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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282)화 (28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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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화 걱정이 되어 죽겠다

시간이 흘러 또 봄이 되었다.

야홍릉의 배는 점점 불러왔다. 조례를 제외하고 그들은 시간 대부분을 자신궁에서 보냈다. 조정 대사도 자신궁으로 옮겨와 처리했다. 이렇게 하면 야홍릉도 편히 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조정 업무에도 지장이 가지 않기 때문이었다.

따뜻한 봄이 되면 졸리는 법이다. 야홍릉이 산달에 다다르자 용수는 많이 조심스러워졌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노심초사하는 날이 반복되었다.

산파와 시중을 드는 궁녀는 두 달 전부터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용수는 의술이 뛰어난 의녀까지 찾아두었다.

햇살이 좋은 삼월 말의 어느 날.

야홍릉은 탑에 기대앉아 있었다. 용수는 그녀에게서 멀지 않은 곳의 책상에 마주 앉아 상주서를 읽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녀에게 부드러운 시선을 던져왔다.

이때, 야홍릉 옆에 있던 정려가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야홍릉을 보고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폐하, 배가 아프십니까?”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이 소리를 듣자 자신궁의 사람들은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용수는 다급히 상주서를 내려놓고 야홍릉을 안고서 내전으로 들어갔다.

“산파를 부르거라!”

“괜찮다.”

야홍릉은 침대에 누운 뒤,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힘이 있었다.

“지금 너무 아프지는 않아.”

찌릿찌릿하게 아팠다 한동안은 괜찮고 다시 한참을 아팠다.

산파와 궁녀들이 급한 걸음으로 들어와 준비하기 시작했다.

“여인이 출산하는 곳에는 남자가 있으면 안 됩니다. 황부, 얼른 나가 주십시오.”

용수가 차갑게 대꾸했다.

“난 이곳에서 폐하를…….”

“나가시죠.”

나이 많은 산파가 엄하게 호통쳤다.

“남자가 여기 있으면 방해만 됩니다.”

용수는 표정이 굳었다.

그가 살면서 처음으로 야홍릉이 아닌 사람에게 혼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곧 출산할 야홍릉 때문에 초조한 그는 산파와 다툴 여유가 없었다.

“나가.”

야홍릉은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미간을 찌푸린 그녀의 얼굴을 보니 많이 아픈 듯했다.

“난 괜찮으니 이곳에서 소란 피우지 마.”

그래서 초조한 얼굴의 용수는 산파와 아내에게 쫓겨나고 말았다.

산파는 경험이 많아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궁녀들에게 준비할 물건을 지시했다. 그리고 야홍릉에게 어느 정도로 아픈지 묻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야홍릉의 목소리가 그나마 차분한 것을 보고 용수는 초조한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용수는 생각해보다 진원에게 지시를 내렸다.

“폐하의 지시라 하고 육연지의 부인과 여동생을 궁에 들라 하라.”

진원은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바로 이때, 나지막한 숨소리가 내전에서 전해졌다.

출산의 고통으로 내지르는 비명이 아니었으나 아픔을 억지로 참느라 숨을 헐떡이는 소리였다. 용수의 청력이 특별히 좋지 않았다면 그 소리를 듣지 못했을 것이다.

내전에는 경험이 풍부한 산파 여섯 명과 의술이 뛰어난 의녀 한 명, 그리고 여러 명의 궁녀가 있어 위험할 일은 없었다.

용수는 깊은숨을 들이쉬고 대전을 왔다 갔다 했다.

그는 여인이 출산하는 장면을 본 적이 없었으나 아이를 낳는 게 위험하다는 소리는 많이 들었다.

민간의 여인들 중에는 출산하다 죽은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궁은 조건이 좋잖아. 산파와 궁녀가 많고 약재도 충분하니 괜찮을 거야.’

그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드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산파와 궁녀가 소곤거리는 소리가 내전에서 들려왔다. 용수는 잘 들리지 않아 귀를 기울이고 들으려고 애썼다. 이때, 발소리가 전해졌다.

“공자.”

용수가 고개를 돌리자 헐레벌떡 뛰어온 손평이 보였다.

“공자, 경빈(鏡嬪)마마를 부르십시오. 경빈마마는 예전에 의술을 배운 적이 있어 이런 상황에 대해서도 알 것입니다.”

손평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야홍릉이 출산한다는 말을 듣고 급히 뛰어온 게 분명했다.

용수가 미간을 찌푸리고 지시를 내렸다.

“한묵을 보내 모셔오게.”

“네, 알겠습니다.”

손평은 지시를 전한 뒤, 다시 돌아와 말했다.

“경빈마마는 서른이 넘었으나 궁에 들어온 뒤에 존재감이 거의 없었습니다. 다른 비빈 마마들과 전임 폐하의 총애를 다투지도 않고 매일 조용히 시간을 보내셨지요. 올해 서른이 넘으셨으나 그동안 한 번도 폐하와 잠자리를 함께하신 적이 없습니다.”

용수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후궁에는 여인이 많았다. 어떤 여인들은 입궁해서도 평생 황제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젊었을 때, 황제와 잠자리를 하지 못한다면 나이 든 뒤, 황제의 총애를 받을 가능성이 더욱 없었다.

궁에는 해마다 간택을 하고 신인을 들이기에 황제도 자신에게 여인이 얼마나 있는지 잘 모를 것이다.

의술 경험이 있는 비빈이 지키고 있다면 그도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내전은 아직 출산이 시작되지 않은 듯했으나 용수는 진정할 수 없었다.

그는 불안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화제를 돌렸다.

“경빈이라는 자가 괜찮은 사람이면 앞으로 궁 밖으로 내보내서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해야겠네. 재가를 하든 의관을 차리든 다 되니 마음대로 하라고 하게.”

손평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 경빈마마를 대신해 황부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용수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문발이 쳐진 내전을 바라보다 대전 밖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이때, 다급한 발소리가 먼 곳에서 들려왔다. 육연지 부부와 육경경이 회랑에서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육연지는 그나마 괜찮은 듯했으나 두 여인은 초조한 표정이었다.

“폐하께서 지금 출산 중이십니까?”

진설군이 물었다.

용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 왜 이렇게 갑자기…….”

진설군은 말을 하다 문득 오늘이 삼월 말이고 출산 날짜가 되었다는 것이 떠오르자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침묵을 지키다 다시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폐하는 무사하실 것입니다.”

용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는 진설군을 보며 말했다.

“폐하께서 출산이 끝나면 남아서 폐하의 말벗이 되어주게.”

‘말벗?’

진설군이 말했다.

“아이를 낳으면 푹 쉬셔야 합니다.”

용수는 당황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그는 사람이 많으면 좀 안심할 것 같아 부른 것이었다.

내전에는 재촉하는 것 같기도 하고 위로하는 것 같기도 한 산파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그리고 정려가 궁녀를 지시하는 목소리와 공손하게 대답하는 궁녀의 목소리도……

한참 뒤, 소박한 하늘색 궁장을 입은 여인이 한묵의 안내를 받으며 걸어왔다.

여인은 아리따웠고 깨끗한 인상을 풍겼다.

그녀는 한묵의 눈치를 읽고 용수에게 예를 올렸다.

“폐하께서 지금 어떠신가요?”

“잘 모르겠습니다.”

용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불안한 얼굴로 말했다.

“들어가 보시지요.”

그리고 진설군을 돌아보며 말했다.

“자네도 들어가 보고, 대신 정려더러 나오라고 하겠네.”

진설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들어가도 도움이 될 것은 아니겠지만 황부가 안심할 수 있다면 못할 것도 없었다.

경빈과 진설군이 안으로 들어갔다.

정려가 안에서 나오며 말했다.

“폐하.”

그녀의 부름에 옆에 있던 육연지 남매는 깜짝 놀랐다.

그들은 이미 용수의 신분에 대해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증거를 보지는 못했다.

그리고 황제도 그의 신분을 밝힌 적이 없었다.

용수는 이런 것을 신경 쓰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내전의 일은 다른 궁녀들에게 맡기고 너는 안에 있는 사람들의 행동을 주시하여라. 수상한 움직임이 보인다면 바로 잡아들이거나 죽여도 된다.”

살기가 담긴 말에 육연지 남매는 또 깜짝 놀랐다.

정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폐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말을 마친 그녀는 다시 대전 안으로 들어갔다.

아기를 낳는 과정은 아주 위험했다. 이 시기에 산파나 궁녀 중 누군가가 야홍릉에게 무슨 짓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엄격하게 선발된 사람으로 다른 사람의 손을 탔을 가능성이 아주 작았다.

그래도 용수는 안심할 수 없었다.

반 시진이 지났다.

“다른 여인들은 애 낳을 때 소리를 크게 지르는데 왜 우리는 지금까지 폐하의 목소리를 못 들은 걸까요?”

육경경이 옆에 서서 찬사의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는 역시 폐하시네요. 아픔을 참는 능력도 남보다 훨씬 뛰어나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육연지는 그녀를 흘겨보고 용수를 돌아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인들이 모두 겪는 과정이니 괜찮을 것입니다.”

육연지도 내전에서 들리는 야홍릉의 거친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와 용수는 야홍릉이 아프지 않아서 소리를 지르지 않는 게 아니라 일반 여인들보다 아픔을 참는 능력이 뛰어나서 소리를 지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 야홍릉이 겪고 있는 고통은 다른 여인들보다 작은 것이 절대 아니었다.

봄이라서 밖은 따뜻했고 햇살은 눈부셨다. 공기 중에는 향긋한 꽃향기도 풍겨 왔지만 용수는 평온한 얼굴과 달리 속으로 불안하여 어쩔 줄 몰랐다.

가끔씩 들려오는 야홍릉의 거친 숨소리로 그녀가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지만 용수는 마음이 아파 견딜 수 없었다.

평소 단단하기만 했던 야홍릉이 지금 어떤 고통을 겪고 있을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애를 낳는 건 여인들에게 참 고통스러운 일이야. 아이는 이번만 낳아야겠어. 정 안되면 아이가 자란 뒤에 남성국과 목국을 한 나라로 합쳐서 아이에게 물려주면 되지. 절대 애비가 이런 고통을 또 느끼게 할 수는 없어.’

용수가 속으로 생각했다.

정란이 안에서 걸어 나오자 용수는 다급히 그녀를 잡고 안의 상황을 물었다.

정란이 대답했다.

“폐하께서 괜찮으십니다. 다만 아직 아기가 태어나지 않으셨습니다.”

‘폐하는 괜찮은데 아기가 안 태어나?’

용수는 한시름을 놓자마자 또 불안에 잠겼다.

그는 야홍릉이 비명을 지르면 마음이 아플 것 같았지만 오랫동안 야홍릉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자 오히려 야홍릉이 비명을 지르기 바랐다.

그렇게라도 야홍릉이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의 상황이 어떤지 알 수 없었다. 용수는 문을 박차고 들어가 야홍릉의 옆을 지키고 싶었다. 산파들은 평소 공손하기만 하더니 오늘에는 웬일인지 매섭게 황부를 밖으로 내쫓았다.

안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용수는 걱정되어 미칠 지경이었다.

바로 이때, 안에서 외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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