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9화 뭐라고?
그러나 용수는 요요가 자신의 딸이라서 그런지 뭘 해도 귀여웠다.
용수는 정려의 품에서 요요를 받아 안은 뒤, 담담하게 말했다.
“영리하고 순한 궁녀 몇 명을 불러 자신궁에서 공주를 보살피게 하여라.”
정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폐하.”
야홍릉은 자신궁의 배치를 살펴보았다.
이 년 만에 남성국에 온 것이지만 그녀는 용수의 영역에서 불편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성격이 그럴 수도 있었고 자신의 침궁과 너무나 닮은 궁의 모습에 익숙함을 느꼈을 수도 있었다.
용수는 그녀의 옆으로 가까이 다가가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번에 얼마나 오랫동안 머물다 있을 예정입니까?”
“연말 전에는 돌아가야지. 너무 오래 머무를 수는 없어.”
한번 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아들만 궁에 두고 온 게 마음에 걸려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네.”
용수는 침묵을 지키다 말했다.
“당분간은 힘들더라도 아이가 다 크면 걱정 없을 것입니다.”
야홍릉은 이곳에서 이삼 개월 있으면서 황후 책봉 대전도 할 예정이었다.
명분을 다 정하고 난 뒤, 연말 전에 돌아가면 이듬해 봄에 용수가 다시 목국에 갈 것이다.
그가 남성국에 일 년 넘게 있었으니 다져야 할 기반을 다 다진 상태였다.
서릉을 멸망시킨 뒤, 남성국의 신하와 백성들은 용수를 더욱 존경하고 따랐다.
헌원창도 남성국에 이름을 떨쳤다.
그의 옆에는 승상인 봉서오도 있었다.
용수의 옆에는 쓸만한 인재가 많았다.
용수의 중용을 받는 사람들이니 다들 평범하지 않았다.
용수는 내전으로 들어가 딸을 침대에 눕혔다. 고개를 숙이고 요요의 얼굴에 입을 맞추려는 순간, 요요가 눈을 번쩍 떴다.
보석 같은 눈은 예뻤지만 아이답지 않게 차분했다.
용수는 하던 행동을 멈칫하고 말없이 아이와 눈을 마주쳤다.
순간, 공기가 모두 멈춰버린 것 같았다.
그 순간, 용수는 왠지 요요가 자신을 심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착각이겠지.’
“우리 공주.”
용수는 딸이 놀랄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잘 잤느냐?”
요요는 일어나서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배고파.”
‘배고파?’
용수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기쁜 표정을 지었다.
이는 닷새 만에 딸이 처음으로 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여봐라, 음식을 준비하여라.”
그는 궁녀에게 지시를 내린 뒤, 다시 시선을 요요에게 돌렸다.
“음식을 준비하라고 할 테니 뭘 좋아하는지 아비에게 말해주렴…….”
“용수.”
옆에 서 있던 야홍릉이 입을 열었다.
“요요는 이제 한 살 좀 넘었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별로 없다고.”
‘그러네.’
용수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지만 기쁜 마음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그는 요요를 침대에서 안아 들며 말했다.
“이따 우리 먹을 거 뭐 있나 보자. 부황이 먼저 세수 시켜 주마.”
돌 지난 요요는 아버지의 팔에 안겨 이동했다.
아이의 얼굴에는 여전히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궁녀들이 식사를 준비하고 나자 용수도 마침 요요를 데리고 나왔다.
세 식구는 오붓하게 둘러앉아 식사를 즐겼다.
점심 식사가 끝난 뒤, 야홍릉은 요요를 데리고 자신궁에서 잠깐 낮잠을 잤다.
며칠 동안 흔들리는 마차를 탔더니 어린 요요는 피곤하기만 했다.
정려는 영리한 궁녀 몇 명을 데리고 조용히 나타났다.
그들은 야홍릉을 보자 예를 올린 뒤, 대전 안에서 아기 침대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침대의 테두리에는 분홍색 면사가 드리워져 있고 침대 천장에는 방울이 있어 귀엽게 느껴졌다.
저녁 무렵, 황족 종친 가문의 사람들이 황후를 보러 궁에 들어왔다.
황후를 책봉하는 대전을 정식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야홍릉이 남성국 황후가 된 것은 이미 확정된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황제는 이 황후를 위해 여태까지 다른 여인을 가까이하지도 않고 간택도 하지 않았다. 작년에는 아예 목국에 가서 일 년 남짓하게 머무르다 돌아왔다. 이로써 목국의 황제가 남성국 황제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알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면 황후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야홍릉이 남성국에 오랫동안 머무르지 않을 수 있지만 그래도 그녀를 대하는 태도를 남성국 황제가 볼 것이 아닌가?
요요가 깨자 야홍릉은 요요를 안고 사람들의 인사를 받으러 갔다.
황숙들과 그의 아내, 자식들, 세자, 세자비, 군왕, 군왕비, 군주까지 많이도 모였다.
헌원용수는 적손자의 신분으로 등극한 것이라 나이도 어렸다.
그래서 황족 종친들은 대다수 손윗사람이었다. 물론, 젊은이도 적지 않았다.
이때, 젊은 부부가 어느 남자아이를 데리고 들어왔다.
요요는 그 남자아이를 한참 바라보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쟤.”
대전의 사람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요요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처음만 해도 요요의 출신에 의심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요요의 얼굴을 본 순간, 모든 의심을 접고 말았다.
요요는 눈빛이나 표정이 야홍릉을 닮기는 했지만 눈매나 얼굴이 용수와 판박이였기 때문이었다.
요요는 완벽하게 부모의 장점만 골라 닮았다.
멀리서 보면 용수와 요요는 영락없는 부녀였다.
요요의 얼굴을 본 뒤, 누구도 아이의 핏줄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본 그들은 또 깜짝 놀랐다.
요요의 성격은 아기답지 않게 차분하고 싸늘했던 것이다.
그러나 목국의 호국 공주가 어렸을 때부터 차가운 사람이었다는 말을 듣자 그들은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요요는 성격이 어머니를 닮은 것이었다.
그런데 얼음처럼 차가운 요요 공주가 한 가문의 아이를 찍다니?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세 살 남짓한 나이인데도 눈에 띄도록 잘생긴 얼굴이었다.
그 아이는 공주의 종친 오라버니였다.
아이의 손을 잡고 있던 부부는 헌원 황족인 능왕(淩王)의 아들과 며느리였다.
공주를 본 부부는 다급히 아들을 앞으로 데려가며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공주 전하.”
그러나 요요는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아이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아이는 세 살이어서 아직 세상 물정을 잘 몰랐다. 그러나 공주를 바라보는 아이의 눈빛은 별처럼 반짝거렸다.
아이의 아버지는 황후의 눈치를 보며 아들을 떠밀었다.
“무릎을 꿇고 황후마마와 공주 전하에게 예를 올리거라.”
아이는 순순히 무릎을 꿇었다.
야홍릉이 말했다.
“예는 올리지 않아도 된다.”
젊은 남자는 공손하게 대답했다.
“황후마마, 감사합니다.”
“요요야.”
야홍릉은 고개를 숙이고 딸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 아이는 왜 부른 것이냐? 할 말이라도 있느냐?”
요요는 남자아이를 보면서 말했다.
“남으라고 해.”
‘남으라고?’
대전에 있던 종친들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왜 남으라는 거지?’
어린 공주는 목소리가 앳되지만 말투가 부드럽지 않았다.
요요는 지금 지시를 내리는 것이었다.
야홍릉은 남자아이를 힐끗 바라보고 다시 딸을 돌아보았다.
“이 아이가 남아서 놀아줬으면 좋겠다는 거냐?”
요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 아이는 너무 어리구나. 너도 어려서 당분간은 같이 놀 수 없단다.”
야홍릉이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젊은 부부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요요는 아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름이 무엇이냐?”
남자아이는 기분이 좋은지 앳된 목소리로 또박또박 대답했다.
“헌원전(軒轅展)입니다.”
요요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남아.”
공주의 태도는 아주 단호했다.
종친들은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공주가 왜 헌원전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이지? 이곳에서 유일한 또래라 그런가?’
야홍릉은 침묵을 지키다 젊은 부부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이를 궁에 며칠 묵게 둘 수 있나? 사람을 붙여 잘 보살필 테니 걱정하지 말게.”
젊은 부부는 야홍릉의 말을 듣자 기쁜 마음이 드는 한편 불안하기도 했다.
아들이 공주의 마음에 들어서 기쁘나 어린아이를 홀로 궁에 두기 불안했던 것이다.
그런데 공주가 지시를 내렸는데 그들이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는가?
“네, 물론입니다.”
야홍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마음을 헤아린 야홍릉이 담담하게 말했다.
“아이가 궁에 있는 동안 매일 궁으로 들어와 아이를 봐도 좋네. 아이가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면 바로 보낼 것이네.”
그러자 부부는 안심할 수 있었다. 그들은 다급히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감사합니다, 황후마마.”
다른 종친들의 표정도 미묘하게 변했다.
능왕의 가문은 조용하여 잘 나서지도 않았다.
가문에는 내로라하는 인재거나 무장도 없었다.
헌원용수가 등극한 뒤, 자신의 심복을 중용하자 나이 든 신하들도 서서히 은퇴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이를 빌미로 조정에 눌러앉아 이래라저래라하지 않았다.
헌원전의 부모는 종친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오늘 종친들이 모두 황후에게 인사하러 오지 않았다면 그들은 황후의 앞에 얼굴을 드러낼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들 덕에 황후와 말도 섞어본 것이다.
인사를 마친 뒤, 사람들은 모두 물러갔다.
야홍릉은 홀로 남은 남자아이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물었다.
“네가 헌원전이냐?”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요요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세 살 된 남자아이는 요요의 시선이 불편한지 고개를 숙였다.
요요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말했다.
“됐어, 돌아가.”
‘왜?’
야홍릉은 의아한 얼굴로 요요를 바라보았다.
“요요야, 네가 남으라고 했잖느냐?”
요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헌원전에게서 관심이 사라진 듯한 눈치였다.
야홍릉은 의미심장한 얼굴로 요요를 바라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시녀를 시켜 아이를 저택에 돌려보내려고 하는 순간,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용수가 여러 궁인과 함께 들어오고 있었다.
“왜 그래?”
용수는 자연스럽게 딸을 안으며 옆에 서 있는 남자아이를 바라보았다.
“이 아이는 누굽니까?”
야홍릉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너희 헌원씨 가문 아이다.”
용수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방금 궁인에게서 들은 상황이 떠오른 그는 야홍릉을 바라보며 물었다.
“애비에게 무례를 범한 사람은 없었습니까?”
“없었다.”
야홍릉은 고개를 젓고 남자아이에 관한 얘기를 했다.
“요요가 남으라고 했는데 어른들이 다 가자 또 아이더러 집으로 가라고 하더구나.”
용수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딸을 돌아보며 웃는 얼굴로 물었다.
“요요, 이 아이가 싫으냐?”
요요는 한결같이 싸늘한 표정으로 대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