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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281)화 (28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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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화 태자가 될 것이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지나자 추운 겨울이 찾아왔다.

야홍릉의 배도 점점 불러왔다. 대신들은 아침 조례에서 저도 모르게 야홍릉의 배를 쓱 스쳐보았다. 그리고 속으로 아이가 태어나면 야씨 성을 이어받을지에 대해 생각했다.

예전에는 크게 생각해보지 못한 문제였다.

그러나 신분이 밝혀진 뒤에도 야홍릉을 따라 조정에 출입하는 용수를 보는 대신들은 마음이 복잡했다.

아무리 남첩이어도 좋아한다면 명분 정도는 주어야 할 게 아닌가?

왜 용수를 남첩의 신분으로 돌아다니게 하냐, 이 말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남성국의 고귀한 황제라는 것이 밝혀지지 않았는가?

남성국 황제는 할 일이 없는지 남성국에는 돌아가지 않고 목국에 남아 남첩을 자청하더니 그녀를 황위까지 올려놓았다.

대신들은 둘을 볼 때마다 황당한 연극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 여러분들과 논의할 것이 있네.”

야홍릉은 용의에 앉아 팔걸이에 기댄 채,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짐이 경들의 의견을 듣고 싶다는 말이네.”

대신들은 정신을 번쩍 차리고 허리를 숙였다.

“폐하, 말씀하십시오.”

“짐의 배 속에 있는 아이는 장차 목국 황족의 적장자나 적장녀가 될 것이네.”

야홍릉이 평온한 말투로 대답했다.

“아이의 부친은 남성국 황제 헌원용수이지. 전에는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으나 지금 말하는 바이네.”

그러자 대전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대신들은 숨을 죽였다.

남성국과 목국의 황제끼리 가진 아이는 남성국의 적장자이자 목국의 적장자이기도 했다. 그 신분이 얼마나 고귀한가?

하지만 이 아이가 태어난 뒤, 목국에 머무는지, 아니면 남성국으로 데려갈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 아이는 남녀를 불문하고 태어나면 목국의 태자가 될 것이네.”

야홍릉은 조용히 중요한 결정을 선포했다.

“남자아이라면 자네들도 기쁘겠고 여자아이라고 해도 황제가 될 것이니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게.”

그러자 대신들은 침묵에 잠겼다.

대전의 분위기도 미묘해졌다.

적장자와 적장녀.

황자인가? 공주인가?

이는 고민해 볼 만한 문제였다.

가능하다면 그들은 당연히 이 아이가 남자아이기를 바랐다. 남성국 황제와 야홍릉의 능력이 있는데 둘이 낳은 아이도 평범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태자가 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만약 공주라면…….

“이의나 불만이 있다면 지금 얘기하게. 그러면 다시 논의하도록 하지.”

야홍릉이 평온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짐이 이렇게 하는 게 불만이라면 아이를 남성국으로 보내겠네. 그곳에서 남녀 성별 상관없이 태자로 키울 것이고.”

대신들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순간 그들은 마음이 불편했다.

적장자를 남성국에 보낸다면 야홍릉의 다음 아이, 즉 둘째가 목국의 태자가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남성국보다 한 등급 아래라는 말이 아닌가?

게다가 누가 야홍릉의 다음 아이가 무조건 남자아이라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만약 이번 아이가 남자아이이고 다음 아이가 여자아이면 어떡한다는 것인가?

‘그럼 우리 혀 깨물고 죽어야 하는 거 아니야?’

대신들은 서로 멀뚱멀뚱 얼굴만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용수는 야홍릉의 뒤에 서서 조용히 그녀의 어깨를 주물렀다.

그러나 속으로는 대신들을 비웃었다.

‘아이 문제로 정신이 팔려서 다시는 후궁을 간택하라는 소리를 못 하게 해야지.’

그들에게는 적장자가 목국의 태자로 정해지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러나 다들 신선이 아니니 누구도 야홍릉의 배 속의 아이가 황자인지, 공주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배 속의 아이를 목국에 남길지, 남성국으로 보낼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사실상 아이의 운명은 이미 결정된 것이었다.

이 아이뿐만 아니라 둘째와 셋째도 모두 목국에서 자랄 것이다.

용수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어미와 떨어뜨릴 생각이 없었다.

물론 야홍릉이 고생하는 게 싫어서 용수도 아이를 많이 낳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훌륭한 자녀라면 두 명이면 충분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폐하께 아룁니다.”

승상이 공손하게 입을 열었다.

“신은 폐하께서 직접 결정하시는 게 옳다고 봅니다. 폐하께서는 현명하시니, 가장 정확한 결정을 하실 것입니다. 신은 감히 태자 일에 간섭하지 않을 것입니다.”

“폐하, 현명하십니다. 신은 감히 태자의 일에 간섭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대신들도 맞장구를 쳤다.

용수가 낮은 목소리로 비웃었다.

“교활한 겁쟁이들 같으니라고.”

목소리는 크지 않았으나 앞줄에 서 있던 대신들에게는 들릴 수 있는 크기였다. 똑똑히 들리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비웃음이라는 것은 눈치챌 수 있었다.

대신들은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여러분들이 짐더러 결정하라고 하니 여기서 선포하겠네. 이 아이는 태어난 뒤, 바로 목국의 태자로 임명할 것이네.”

야홍릉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진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조서를 작성하여 대신들더러 조서에 이름을 쓰라고 하여라.”

‘조서에 이름을 쓰라고?’

대신들은 표정이 굳었다.

황제에게 자신의 의견을 존중해준다고 감사해야 할지 교활한 황제 때문에 한숨을 내쉬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우리에게 퇴로를 전혀 주지 않은 건가?’

조서를 작성하고 이름을 쓴 뒤에는 공주가 태어나도 그들은 뭐라고 할 수 없었다.

그 아이는 반드시 장차 목국의 태자로 책봉될 것이다.

대신들은 울적해졌다. 목국 사상 첫 여 황제가 생긴 것은 사고라고 할 수 있었다. 아직 큰 영향을 끼친 게 아니었기에 괜찮았다. 그런데 만약 앞으로도 공주가 황위를 이어받는다면 목국은 여인이 더 고귀한 나라가 될 게 아닌가?

수십 년의 시간 동안 여인의 지위는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차기 황제가 남자라면 남자의 지위를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여인이 황제가 된다면?

목국은 여존남비인 세상으로 바뀔 것이다.

대신들은 복잡한 기분이 들었으나 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다. 남성국이 아내를 맞이한다는 명의로 목국을 삼키지 않은 것만 해도 은혜를 베푼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두 황제가 서로 후궁을 들이지 않는 것을 봐도 서로 끔찍이 사랑하는 것 같은데 다른 아이를 가질 리는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한 쌍의 부부가 아이를 얼마나 많이 낳을 수 있겠는가?

둘의 아이라면 공주든, 황자든 모두 소중하고 귀한 아이였다.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침묵이었다.

누구도 지금 황제 배 속에 있는 아이가 남자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진원은 대신들의 표정이 일그러져 있는 것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저들은 지금 아마 황자가 태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겠지. 자신의 아들보다 더 간절히.’

만약 대신들의 아내가 첫 아이로 딸을 출산한다면 앞으로 둘째나 셋째를 낳을 수도 있고 첩실을 들일 수도 있었다. 어떻게든 아들만 낳으면 될 게 아닌가?

하지만 황제의 경우는 확률이 정확히 반반이었다.

이는 도박과 같았다. 기회는 한 번밖에 없으며 지면 전 재산을 탕진하는 그런 도박 말이다. 이번 경우는 전재산을 탕진하는 것은 아니지만 차기 황제도 공주가 이어받는다면 목국의 남자들은 전 재산을 탕진하는 것만큼 처지가 난처해질 것이다.

그러나 대신들이 뭘 고민하는지 용수와 야홍릉은 관심이 없었다.

둘은 조례가 끝난 뒤, 근정전으로 가서 쉬었다.

잠시 뒤, 진원이 이날의 상주서를 들고 왔다.

용수는 야홍릉의 불룩 나온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 아이가 공주일 거라는 느낌이 듭니다.”

“왜?”

“하늘은 항상 사람에게 예상치 못한 시련을 주니까요. 목국의 대신들이 황자를 간절하게 바랄수록 공주를 내려주실 것 같습니다.”

용수가 말했다.

“공주여도 상관없어.”

야홍릉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내가 황제가 되었으니 내 딸도 황제가 될 거야. 누구도 반대할 수 없을걸.”

용수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 입을 맞춘 뒤,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아이들을 황위에 올린 뒤, 믿을 만한 대신들이 보좌하도록 하고 우리 둘은 일찍 황위에서 물러나 둘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입니다. 강산을 일찍 넘겨주면 좋을 텐데.”

야홍릉은 미간을 찌푸리고 그를 노려보았다.

“이게 아버지가 할 소리냐?”

용수는 눈을 깜박였다.

“하늘은 중대한 책임을 내리는 자에게 반드시 그의 마음을 고통스럽게 하고…….”

“닥치거라.”

야홍릉은 그의 다리를 걷어찼다.

“가서 상주서나 읽거라.”

용수는 씩 웃고 야홍릉의 손을 잡아 입을 맞추었다.

“네, 폐하.”

야홍릉은 괜히 마음이 간질거려 또 그를 걷어차려고 했다.

용수는 몸을 돌려 피한 뒤, 야홍릉의 맞은편 탑에 착석했다.

그리고 진원더러 상주서를 자신 쪽으로 가져오게 했다.

용수는 상주서를 하나하나씩 읽어보았다.

대전은 정적에 잠겼다.

둘의 일상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황제 부부도 일반 부부처럼 평온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생사와 환생을 겪은 그들은 뜨겁게 불타는 사랑이 아닌 평범한 행복이었다.

전쟁 없이 평화로운 나날이 지속되었다.

십이월 십팔은 야홍릉의 생일이자 야홍릉이 황제로 등극한 뒤 맞이하는 첫 생일이었다. 궁에서는 연회를 크게 열었다.

조정 대신들의 축하를 받으며 야홍릉은 용의에 앉았다. 불룩 나온 배도 그녀의 싸늘한 패기를 숨길 수 없었다. 목국 사상 첫 황제는 그녀만의 강한 능력으로 황위에 올랐다. 그녀의 존재는 그 어떤 남자 황제보다 더욱 대신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사람을 대량으로 죽이지도 않고 황권을 움켜쥔 그녀였다.

그녀가 황위를 노린 뒤로 죽은 사람과 갇힌 사람 역시 그 몇 명밖에 되지 않았다.

피바람이라고 부를 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능력은 피바람보다 더 무시무시했다. 그녀는 불패의 전설이었기 때문이었다. 호국 공주라는 봉호가 아주 어울리는 사람이기도 했다.

호국 공주, 목국을 지키며 자신의 나라, 강산을 지키다.

황제가 된 그녀의 현재를 말해주는 것 같기도 했다.

무더운 여름에서 시원한 가을을 지나 엄동설한이 될 때까지 그녀의 옆에는 항상 누군가가 함께했다. 그의 신분을 알게 된 뒤, 사람들은 그를 볼 때마다 생각에 잠겼다.

‘남성국은 도대체 누구의 강산이지? 등극한 지 얼마 안 된 남성국의 황제가 목국에 이렇게 오랫동안 머무르다니. 다른 사람이 남성국을 빼앗아 갈까 걱정되지도 않나?’

그러나 용수는 걱정하지 않는 눈치였다.

대신들은 남성국의 매가 사흘에 한 번씩 최신 소식을 가져오고 황제만 할 수 있는 일을 남성국의 황궁에서는 용수의 심복 대신들이 알아서 잘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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