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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273)화 (274/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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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화 언제 돌아갈 것이냐

야홍릉은 미간을 찌푸렸다.

감진은 목을 가다듬고 미소를 지었다.

“아까 이미 얘기를 마쳤습니다. 준비도 끝냈고요. 저를 호송해서 가는 사람도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야홍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하니 나도 할 말은 없구나.”

감진은 예를 올렸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는 밖으로 걸어갔다.

연파랑 장포가 흩날리며 그의 마른 몸에서 남다른 운치가 느껴졌다.

감진은 황제의 스승으로 있을 때에도 우아하고 기품이 넘쳤고 빙란각에 들어간 뒤에도 그 귀티는 가려지지 않았다.

봉서오는 화청으로 들어가며 공손하게 물었다.

“폐하께서는 언제 남성국으로 돌아가실 것입니까?”

“네가 언제 일을 완성하는지 봐야지.”

용수는 심드렁한 얼굴로 차를 마시며 말했다.

“공주 전하께서 순조롭게 등극하고 짐도 황제의 황부가 되면 돌아갈 날이 된 거겠지.”

“…….”

‘말을 안 한 것과 뭐가 달라? 그래서 그 돌아갈 날이 언제라는 건데?’

용수는 찻잔을 내려놓고 손을 내밀었다.

“애비.”

야홍릉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공주 전하.”

헌원용수는 호칭을 바꾸었다. 사실 그는 ‘여왕님’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이리 오십시오.”

야홍릉은 그의 앞으로 걸어가 용수의 귀를 비틀려고 했다.

봉서오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야홍릉은 생각을 바꾸어 그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꼬았다.

“감진이 왜 지금 가려는 거야?”

용수는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은 뒤, 고개를 숙이고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봉서오는 입가를 실룩이더니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뭐라고 하고 싶었지만 끝내는 꾹 참고 화청을 떠났다.

‘됐어, 폐하께서도 지금 나랏일을 논할 기분이 아니실 텐데 뭐. 하는 행동을 보니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전혀 꺼리지 않는 눈치였어. 호국 공주도 마찬가지고. 성미가 싸늘하고 차갑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 여인이 폐하에게 넘어간 건가?

방금 그 모습을 보니…… 아니, 훤한 대낮에 옆에 사람이 있는 것도 알면서 입을 맞춘다고?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네.’

“훤한 대낮에 이게 무슨 짓이냐?”

야홍릉이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용수는 그녀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고 있다가 살짝 깨물었다.

그러자 새하얀 야홍릉의 목에 옅은 잇자국이 났다.

“질투가 난다는 말입니다.”

용수가 불만 어린 얼굴로 말했다.

“방금 감진에게 그토록 다정하게 구는 모습을 보니 길을 떠나는 남편을 배웅하는 아내 같았단 말입니다.”

“바꾸어 말한 것 아니냐?”

야홍릉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길을 떠나는 아내를 배웅하는 남편 같았겠지.”

용수는 멍하니 있다가 낮은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네, 맞습니다. 위엄 넘치는 남편이 아내를 배웅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내가 아니라 첩실이지.”

용수는 바로 그녀의 뜻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첩실이지요.”

측부는 첩실과 지위가 비슷했다.

감진은 아름다운 첩실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야홍릉과 몇 마디 주고받자 헌원용수는 질투심이 많이 가셨다.

그는 고개를 묻고 깨문 부위에 입을 맞추며 부드럽게 말했다.

“궁의 상황은 어떻던가요?”

“방금 폐하를 만났어.”

용수의 행동이 멈칫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야홍릉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매달 한 번씩 보러 가는 건 그가 죽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까?”

“산다고 해서 죽는 것보다 나은 게 아니지.”

야홍릉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들이 직접 내가 등극하는 걸 보지 않는다면 복수도 의미가 없지 않겠느냐?”

“그건 그렇죠.”

용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전처럼 그들을 능지처참시킬 수는 없으나 애비가 황위에 오르는 것을 지켜보는 것 또한 벌이라고 할 수 있지요.”

야홍릉은 침묵했다.

그녀는 꿈에서 본 광경이 떠올랐다.

용수는 죽음의 신처럼 목국에 쳐들어와 목국의 모든 황족을 죽이고 한옥금과 야자릉을 능지처참시켜 죽였다.

고통에 찬 처연한 비명은 지금까지도 그녀의 귓가에 맴돌았다.

하지만 전생의 그 복수의 사신은 이번 생에 부드럽게 변해 그녀의 옆에 있었다.

그녀의 옆에 있을 때는 부드럽고 온화하기만 했다.

야홍릉은 용수의 목을 끌어안고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용수.”

“음?”

용수는 그녀의 입맞춤에 기분이 좋은지 표정이 풀렸다.

“홍릉…….”

야홍릉은 흠칫 놀랐다.

“왜 호칭을 바꾼 것이냐?”

용수는 옅게 웃었다.

“바꾸고 싶으면 바꾸는 거지요.”

야홍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뭐라고 할 때, 용수는 그녀를 번쩍 안아서 화청 밖으로 걸어갔다.

“내려줘.”

야홍릉은 미간을 찌푸렸다.

“나도 다리가 있다고.”

“이렇게 영원히 안고 싶습니다.”

용수는 고개를 숙인 뒤,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품에 넣고 어디든 다닐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니면 제가 애비의 품에 들어가 애비가 가는 대로 따라다니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한시도 떨어지지 않을 것이 아닙니까?”

야홍릉은 그를 걷어차고 싶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도 아니면서 그런 말 좀 하지 마. 남들이 보면 웃을 거다.”

“누가 우리를 비웃는다는 말입니까?”

용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널 비웃는다는 거지, 우리가 아니라. 남성국 제왕이 이렇게 유치한 말을 하는 것을 다른 나라 황제들이 듣는다면 남성국을 그리 무서워하지 않을 거야.”

용수는 야홍릉을 끌어안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도 나쁘지 않습니다. 적을 얕잡아 보았다 크게 당할 수가 있지 않습니까?”

시위들은 이런 광경을 처음 보는 게 아니었지만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아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예를 올리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야홍릉이 남자의 품에 폭 안겨 있는 모습이 아주 낯설었기 때문이었다.

백연강화성요지유(百煉鋼化成繞指柔). 강철도 백 번 제련을 거치면 부드러운 물건이 된다는 말로, 난폭한 성격이 부드러워짐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꼭 지금 상황에 딱 맞는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제련된 강철은 호국 공주를 가리켰다.

“세상의 것은 모두 상극이 존재하는 법이지…….”

누각 꼭대기에서 누워 있던 봉서오는 홍릉원을 보며 중얼거렸다.

헌원용수가 야홍릉을 안은 채, 급히 대전 문으로 들어서면 장면을 보았던 것이다.

그 광경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들이 뭘 하려는지 알았을 것이다.

봉서오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누가 누구의 상극인 거지?”

그러나 봉서오의 예상과 달리 용수는 야홍릉을 안고 침전으로 들어간 뒤,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는 야홍릉을 탑에 올려놓은 뒤, 자신도 옆에 눕고는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애비, 주무십시오.”

야홍릉은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냥 잠만 자라는 것이냐?”

“네, 물론이죠.”

용수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제가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니라 그런 사람이면서.’

야홍릉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싶긴 하나 용기가 부족합니다.”

용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애비는 지금 몸이 좋지 않으니 제가 아무리 짐승이라도 자제할 수밖에 없지요. 안 그러면 진짜 짐승이 될 게 아닙니까?”

야홍릉은 의아한 얼굴로 그를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말했다.

“짐승이 아니었다는 말이냐?”

용수는 웃음을 터뜨리고 서운한 표정으로 말했다.

“애비는 저를 항상 짐승으로 생각하신 것입니까?”

야홍릉은 미소를 지을 뿐,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둘은 침대에 오랫동안 누워 있었다.

헌원용수가 말했다.

“내일부터 저는 매일 애비와 함께 조례에 갈 것입니다. 애비 옆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겠습니다.”

야홍릉은 미간을 찌푸리고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으나 헌원용수가 먼저 가로챘다.

“애비는 지금 몸 상황이 특별하니 제가 옆에서 지켜드릴 것입니다. 애비가 지치면 제가 바로바로 쉬라고 말씀드릴 수 있지 않습니까? 혹시나 궁에서 누군가 애비와 부딪히려고 한다면 제가 바로바로 그런 불상사를 막을 수도 있고요. 제가 없으면 우리 아기가 다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야홍릉이 물었다.

“넌 언제 남성국으로 돌아갈 생각이냐?”

“아기가 태어난 뒤에요.”

“안돼.”

야홍릉은 미간을 찌푸렸다.

“황제도 없고 승상도 없으면 남성국은 누가 다스린다는 말이냐?”

“묵백이 있지 않습…….”

“누가 있어도 안 돼.”

야홍릉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용수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용수, 남성국의 황제는 너야. 모두 자신의 자리가 있다는 이치는 너도 알지 않느냐? 묵백은 대제사로 너를 도와 조정을 안정시킬 수 있지만 너를 대신해 나라를 다스릴 수는 없어. 봉서오가 돌아가서 정무를 봐준다고 해도 다른 사람을 믿고 네 책임을 다하지 않는 건 안 돼.”

용수는 야홍릉의 질책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덩달아 일어나며 야홍릉을 바라보았다.

“애비…….”

훈계를 들은 용수는 예전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야홍릉이 계척을 들고 그더러 시를 외우라고 했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야홍릉은 원칙이 분명하여 절대 그를 봐주는 법이 없었다.

“저도 안 돌아간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용수는 뜨끔했는지 한참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그럼 애비가 등극한 뒤에 다녀올까요?”

그는 속으로 시간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야홍릉은 지금 임신 이 개월이 되었다. 유월에 등극한다고 해도 칠월 초에 그가 남성국으로 돌아갈 때는 아이가 삼 개월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남성국에서 기껏해야 삼사 개월 밖에 있지 못할 것이다.

아이를 낳는 과정은 위험하니, 그는 반드시 야홍릉의 옆을 지킬 생각이었다.

삼 개월이 지난 뒤, 임신한 티가 날 텐데 용수는 야홍릉이 남산만 한 배를 뒤뚱거리며 조정의 신하들을 상대할 생각을 하니 걱정이 되었다.

‘내가 발견하지 못한 위험이 숨어 있기라도 한다면…….’

용수는 미간을 찌푸린 채, 한참이나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전 애비를 혼자 남겨둘 수 없습니다.”

야홍릉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흥릉.”

용수는 그녀의 얼굴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애비, 제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십시오. 전에도 저는 애비 생각에 한시도 시름을 놓지 못했는데 지금 애비가 임신까지 한 상태가 아닙니까? 그런데 저더러 어떻게 안심하고 돌아가라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평생 목국에 있을 생각이냐?”

야홍릉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그렇다면 황위를 남에게 물려주는 게 어떠냐?”

“그건 안 됩니다.”

그러자 용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제가 남성국의 황제로 있기 때문에 목국에 손을 대지 않는 것이지요. 하지만 다른 사람이 황위에 오르면 다른 마음을 먹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목국 백성들뿐만 아니라 애비도 힘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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