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화 성격이 너무 이상해
용수는 궁인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 공자를 집으로 돌려보내거라.”
남자아이는 안색이 변하며 아쉬운 얼굴로 요요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방금까지 그에게 말을 걸던 요요는 지금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곧 남자아이는 궁인과 함께 궁을 나갔다.
용수는 요요를 안고서 야홍릉의 옆에 앉았다.
“요요는 같이 놀아줄 친구가 필요한 걸까요?”
야홍릉은 딸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이의 속마음을 짐작할 수 없었다.
요요는 부모의 마음도 모른 채, 용수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놀았다.
“요요는 아직 너무 어립니다. 말도 제대로 하고 길도 잘 걸을 수 있으면 반독(伴讀, 황족이나 귀족 아이와 함께 공부하는 아이) 몇 명을 붙여줍시다.”
용수는 탑에 기댄 채, 딸이 머리카락을 놀게 내버려 두고는 야홍릉에게 말을 꺼냈다.
“앞으로 황제가 될 아이니 벗이 많은 것도 좋습니다. 함께 글공부도 하고 놀기도 하면서 어렸을 때부터 정을 쌓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 그 아이들이 커서도 요요의 심복이 될 것이지 않습니까? 어렸을 때부터 쌓은 정이 순수하니 앞으로 쉽게 다른 마음을 먹지 않을 거고요.”
요요는 여전히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야홍릉은 침묵을 지켰다. 그녀는 용수의 결정에 간섭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용수는 야홍릉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자 욕정이 끓어올랐다.
그는 정려를 불러서 요요를 내보내게 했다.
“공주를 데리고 좀 놀다 오거라.”
눈치 빠른 정려는 공손하게 예를 올리고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침궁을 나갔다.
사람들이 모두 나가자 용수는 야홍릉의 옆으로 자리를 슬쩍 옮기며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동안 제가 그립지 않으셨습니까?”
“당연한 소리를.”
야홍릉은 용수의 턱을 치켜들고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네가 그립지 않으면 내가 심심해서 이 먼 거리를 왔을 거라고 생각하냐?”
용수는 기분 좋은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야홍릉을 번쩍 안아 들고서 내전으로 향했다.
“아직 목욕을 마치지 못했는데…….”
“어젯밤에 하지 않았습니까?”
용수는 야홍릉의 목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이따 또 해야할 텐데요.”
야홍릉은 미간을 찌푸렸다.
“목욕 먼저.”
용수는 멈칫했다. 그리고는 한숨을 내쉰 뒤, 야홍릉을 안고 편전의 욕지로 향했다.
야홍릉은 힘이 바짝 들어간 그의 몸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용수의 입술에 입을 맞추며 그를 다독여주었다. 야홍릉이 옷을 벗고 욕지로 들어가자마자 용수는 그녀를 욕지 벽에 밀쳤다.
뜨거운 정사가 시작되었다.
떨어져 있는 것도 일 년이 넘는 사백일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그들은 얼마나 많은 밤을 외롭게 보냈던가?
뜨거운 입맞춤이 난폭하게 변했다.
야홍릉은 수줍음을 타지 않고 용수에게 적극 협조했다. 둘은 욕지에서 뜨겁게 한 몸이 되었다.
꽃송이가 떠 있는 욕지 물은 격렬한 움직임에 물보라를 일었다. 둘의 이마에서도 굵은 땀방울이 덜어졌다. 둘은 그동안 쌓인 욕정을 한 번에 풀기라도 하듯 미친 듯이 운우지정을 나눴다.
오래된 여정에 피곤하던 몸이 갑자기 생기를 되찾은 듯, 체력이 강해졌다.
온천의 물은 산에서 끌어온 활수라서 꾸루룩거리며 끊임없이 새 물줄기가 흘러들었다. 둘은 물속에서 수도 없이 정사를 나눴지만 욕지의 물은 여전히 맑았다.
정사를 마친 용수는 야홍릉의 어깨에 기대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동안 매일 애비가 그리웠습니다. 어쩌다 가끔씩 한가해질 때면 이성을 잃을 것 같았지요. 그때면 막 해동청이라도 타고 목국에 가서 애비를 보고 싶었습니다.”
‘해동청?’
야홍릉은 조용히 욕지를 바라보다가 시큰거리는 몸을 움직이며 담담하게 말했다.
“해동청을 묵백에게 맡겨 신기를 불어넣으라고 하거라. 어쩌면 해동청이 신수(神獸, 신기를 가진 짐승)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
정말 신수로 된다면 용수를 태우고 목국을 가는 것은 물론이고, 세상 곳곳에서 마음껏 날아다닐 수 있었다.
용수는 멍하니 있다가 곧이어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야홍릉의 얼굴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묵백이 이 말을 듣는다면 화가 나서 집을 뛰쳐나갈 것입니다.”
‘해동청을 신수로 만들라고? 상상력도 참 풍부하시지.’
야홍릉은 침묵을 지키다 입을 열었다.
“요요가 성격이 이상해서 걱정이구나.”
“뭐가 이상하다는 것입니까?”
용수는 딸이 뭐든 좋았다.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예쁘고 똑똑하고 성미도 특별하지요. 제왕의 위엄을 가지고 있기에 좀 남다른 것입니다. 타고 나기를 황제인 아이더러 일반 가문의 아이처럼 평범하기를 바라면 안 되지요.”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용수의 말을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그녀도 마음속으로 요요가 뭐든 다 뛰어나고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아무리 제왕 가문의 아이라고 해도 자라기 전까지는 그냥 아이였다.
아이가 아이답게 감정이 있어야지 어른보다 더 차분하고 차가운 게 마음에 걸렸다.
야홍릉은 당분간 궁에 머물기로 했다. 남성국 사람들은 모두 그녀가 곧 목국으로 돌아갈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남성국 역사상 가장 특별한 황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태상황은 청심전(淸心殿)에서 며칠이나 기다렸다. 목국의 황제가 남성국에 왔다는 소식을 진작 들었지만 용수가 그녀를 데려오지 않자 답답한 마음으로 기다리기만 했다. 이날도 아침부터 기다렸으나 조례가 끝난 지 한참 지나도 용수를 보지 못했다.
결국 그는 화를 냈다.
“이런 고얀 놈! 황제가 된 뒤 고집만 강해져서는. 이 할아비가 안중에 있기는 하냐는 말이다.”
궁인들은 다급히 그를 진정시켰다.
“당장 튀어 오라고 하여라!”
태상황은 화를 펄펄 내다가 누그러진 말투로 말했다.
“내 증손녀도 데려오라고 이르거라!”
궁인은 다급히 황제에게 가서 태상황의 뜻을 전했다. 이제 막 조례를 끝낸 용수는 자신궁으로 돌아가 딸을 안았다.
궁인의 말을 들으면서 용수는 품에 안긴 아기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태상황은 요즘 기분이 좋지 않았다.
용수에게 사기당했다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용수가 처음 목국의 호국 공주를 좋아한다고 했을 때, 태상황은 그가 통혼의 명의로 목국을 삼키고 호국 공주와 함께 다른 나라들까지 합병시킬 줄 알았다.
심지어 그는 이러다 둘 사이에 금이 가는 게 아닐까 하고 걱정했다.
그러나 용수는 천하를 통일시키기는커녕 그럴 생각도 없었다.
그래서 지금처럼 삼국시대가 된 것이다.
게다가 용수는 목국으로 도망쳐 호국 공주를 황위에 올린다는 핑계로 목국에서 일 년 넘게 있었다. 황제인 자신의 직책 따위를 저 멀리 버려둔 셈이었다.
태상황은 화가 나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밥도 못 먹었다.
그는 용수를 흠씬 두들겨 패고 싶었다.
그러나 용수는 돌아와서는 열심히 정무에 힘썼다. 조정도 깔끔하게 다스리고 서릉도 삼키고 능력 있는 신하를 뽑고 중용하며 여인을 멀리하는 등 현명한 제왕의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태상황은 화를 내려다가 고생하는 손자를 보면 마음이 아파 참고 있었다.
‘하필이면 목국 공주를 좋아해서 지금은 천하를 통일시킬 야심도 없잖아. 매일같이 스님처럼 금욕생활이나 하면서. 참 이해가 안 가는 아이야.’
태상황이 화를 내며 대전에 앉아 있는데 궁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폐하와 황후마마께서 오셨습니다.”
‘황후마마?’
태상황은 웃음이 터졌다.
‘목국의 황제가 남성국의 황후로 남고 싶긴 하대?’
이때, 대전 밖에서 젊은 부부가 들어왔다.
늠름한 자태를 풍기는 둘은 하늘이 맺어준 완벽한 한 쌍이었다.
용수가 안고 있는 여자아이는 부모의 장점만 골라 닮은 어여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태상황은 아이를 보는 순간, 모든 화가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이 할아비가 안아보자꾸나.”
요요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힐끗 바라보았다. 아이는 늙은 태상황의 손길을 거부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웃지도 않았다.
요요의 반응은 어린 시절 용수처럼 차갑기 그지없었다.
태상황은 의아한 기분이 들어서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고 야홍릉을 바라보았다.
“아이가 낯을 가리나?”
‘낯을 가리는 게 아니면 왜 이렇게 뚱한 표정을 짓는 거지?’
“요요는 성미가 원래 이렇습니다. 제 앞에서나 어미 앞에서나 항상 같은 표정입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웃는 얼굴을 본 적이 없습니다.”
용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태상황은 그의 말을 듣고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요요를 바라보며 말했다.
“한 성깔 하는 아이구나.”
용수와 야홍릉은 서로 시선을 마주쳤다.
태상황은 요요의 남다른 성격이 특별하게 보여서 마음에 들었다.
‘크게 될 아이이니 일반 아이들과 다른 거겠지. 만약 황자였다면 천성적인 황제감인데.’
“묵백 대제사가 요요의 운명을 점쳤다고 하더군요.”
용수는 야홍릉을 이끌고 옆에 앉아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요요의 운명이 어떤지 아십니까?”
‘대제사가 요요의 운명을 점쳤다고?’
태상황은 침묵을 지켰다. 용수의 말에서 의미심장한 기운을 느꼈던 것이다.
“어떤 운명이냐?”
“자미제성이고 칠성의 보호를 받는다고 합니다.”
태상황은 깜짝 놀랐다.
“차기 자미제성이 여인이라는 말이냐?”
용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태상황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용수를 바라보았다.
“용수, 너 또 무슨 꿍꿍이냐?”
“제가 어찌 감히 할아버지를 속이겠습니까?”
용수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믿지 못하시겠으면 묵백 대제사를 부르거나 할아버지께서 직접 제사전에 가 보시지요. 그러면 알게 되실 것입니다.”
태상황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표정이 어둡게 변했다.
한참 뒤, 그는 눈을 내리깔고 품속의 아이를 바라보았다.
‘자미제성에 칠성의 보호를 받는다고……. 더없이 고귀한 운명이군. 앞으로 남성국은 공주의 손에 들어간다는 말인가?’
대전은 정적에 잠겼다.
태상황이 입을 열었다.
“요요야.”
요요는 그를 힐끗 보기만 할 뿐, 말을 하지 않았다.
“넌 아명이 요요이고 이름은 헌원자롱이란다.”
요요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태상황은 용수가 작년에 돌아오자마자 공주 헌원자롱을 신 공주로 책봉한 사실이 떠올랐다.
‘진작 준비를 하고 있었구나. 신 공주. 봉호에서도 귀티가 나는군.’
태상황도 열린 제왕이었다.
그랬기에 용수가 고집을 부릴 때도 그를 폐위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열린 사람이라고 해도 남성국의 차기 황제가 여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태상황은 요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보면 볼수록 요요가 특별하고 남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가 사내아이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만약 요요가 황자였다면 용수가 지금 바로 그를 태자로 책봉한다고 해도 태상황은 불만이 없었을 것이다.
2. 291화 하늘의 뜻 –5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