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8화 걱정됩니다
목국의 황궁에 남아 있는 아들을 제외하고 일 년 삼 개월 만에 상봉한 세 가족은 한 침대에 누웠다. 아이를 둘 사이에 눕힌 용수는 침대 가장자리에 누워 모녀의 예쁜 얼굴을 기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요요의 눈매와 얼굴형은 아무리 보아도 큰일을 할 인물입니다.”
용수는 입꼬리를 올리고 흐뭇한 얼굴로 말했다. 그는 문득 전에 묵백이 했던 말이 떠올라 의미심장한 얼굴로 말했다.
“묵백은 요요가 자미제성이라고 했습니다.”
‘뭐라고?’
야홍릉은 시선을 들었다.
“자미제성?”
“네.”
용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에는 흐뭇한 미소가 어렸다.
“사월에 제사전에 간 적이 있습니다. 제사전의 이름을 빌려 요요가 나중에 태자에 순조롭게 오를 수 있게 밑밥을 깔 생각이었는데 제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묵백이 먼저 말을 하더군요. 요요가 자미제성의 운명체라고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은 야홍릉은 침묵을 지켰다.
“왜 그러십니까?”
용수가 장난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요요를 남성국에 데려온 것을 지금 후회하시는 것입니까?”
야홍릉은 그를 흘겨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흠천감도 같은 말을 했었다.”
용수는 깜짝 놀랐다.
“목국의 흠천감 말씀인가요?”
야홍릉은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말은 아니었으나 뜻은 비슷했어.”
“뭐라고 하던가요?”
“천명제녀라고. 칠성의 수호를 받고 있다고 했어.”
야홍릉이 말했다.
용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묵백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둘은 시선을 마주치고 침묵에 잠겼다.
목국의 흠천감과 남성국 제사전은 너무 멀리 떨어진 탓에 절대 서로 짤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동시에 공주의 운명을 알아보았다.
‘이게 그저 우연인가? 우연이 아니라 요요가 정말 황제감이란 말이겠지.’
용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목국의 대신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합니다.”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영린과 감진은 어떻게 되었느냐?”
용수는 고개를 저었다.
“모릅니다. 그들이 동제로 돌아간 뒤로 저는 더 이상 그들을 주시하지 않았습니다.”
“영린이 앞으로 자식을 낳는다면 다행이나 그렇지 않다면…….”
야홍릉은 덤덤한 시선으로 말을 이었다.
“몇십 년 뒤 천하가 또 한 번 크게 들썩일 것이다.”
용수는 그녀의 말뜻을 이해하고 있었다.
한 나라의 존망은 천하와 직결되어 있었다.
제국이 통일한 뒤, 병력과 경제 모두 목국과 비슷하게 강해졌다.
영린의 뒤를 이을 후계자가 없다면 앞으로 제국은 또 혼란에 빠질 것이다.
지금은 남성국이 패자의 위치를 공고히 하는 삼국 강성 시기였다.
이 평화가 깨지지 않고 오랫동안 유지되면 천하의 백성들은 편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중 한 나라에 혼란이 일어난다면 누군가는 야심과 포부를 드러내는 시기가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전생의 용수 같은 사람 말이다.
제왕이 천하를 통일시키려는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 야심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의 목숨과 형제들의 피가 엮여 있는가?
야홍릉이 걱정하는 것도 이것이었다.
천명제녀.
이 네 글자는 수많은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중 가능성이 가장 큰 것은 천하를 통일시키는 패자가 되는 것이었다.
요요의 성격을 보니 앞으로 무슨 일을 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용수는 침묵을 지키다 말했다.
“정말 운명이 그렇다면 우리도 막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저 순리에 맡기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운명이 완전히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운명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요의 인생에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가 나타난다면 요요도 바뀔 수 있지요. 또 세상이 언젠가는 통일된다고 해도 나쁜 일은 아닙니다. 딸이 큰 야심을 품는다면 아들이 지지할 수도 있고요.”
용수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들의 성격이 정반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불을 끌어당기며 누웠다.
그리고 잠든 요요의 얼굴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네 말이 맞을 수도 있지.”
성미가 싸늘하다고 해서 매정하고 몰인정하다는 말은 아니었다.
야홍릉도 성격이 차가운 사람이었다.
전생에 그녀는 가족에게 배신당하고 이번 생에 모두 갚아주었다. 그렇다고는 하나 그녀가 직접 죽인 사람은 많지 않았다.
죄악의 근원인 야소숙과 한씨 가문을 제외한 다른 사람은 죽이지 않았다.
야정연도 아이 때문에 천뢰에 가둔 게 다였다.
그의 부황도 누워 있는 상태지만 죽은 것은 아니었다.
태후와 야자릉은 그저 궁에 갇혀 있었고 야모침과 야천란 역시 모두 살아 있지 않은가?
전생에 그녀의 부황과 야소숙이 한 짓에 비교하면 야홍릉의 수단은 자애로운 편이었다.
그래서 성미는 그 사람의 수단까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는 없었다.
“잡시다.”
용수는 야홍릉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행동에는 욕정이 담겨 있었다.
아이가 바로 옆에 있으니 절제하자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앞으로 사흘 더 가면 남성국에 도착할 것입니다. 그러니 급히 갈 필요 없습니다.”
평소 아이는 홀로 자다가 오늘 간만에 부모와 함께 자는 것이었다.
용수는 이렇게 따뜻한 분위기가 유난히 마음에 들었다.
그는 딸이 어떻게 자라든 상관없었다. 성미가 딱딱하고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아비인 그의 눈에는 남다르고 특별하게만 보였다.
제왕의 딸이기에 이런 성격도 특별하다고 여기는 것이지 일반 백성 가문의 자식이 이렇다면 진작 맞아서 혼이 났을 것이다.
딸아이의 체력을 걱정한 용수는 일부러 일정을 늦추었다.
다음 날 아침.
길을 떠나기 시작하여 점심쯤에 멈춘 뒤, 밥을 먹고 한 시진 쉰 다음 오후에 길을 갔다. 그리고 해질녘에 또 멈춰서 쉬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흘이면 도착할 것을 무려 닷새나 걸려 도착했다.
웅장한 성문이 눈앞에 펼쳐졌다. 야홍릉은 두 번째로 번화하고 강한 땅에 발을 디디는 것이었다. 지난번에는 손님의 신분으로 왔지만 이번에는……
남성국의 황제가 직접 나가서 목국의 황제이자 남성국 황후를 맞이했다는 소문이 황성 곳곳에 퍼졌다. 길가에는 백성들이 모두 나서서 목국의 황제를 구경했다.
어림군이 촘촘히 서서 질서를 엄격하게 다스렸다.
혼란스러운 틈을 타 누군가 황제와 황후에게 실례되는 짓을 할까 방지하자는 차원이었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떠들썩하고 열정적이며 즐거웠다.
용수는 황성의 사람들을 모두 불러 야홍릉을 내보였다. 둘은 어깨를 나란히 말을 타고 앞에서 걷고 뒤에서는 정려가 공주를 안고 마차에 타고 있었다.
헌원창의 흑의 기예병이 앞뒤에서 그들을 호송했다.
성문에서 궁 문까지는 거리가 좀 있었다. 야홍릉은 남성국 백성들의 통혼에 대한 기쁨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 기쁨이 진심으로 전해지는 기쁨인지, 아니면 황제와 제사전의 뜻으로 기쁜 척하는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천하가 안정을 찾을 거라는 것이었다.
남성국의 황제는 목국에서 가장 강한 황제를 아내로 맞이했다.
이는 남성국 역사상 신분과 지위가 가장 높은 황후였다.
그 어떤 가문의 소저도 목국의 황제보다 대단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백성들은 단순하게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를 보고 기뻐한 것이었다. 남성국 세가의 여인들은 진심으로 기뻐하는 이가 몇 명 되지 않았다. 황후의 자리는 하나밖에 없는데 남성국에 오래 머무를 수 없는 여인이 명분을 차지했으니 그들의 황후 꿈은 물거품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황실 친왕의 공주나 군주들도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헌원용수가 태자일 때, 그들은 용수와 함께 남성국에 온 여인을 괴롭힌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여인이 사실은 세상에서 유명한 목국 호국 공주일 줄이야.
게다가 지금은 황제까지 되지 않았는가?
마차가 어도(禦道, 황제가 다니는 길)에 들어섰다.
번화한 길거리를 지나 궁의 방향으로 향한 것이다.
묵백 대제사는 제사전의 제사 몇 명과 함께 나와서 황제와 황후, 그리고 남성국의 공주를 맞이했다.
용수와 야홍릉이 궁에 들어가자 묵백과 헌원창도 그 뒤를 따랐다.
“요요는 신 공주로 봉하고 거처를 자신궁이라고 명하였습니다.”
용수는 야홍릉을 돌아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애비는 황제이고 자신궁에서 지내시지 않습니까? 요요도 앞으로 황제가 될 것이니 특별히 궁 이름을 자신궁으로 바꿨습니다. 침궁의 장식 역시 애비의 궁과 비슷합니다. 모두 애비의 취향대로 골랐으니 마음에 드실 것입니다. 저녁에 우리 함께 그곳에 머무릅시다.”
정려는 입을 삐죽거렸다.
‘폐하는 정말 시도 때도 없이 애정 표현을 하시네. 남들이 볼까 두렵지도 않으신가?’
“사흘만 지나면 추석인데 궁에서 추석 연회를 열까 합니다. 황족 종친들에게 애비를 소개할 겸 말입니다.”
용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조정에서의 차갑고 단호한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말을 마친 그는 시선을 묵백에게 돌리며 물었다.
“짐의 딸을 보셨습니까?”
묵백은 웃으며 미소를 지었다.
“미래의 폐하이신데 잘 보았지요.”
말을 마친 그는 야홍릉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용수와 오랫동안 떨어져서 그가 나 몰래 나쁜 짓을 하지 않았나 보러 왔지.”
야홍릉이 말했다.
그 말에 용수와 묵백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묵백은 웃음을 터뜨리며 물었다.
“그럼 폐하께서는 뭔가 나쁜 점을 발견하셨습니까?”
“아니. 아주 착해.”
야홍릉이 대답했다.
그러자 묵백은 실소를 터뜨렸다.
용수는 으쓱한 표정을 지었다.
용수는 묵백에게 처리할 일을 맡긴 뒤, 야홍릉 모녀를 데리고 쉬러 침궁으로 갔다.
요요는 아직도 자고 있었다.
닷새 동안 오는 내내 아이는 깨어 있는 시간이 아주 적었다. 밥을 먹고 목욕을 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아이는 거의 대부분 시간을 자고 있었다.
자지 않을 때도 사람들의 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용수가 야홍릉 모녀를 만난 지 닷새 만인데도 요요의 목소리나 울음소리 한번 듣지 못했다.
그런데 침궁에 도착해서도 아이가 자기만 하자 용수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홍릉.”
야홍릉은 고개를 돌리고 그를 바라보았다.
“요요가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용수는 미간을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
“한 살이 넘는 아이는 간단한 어휘 정도는 얘기할 수 있다고 하던데…….”
“말을 할 줄 안다. 그저 좋아하지 않을 뿐이지.”
용수는 생각에 잠겼다.
‘이게 어떻게 그저 말하기 좋아하지 않을 뿐이야? 아예 한마디도 안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