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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277)화 (278/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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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화 모든 일은 사람이 하기 나름이다

헌원용수는 깜짝 놀랐다.

그는 똑똑해서 야홍릉의 말이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챈 것이다.

그는 바로 웃음을 터뜨렸다.

“저도 같은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저는 남성국을 아이에게 물려주고 저는 목국에 남아서 애비의 곁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모든 일은 사람이 하기 나름이었다.

방법은 모두 사람이 생각하는 것이니,

어린 나이에 황위에 오른 사람은 적지 않았다.

게다가 헌원용수와 야홍릉 모두 아이에게 황위를 물려준 뒤에도 나라를 다스릴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 어린 황제를 괴롭히는 대신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들은 더욱 많은 시간을 서로에게 쏟아부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몇 년 뒤의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기에는 너무 이른 듯했다.

강한 사람을 사랑하게 된 대가로 이별의 고통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

황제든 백성이든 막론하고 세상에서 사랑을 가장 첫 자리에 놓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장군들은 변방에 전쟁을 하러 떠난다.

그들이 살아서 돌아올 수 있을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가난한 백성들은 평생 생계를 위해 분주히 뛰어다닌다.

황제는 황위를 물려줄 자식을 낳느라 후궁을 잔뜩 들여야 하니 어떻게 한 사람에게만 사랑을 쏟아붓겠는가?

고귀한 귀족은 물론이고 일반 관리들도 사랑에 살고 사랑에 죽는 사람이 적었다. 다들 가문끼리 약속한 통혼 아니면 통방하녀를 들이는 것이 다였다. 이런 상황에서 용수와 야홍릉의 사랑은 아주 드물고 값진 것이었다.

음모 술수를 떠나, 황권을 떠나 사랑을 첫 자리에 두고 마음이 가는 대로 마음껏 사랑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다.

인생은 모든 게 완벽할 수 없었다.

지금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은 안타까우나 언젠가 헤어지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 가서 누가 누구에게 황위를 물려주고, 누가 누구를 따라 어느 나라에 있든 사실 크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도 의원은 야홍릉의 맥을 짚어본 뒤,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둘은 홍릉원에서 잠간 쉬었다.

정란과 첨향이 저녁식사를 준비했다고 이르러 왔다.

식탁에는 영양가가 풍부하고 맛 좋은 산해진미로 가득했다.

용수는 식탁 위의 음식들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야홍릉을 쳐다보았다.

“여인들이 임신하면 식욕이 부진하고 구역질이 난다더니 애비도 그렇습니까?”

야홍릉은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용수는 빙그레 웃었다.

“역시 애비는 일반 여인들과 다르군요.”

‘임신 증상까지 다르다니.’

야홍릉은 칭찬 같지 않은 용수의 칭찬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인들은 원래 다들 임신할 때 증상이 조금씩 다른데, 이걸로 칭찬할 게 뭐가 있다고?’

둘은 식탁에 마주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용수는 야홍릉을 살뜰히 챙기며 이것저것 집어 주었다.

“폐하, 등극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이때, 봉서오가 밖에서 들어오며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공주부의 측부들은 규정에 따라 명분이 주어지는 것입니까?”

그러자 용수는 그를 차갑게 흘겨보며 말했다.

“요즘 많이 심심해 보이는데 성을 복구하는 변방으로 보내줄까?”

“아닙니다.”

봉서오는 고개를 저으면서도 간 크게 계속 말을 이었다.

“공주부의 측부들은 다들 황족 족보에 들어간 줄로 아는데 규정상…….”

“규정상 봉 공자는 이제 남성국으로 돌아가셔야지요. 앞으로 육 개월 동안 남성국 정무에 힘을 많이 써주세요.”

야홍릉이 담담하게 말했다.

‘앞으로 육 개월 동안?’

봉서오는 경악한 얼굴로 용수를 바라보았다.

“공주 전하가 이미 황위에 오르셨는데 폐하는 남성국으로 돌아가시지 않을 생각입니까?”

‘목국에 남아 황부 노릇을 하려고?’

용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봉서오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충신인 그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폐하, 등극하신 지 얼마나 되셨다고 이러십니까? 황위의 기반을 탄탄히 다지셨습니까? 문무백관들은 모두 폐하가 새로이 업적을 쌓으시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이국 타향에서 여인의 치마폭에 싸여 있으니 이게 무슨 경우입니까? 이러다 나중에 남성국으로 돌아가면 대신들에게 뭐라고 변명하실 것입니까?”

용수는 덤덤하게 야홍릉의 식사 시중을 들며 봉서오의 긴 얘기를 깔끔하게 무시했다.

‘변명하라고? 누가 감히 나한테 변명을 요구한다는 말이야? 나에게 불만이 있는 대신들은 바로 집으로 보내버릴 건데.’

봉서오는 들은 척 만 척하는 헌원용수를 보며 깊은숨을 들이쉬었다.

“봉 공자와 함께 돌아가라. 나랏일이 우선이지.”

야홍릉이 말했다.

봉서오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역시 새로운 폐하는 달라. 그릇부터 다르잖아. 우리 폐하도 많이 배워야겠어.’

“안 돌아갈 것입니다.”

용수가 단호하게 말했다.

“먼저 아이가 무사히 태어나는 것을 보고요.”

‘아이?’

봉서오가 경악했다.

“무슨 아이 말씀이십니까?”

용수는 그를 흘겨보았다.

봉서오는 입을 떡 벌리고 한참 있다가 물었다.

“황제 폐하께서 회임하셨다는 말씀입니까?”

용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폐하의 아이입니까?”

그러자 용수의 표정이 어둡게 변했다.

“내가 아니면 누구의 아이라는 말이냐?”

“측부가 여러 명 있지 않습니까?”

봉서오는 생각 없이 말을 하다 용수의 차가운 눈빛과 마주치자 그제야 자신이 말실수했음을 깨달았다. 그는 부채로 머리를 탁 내리치며 말했다.

“신의 머리가 잘못되었나 봅니다. 폐하, 용서해 주십시오.”

야홍릉은 아무렇지 않았다.

공주부에 측부가 여러 명 있는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호색한이라고 여기는 것도 당연했다.

게다가 봉서오의 말은 반쯤 농담이 섞인 것이었다.

하지만 헌원용수는 절대 이런 일에서 농담을 받아줄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차갑게 말했다.

“나가.”

봉서오는 바로 허리를 숙인 뒤, 밖으로 나갔다.

대전 밖으로 나간 그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회임하셨구나.’

그는 기쁘기는커녕 울적하고 답답하기만 했다.

고집불통인 새 황제는 태자로 임명된 뒤, 남성국을 떠나 십 년 동안 밖에 있었다.

그러다 다시 돌아와서 등극하자마자 또 남성국을 떠났다.

이번에는 언제 다시 돌아갈지 알 수 없었다.

이런 황제는 정말 전무후무했다.

하지만 봉서오는 그다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헌원용수의 할아버지인 태상황이 아직 살아 있는 데다가 승상부가 충성을 다해 보필하니 다른 마음을 품을 대신은 없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라면 야홍릉 배 속의 아이의 행방이었다.

봉서오는 미간을 찌푸렸다.

‘폐하의 핏줄은 목국에 남겨두어야 하나? 그러면 안 될 텐데…….’

야홍릉은 지금 목국의 황제이니 그녀의 아이 역시 목국 황족의 핏줄이자 차기 태자였다. 만약 그녀가 다른 후궁을 들이지 않는다면 야홍릉은 앞으로 헌원용수의 아이만 낳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야홍릉도 정무를 보아야 하니, 바빠서 아이를 많이 낳지 못할 것이 뻔했다. 그렇기에 지금 임신한 아이를 목국에 둔다면 둘은 아이를 한 명 더 낳아 남성국의 강산을 물려받게 해야 했다.

봉서오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 일이 아주 골치 아프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두 나라 황제의 사랑이라니…… 차라리 다 통일시켜버려! 부부가 힘을 합쳐 세상을 통일시키고 모두 남성국으로 밀어버리라고! 아니지, 폐하의 사랑에 걸맞게 남성국과 목국의 이름을 따서 천하를 남목이라고 명명하는 거야. 그러면 누구도 손해 볼 거 없잖아?’

봉서오가 이런저런 생각을 할 무렵, 대전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용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등극 대전이 지난 뒤, 측부들을 내보내시죠.”

야홍릉은 그를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

“괜찮다면서?”

용수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애비는 제가 말만 그렇게 한 걸 모르지 않으시면서 왜 자꾸 그러십니까?”

야홍릉은 정말 몰랐다.

야홍릉은 여전히 이런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헌원용수가 질투하니 그녀도 굳이 고집을 부릴 생각이 없었다.

그동안 용수가 그녀를 어떻게 대했는지, 그녀가 용수를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는지 야홍릉도 잘 알고 있었다.

야홍릉은 숨기는 것 없이 솔직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사랑하는 정인이 신경 쓰는 것을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다.

측부들은 그저 명분뿐이니 굳이 남겨서 용수의 기분을 상하게 할 생각이 없었다.

“한경백을 조정에 들이고 싶은데.”

야홍릉이 생각을 해 보더니 말했다.

“서원에 있으면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지만, 역시 조정에 있는 편이 나을 것 같아.”

특히 올해 발탁한 젊은 관리들은 모두 한경백을 존경하고 따르고 있었다.

만약 한경백이 조정에 들어온다면 젊은이들이 힘을 합쳐 나이 든 대신들에 맞설 수 있는 세력이 될 수도 있었다.

야홍릉은 권모술수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황위에 앉은 이상 대권을 움켜쥐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했다.

그녀는 그녀가 지닌 병권과 황권을 두려워해서 굴복하고 타협하는 사람이 아닌, 그녀에게 진심으로 충성을 다하고 용기 있는 관리를 키우고 싶었다.

제경의 귀족 세가들은 뿌리가 깊고 세력이 너무 컸다.

그들은 다른 곳에 신경을 쓸 뿐, 진정으로 황제와 백성을 위해 일을 하지 않았다.

또귀족 세가들은 각자 지지하는 황자가 있었기에 야홍릉은 그들이 나중에도 조용히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기회에 그들의 세력이 더욱 커지지 않게 막아야 했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재능 있고 패기 있는 신입 관리였다. 새로운 사상을 가지고 그녀에게 충성하는 사람들만이 진정으로 그녀의 사람이 될 수 있었다. 특히 좋지 않은 가문 출신인 자제일수록 그녀는 안심하고 등용할 수 있었다.

제경 귀족의 공자들은 절대적인 충성심을 품지 않은 이상, 조정에서 날개를 펼칠 기회가 많기에 그녀에게 충성을 다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등극은 시작일 뿐, 끝이 아니었다.

황위에 오른 뒤에도 황제와 세가의 전쟁은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다.

“한경백이 조정에 어울리기는 하지요.”

용수는 야홍릉에게 생선탕을 떠주며 말했다.

“하지만 이런 얘기는 나중에 하시죠. 지금 애비의 식사가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 * *

목국의 유월은 갑갑하고 우울한 달이었다.

모든 일이 끝난 뒤, 진심으로 황제가 된 야홍릉을 섬기는 사람이든, 굴복하는 척하는 사람이든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하루하루 흘러갔다.

칠월의 해가 밝았다.

이달은 특별한 달이었다.

목국에서 처음으로 여성의 몸으로 황제가 된 야홍릉의 등극 대전이 열림과 동시에 남성국의 황제가 목국 황제의 황부가 되는 달이었다.

그리고 동제의 섭정왕 영위가 남제의 변방 방어선을 뚫은 달이기도 했다.

세상은 극도로 긴장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소식들이 날아다니고 나라마다 아주 바삐 보냈다.

칠월 초에 열린 등극 대전은 많은 절차를 생략했음에도 성대했다.

빨간색 융단이 깔린 길 위로 싸늘한 인상을 지는 황제는 화려한 암홍색 용포를 입고 우아하게 대전으로 올라갔다. 그런 야홍릉의 뒤로 수많은 문무백관이 고개를 조아리며 예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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