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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129)화 (128/1,192)

제129화

묵용감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다시 그녀에게 물었다.

“정말 알고 있는 것이오?”

“당연히 알지요. 저희 아버지, 둘째 오빠, 셋째 오빠 모두 다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한 명으로는 부족한지 아주 많이 있었지요. 괜찮아 보이는 여인이 있으면 곧장 방 안으로 데려갔습니다.

유모 말이 그런 부군에게 시집을 가면 잘 지낼 수 없대요. 한 사내를 가지고 여러 명의 여인들이 옥신각신 싸움을 벌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첩을 들이지 않는 사내를 찾으려고요. 그자가 농부라 할지라도요.

왕야께서 지난번에 절 사장풍에게 시집보낸다고 하셨잖아요. 우선 그자에게 먼저 첩을 들일 계획이 있는지 좀 물어봐 주세요. 만약, 들이겠다고 하면 저는 그자와는 혼사를 치르지 않을 거예요.”

그는 복잡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농부에게 시집을 가는 한이 있어도 그를 고민해 볼 여지는 추호도 없단 말인가?

충동적으로 멍청한 일을 벌여 두 명의 여인을 맞이했지만, 아직까지 그녀들과 진정한 부부가 된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그 원인을 따지자면 모두 백천범 때문에 일어난 일인데 자신은 책임을 회피하려 하다니.

그는 만약 자신이 두 왕비를 내쫓으면 자신을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지 그녀에게 묻고 싶었다. 어쨌든 농부보다는 훨씬 더 나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황제와 황후가 맺어 준 혼사였기 때문에 그들을 내쫓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한 명은 자신과 친분이 있는 부하의 딸이었고, 다른 한 명은 대학사의 딸이었기 때문에 쉽게 행동했다간 원한을 살 것이었다.

역시 들이는 것은 쉬워도 내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가 처음 그들을 맞을 때만 해도 이런 상황까지 예상하진 못했다.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지금 이 상황이 고통스럽기만 할 따름이었다. 어차피 무슨 말을 해도 되돌릴 수 없는 일이니 지금은 그저 아무 말 않고 서둘러 그들을 내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백천범에게 자신의 결심을 보여 주는 게 더 좋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 * *

벌을 받은 후, 수원상은 곧장 주방으로 달려가 백천범의 식사를 보완하라고 분부를 내렸다.

수원상은 더 이상 경솔하게 행동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백천범이 회림각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는 소식에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 그녀는 값비싼 강서 지역의 옥 접시를 내던져 산산조각 냈다.

아침에 함께 회림각에 가자고 할 땐 가지도 않더니만, 뒤늦게 홀로 찾아가 호의호식하다니. 음흉한 계집 같으니!

그녀가 식식거리자 옆에 있던 추문이 그녀의 화를 돋웠다.

“마마, 제가 보기에는 조금 수상합니다. 왕야께서 왕비를 여동생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왕비에게 들은 말 아닙니까? 정작 왕야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왕비가 일부러 저희를 속이려 드는 것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수원상은 어두워진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추문이 또다시 입을 열었다.

“마마, 왕비가 이리 제멋대로 계략을 쓰는데 가만히 두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그랬다. 두고만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초왕이 백천범을 어찌 생각하든 두고만 볼 수는 없었다.

그녀는 대학사의 적녀이자 장녀였다. 시집을 올 때 그녀의 아버지는 수원상에게 측왕비의 신분으로 시집을 가지만, 사실상 정비는 그녀라고 알려 주었다.

그런데 만약 백천범이 나가지도 않고 계속 왕비 자리에 눌러앉았다간 그녀만 우스운 꼴이 될 것이었다.

분명 무슨 수를 써야 했다. 잠시 망설이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이 소식을 벽하각에 전해야겠다.”

깜짝 놀란 추문이 말했다.

“서왕비는 돈을 아끼지 않고 곳곳에 밀고자를 심어 놓았으니 가서 알려 주지 않아도 이미 진즉에 알고 있을 것입니다. 마마, 서왕비를 선두에 세우는 것은 참으로 좋은 방법인 듯합니다. 우선 왕야의 생각을 알아본 뒤, 그에 걸맞은 행동을 취하는 게 좋겠습니다.”

* * *

조회가 끝난 뒤, 묵용감은 황제를 따라 남서방南書房으로 가, 얼마 뒤에 있을 순행에 대해 의논했다.

목적지는 그리 멀지 않은 사평四平과 남수南水, 통녕通寧이라는 곳이었다. 다만 황제가 순행을 하는 중대한 일이었기 때문에 황자들과 군기대신, 각 부처의 통솔자가 모두 그 뒤를 따라 걸어야 했다. 조정의 대소사는 대부분 부하들이 처리했지만, 이렇게 큰일은 묵용감이 직접 나서야 했다.

무사로서 수년 간 황제의 순행을 따랐기 때문에 묵용감은 이 일에 대해서 누구보다 능숙했다. 그의 일처리에 황제 또한 마음이 놓였다.

“짐에게 그리 상세히 보고할 필요 없다. 매년 네가 일을 맡아 진행했으니 올해도 그리하면 될 것이다.”

말을 마친 황제는 남방 지역의 가뭄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북방 지역은 장마로 강물의 수위가 불어났지만, 남방 지역은 비가 내리지 않아 한 달이 넘게 가뭄이 지속되고 있었다.

지난달 밭의 작물을 급히 수확한 뒤 지금까지도 모를 심지 못할 만큼 상황이 좋지 않자 일부 농민들은 살 곳을 찾아 정처 없이 떠돌기 시작했다.

며칠 전부터 조정 대신들이 구호물자를 서둘러 준비해야 한다며 상주서를 올렸지만, 국고가 그리 여유롭지 않아 황제 또한 고민을 하던 참이었다.

백 승상은 백성들에게 세금을 걷어 다시 백성들을 위해 사용하자는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묵용감은 그의 의견에 코웃음을 쳤다.

듣기엔 그럴싸해 보여도 정말 그리할 경우 백성들의 원망이 끊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원망의 대상은 백여름이 아닌 황제일 것이었다. 어진 정치를 베풀었던 황제도 그 일의 위험성을 인지했기 때문에 묵용감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묵용감이 웃으며 말했다.

“폐하, 이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남쪽 지역의 재해가 그리 심각한 편은 아니니 국고에서 비용을 댈 게 아니라 부유한 조정 관리들이 모금을 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일, 이품 관리들에게 은자 오천에서 팔천 정도는 그리 큰돈이라고도 할 수 없으니 그 돈을 모으면 재해를 도울 큰돈이 되지 않겠습니까?”

사실 그렇게 하고 싶었던 것은 황제도 마찬가지였지만 초왕의 입을 빌린 것이었다.

성 안에 수많은 대신들 중 부유하지 않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의 비리는 황제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아직 손을 대기에는 시기상조였다. 우선은 탐낸 돈을 다시 몰수하는 셈 치면 되니 지금 같은 상황에서 초왕의 의견은 제법 괜찮았다.

하지만 역시 백 승상이 가장 문제였다. 웬만한 사람은 그를 상대조차 할 수 없었고 유일하게 초왕만이 그의 맞수였다.

황제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셋째 네가 이 방안을 꺼낸 것은 분명 생각해 둔 방도가 있는 것일 테지. 이 일은 네게 맡기겠다.”

묵용감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예. 폐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창밖을 바라본 묵용감은 이미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는 생각에 서둘러 대화를 마치고 싶었다. 그가 다시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폐하, 더 하실 말씀이 없으시면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황제는 그리하라 대답하고는 그와 함께 밖으로 향했다.

“그간 네게 물을 시간이 없었구나. 새로 들인 두 왕비는 어떻더냐?”

쓴웃음을 지어 보인 묵용감은 그리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그렇습니다.”

황제가 그의 안색을 힐끗 살피며 물었다.

“왜? 마음에 안 드는 것이냐? 짐이 보기에는 둘 다 훌륭하던데.”

훌륭하지만 그가 좋아하는 여인은 아니었다.

묵용감이 아무 말 없자 황제가 또다시 물었다.

“왕비는 언제 내보낼 생각인 것이냐? 혼사를 맺어 줄 때 짐이 대학사에게 그 일을 귀띔해 준 뒤에야 승낙을 하더구나. 그렇지 않으면 무려 대학사의 적녀를 어찌 네게 첩으로 보낼 수 있겠느냐? 그의 체면이 말이 아니지.”

묵용감이 담담하게 말했다.

“왕비가 아직 어리니 조금 더 시일이 지난 뒤에 결정하겠습니다.”

“초왕비가 지난 달 열다섯이 되었다고 귀비가 말해 주더구나. 황후는 열넷에 짐에게 시집을 왔으니 그리 어리기만 한 것은 아니다.”

황제는 초왕을 슬쩍 떠보며 물었다.

“내보내기 싫은 것은 아니겠지?”

“폐하, 그저 왕비가 불쌍해서 그런 것입니다. 지난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폐하께서도 다 아시지 않습니까. 모친은 세상을 떠나고 아비의 관심도 받지 못해 집안의 모든 이들이 왕비가 죽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백여름이 소홀히 대한 사람이니, 저는 그 사람을 기필코 잘 보살필 것입니다. 왕비를 잘 돌보다가 좋은 사람에게 시집을 보낼 것입니다.”

황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렇다 한들 짐이 대학사를 대하기 난처하구나.”

묵용감이 차갑게 말했다.

“대학사가 폐하를 탓하거든 제게 직접 찾아오라 해 주십시오.”

황제는 눈썹을 한 번 치켜올리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초왕은 보통 성질이 아닌지라 한번 화가 났다 하면 제아무리 황제의 체면이라도 봐주는 법이 없었다. 보아하니 새로 들인 두 왕비가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인 듯했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내년에 수녀秀女를 선발하면 어리고 예쁜 여인들이 넘쳐날 테니 분명 그의 마음에 드는 사람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었다. 적어도 황제는 그렇게 생각했다.

* * *

묵용감은 오문을 지나 서쪽 측문으로 빠져나왔다. 대기하고 있던 영구와 가동은 그가 나오자 곧장 예를 갖췄다.

묵용감은 안색이 좋지 않았다. 황제의 말은 서둘러 수원상을 정비로 삼으라는 의미였다. 그는 두 왕비가 아직 저택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조심스레 대화를 나누어 서로에게 좋은 방안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그의 계획은 실현 불가능해 보였다.

무거운 마음으로 천천히 말을 몰던 그는 시장이 유난히 떠들썩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슬쩍 시장을 바라보던 그가 말에서 내리자 가동과 영구도 서둘러 말에서 내려왔다.

묵용감은 고삐를 영구에게 넘긴 뒤, 한 노점상으로 가 토우 인형 하나를 집어 든 채 유심히 관찰했다.

상인이 그의 곁으로 다가와 살갑게 응대했다.

“나리, 하나 사시지요. 내일이 칠석이니 부녀자들이 아주 좋아할 것입니다. 어찌나 정교하게 만들었는지 속눈썹까지 보일 정도입니다. 저희 집 물건은 전부 소주蘇州와 항주杭州 일대에서 들여온 것들이라 정교한 데다가, 가마에 구운 것들이기에 땅에 떨어뜨려도 쉽게 깨지지 않습니다.”

묵용감이 물었다.

“이 인형은 이름이 무엇이오?”

“마갈락磨喝樂입니다. 불경에서 따온 이름이라 걸교를 할 때에도 효과가 아주 용하지요. 하나 들이십시오, 나으리.”

백천범이 말한 적 있는 이름인 데다, 상인이 팔고 있는 인형은 무척 정교하고 귀여웠다. 묵용감은 세 가지 종류의 인형을 하나씩 사기로 했다. 상인은 입이 귀에 걸려서는 또다시 칠색 실을 권했다.

“나으리, 칠색 실은 필요 없으신지요? 이 일곱 가지 색실을 바늘귀에 한 번에 꿰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지요. 저희 집 실은 매끄러우면서도 단단해서 쉽게 꿸 수 있습니다. 부인께서 이기시면 그 운이 한 해 동안 지속될 것입니다!”

결국 묵용감은 칠색 실까지 산 뒤 또 다른 노점에서 작은 은 바늘을 사고 견우와 직녀 인형, 원앙, 걸과, 계화꽃 기름까지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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