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궐황도 (291)화 (292/301)

16676991398273.jpg 

291화 하늘의 뜻

아무래도 사람들의 인식이 공주를 황제로 삼기에는 문제가 많았다. 아직 남성국에서는 말이다.

태상황은 아이를 야홍릉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이번에 얼마나 있을 예정인가?”

이 질문은 의미심장했다.

한 나라의 국모이면서 후궁을 지키지 못하고 매일 조정에 얼굴을 드러내는 한편, 남자와 함께 나라를 다스리며 정무를 처리해야 했다.

용수와 야홍릉은 서로를 깊이 사랑하면서도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태상황은 이러는 게 참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이에게 스승을 붙여주었느냐?”

‘스승?’

용수는 입가를 실룩이며 대답했다.

“요요는 이제 한 살 좀 넘었습니다.”

태상황은 침묵했다.

‘너무 어리긴 하군.’

“묵백 대제사를 불러오너라. 직접 할 얘기가 있다.”

태상황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만약 정말 이 아이를 태자로 세울 거라면 너희는 당분은 아이를 가지지 말거라.”

용수도 당연히 알고 있는 점이었다.

만약 아들이 태어나기라도 한다면 요요의 태자 자리가 많이 위험해질 것이다.

용수는 야홍릉이 또 열 달 동안 임신하고 아이를 낳는 고통을 겪는 것이 싫었다.

세 식구는 청심전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태상황은 식사를 할 때도 눈을 요요에게서 떼지 못했다.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 아이였다.

요요는 처음부터 태상황과 시선을 마주치지도 않았다.

‘높은 산 위에 핀 꽃송이 같군…… 아이에게 쓰기는 적절하지 못한 건가? 이제 막 돌이 지난 아이가 이렇게 예쁘다니…… 아무리 봐도 귀엽네.’

점심식사를 마치고 용수와 야홍릉은 청심전을 나갔다.

태상황은 태자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기로 했다.

추석은 가족이 모이는 명절이었다.

용수는 궁에서 가족 연회를 주최했다.

황족 종친과 대신들을 불러 황후, 공주와 함께 식사를 하자는 취지였다.

요요를 본 사람들은 모두 아이의 예쁜 외모에 놀라는 한편, 싸늘한 눈빛에 당황했다.

다들 이 공주가 일반 아이보다 남다르다고 느꼈다.

연회는 떠들썩하고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사람들은 술잔을 들고 즐겁게 술을 마셨다.

연회는 해시까지 지속되었다.

용수가 연회의 끝을 알리려고 할 때,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저게 뭐지?”

사람들은 고개를 들었다.

오늘따라 보름달이 유난히 눈부신 빛을 뿜었다.

밤하늘이 대낮처럼 환해서 사람들은 달을 바라볼 수 없을 정도였다.

이때, 별똥별이 빛을 뿌리며 궁의 한 방향으로 날아갔다.

“저건…….”

누군가 눈을 가리며 입을 열었다.

“자신궁의 방향으로 간 것 같은데?”

“자신궁의 방향이 맞는 것 같아.”

“방금 전의 그 별 너무 밝았어. 꼭 마치 대낮 같았어.”

“어찌된 일이지?”

“이상 기후인가?”

“폐하께 아룁니다!”

이때, 다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금위군 통령이 뛰어와 무릎을 꿇었다.

“묵백 대제사께서 뵙기를 청하십니다!”

사람들은 경건한 표정을 지었다.

남성국 사람들은 신을 믿기에 제왕에 충성하고 제사전에 대해서도 경건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헌원용수가 다급히 말했다.

“얼른 뫼셔라.”

금위군은 대답하며 물러갔다.

하얀색 장포를 입은 묵백이 우아한 걸음으로 걸어왔다.

그는 허리를 살짝 숙이고 입을 열었다.

“폐하께 아룁니다. 신이 방금 별을 관찰하다 자미제성이 자신궁에 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당황할까 직접 해명하러 왔습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방금 전의 그 엄청난 빛을 뿌리던 별은 어찌 된 무엇입니까?”

용수가 물었다.

“자미제성입니다. 제왕이 계시는 위치를 보여주는 것이지요.”

‘뭐라고?’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자미제성? 방금 그 밝은 별이 바로 자미제성이라고? 황제가 있는 위치를 보여줘?’

누군가 짐작했다.

“황후마마를 가리킨 것은 아닐까요? 그분은 목국의 황제 폐하이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묵백은 고개를 저었다. 그의 말투에는 묘한 설득력이 담겨 있었다.

“자미제성이 가리킨 것은 자신궁의 공주 전하이십니다.”

‘뭐라고?’

사람들은 경악하며 믿을 수 없는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공주 전하가 자미제성이라고? 이게 무슨 말이야…….’

“대제사, 그게 사실입니까?”

용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짐의 여식은 이제 막 두 돌인데 이런 무거운 책임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공주는 이제 한 살이 넘었다.

게다가 여자아이였다.

‘대제사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닐까?’

묵백은 씩 웃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신은 대제사이니 제가 한 말은 남성국 백성은 물론이고 천하의 사람들에게 책임을 져야 합니다. 신은 절대 폐하와 천하의 백성들을 속일 수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거짓을 섞는다면 신령도 저를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지막 말에 종친들은 침묵에 잠겼다.

‘그래, 묵백은 신령의 뜻을 전하는 대제사잖아.’

만약 이 말을 다른 사람이 했다면 사람들은 누군가의 음모거나 수작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나 방금 별이 떨어지는 광경을 직접 목격한 그들은 묵백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묵백은 거짓말을 할 리도 없었다.

‘그러니 방금 별이 떨어진 것은 남성국도 앞으로 여제가 지배하는 세상이 될 거라는 말인가?’

너무나 놀라운 일이었다.

사람들은 아직 마음의 준비를 마치지 못했다.

연회는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경악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조용한 가운데 야홍릉이 입을 열었다.

“요요는 그저 아이일 뿐인데 종묘사직은 아이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나는…….”

“황후마마.”

묵백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마마께서는 남성국의 황후이시지만 목국의 황제이시기도 하지 않습니까? 폐하께서도 한 나라의 종묘사직을 감당하는데 공주 전하는 왜 안된다는 것입니까?”

“내가 목국의 황제이기의 황제가 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안다는 것이다. 내 딸은 충분한 부귀영화를 누릴 것이니 난 요요가 평생 걱정 없이 행복하게 지내기를 바랄 뿐, 나랏일과 정무에 파묻혀 힘들게 지내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묵백이 말했다.

“그러나 하늘의 뜻이 이러니 황후마마도 바꿀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묵백의 발언에 흠칫 놀랐다.

‘대제사는 지금 황후마마의 말에 대드는 건가?’

그들은 살기를 느꼈다.

방금까지 공주의 운명에 의심을 품고 있던 사람들은 지금 모두 황후와 대제사가 싸울까 걱정했다. 그들은 속으로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황후마마라고 해도 억지를 부리시면 안 되지. 묵백 대제사의 말이 틀린 건 아니잖아. 하늘의 뜻은 황제도 바꾸지 못한다고. 그리고 한 나라의 황제가 되면 정무 때문에 바쁜 것은 당연하지. 황제가 종묘사직을 걱정하고 백성들을 보살피며 나랏일을 하는 것보다 더 당연한 일이 어디 있어?

그러나 황후마마께서 걱정하실 만도 해.

공주 전하는 편하게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 수도 있는 운명인데 이제 한 살 된 아이한테 이렇게 무거운 짐이 얹어진다는 것은 좀 불쌍하지. 어머니가 아이를 걱정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야.’

“이 일은 작은 일이 아니니 짐이 좀 생각해보겠습니다.”

용수가 말했다.

야홍릉은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폐하께서도 이렇게 어린아이가 황제가 될 운명이라고 여기신다면 전 요요를 데리고 목국에 돌아가겠습니다. 목국에는 이미 제가 황제가 된 선례가 있으니 차기 황제의 자리에 여인이 오르는 것 역시 큰 반대가 없을 것입니다.”

“황후마마의 뜻은 남성국의 대신들은 반대할 거라는 말씀입니까? 만약 이게 신령님의 뜻이라면 저희는 절대 반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 종친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폐하께서 이미 공주를 신 공주로 책봉하셨습니다. 그리고 공주의 성씨도 헌원씨인데 황후마마께서 어찌 제멋대로 공주 전하를 데려가실 수 있겠습니까?”

야홍릉은 담담하나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내 아이인데 아이의 운명을 당신들에게 맡기라는 말인가?”

종친은 말문이 막혔다. 그는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헌원 황족의 공주이니 공주의 운명은 당연히 헌원 황족이 정하지.’

그러나 야홍릉은 남성국의 황후인 동시에 목국의 황제이자 남성국의 손님이기도 했다.

이런 특별한 신분 때문에 그는 야홍릉을 무례하게 대할 수 없었다.

게다가 황제가 야홍릉을 얼마나 아끼는지 그들도 아는데 어찌 감히 황제의 앞에서 황후에게 무례를 범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종친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아닙니다, 황후마마.”

“공주의 운명은 그래도 제사전의 말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헌원용수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그는 야홍릉의 편을 들지도, 종친의 역성을 들지도 않고 묵백에게 말했다.

“대제사는 짐이 어떻게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묵백은 침묵을 지키다 말했다.

“공주 전하는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명제녀입니다. 앞으로 천하의 백성들과 모든 땅이 공주 전하의 소유로 될 것입니다. 현재까지 남성국이 가장 강하니 공주 전하께는 남성국이 가장 어울립니다…….”

“대제사의 말이 틀렸네.”

야홍릉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공주가 정말 하늘이 내린 자미제성이라면 성 하나를 다스리더라도 눈부신 활약을 할 것이다. 강대국인 남성국에 있으면서 남성국의 병사들을 이용해 천하를 통일시킨다면 그건 요요의 진정한 능력이라고 볼 수 없지.”

맞는 말이었다.

종친들과 대신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황후마마의 말씀에 일리가 있습니다.”

묵백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천하를 통일시킨다는 것은 사람들이 많이 죽어 나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쟁은 원래도 잔인한 것이지요. 공주 전하는 자미제성이어서 앞으로 다른 나라까지 통일시킬 운명인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아주 굴곡지고 힘듦의 연속이지요. 시간을 끌수록 전쟁 때문에 피해를 입는 백성들도 늘어날 것이고요.

남성국은 병사들이 강하고 경제가 부유하며 지역이 넓습니다. 만약 공주 전하가 남성국의 황제가 된다면 천하를 통일하는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전쟁으로 인한 피해도 적게 볼 것이고 백성들도 편하고 부유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묵백은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황후마마께서 전쟁 피해가 심할 것을 알면서 왜 공주 전하는 꼭 천하를 통일시킬 것이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천하를 포기하고 전쟁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되냐고요? 그러나 하늘이 정한 운명은 사람이 바꿀 수 없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운명이 이러하니 사람은 그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말이 종친과 대신들의 귀에 들어갔다. 그들은 저도 모르게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래, 하늘이 정한 운명이 그러한데 우리가 무슨 자격으로 하늘과 대항하겠어?

공주 전하가 남성국의 황제로 된다면 앞으로 천하가 남성국의 소유가 된다잖아?

만약 공주 전하를 목국에 돌려보낸다면 앞으로 천하는 목국의 소유가 되지 않을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