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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279)화 (28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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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확답을 받은 진원은 허리를 숙였다.

“네, 지금 바로 그리하겠습니다. 그럼 황부에게 따로 침전을 마련하여 둘까요?”

“아니.”

야홍릉이 말했다.

“부부이니 같은 침대를 써야지. 그는 자신궁에 묵으면 된다.”

진원은 똑똑한 사람이었지만 야홍릉의 말을 듣고 당황했다.

야홍릉의 결정이 이상하다는 것은 아니었다.

누가 누구의 후궁이 되든 상관이 없었다.

목국의 황제나 남성국의 황제는 모두 고귀한 신분으로, 부부가 된다고 해도 각자 고귀한 신분이 달라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같은 궁에 묵는 것 역시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야홍릉의 옆에는 아름다운 남첩이 있지 않은가!

물론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닐 수도 있었었다.

둘은 그저 명목상의 부부일 테니, 남성국 황제가 목국까지 와서 부부의 정을 쌓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야홍릉이 다른 남자를 총애해도 괜찮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한 진원은 허리를 굽히고 예를 올렸다.

“네, 알겠습니다.”

헌원용수는 전혀 말을 하지 않고 느긋하게 죽을 저어서 야홍릉 앞에 두었다.

“모두 물러가거라.”

평온한 말투였다.

정려는 허리를 굽히며 대답했다.

“폐하, 목욕 후 갈아입을 옷을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헌원용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야홍릉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폐하,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것입니까?”

용수는 그녀의 귀에 코를 문지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너한테 따로 궁을 내주어야 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럴 필요가 없지요. 폐하께서도 방금 부부는 같은 침대를 써야 한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하지만은 없습니다. 전 무의미한 형식 따위에 관심이 없으니까요.”

용수가 대답했다.

침궁에 얼음을 두니 밤이 되어도 덥지 않았다.

야홍릉과 용수는 목욕을 마친 뒤, 얇은 비단 침의를 입고 침대에 올랐다.

용수는 다정한 남편답게 야홍릉에게 침대에 누우라고 한 뒤, 몸을 주물러 주었다.

“앞으로 고생이 많으실 것입니다.”

용수는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

“황제 자리도 힘들 테고, 임신하여 아기를 낳는 것 역시 고생스러울 것입니다. 제가 그 고생을 나누지 못해 죄송합니다.”

야홍릉은 푹신한 베개에 기댄 채, 느릿느릿 말했다.

“성의가 전혀 보이지 않는구나. 그리고 건방진 것 같기도 한데.”

자고로 아이를 낳는 것은 여인의 몫이었다.

여인의 애 낳는 고통을 대신할 수 있는 남자는 없었다. 그래서 야홍릉도 용수가 그저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말이라도 하는 남자는 여인이 애 낳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남자보다 훨씬 나았다.

“황제의 직무를 대신한다는 말은 그 의도를 불문하고 역모죄로 머리가 잘릴 수도 있다.”

“그럼 저를 벌하여 주십시오.”

용수는 야홍릉 옆에 꿇어앉아서 그녀의 목과 어깨를 꾹꾹 눌렀다.

힘이 딱 적정하여 피로가 사르르 풀리는 것 같았다. 용수가 그녀의 옆으로 파견된 뒤로 항상 했던 일이라 아주 익숙했다.

야홍릉은 안마를 받다가 잠이 들었다.

그녀는 잠이 들면서 용수가 계속 옆에 계속 있어 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용수는 일당백이 아닌가? 잠자리 시중을 들기도 하고 어영위의 노릇도 훌륭하게 하고 또 그녀를 대신해 정무도 보았으며 이렇게 그녀를 기쁘게도 했다.

그의 존재를 항상 야홍릉을 기쁘게 했다.

‘어쩌다 이렇게 훌륭한 사람이 왜 나를 좋아하게 된 거지?’

* * *

등극 대전 다음 날.

봉서오는 남성국 사신을 데리고 돌아갔다.

동제의 황제는 야홍릉에게 등극 축하선물과 서신을 보내왔다. 서신에는 그가 동제로 돌아간 뒤에 있은 일들이 쓰여 있었다.

감진은 감씨 가문으로 돌아간 후, 예전과 다름없는 귀공자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가 동제로 돌아간 지 이틀 만에 제경 전체에 감진에 대한 소문이 전부 퍼졌다. 물론 화제의 중점은 그의 훌륭한 외모였다.

감진은 전생에 황제의 스승이었지만 이번 생에는 영린을 제외하고 감진이 황제의 스승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뛰어난 학식은 모르고 그의 얼굴만 담론했다. 수많은 소녀가 구애를 펼쳤고 그 기세는 아주 뜨거웠다.

하지만 감진은 집으로 돌아간 뒤,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귀족 공자들과 어울려 놀지도 않고 황제의 일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영린도 눈치껏 그를 궁으로 불러들이지 않았다.

둘은 지금 서먹한 상태였다. 감진이 일방적으로 밀어내니 영린도 그에 맞출 수밖에 없었다.

야홍릉은 영린의 일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서신을 다 읽고 난 뒤, 용수에게 건네주었다. 용수도 관심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영린이 전에 했던 얘기가 걸려서 야홍릉의 의견을 물었다.

“폐하, 동제의 강산을 원하십니까?”

‘동제의 강산?’

야홍릉은 침묵을 지키다 물었다.

“네 생각에는?”

그녀는 야심 때문에 황위에 오른 것이 아니라 복수하기 위해서였다.

목국은 원래도 땅이 작지 않은데다 남성국과 손을 잡고 금국을 물리친 뒤로 금국의 절반이나 되는 땅까지 가지게 되자 할 일이 더욱 많아졌다. 그녀는 유능한 관리를 새 영역에 파견하여 금국의 백성들이 하루빨리 목국의 생활 습관과 목국의 율법에 적응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해야 했다.

헌원용수는 야홍릉과 안정적인 삶을 살기로 마음먹은 뒤, 천하를 통일시키는 포부를 포기했다. 그는 이번 생에는 다른 나라들과 공존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천하를 통일시키는 마음을 포기한 것과 자발적으로 자신의 나라를 내놓는 것은 다른 의미였다.

만약 영린이 제국을 통일한 뒤, 제국 전체의 강산을 내놓고 감진만 원한다고 했다면 제국 대신들은 무책임한 황제에게 아주 불만이 많았을 것이다. 더 나아가 그의 죄를 물을 수도 있었고 다른 나라에서도 영린을 욕할 수 있었다.

게다가 감진도 이런 결과를 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니 결국에는 목국, 남성국, 제국 세 나라만 살아남을 것입니다. 목국과 남성국이 안정적으로 된 뒤, 서릉을 손봐주어야겠지요.”

용수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릉은 그들의 다음 목표였다.

사청의의 복수뿐만 아니라 용수도 서릉을 아주 혐오했다. 서릉의 황족이 제멋대로 으스댈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제위에 오른 뒤 야홍릉은 일이 더욱 많아져 바쁜 나날을 보냈다.

새 황제가 등극한 뒤, 구월 추위에 합격한 학자들은 바로 야홍릉을 위해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야홍릉은 믿을 만한 심복들을 파견해 각 지방을 감시하게 했다. 앞으로 성적 조작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한경백은 측부에서 제명된 뒤, 조정으로 들어갔다. 한경백은 그동안 서원에서 쌓은 덕망이 있는 데다 작년 추위 조작 사건에서 공을 세운 덕에 바로 어전 참정으로 발탁되었다. 어서방에 들어간 그는 황제와 함께 정사를 논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

올해 춘위와 전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심한의를 포함하여 학자들은 황제에게 얼굴을 드러낼 기회가 많았다. 이번에 즉위한 황제는 성미가 차갑지만 아주 공정한 사람이었다.

재능과 능력이 있고 백성들을 위하자는 마음이 있는 관리라면 그녀는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바로 중용했다.

순식간에 조정에서 신입 관리의 권력이 커졌다. 그들 중 몇몇은 서민 가문 출신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제경의 오래된 귀족과 대신들은 불쾌하고 경계심이 들었다.

하지만 당장 새 황제는 막 등극하여 위엄을 부릴 시기인데 이때 나서서 반항한다면 처참한 결과를 맞이할 것임을 다들 알고 있었다.

대신들은 불만이 많았지만 사적으로도 말을 아꼈다.

그래서 야홍릉은 더욱 쉽게 조정을 정리할 수 있었다.

대신들이 정신을 차린 후에는 이미 조정은 예전과 확 달라진 뒤였다. 새로운 관리들이 절반 세력을 차지한 상태였고, 이 정도면 오래된 세가 대신들과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이었다.

야홍릉의 중용과 총애를 받는 그들의 기세는 공을 세운 것도 없고 능력도 없는 대신들보다 훨씬 강했다.

그렇게 바쁜 나날이 지속되었다.

황족의 규정에 의하면 새 황제는 등극한 뒤, 후궁을 간택해야 했다.

야홍릉은 여인이었지만 그래도 후궁에 사람이 필요했다.

황제의 후궁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귀족이나 세가의 인물뿐이었다.

그러나 이 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팔월이 되자 대신들은 황제의 배가 점점 불러오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넉넉한 용포도 더 이상 불러오는 배를 가릴 수 없었다.

대신들은 당황했다.

‘폐하가 회임하셨다고? 누구 아이지? 아이의 부친은 누구고?’

대신들은 저도 모르게 시선을 야홍릉의 옆에 붙어 있는 남첩에게 향했다.

‘폐하가 남첩의 아이를 가졌다고?’

대신들은 당황했다. 그들은 손바닥을 비비며 이 남첩의 신분을 파악할 계획을 세웠다. 종친 왕부를 비롯하여 승상부나 각 대세가에서 모두 사람들을 파견해 뒷조사를 시작했다.

매일같이 파견되어 나가는 사람들만 수두룩했다.

사람이 많으니 믿을 만한 정보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열흘 뒤, 누군가 조용히 보고했다.

“이 남첩은 능묵이라고 하는데 예전에 호국 공주부의 영위로 있었던 자입니다.”

‘영위?’

단서를 찾은 황족 종친들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어쩐지 무공 실력이 뛰어나다 했지. 영위였군. 그래서 태후 옆의 고수도 쓰러뜨렸군.’

또 며칠이 지나자 승상 옆의 사람이 보고했다.

“남첩의 이름은 용수라 하며, 폐하와 예전부터 알던 사이라고 합니다. 남제 황실 쪽 사람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예전에 알던 사람? 용수?’

승상부 일당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남제의 황족이 용씨잖아? 그럼 이 남첩은 황족 출신이라는 말인가?’

그러나 지금 동제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남제는 상황이 좋지 못했다. 남제는 얼마 가지 않아 망할 것이다. 그래서 용수가 정말 남제의 황족이라고 해도 문제될 게 없었다. 기껏해야 황부로 임명될 게 아닌가?

황제가 간택을 시작한다면 후궁에 들어간 제경의 세가 공자들의 신분들은 남제의 용수보다 훨씬 대단할 것이다.

그가 만약 후궁에서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남제의 현재 상황으로는 그에게 힘이 되어줄 수도 없었다.

이렇게 생각하자 대신들은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구월 초가 되었고 추위가 시작되었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고 시원한 가을이 되었다.

대신들은 후궁 간택을 시작할 것을 황제에게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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