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궐황도 (283)화 (284/301)

16676991087589.jpg 

283화 천명제녀

“폐하!”

용수는 흠칫 놀라며 안으로 뛰어가려 했다.

하지만 궁녀와 어멈들이 그를 막아서며 말했다.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용수는 손을 맞잡고 물었다.

“폐하는 괜찮으시냐?”

“폐하께서는 복을 받은 분이시니 괜찮을 것입니다. 황부, 밖에서 기다리십시오. 절대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어멈이 재차 당부했다. 그리고 시녀 넷에게 문을 지키게 했다.

이성을 잃은 용수가 또 뛰어 들어올까 미리 방지하려는 것이었다.

용수는 굳은 얼굴로 입을 꾹 다물었다.

“황부 대인.”

육연지가 차를 건네주며 말했다.

“황자의 이름은 생각해 두신 게 있습니까?”

이런 때일수록 집중력을 돌리는 게 최선이었다.

육연지는 전쟁터에서 돌아온 뒤, 남첩이 황부가 되었다는 소문을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용수와 대화를 나눠본 적이 거의 없었다.

물론, 황부도 매일 야홍릉에게 붙어 다니느라 다른 사람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다.

용수는 찻잔을 받아들고 애써 마음을 가라앉힌 뒤, 말했다.

“아직입니다.”

게다가 아직 딸인지 아들인지도 알지 못했다.

시간이 조금씩 흘렀지만 아직도 안에서는 특별한 소식이 전해오지 않았다.

용수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는 처음으로 이렇게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오전에서 점심으로, 점심에서 저녁이 되었음에도 내전에는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다.

반 시진에 한 번씩 정란과 첨향이 나와 무사하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용수는 정말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지? 여인들이 애를 낳는 과정이 원래 이렇게 힘든가?’

밤이 깊어지자 용수는 더 이상 걸어 다닐 힘이 없어 대전 문을 기댄 채, 바닥에 앉았다.

그는 무기력한 얼굴로 달을 올려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 * *

“칠성이 제자리로 돌아왔군!”

황궁 서북 관측대에서 흠천감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그는 북두칠성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흥분에 겨워 외쳤다.

“제왕성이다! 제왕성이…… 진짜 제왕성이……!”

천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이한 현상이었다!

흠천감 감정(監正)은 믿을 수 없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폐하께서 가지신 아기님은 정말 황제감이었습니다…… 아니, 잠깐! 천명제녀(天命帝女)인가? 칠성의 보호를 받다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천명제녀?’

하늘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이한 별이 나타났다.

* * *

밤이 깊어지자 궁은 정적에 잠겼다.

시간이 다시 한참 흘렀다.

용수는 창백한 얼굴로 대전 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하루 종일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은 그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안의 상황은 어떻게 되었…….”

이때, 비명이 들려왔다. 심장을 찌를 것 같은 비명에 용수는 흠칫 놀라며 일어나 대전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속도가 너무 빨라 대전 문을 지키고 있던 네 어멈도 반응하지 못했다.

“홍릉!”

“됐습니다!”

산파가 안도하는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또 깜짝 놀란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폐하의 배 속에 아기가 한 명 더 있습니다!”

‘뭐라고?’

“어서! 계속해서 아이를 받아라. 폐하 배 속에 더 있다!”

“황부, 지금 뭐 하시는 것입니까?”

한 어멈이 날카롭게 외쳤다. 그리고 다른 시녀들이 그를 막아섰다.

“사내는 여기 들어올 수 없습니다. 얼른 나가십시오!”

용수는 넋이 나간 얼굴로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조금 전 비명에 이어 내전에는 또 힘을 모으는 듯한 나지막한 신음이 들렸다.

용수는 마음이 아팠다. 야홍릉을 대신해 이 고통을 겪어주고 싶었다.

“황부, 나가세요!”

어멈이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께서 무사하십니다. 황부가 여기 계시면 오히려 일에 더 지장이 갑니다.”

용수는 창백한 얼굴로 말하는 어멈을 힐끗 본 뒤, 외전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육연지와 눈이 부딪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평소 능력이 넘치던 그들은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특히 헌원용수는 끝없는 무력감에 잠겼다.

남성국 신하나 백성들이 그들의 황제가 이곳에서 이렇게 주책을 떠는 것을 본다면 어이없을 것이다.

아내가 아이를 낳는 것 때문에 대단한 황제가 이곳에서 이러고 있다니 말이다.

용수는 한숨을 내쉬며 대전 밖의 계단에 앉았다.

다행히도 첫 번째 아이가 태어난 뒤, 두 번째 아이는 순조롭게 태어났다.

내전에서 산파의 격려 소리, 산파가 궁녀에게 지시를 내리는 목소리, 야홍릉의 그르렁거리는 신음이 뒤섞인 채로 들려왔다.

한참 뒤, 어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왔습니다! 황자이십니다.”

곧이어 기쁨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폐하께서 아들딸 쌍둥이를 낳으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용수는 생각하다가 차갑게 지시를 내렸다.

“대전 문을 잠그고 누구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거라.”

육연지는 깜짝 놀랐다. 용수가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한묵에게 말을 전했다.

곧 금위군들이 들어왔다.

대전은 물 샐 틈 없이 꽁꽁 잠겼다.

사실 용수는 신은전의 영위에게 지시를 내린 것이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누가 되었든 자신궁만 잘 지키면 되니까.

산파와 궁녀들은 청결 작업을 하고 있었다. 황제가 무사히 쌍둥이를 낳고 생명에도 위험이 없자 의녀와 경빈을 포함한 모든 이들이 한시름을 덜 수 있었다.

용수는 밖에서 한참 서 있다 한숨을 내쉬고 다시 대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산파가 또 막았다.

“들어가서 폐하를 만나야겠다.”

용수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말을 마친 그는 산파를 밀치고 내전으로 들어갔다.

“홍릉.”

용수는 침대 앞으로 가서 땀에 흠뻑 젖은 채, 창백한 얼굴로 말도 하지 못하는 야홍릉을 바라보았다.

“느낌이 어떻습니까?”

야홍릉은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속눈썹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안색은 창백했으나 목소리는 그나마 괜찮은 듯했다.

“넌 왜 들어온 것이냐?”

“애비가 걱정되어서요.”

용수는 야홍릉의 손을 잡고 불안한 눈길로 말했다.

“앞으로 다시는 아이를 가지지 맙시다.”

너무 힘들었다.

꼬박 하루가 걸린 기다림과 초조, 불안, 두려움…….

각종 느낌이 그를 미칠 지경까지 괴롭혔다.

“폐하, 축하드립니다.”

두 산파가 아이를 한 명씩 안고 야홍릉에게 예를 올렸다.

“공주 한 명과 황자 한 명입니다.”

야홍릉은 고개를 돌리고 두 아기를 바라보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왜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냐?”

“그게…….”

산파는 당황한 얼굴로 공주를 야홍릉의 앞으로 가져갔다.

“제가 방금 공주 전하를 씻기고 엉덩이도 두드렸는데 느낌이 없는지 울지 않으셨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공주를 어찌 감히 강하게 두드리겠는가?

힘을 써서 두드리지 않았다고 해도 아기는 태어나면 울기 마련인데 야홍릉이 낳은 아기는 둘 다 울지 않았다.

야홍릉과 용수는 약속이나 한 듯, 얇은 이불에 싸인 아기를 바라보았다.

갓 태어난 아기는 얼굴이 주글주글하여 누구를 닮았는지 알 수 없었다.

두 아이는 조용히 눈을 감고 자고 있었다.

“자는 것이냐? 배 속에서 잘 자지 못했나?”

용수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아기가 잠을 많이 자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자는 데 씁니다. 황부 대인, 걱정하지 마십시오.”

용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어린 아기는 앞으로 천하를 다스리는 제왕이 될 것이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흐뭇했다.

“이분은 황자이십니다.”

다른 산파가 황자를 안고 걸어왔다.

“쌍둥이는 서로의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공주가 울지 않자 황자도 울지 않는 것입니다. 두 분의 성격은 폐하의 강인함을 닮았습니다. 앞으로 비범한 인물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신기한 일이?’

용수는 깜짝 놀란 얼굴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두 아이는 거의 똑같게 생겼다.

“황부, 먼저 나가십시오.”

아이를 다 보여준 뒤, 산파는 다시 용수를 내쫓기 시작했다.

“폐하의 몸을 닦아드려야 합니다.”

용수는 고개를 돌려 야홍릉을 바라보았다.

야홍릉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말고 가.”

용수는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나서 떠나려고 했다.

그러다 저도 모르게 또 딸을 보더니 산파에게 물었다.

“이 아이를 안아 보아도 되냐?”

산파는 속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황부는 왜 공주를 더 좋아하는 것 같지? 일반적으로 사내아이인 황자가 더 총애받지 않나?’

그녀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공주를 용수의 품에 안겨주었다.

“황부 대인, 조심하십시오. 갓 태어난 아기는 아주 말랑하여 두 팔로 안아야 하며 한쪽 팔로는 아기의 머리를, 다른 팔로는 아기의 몸을 받쳐 주어야 합니다.”

용수는 고개를 숙이고 잠든 아기를 내려다보았다.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도 곤히 자는 것을 보니 대단한 아이구나.’

딸을 안고 내전에서 나가자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용수가 웃으며 말했다.

“폐하께서 무사하시네. 아이들도 건강하고.”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궁녀들이 그보다 먼저 이 소식을 전했기 때문이었다.

“황부 대인.”

한 어멈이 걸어오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공주 전하는 아직 어리셔서 이렇게 안고 다니시면 감기에 걸릴 수 있습니다.”

용수는 잠든 딸을 내려다보며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이렇게 이불로 감싸고 있잖아?’

하지만 아기가 너무 작고 갓 태어난 아기는 체질이 약하다는 것을 알기에 용수는 대전 밖을 나갈 생각이 없었다.

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다.

용수는 정려와 정란에게 밤새 고생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가져오라고 지시한 뒤, 담담하게 말했다.

“일단은 나가지 말게. 내 할 말이 있으니.”

내전에서 야홍릉의 몸을 닦고 있는 두 어멈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밖에 모여 있었다. 이 말을 들은 그들은 조용히 서서 지시를 기다렸다.

황제가 아기를 낳은 것은 좋은 일이었다. 한꺼번에 쌍둥이를 낳았으니 더 기쁠 뿐이었다. 게다가 황제도 무사하여 그들은 긴장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정려는 용수가 아기를 안은 게 불안하여 옆에서 졸졸 따라다녔다.

그녀의 시선은 용수가 안고 있는 공주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그녀는 용수가 실수라도 하여 아기를 떨어뜨릴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내전의 청결 작업은 한참이나 지속되었다.

한참 뒤, 어멈들이 나오며 말했다.

“폐하께서는 드시는 음식을 각별히 신경 쓰셔야 합니다. 제가 음식을 나열해 드릴 테니…….”

“폐하의 산후조리는 제가 맡도록 하지요. 제가 다 아는 것이니 잘 보살펴 드리겠습니다.”

경빈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용수는 고개를 끄덕이고 아이를 안은 채, 내전으로 들어갔다.

정려도 따라서 들어갔다.

“아기가 모두 조용합니다.”

황자를 안고 있는 어멈이 신기한 얼굴로 말했다.

“황자의 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좀 보세요. 말하는 보석 같네요.”

“조용하긴 하네요.”

다른 어멈도 옆에서 거들었다. 그녀는 진지한 얼굴로 아기들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우리 말을 알아듣는 것 같은데요. 정말 신기합니다…….”

“방금 공주도 보았는데 눈이 크고 똘망똘망한 게 아주 아름다운 공주로 클 것 같았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