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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66)화 (65/1,192)

제66화

묵용감은 오는 길에 상당히 높아진 강물의 수위를 확인했다. 매우 급박한 상황이었다. 그는 물살과 제방의 폭을 어림잡아 헤아린 후 방안을 모색해 냈다.

바로 인간 장벽을 세워 범람을 막는 것이었다.

가장 폭이 좁은 구간에 체격이 우람한 장병들을 투입시켜 서로 팔짱을 끼고 서로의 허리를 밧줄로 묶게 했다. 뭍에 있는 사람들이 있는 힘껏 밧줄을 잡아당기고 양쪽 끝을 굵은 나무에 고정시키는 방식이었다.

물속에 직접 투입되는 건 처음 있는 일인 데다가 물살이 맹렬한 기세로 밀려왔기 때문에 몇몇 장병들은 두려움에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를 목격한 묵용감은 직접 물가로 뛰어 내려가 공백을 메웠고 폭우를 가르며 큰 소리로 외쳤다.

“형제들이여, 두려워 말라! 우리는 국가를 지키는 장병이다. 이 강 하류에는 백성들의 논밭이 있고, 우리 부모님들의 터전이 있다. 그곳을 지키기 위해서는 형제들이 모든 힘을 다해 버텨야 한다!”

믿을 만한 사람은 이런 그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초왕이 솔선수범을 보이자 사병과 일꾼들도 곧장 기운을 차리고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신념만 있으면 어떤 난관도 헤쳐 나갈 수 있는 법이었다. 주저앉은 이들도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아갔다.

조자명과 유 시랑은 그의 모습이 존경스러웠을 뿐만 아니라 황송하기까지 했다. 잠시 후, 상황이 안정을 찾자 그들은 서둘러 묵용감이 뭍으로 오길 청했다.

“왕야, 천금 같은 옥체로 이런 일을 직접 하시다니요, 어서 올라오십시오. 생강차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소인들은 왕야께서 몸소 행하신 모습에 깊이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으시는 모습은 모두의 귀감이 될 것입니다. 이제 어서 뭍으로 올라오십시오!”

묵용감이 차갑게 그들을 흘겨보며 말했다.

“수리사水利司의 모든 이들에게 대기하고 있으라 전하거라. 오늘 이 제방이 무너지거든 본왕이 그들의 목을 벨 것이니. 본왕은 몸소 행동할 수 있지만 그들은 아닌 듯하구나.”

조자명이 명을 받들고는 묵용감을 모셔 올 사람을 내려보내 재차 그를 설득했지만, 초왕은 동요하지 않고 물 위에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결국 다른 방도가 없던 조자명과 유 시랑도 물가에 내려가 그의 옆을 지켰다.

잠시 후, 수리사 소속 인원들이 비를 뚫고 달려왔다. 초왕과 사병들이 물에 들어가 서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그들은 옷차림을 고쳐 입었다. 그리고 하나 둘 물에 뛰어 들어가 인간 장벽을 더욱 두껍게 보강했다.

물살이 점차 약해지자 묵용감은 모래주머니를 만들라는 명을 내렸고, 이윽고 높고 단단한 제방을 만들었다. 드디어 제방에 가로막힌 물길이 갈 길을 잃었고 상황은 안정을 되찾았다.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비가 그쳤다. 묵용감은 곧장 돌아가지 않고 군영에서 사병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그는 고귀한 신분이었지만 오랜 기간 무관으로 지냈기 때문에 그다지 격식을 따지지 않았다. 그는 잔뜩 먹고 마시며 그의 방식대로 저녁을 즐겼지만, 시종일관 냉담한 표정과 위엄 있는 모습에 몇몇 관리를 제외한 나머지 부하들은 감히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다.

그는 거의 이경二更이 다 되어서야 가동과 영구를 거느리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안으로 들어서니 학평관이 크게 당황한 기색으로 그에게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왕야, 큰일 났습니다. 남월각에서 또 사람이 죽었습니다.”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묵용감이 날카롭게 물었다.

“누가 죽었느냐?”

“백 승상 댁에서 왕비 마마와 함께 이곳으로 온 시녀 청매가 죽었사옵니다.”

그가 숨을 깊게 내쉬며 되물었다.

“왕비는?”

“왕비 마마께서는 남월각에 계십니다만…….”

학평관이 조심스레 그의 안색을 살피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왕야, 우선 방으로 돌아가시어 옷부터 갈아입으시지요. 소인이 천천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묵용감이 미간을 찌푸렸다.

“할 말이 있거든 당장 하거라.”

“그것이… 사인이 독살인지라 소인이 남월각을 수색하라 분부를 내렸습니다. 헌데 왕비 마마의 방에서 독약이 발견되었습니다.”

묵용감의 미간이 더 심하게 구겨졌다.

“네 말은 왕비가 독살을 했다는 것이냐? 왕비가 왜?”

“그것이… 청매가 쇠귀뚜라미를 죽이는 바람에 왕비 마마께서 화가 많이 나셨고, 하마터면 싸움이 날 뻔했다 하옵니다. 소인도 그 뒷일까지는 잘 모르옵니다.”

“그래서 왕비를 가둔 것이냐?”

“소인이 어찌 감히…….”

학평관이 허리를 더욱 깊이 숙이며 말했다.

“남월각의 두 유모가 청매의 억울함을 풀어 달라고 야단을 피우는 통에 혹여 왕비 마마께서 무슨 해라도 당하실까 걱정이 되어 왕비 마마의 방 앞을 지킬 사람을 보내 둔 것입니다.”

묵용감이 외투를 벗어 가동에게 넘기더니 곧장 후원으로 향했다. 학평관이 그의 뒤를 따르며 소리쳤다.

“왕야, 우선 옷부터 갈아입으시지요. 병이 나실까 염려되옵니다!”

묵용감은 들은 체 만 체하며 서둘러 앞으로 향했다. 세찬 물살과 한바탕 전쟁까지 치른 몸인데 이 정도 젖은 옷쯤이야 별것도 아니었다.

남월각에 다다르니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특히 날카로운 목소리를 가진 자가 유독 소란을 피워 댔다.

“고작 그런 일로 사람 목숨을 앗아 가다니, 이게 사람이 할 짓이랍니까? 무려 승상 가문의 아가씨가 이리도 악독한 짓을 하다니요! 승상께서는 한없이 너그러우시고, 마님께서도 그렇게 자비로우신데! 그런 집안에서 천하디 천한 짓을 하는 자가 나오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시집오기 전의 악랄한 버릇을 지금까지도 버리지 못하시다니요. 아무리 계집종이 천한 목숨이라지만 누구에게는 천금 같은 자식일 텐데, 자식 잃은 부모는 여생을 어찌 살라고 독을 타 목숨을 해한단 말입니까!

먼저 떠난 두 명도 보나 마나 뻔한 일이겠지요. 그래도 왕야께서는 공정한 분이시니 증거가 나온 이상 청매의 원한을 지켜만 보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이고, 이 불쌍한 계집애…….”

그녀는 소리를 지르며 곡소리를 쥐어짰다.

묵용감이 방 안으로 들어서자 소란스럽던 상황이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다들 멀뚱히 그를 바라보느라 예를 갖추는 것도 잊은 듯했다.

학평관이 그들을 향해 호통쳤다.

“다들 넋을 놓고 무엇을 하는 것이냐! 왕야를 뵈었는데 인사를 올리지 않고.”

그제야 하나둘씩 왕야에게 인사를 올리기 시작했다. 묵용감이 눈물을 닦고 있는 이에게 가까이 다가가니 그 앞 탁자에 청매라는 아이가 엎드려 죽어 있었다. 코와 입가에 탁한 피를 흘린 흔적과 어두운 안색을 보니 분명 독살이었다.

날카로운 목소리의 주인공은 유모 제씨였다. 그녀는 다시 울음을 쥐어짜기 시작했다.

“왕야, 청매의 한을 풀어 주시옵소서!”

묵용감의 시선이 차갑게 그녀를 훑었다. 유모 제씨는 심장이 오그라드는 느낌에 더 이상 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의 뒤를 따르던 학평관이 입을 열었다.

“통곡할 것 없네. 왕야를 속일 수는 없는 법이니, 조사를 진행하면 명백히 드러날 것이네.”

묵용감이 탁자에 놓인 흰색 도자기 병을 보며 물었다.

“이게 왕비의 방에서 나온 것이냐?”

“예, 왕야.”

“누가 찾아내었느냐?”

평범한 질문이었지만 학평관이 몸을 덜덜 떨며 대답했다.

“왕야께 아룁니다. 소인이 왕비 마마의 방을 찾아보라 분부하였고, 방을 수색하던 머슴이 찾아낸 것이옵니다.”

“왕비의 방에 독약이 있을 거라는 건 어찌 안 것이냐?”

학평관이 고개를 더욱 깊이 숙이며 답했다.

“모든 이의 방을 수색한 것이옵니다.”

“방 안의 어느 곳에서 찾은 것이냐?”

“침대 밑에서 찾은 것입니다. 왕비 마마께서는 침대 아래에 많은 물건을 숨겨 두셨는데 이 병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왕비도 인정한 것이냐?”

“왕비 마마께서 말씀하시길, 이 병은 왕비 마마의 것이 맞지만, 그 안에 든 약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묵용감이 냉소를 지으며 물었다.

“참으로 재미있구나. 병은 자신의 것인데 안에 든 것은 아니라니. 다른 이가 집어넣기라도 했단 말인가?”

학평관은 어찌 답해야 할지 몰라 쭈뼛거리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묵용감이 방을 둘러보며 물었다.

“어째서 이곳에 죽어 있는 것이냐?”

유모 제씨가 앞으로 다가와 말했다.

“왕야께 아룁니다. 청매는 이 접시에 있는 과자를 먹고 몸에 독이 퍼진 것이옵니다.”

묵용감이 접시에 담긴 과자를 바라보았다. 노란 반죽 위에 깨가 뿌려져 있는 먹음직한 모양새였다.

“이 과자는 어디서 난 것이냐?”

“앞뜰 부엌에서 왕비 마마께 보내온 것입니다. 소인이 여기에 잠시 놓아두었다가 왕비 마마께서 돌아오시자마자 가져다드렸습니다. 그런데 방금 막 점심을 드셨다며 더는 드실 수 없다고 거절하셨지요. 그리고 곧장 방으로 들어가셔서 쇠귀뚜라미가 죽은 걸 발견하시고는 잔뜩 성을 내시며 누구의 짓이냐고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청매가 뚜껑을 닫다 실수로 귀뚜라미를 죽였다고 털어놓자 왕비 마마께서 청매를 때리며 욕을 하셨습니다. 소인이 겨우겨우 떼어 놓았을 정도로 무섭게 때리셨지요. 그리고는 이 과자가 든 접시를 들고 방에 들어가시더니 저녁이 되어서야 다시 들고 나오셨습니다. 몇 개는 이미 드셨는지, 과자의 개수가 줄어 있었습니다.

왕비 마마께서 갑자기 낯빛을 바꾸시고 청매에게 사과를 하시더니, 과자를 상으로 내리셨습니다. 의심 없이 과자를 집어 먹은 청매는 별안간 이렇게 쓰러져서는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에 소인이 까무러치게 놀라 황급히 사람을 보내 총 관리인 어르신께 고한 것입니다.”

청매가 죽은 과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고하자 묵용감이 유모 제씨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 모든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기라도 한 것인가? 왕비가 독을 탄 것까지 직접 본 것 같구나.”

“아이고, 왕야. 소인은 진심을 다해 왕비 마마를 모신 것뿐이옵니다. 왕비 마마께서 돌아오시면 소인이 곧장 왕비 마마의 시중을 드니 알 수 있던 것이지요.

솔직히 말씀을 드리면 저희 왕비 마마께서는 괴상한 성격이라 도통 곁을 안 주십니다. 평소에 시녀도 유모도 없이 늘 홀로 다니시지요. 친정에 계실 때부터 그렇게 별나게 구시는 바람에 지난 세월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지 입에 담을 수도 없을 정도입니다.

시집을 오신 후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람이 죽어나가니 소인은 참으로 두렵습니다. 지금껏 평안하게 살아왔는데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왕야께서 부디 공정하게 굽어보시어 청매의 한을 씻어 주시옵소서.”

“본왕이 공정하지 않게 왕비의 편을 든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냐?”

“소인이 어찌 감히…….”

유모 제씨는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고개를 숙인 채 두려움에 떨었다.

궁금한 질문을 얼추 끝낸 묵용감이 영구에게 눈짓을 보냈다. 영구는 사건의 경위를 파악하는 데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 분명 다른 이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었다.

묵용감은 아무도 따르지 말라 명을 내린 뒤, 홀로 백천범의 방에 들어갔다. 문을 열자 침대에 누운 어린 계집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천천히 다가가던 그가 돌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예상과는 달리 백천범은 이불을 둘둘 감고 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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