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9화 남다른 아이들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요요는 감금화를 마음에 둔 뒤, 그를 곁에 두기 위해 감금화를 괴롭히기 좋아하는 형 몇 명을 호되게 혼냈다.
일이 커지는 게 싫은데다가 용수는 딸의 신분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감진더러 감금화를 데려오라고 했다.
요요는 어렵지 않게 감금화를 곁에 둘 수 있게 되었다.
세가의 서자는 원래 지위가 낮아서 적자의 괴롭힘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감금화의 생모도 그리 훌륭한 사람이 못되었다.
그녀는 매일 치장하고 남편의 총애를 다툴 줄만 알지 아이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승상인 감진이 서자를 데려간 것에 대해 이의를 품을 사람이 없었다.
그리하여 일이 쉽게 해결된 것이다.
용수는 이번 일로 딸에게 반독 몇 명을 붙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요요를 어려서부터 태자의 기준으로 키우려고 마음먹었기에 나이가 비슷한 아이를 빨리 찾아야 했다.
동제에서 보름 동안 지낸 뒤, 네 식구는 다시 돌아갔다.
두 형제는 사이가 너무 가까운 것은 아니었다. 누나인 요요가 차가운 성미라 다가가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남동생은 잘 웃고 말하기도 좋아하는 것이 세 살짜리 아이다웠다. 황자는 누나의 싸늘한 성격에도 상처받지 않고 곧잘 지냈다.
야홍릉이 피곤할까 걱정한 용수는 먼저 목국에 돌아가기로 했다.
용수는 딸과 함께 목국에 한 달간 머무른 뒤, 다시 남성국으로 돌아갔다.
홍제 오 년, 가을.
용수는 헌원자롱을 태자로 임명한다는 성지를 내렸다. 그렇게 남성국 역사상 최초로 공주가 태자로 책봉되었다.
그리고 용수는 공주의 반독을 뽑는다는 조서를 내렸다.
성별 상관없이 학식, 외모, 품행이 뛰어난 세 살에서 일곱 살 아이를 모집한다고 했다.
황제의 유일한 딸이자 남성국의 후계자가 될 공주의 반독은 가장 뜨거운 화제였다.
반독은 황부와 달랐다.
공주와 사이가 좋다면 앞으로 성인이 된 뒤, 향후 황제의 심복이 되어 중요한 대신의 자리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공부를 하기 좋아하지 않는 아이라고 해도 공주의 옆으로 보내진다면 규칙의 속박으로 인해 나쁜 버릇을 고치고 반듯해질 수도 있었다.
조정 대신들은 적령기 아들이나 손자를 공주의 옆으로 보내려고 갖은 애를 썼다.
그래서 공주의 반독 선발전은 황제의 비빈 간택보다 규모가 작지 않았다.
제경의 모든 세가의 자제를 비롯하여 다른 성의 적령기 아이들까지 모두 몰려들었던 것이다.
최종적으로 요구에 부합된 사람만 해도 수백 명에 달했다.
공주는 까다롭게 골라서 모두 열 명을 들였다.
그중 남자아이는 여덟 명이었고 여자아이는 두 명이었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수였다. 그리고 감금화까지 들이자 열두 명이 되었다.
헌원자롱의 태자 인생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남성국 공주 헌원자롱은 일곱 살이 되자 스스로 자신의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과묵한 성격이었지만 반독들과는 사이좋게 지냈다.
열 명이 넘는 아이들은 모두 공주의 성격을 알고 있기에 글공부와 무공에 열심히 임하며 공주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았다.
공주는 열의가 대단했다. 하루 종일 수업이 꽉 차 있었다. 문무 수업을 제외하고 다른 특장 수업도 있었다.
고금, 바둑, 서예, 그림, 시, 술, 꽃꽂이, 다예 등이었다.
그것 말고도 병법이나 기문둔갑 수업도 있었다.
반독들은 이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골라서 공부할 수 있으나 적어도 한 가지를 능통하게 다뤄야 했다.
공주도 배웠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른 반독들도 할 수 있게 요구했다.
요구에 못 미치는 반독들에게는 엄하게 벌을 주었다.
공주와 반독들이 나이가 어리다고 매일 놀러만 다니는 줄로 안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열두 명의 아이는 궁에서 더없이 조용하고 충실한 나날을 보냈다.
그들은 황제인 용수보다도 더 바빴다.
용수는 짬이 나면 가끔씩 딸을 보러 오고는 했다.
그러다 딸과 반독이 함께 앉아 바둑이라도 두는 모습을 보면 아이답지 않게 진지하다는 것을 느꼈다.
기분이 좋을 때면 헌원자롱은 고금을 타거나 검무를 추기도 했다.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잘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연습양에 따라 실력이 점점 느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바둑이나, 고금, 다예나 검술은 모두 시간이 필요한 재능이었다.
서투르게 시작해서 조금씩 연구하고 연습하다 보면 언젠가는 실력이 크게 늘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 다시 가을이 되었다.
야홍릉은 아들과 함께 보름 동안 길을 나서서 남성국에 도착했다.
이별 끝에 재회한 네 가족이었다.
칠 년 동안 두 나라의 대신들은 자신의 황제가 몇 개월씩 사라지는 것에 익숙해졌다.
서로 목국과 남성국을 오가다 보니 이별은 더 이상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두 황제는 사람을 보는 안목이 탁월하기에 심복들에게 정무를 맡기고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둘은 종종 이렇게 만남을 즐겼다.
목국의 상황은 그나마 나았다. 대신들은 남존여비 사상이 투철한데다 강한 남성국에 기가 눌려 야홍릉더러 황부를 들이라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저 어린 여식이나 손녀가 있는 세가에서 이후 황자의 비로 들여보낼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다였다.
그러나 헌원용수가 있는 남성국은 좀 골치 아픈 상황이 자주 일어났다.
남성국은 부강하기에 그들은 목국의 황제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황제가 후궁을 들이지 않고 황제의 슬하에 공주 한 명밖에 없는 것을 보고 그들은 황제의 자제가 적다는 것을 핑계로 여러 번 비빈 간택을 하도록 제안했다.
황제더러 자제를 많이 낳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용수는 그런 제안을 가차 없이 거절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대신들도 서서히 포기하게 되었다.
그들은 이미 태자로 책봉된 공주와 공주 옆의 반독들을 보자 또 다른 꿍꿍이를 꾸몄다.
* * *
새벽 공기는 늘 그렇듯 시원하고 상쾌했다.
야신근은 마차의 문발을 열고 웅장한 궁문을 바라보았다. 아비를 쏙 빼닮은 얼굴에는 아버지와 누나를 볼 생각에 신난 표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야신근은 처음으로 남성국에 온 것이었다.
아이가 어려 야홍릉은 긴 시간이 필요한 남성국 행에 야신근을 데려오지 않았다.
네 식구가 여행을 간 경우를 제외하고 헌원용수가 목국에 가거나 야홍릉이 남성국에 갈 때에는 아이를 대동하지 않았다.
그래서 남성국의 대신들은 황제와 목국의 황제가 남녀 쌍둥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용수가 의도적으로 막은 탓에 칠년 전, 쌍둥이를 낳은 소식은 바로 막혔던 것이다.
남성국 대신들은 여태까지도 그들에게 아이가 한 명밖에 없는 줄로만 알았다.
조례를 마친 용수는 모자가 궁 밖에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 직접 맞이하러 떠났다.
키가 큰 아들을 보자 용수는 팔을 벌려 아들을 어깨 위에 앉히고 웃으며 물었다.
“요즘 공부를 잘하고 있느냐?”
“네.”
일곱 살 난 야신근이 대답했다. 아버지를 많이 본 것은 아니나 아이는 아버지를 아주 존경하고 따랐다.
“누님은 오지 않았습니까?”
용수가 웃으며 말했다.
“네 누님은 바쁘니, 이따 누님을 보러 가자꾸나.”
“요요는 뭐 하고 있느냐?”
야홍릉이 걸어오며 물었다. 부자가 함께 웃고 떠드는 따뜻한 모습에 그녀의 표정도 부드럽게 풀어졌다.
“정무를 보기라도 한다는 거냐?”
용수는 아들을 품에 안고 야홍릉과 함께 걸어가며 말했다.
“요요는 요즘 반독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수업도 많아 얼마나 바쁜지 모릅니다. 잠잘 때에나 좀 쉴 수 있습니다.”
야홍릉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요요는 겨우 일곱 살이지 않느냐?”
“일곱 살이 뭐 어때서요?”
용수는 웃으며 가볍게 말했다.
“아이들은 모두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부황이라고 해도 간섭할 수는 없지요.”
그는 고개를 돌리고 야홍릉의 얼굴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요요는 일반 아이들과 생각하는 게 다릅니다. 수업이 많은 것도 제가 강요한 게 아니라 아이의 생각입니다. 지금 요요는 자신의 일을 다 스스로 결정합니다. 제가 결정하고 싶어도 할 수 없지요. 게다가 반독들도 다 요요의 말을 듣는다니까요.”
용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야홍릉은 이 말에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요요는 남성국의 공주이자 태자인데 요요의 말을 듣지 않을 아이가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요요는 그녀의 성격을 닮았기에 또래 아이들은 감히 요요 앞에서 함부로 굴지 못할 것이다.
“누님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야신근이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이의 눈에는 존경의 빛이 역력했다.
“누님의 반독들도 다 대단한 사람이고요.”
용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아느냐?”
야홍릉도 궁금한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쌍둥이라고는 하지만 남성국과 목국이 멀리 떨어져 있어 둘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몇 번 본 적도 없었다.
“느낌이 그래요.”
야신근은 봄날의 햇살처럼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누님은 대단한 사람이에요.”
용수는 실소를 터뜨렸다.
“너희 남매는 통하는 게 있나 보구나.”
“네, 마음이 통해서 그렇습니다.”
야신근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님은 말을 많이 하지는 않으나 아주아주 대단한 사람입니다.”
야신근은 요요보다 아이다운 구석이 돋보였다.
칭찬하는 말도 아이답게 ‘대단하다’를 반복했다.
용수는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쌍둥이이고 같은 아비, 같은 어미에게서 같은 날에 태어난 아이인데 왜 성격이 이렇게 다르지?’
먼 길을 오느라 야홍릉과 야신근 모두 지쳐 있었다.
용수는 야홍릉과 야신근더러 목욕을 하게 한 뒤, 침전에서 쉬도록 준비했다.
용수는 아들을 시험해 보고 싶은 것인지 바둑을 펴며 물었다.
“아비와 한판 해보겠느냐?”
야신근은 고개를 끄덕이고 공손하게 대답했다.
“부황의 가르침을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용수는 미소를 지었다.
야신근은 제왕의 패기를 가지고 있지 않으나 어린 나이임에도 서글서글하고 군자의 기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성격이 좋다고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야신근은 성격이 부모를 닮지 않았으나 부모 못지않게 아주 똑똑했다.
집중하는 아이에게서 어른다운 진지한 모습이 보였다.
부자는 대결을 시작했다. 일곱 살 된 아이는 바둑 기술은 부황보다 못했지만 차분하게 바둑을 두는 모습을 보니 일반 아이들과 달랐다.
야홍릉은 옆의 탑에 기대앉아 부자가 진지하게 바둑을 두는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침전 안은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바둑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끝이 났다. 용수가 어린 아이를 괴롭힌 게 아니라 아들이 먼 길을 오느라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시간을 끌면서 머리를 쓰도록 하지 않고 깔끔하게 승부를 내버렸다.
용수는 사람을 불러 바둑판을 치우게 한 뒤, 일어서며 말했다.
“누님을 만나러 가자꾸나.”
“부황은 여기서 쉬십시오.”
야신근이 공손하게 예를 올리고는 웃으며 말했다.
“저 혼자 가면 됩니다. 누님을 놀라게 하고 싶거든요.”
용수는 멍하니 있다가 곧이어 실소를 터뜨렸다.
‘놀라게 하고 싶다? 그런데 요요는 놀라지 않을 거야.’
그러나 아들이 이렇게 말하자 그도 흔쾌히 요구를 들어줄 생각이었다.
그는 궁인에게 지시를 내렸다.
“황자를 모시고 자신궁에 가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