침 방에서 추문이 나오고 있었다. 월향을 본 추문은 괴상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이고, 월향 아가씨께서 오셨네요. 우리 측비 마마를 찾아오셨는지요? 그런데 이걸 어떡하죠, 마마께서 지금은 잠시 낮잠을 주무시니 이따 다시 오시지요.”

지난번 소동이 있고 난 후, 추문은 늘 이런 태도로 나왔기 때문에 월향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측왕비께서 몇 시쯤 일어나시는지요, 그때 다시 오겠습니다.”

“그것은 저도 모르지요. 주무시고 싶으실 때까지 주무셔야 하니까요. 우리 같은 노비들이 그걸 어찌 물을 수 있겠습니까?”

추문은 그녀를 흘깃 바라보더니 손톱 끝을 다듬으며 말했다.

“마마께서 일어나시면 전해 드릴 테니 무슨 일인지 말해 보시지요.”

측왕비가 언제 일어날지 모르니 대신 전해 달라고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결국 월향은 하려던 말을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번거롭겠지만 추문 아가씨께서 측왕비 마마께 좀 전해 주십시오. 우리 왕비 마마께서는 근검절약하시는 분이라 돈과 물건을 각별히 관리하십니다. 게다가 쓰지도 못한 돈이니 꼭 돌려받으셔야 합니다.”

추문은 붉게 칠한 손톱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랬군요. 알겠습니다. 대신 전해드리지요. 이따 느지막이 찾아오면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월향은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남월각으로 돌아와 백천범에게 이 소식을 고했다. 월향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돈이 측왕비께 있으니 다시 돌려주려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백천범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왜 안 돌려주겠어, 내 돈인데.”

월향이 말했다.

“만약 정말 돌려주지 않으려 하신다면 그만두시는 게 좋겠습니다. 이렇게 적은 돈으로 소란을 피우면 불화만 생길 뿐입니다.”

옆에 있던 월규가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무리 적은 돈이라도 왕비 마마께서 힘들게 모으신 건데 관두라니. 지난 일은 지난 일이고, 이번 일은 이번 일이지.

지난 일 때문에 고의로 푸대접을 하시는 거라면, 측왕비의 인품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기회야. 돈 몇 푼으로 사람을 제대로 알 수 있다면 나름 값어치 있는 일인걸.”

백천범이 자신만만해 하며 말했다.

“원상 언니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니까. 사실을 확인하고 나면 금방 돈을 돌려줄 거야.”

월규가 물었다.

“만약 돌려주지 않는다면요?”

“그럼 안 되지. 내 돈이니까 돌려받아야 해. 이치에 맞는 말이니까 나도 끝까지 달라고 할 거야.”

그녀의 돈이 아니었다면 요구하지 않았겠지만, 그녀의 돈이었기 때문에 그녀도 꼭 돌려받아야만 했다. 더구나 돈이 별로 없는 백천범은 그 정도의 푼돈도 꽤 귀했다.

* * *

한 시진쯤 지났을 무렵, 월향은 측왕비가 일어났을 거란 생각에 다시 낙성각을 찾았다. 이번에는 수원상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 추문의 안마를 받고 있었다. 눈을 살짝 찌푸리고 있는 게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다.

월향을 본 수원상이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네 말은 추문에게 들었다. 정말 그게 왕비 마마의 돈이라면 본비가 직접 왕비 마마께 가져다 드려야지. 하지만 네 말만 듣고 일을 처리할 수는 없다. 만약 그 돈이 왕비 마마의 것이 아니라 전씨가 탐낸 돈이라면 마땅히 몰수해야 한다.”

월향이 살짝 몸을 숙이며 말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왕비 마마께서는 늘 측왕비 마마께서 집안일을 능숙하게 관리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 역시나 세심하십니다. 아마 전씨에게 사람을 보내 확인하시면 바로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수원상이 물었다.

“사람을 보내면 시간이 지체되니, 본비가 직접 다녀올 것이다. 왕비 마마께서 조급하게 기다리시는데 서둘러야지.”

월향은 조금 의외였다. 보아하니 왕비의 예측이 맞는 듯했다. 역시 측왕비는 정도를 지켜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는 사람이었다.

월향은 수원상과 함께 앞뜰로 향했다. 미리 전갈을 받은 전씨는 단정히 옷을 갖춰 입고 있었지만, 여전히 침대에 누운 채 손가락 인사로 예를 대신했다.

수원상은 코웃음을 치며 의자에 앉았다.

“월향이 네게 돈을 주어 당근을 사다 달라고 했다는구나. 그런 일이 있었느냐?”

“예.”

전씨가 말했다.

“왕비 마마께서 기르시는 토끼 두 마리에게 당근을 먹여야 하니 제게 좀 사다 달라고 하였습니다.”

“네게 얼마를 주었느냐?”

전씨가 깜짝 놀라 말했다.

“소인에게 돈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월향은 머리를 세게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녀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제가 분명 은자를 주며 당근을 많이 사다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전씨의 표정은 월향보다 더 억울해 보였다. 그가 눈썹을 높게 치켜세우며 말했다.

“월향 아가씨, 이런 말을 그리 함부로 내뱉으면 안 되지요. 언제 돈을 주었다는 겁니까? 증명할 사람이 있습니까?”

월향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혹여 의심이라도 받을까 봐 보는 눈이 없을 때 부탁을 했으니 본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다. 이제 와 증명해 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방금 돈을 받으려면 측왕비 마마를 찾아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분명히 설명을 드렸지만, 마마께서 듣지 않으시니 저더러 직접 찾아가라고 말입니다.”

수원상이 끼어들었다.

“설명이라니? 무엇을 설명했단 말이냐?”

“아무것도 아닙니다. 측왕비 마마, 월향 아가씨가 하는 소리는 귀담아 듣지 마시옵소서. 월향 아가씨, 자꾸 돈을 줬다고 하시는데, 제가 저택의 규율 때문에 사사로이 물건을 들여올 수 없다며 거절하자 아가씨도 돈을 집어넣지 않으셨습니까. 몇 번을 다시 따져 물어도 제 대답은 계속 같을 것입니다.”

“제가 분명 드리지 않았습니까. 그건 제 돈이 아니라 왕비 마마의 돈이란 말입니다. 양심을 속이지 마십시오. 왕비 마마의 돈을 가로채시다니요.”

“하!”

전씨가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왕비 마마께서 아가씨에게 돈을 주셨는지는 내 알 바 아니지만, 나에게 돈을 준 적은 없습니다. 본인이 돈을 잃어버리고 제게 뒤집어씌우는 것은 아닙니까?”

“이, 이, 이, 이런 무뢰한 같으니라고!”

“월향 아가씨, 그리 욕을 퍼붓다니요?”

“욕을 먹어도 싸지요. 감히 왕비 마마의 돈을 가로채다니요, 양심도 없는 비열한 인간이 따로 없습니다!”

“오만방자하구나!”

수원상이 얼굴을 굳혔다. 당장이라도 따귀를 날리고 싶었지만, 백천범이 또다시 어리석은 짓을 저지를까 봐 몇 마디 훈계로 대신했다.

“다 큰 여인이 그리 상스러운 말을 하다니. 본비의 면전에서도 이 모양인데 평소에는 얼마나 더 오만방자할지 눈에 훤하구나. 네가 왕비 마마의 돈을 가로채 놓고 전씨에게 덮어씌우는 것이 아니더냐?”

“아닙니다, 측왕비 마마.”

월향이 털썩 무릎을 꿇었다.

“소인, 억울하옵니다!”

“억울하다? 본비가 보기에는 전혀 억울할 게 없구나. 방금 곤장을 맞아 거의 죽다 살아난 전씨가 목숨을 잃고 싶어 안달이 나지 않고서야 어찌 감히 네게 죄를 전가하겠느냐?

이는 분명 네가 돈을 훔친 것이다. 왕비 마마의 사람이라 그리 중한 벌을 내리긴 어려우니 한 달 치의 봉급을 삭감하여 왕비 마마께 충당해 드릴 것이다. 또한 모든 이가 네 죄를 보고 경각심을 가질 수 있도록 앞뜰에 방을 붙이라 분부할 것이다.”

월향은 온몸에 힘이 풀려 그대로 땅에 쓰러졌다.

한 달 봉급을 빼앗기는 것은 상관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짓이라 공표하는 방을 붙이면, 저택의 모든 이들이 그녀를 왕비의 돈을 훔친 도둑이라고 생각할 것이었다. 게다가 죄를 남에게 전가하려고 한 뻔뻔한 사람으로 몰릴 텐데 어찌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땅에 엎드린 채 끊임없이 이마를 조아리며 용서를 빌었다.

“측왕비 마마, 부디 조금만 선심을 베풀어 주십시오. 소인 너무나 억울하옵니다. 너무 억울하옵니다. 소인은 정말 왕비 마마의 돈을 탐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전씨에게 돈을 주었습니다…….”

그녀는 쿵쿵 소리가 날 정도로 있는 힘껏 이마를 땅에 찧으며 말했다. 그녀가 고개를 들어 올릴 때마다 피로 범벅이 된 이마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수원상과 주위에 있던 이들은 그 모습을 본체만체할 뿐이었다. 수원상이 탄식하며 말했다.

“일어나거라. 그리 입으로만 떠들어 대는 것은 아무런 소용도 없으니 증거를 가져오든지. 그만 돌아가거라. 앞으로 또 이런 짓을 저질렀다간 노비 매매상을 불러 널 팔아넘길 것이다.”

말을 마친 그녀는 월향에게 눈빛도 주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발걸음을 돌렸다.

추문은 서둘러 수원상을 부축한 뒤 입을 삐죽거리며 조용히 말했다.

“저런 아이인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마마 앞에서 뻔뻔하게 억울하다고 소란을 피우다니요.”

수원상이 고개를 저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지.”

월향은 한참 동안 바닥에 쓰러져 있다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천천히 전씨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잔뜩 쉰 목소리로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이 비열한 놈, 내가 귀신이 되어서도 널 가만두지 않을 테니 두고 보거라!”

전씨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콧방귀를 뀌며 아랑곳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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