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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295)화 (296/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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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화 아름다운 자태

높은 북소리 속에서 남성국 최고 등급의 신사(神使) 호위대가 제사전에서 출발했다.

그들은 제사전과 신령의 인정을 받은 황후를 모시고 황궁으로 갔다.

빨간색 옷을 입은 금위군이 앞에서 길을 트자 그 뒤에서는 말 여덟 필이 따르고 있었다.

중간에는 열여섯 명의 사람이 화려한 가마를 들고 걷고 있었는데 속도는 그다지 빠르지 않았다.

하얀색 가마에서 미풍과 함께 옅은 향이 풍겼다.

면사가 드리워진 가마라 사람들은 황후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그녀가 입은 화려한 옷자락만 언뜻 볼 수 있었다.

어도 양옆에는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었으나 누구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마치 다들 압도적인 분위기에 눌린 듯했다.

제사전이 최고 의식을 치르며 호송하는 장면은 장엄하고 숙연했다.

사람들은 신령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가마가 가까워지자 어도 양옆을 지키던 어림군들이 무릎을 꿇고 높게 외쳤다.

“황후마마 천세, 천세, 천천세!”

그제야 사람들도 정신을 차리고 덩달아 높이 외쳤다.

“황후마마 천세, 천세, 천천세!”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황후마마! 황후마마! 여제 폐하, 여제 폐하!”

“황후마마 천세, 천세, 천천세!”

“황후마마 천세, 천세, 천천세!”

“황후마마 천세, 천세, 천천세!”

높이 외치는 목소리와 무릎을 꿇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호위대는 여전히 황궁으로 걸어갔다.

북소리와 폭죽을 터뜨리는 소리가 귀청을 찔렀다.

궁문이 활짝 열리고 금위군이 그들을 맞이했다.

황제를 대표하는 의장대(儀仗隊)는 이미 황궁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말들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화려한 마차가 정문에서 멈춰 섰다.

한 소녀가 문발을 열자 그 틈으로 새하얀 손이 나왔다.

정려는 그 손을 잡고 야홍릉을 가마 안에서 부축해 내왔다.

가마에서 내린 야홍릉은 궁문 밖에 세워둔 황후의 난교(鑾轎)에 앉았다.

오늘은 혼례식 및 황후 책봉 대전이 동시에 열리는 날이었다.

혼례식이 먼저였다.

남성국 황제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베푼 온정과 존중에 다른 여인들은 부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봉황이 새겨진 난교 역시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금사로 짠 붉은 융단이 황궁 정문에서 천중전(千重殿)의 중앙 어화궁(禦華宮) 정전까지 펼쳐졌다.

수많은 금위군이 양쪽에 우뚝 서 있었다.

열 리 가까이 되는 예물 대오는 끝이 보이지 않게 늘어서 있었다.

수많은 빨간색 상자들이 끊임없이 황후의 난교를 따라 황궁으로 사라졌다.

“짐이 준비한 예물이 초라하지는 않지요?”

영린은 평소 평온하던 말투 대신 의기양양한 말투로 물었다.

“목국의 황제이시나 제 누님이기도 합니다. 누님이 출가하시는데 국고를 털어서라도 마련해야지요.”

이는 그가 진작부터 준비한 예물이었다.

그가 제국에서 출발할 때부터 사람을 시켜 예물을 준비하게 하고 남성국으로 보냈다. 야홍릉이 제사전에서부터 황궁으로 들어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예물 사자를 제사전으로 옮겼다.

그가 황위에서 물러나고 싶은지를 막론하고 남성국과 목국이 통혼하는데 제국의 황제는 당연히 그들과 사이를 잘 다져야 했다.

이래야 세 나라가 안정적으로 공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영린이 눈치껏 행동하는 것을 보자 제국의 신하들도 한시름을 놓았다.

파란색 경포를 입을 감진은 옆에서 따뜻한 눈빛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름다운 그의 얼굴에는 목국에서의 풍류스러운 분위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감진은 귀티 나는 명문가 공자의 분위기를 풍기며 우아한 자태로 서 있었다.

그가 남성국에 도착한 뒤로 궁중의 여인들을 그를 보고서 하나같이 수줍은 시선을 보내왔다. 옆에서 지켜보는 영린은 질투가 나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궁중의 사람들은 모두 영린이 제국의 황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영린이 아무리 잘생겼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감히 그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그러나 감진은 달랐다.

이미 성인이 된 감진은 우아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로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의 애정 어린 시선을 받았다.

의장대가 황후의 난교를 정전 계단 아래까지 호송했다.

영린은 높은 곳에 서서 전례 없이 화려한 혼례식을 지켜보고 있었다. 남성국 역사상 이처럼 성대한 혼례식을 치룬 적은 없었다. 세상 소녀들이 모두 꿈에 그리는 대단한 혼례식임은 틀림없었다.

난교가 멈춰 서자 혼례복을 입은 여인이 난교에서 걸어 나왔다.

눈부신 아침 햇살이 그녀의 싸늘한 얼굴을 비춰 주었다.

그녀는 고요한 눈빛으로 빨간색 옷을 입은 몸을 움직여 밖으로 나왔다.

금사로 짠 넓은 소매에서 고귀한 기품이 흘렀다. 빨간 보석이 박힌 옷깃과 길게 늘어진 옷자락이 화려함을 한층 더했다.

치맛자락에는 엄청난 가격을 자랑하는 빨간 보석들이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봉황이 날개를 펼치듯 눈부신 빛이 쏟아졌다.

사람들은 모두 멍하니 서서 아름다운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입고 있는 옷뿐 만 아니라 머리에 쓰고 있는 장식품 또한 일반적인 봉관(鳳冠)이 아닌 순금으로 만든 왕관이었다. 손바닥만 한 크기였는데 모양이 간단하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아 더없이 고귀한 분위기를 풍겼다.

순간, 야홍릉을 제외한 세상이 모두 빛을 잃은 듯, 사람들은 눈부신 그의 자태만 넋 놓고 바라보았다.

정전 안팎에는 수많은 하객과 남성국 대신들이 모여 있었다.

난교가 물러가자 야홍릉을 호송해 왔던 사람들은 옆으로 물러서서 무릎을 꿇었다.

계단 아래의 붉은 융단 위에는 야홍릉만 서 있었다.

아흔아홉 층의 계단을 황후 혼자서 올라야 했다.

야홍릉이 시선을 들자 헌원용수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온화한 미소로 그녀를 맞이하고 있었다.

용무늬가 새겨진 빨간색 용포를 입고 있는 그는 아름다워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야홍릉의 차가운 표정도 저도 모르게 부드럽게 풀어졌다.

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세상에 오직 둘밖에 남지 않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계단 위에서 조용히 기다려야 할 황제는 순식간에 날아와 야홍릉의 옆에 섰다.

용수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야홍릉의 손을 잡고 맹세했다.

“홍릉, 평생 절대 당신을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야홍릉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올리고 말했다.

“나도 같은 마음이야.”

사시(巳時, 오전 9시-11시)를 알리는 종이 멀리서 울려퍼졌다.

황제가 자리에 오를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소리였다.

“함께 가시죠.”

용수는 야홍릉의 손을 입가로 가져가 살며시 입을 맞췄다.

“내 사랑하는 아내여.”

그러다 또 한마디를 덧붙였다.

“내 황제 폐하.”

‘평생 한 번뿐인 내 사랑. 평생 한 명밖에 없을 내 아내.

나의 황제, 나의 여황 폐하여.

평생 당신에게 충성하고 모든 것을 당신에게 바치겠습니다.’

그의 말은 짧았으나 세상 그 어떤 말보다 달콤했다.

둘은 나란히 아흔아홉 개의 계단을 올라갔다.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남성국의 최고 권위자인 황제는 실제 행동으로 황후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과 존중을 증명했다.

야홍릉은 그가 첫눈에 반한 여인이자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여인이며 그가 전생에 운명을 거슬러서 다시 되찾아온 여인이었다.

야홍릉은 그가 평생의 시간을 들여 지키고 싶은 사랑이었다.

둘은 손을 잡고 대전으로 걸어갔다.

대신들은 숙연한 얼굴로 둘을 바라보았다.

야홍릉의 뒤에 길게 드리워진 빨간색 치맛자락이 눈부신 빛을 뿜었다.

계단 위에는 태상황과 태상황후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둘은 암홍색 옷을 입고 그들을 지켜보았다.

용수와 야홍릉은 태상황 앞에 서서 엄격한 절차대로 혼인 예식을 올렸다.

“일배천지(壹拜天地).”

예관의 높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용수는 야홍릉의 손을 잡은 채, 대전을 마주하여 서서 하늘에 절을 올렸다.

평생 도도하게만 살아온 둘은 무릎 꿇는 느낌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둘 모두 오만함을 내려놓고 절을 올렸다.

오늘은 황후 책봉 대전이자 그들의 혼롓날이기도 했다.

“이배고당(二拜高堂).”

둘은 일어서서 손을 잡은 채, 태상황과 태상황후에게 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태상황은 겉으로 미소를 띠고 있었으나 속으로 투덜거렸다.

‘황제나 되는 녀석이 굳이 일반 백성들이 혼례식을 하는 것처럼 해야겠어? 널 어찌하면 좋을까?’

그러나 그의 옆에 앉아 있는 태상황후는 자애로운 얼굴로 두 신인을 축복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기쁨에 잠겨 있었다.

마음속으로 이런 혼례식을 좋지 않게 보는 대신들도 겉으로 불만을 내색하지 않았다.

제왕의 일생 중 유일한 혼례식인데 누가 감히 황제의 심기를 건드리겠는가?

“신랑 신부 맞절.”

용수는 야홍릉을 부축하여 일어섰다. 둘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마주보고 미소를 지었다. 그 부드러운 미소에 대신들은 오글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폐하는 분명 과묵하고 딱딱하신 분인데 왜 목국 황제의 앞에만 서면 이렇게 되는 걸까?누구는 혼인을 안 해봤나? 지금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지만 몇 년, 십 몇 년 지나 봐. 그때도 지금처럼 마냥 좋기만 한지. 그때면 후궁에 비빈으로 가득할걸.’

둘은 진지하게 맞절을 했다.

“예를 마친다. 폐하와 황후는 손을 잡고 구중보전(九重寶殿)에 오르라!”

예관의 목소리와 함께 용수는 야홍릉을 부축해 일으키고 대전 밖으로 걸어갔다.

예관도 뒤에서 그들을 따랐다.

때는 이미 오시에 가까웠다. 궁중의 종소리가 또 울렸다.

사람들은 정신을 차렸다.

혼례식이 끝났던 것이다.

제왕은 황후의 손을 잡고 구중보전으로 올라가 사람들의 참배를 받았다.

대신들은 모두 대전을 나가 계단을 내려갔다.

용수는 야홍릉의 손을 잡은 채, 보전 계단을 올라갔다. 대신들은 모두 계단 아래에서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

구중보전은 황제와 황후만 오를 수 있는 자리였다.

용수와 야홍릉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지자 그들이 입고 있는 눈부신 빨간색 옷만 눈에 들어왔다.

둘은 그림 속에서 나온 신선처럼 범접할 수 없는 고귀한 분위기를 풍겼다.

반 시진 뒤.

황제와 황후는 궁에서 가장 높은 구중보전 위에 나타났다.

미풍에 옷깃이 흩날렸다.

둘은 손을 잡고 위에 우뚝 서 있었다.

아래에서 대신들이 높이 외쳤다.

“폐하, 만세! 황후 천세!”

“홍릉.”

용수는 야홍릉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그녀의 얼굴에 입을 맞추었다.

“우리가 드디어 남성국의 모든 이들 앞에서 부부가 되었습니다.”

야홍릉은 말없이 그의 옆에 서서 수만 명의 백성들을 내려다보았다.

예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다시 없을 성대한 대전이었다.

“폐하, 황후마마.”

예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직 절차가 남아 있습니다.”

황후 책봉 대전은 신령의 비호를 받고 있기에 또 제사전으로 가서 절을 해야 하고 역대 선조 황제들에게 절을 해야 하며 또……

용수가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피곤하십니까?”

야홍릉은 고개를 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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