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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271)화 (27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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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화 받아들여야 한다

봉서오는 이마를 탁 치더니 말했다.

“하마터면 잊고 있을 뻔했습니다. 목국의 대황자께서는 병이 났습니다. 꽤 심각한 병인 듯한데 아마 목국 황제와 비슷한 병인 것 같더군요. 지금은 남성국 태의원에서 치료하고 있지만 성공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대신들은 깜짝 놀랐다.

야홍릉은 부드러운 얼굴로 말을 잘하는 봉서오를 보면서 용수를 떠올렸다.

‘역시 찰떡같은 군신 관계네.’

대신들은 대황자가 아프다는 것에 놀란 것이 아니라 봉 공자, 아니 남성국에 겁을 먹었다.

남성국 황제가 야천란이 병에 걸렸다고 한다면, 야천란이 정말 아픈지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이는 사실관계와 무관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들은 다른 나라의 사신이 한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다.

그러나 황제와 대황자의 상황과 별개로 남성국의 사신 봉서오가 호국 공주가 황위에 오르는 것을 지지한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리고 그 원인에 대해서는……

그들은 아직 남성국 황제와 호국 공주의 사이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이유를 짐작했다.

남성국 황제는 처음부터 호국 공주를 맞이하겠다고 하며 목국을 도와 금국을 치겠다고 했다. 그리고 금국과의 전쟁에서 공을 세워 목국 백성들이 그에게 고마워하게 했다.

그다음, 그는 호국 공주를 황위에 오를 수 있도록 지지했다.

이런 상황을 미루어보아, 남성국 황제는 황제가 된 호국 공주와 통혼하여 최후에는 목국을 삼키려는 게 분명했다.

‘참 교활하고 완벽한 계획이군.’

대신들은 남성국 황제가 목국을 삼키느라 일부러 계획한 거라고 생각했다.

이 방법은 전쟁을 치를 필요 없이 한 나라를 손에 넣는 방법으로 교활하고 음험하기 짝이 없었다.

“여러분들의 속상한 마음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희 태의원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봉서오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그리고 금국의 땅을 나누는 것 말고도 중요하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대신들은 흠칫 놀랐다.

승상이 다급히 말을 잘랐다.

“사신들이 멀리서 오시느라 힘들었을 텐데 이곳에서 먼저 하루 쉬시고 내일 다시 얘기하는 게 어떻습니까?”

봉서오는 우아하게 고개를 저었다.

“전 괜찮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하나 중요한 얘기를 먼저 하는 게 좋은 듯합니다.”

승상은 미간을 찌푸린 채, 야홍릉을 돌아보았다.

야홍릉은 한결같이 싸늘한 표정으로 물었다.

“봉 공자께서 하시고 싶은 얘기가 뭡니까?”

“저희 폐하께서 얼마 전에 통혼에 대해 말씀하신 것 말입니다.”

봉서오는 온화한 미소를 띠고 말했다.

“폐하께서는 생각해 보시더니 이번 일은 호국 공주 전하의 뜻을 여쭙는 게 순서인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지?’

대신들은 어리둥절했다.

“폐하께서는 원래 공주 전하를 남성국에 들이신 뒤, 함께 천하를 통일시키며 후손들의 존경을 받는 황제가 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속으로 헌원용수가 황제가 되지 않았다면 다루에서 이야기를 하고 돈을 벌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눈 하나 깜짝하지도 않고 술술 말하는 그의 천연덕스러움에 이야기의 극적인 내용까지 더해지니, 틀림없이 크게 환영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호국 공주께서 목국의 황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저희 폐하께서는 또 고민이 많으신 듯했습니다.”

봉서오는 시선을 들어 싸늘한 표정의 야홍릉을 바라보았다.

“저희 폐하께서는 공주 전하께서 정말 목국의 황제가 되셔도 양국은 여전히 사돈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두 분께서는 부부이시나 전하는 남성국으로 시집오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이지요. 명의상 부부를 유지하고 목국과 남성국은 영원히 서로 침해하지 않는 좋은 사이를 유지하고요.”

신하들은 깜짝 놀랐다.

‘이런 방법도 있다고?’

승상은 또 생각에 잠겼다.

야모침은 주먹을 움켜쥔 채, 속으로 봉서오가 허튼소리를 한다고 욕했다.

그러나 육 개월 동안 꾹 참아온 그가 지금 상황에서 끼어들 리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봉서오의 말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실 깊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봉서오의 뜻은 명확했다.

야홍릉이 등극하지 않는다면 야홍릉은 전에 약속한 대로 남성국으로 시집가야 한다.

하지만 남성국 황제가 한 말 중에 놀라운 사실이 담겨 있었다.

남성국 황제는 천하를 통일시키고 유일한 황제로 등극하고 싶다는 게 아니었나?

호국 공주를 무기 삼아 주변 나라들을 소멸해 남성국 황제의 통일 꿈을 실현하겠다고 생각했고, 시집간 호국 공주는 언젠가 완전히 남성국 사람으로 전쟁을 치를 수 있었다.

남성국은 병력이 강하고 경제가 부유한데, 거기에 호국 공주를 영입한다면 날개 돋친 듯 승승장구할 것이 뻔했다.

호국 공주를 잃은 목국에서는 전쟁터에 나갈 장군이 육연지 밖에 없었다.

그러나 육연지가 호국 공주의 상대가 되기나 하겠는가?

두 나라가 정말 서로 칼을 겨눈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호국 공주가 먼저 황제로 등극한다면 통혼은 예정대로 진행하나 야홍릉이 남성국으로 가지 않을 수도 있다.

정말 이 말은 믿을 만한가?

대전의 분위기는 정적에 잠겼다. 대신들은 마음이 복잡했다.

처음으로 이런 상황에 맞닥뜨린 그들은 누구도 먼저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목국의 존망과 연관된 일이기에 잘못하면 나라를 망친 죄인으로 될 수 있었다.

“공주 전하.”

승상이 미간을 찌푸린 채, 담담하게 말했다.

“전하의 생각은 어떠하신지…….”

야홍릉은 침묵을 지키다 담담하게 말했다.

“자네들이 결정하게.”

그녀는 짧은 한마디로 뜨거운 감자가 될 문제를 조정의 대신들에게 다시 돌렸다.

승상은 말문이 막혔지만 야홍릉이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상황에서는 어떤 답을 해도 문제였다.

야홍릉이 만약 예정대로 남성국에 시집가겠다고 한다면 목국을 사지로 모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번댫 그녀가 만약 황제가 되겠다고 말한다면 나중에 사람들은 그녀가 ‘스스로 황위를 빼앗았다’고 할 수 있었다.

“공주 전하, 급히 결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 폐하께서는 저더러 보름 동안 목국에 머물라고 하셨습니다. 전하께서는 대신들과 함께 자세히 논의해본 뒤, 결정하셔도 됩니다.”

봉서오가 담담하게 말했다.

‘자세히 논의해보라고?’

대신들은 안색이 더욱 안 좋아졌다.

‘우리더러 상의하라는 건가?’

상의해 보라고 말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남성국 황제의 말 하나하나에 협박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목국에서 가장 강한 호국 공주를 남성국으로 보내어 남성국에 힘을 보태려는 건가? 그리고 호국 공주를 이용해 우리 목국을 치려고?’

“만약 양국이 통혼한다면 남성국 황제는 정말로 목국과 영원히 평화롭게 지낼 것입니까? 호국 공주께서 황제로 계시는 동안에는 절대로 병사를 보내지 않는다는 말씀인지요?”

승상이 핵심적인 질문을 했다.

봉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폐하는 말하면 말한 대로 하는 분입니다.”

“그러면 대황자는 무사히 돌아올 수 있습니까?”

봉서오는 미소를 거두고 정색해서 말했다.

“대황자는 남성국의 죄인이나 인질이 아닌 손님이십니다. 하지만 현재 병이 위중하여 남성국을 떠날 수 없으니 얼마간 치료가 되면 저희 폐하께서는 분명 호위들을 잔뜩 붙여 대황자를 목국으로 돌려보내실 것입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승상은 침묵을 지켰다. 그는 속으로 이 말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다.

다른 대신들도 속으로 구시렁거렸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동시에 그들은 곧 목국에 최초로 공주가 황제로 등극하는 일이 바로 눈앞에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결과였다.

대신들은 호국 공주의 침묵이 무슨 의미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야홍릉은 다른 나라 제왕의 협박에 넘어갈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강한 적일수록 고개를 숙이기는커녕 단호하게 싸우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의 침묵은 한 가지 의미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속으로 그녀의 마음을 빤히 알고 있어도 그녀의 말대로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조례가 끝난 뒤, 야홍릉은 남성국의 사신들에게 거처를 마련해준 뒤, 공주부로 돌아갈 생각을 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승상과 내각 대신들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

“공주 전하.”

야홍릉은 몸을 돌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무슨 일인가?”

“어서방으로 가시지요.”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서방으로 향했다.

승상과 내각 대신들도 그녀의 뒤를 바짝 따랐다.

어서방의 문을 굳게 닫은 뒤, 승상은 무거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대황자가 위급하다는 것에 대해 공주 전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야홍릉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내 생각이 그렇게 중요한가?”

승상은 미간을 찌푸렸다.

“일단 남성국 사신이 한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는 사실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네.”

야홍릉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승상 대인이 믿지 않는다고 해도 어쩌겠나? 큰 오라버니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파견해 데려올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승상은 말문이 막혔다.

다른 내각 대신들도 서로 얼굴을 바라보았다.

야홍릉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궁의 모든 것은 장엄하고 근엄했다.

궁녀와 내관들은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걸어 다녔다.

이것이 바로 황권에 복종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그 자리에 앉게 된다면 마음대로 규정을 세울 수 있고 사람들의 생사도 결정할 수 있었다. 또 사람들의 존경과 두려움을 한 몸에 받을 수도 있었다.

황제가 성지라도 말하는 날에는 신하와 백성들 모두 고개를 조아리고 명을 들어야만 했다.

“승상 대인, 내각 대인.”

야홍릉은 황위에 대한 야심을 숨기지 않으며 말했다.

“내가 만약 황위에 오른다면 목국은 향후 백 년은 전쟁이 없을 것이네. 이러면 여러분들의 가문도 여전히 흥할 것이고 목국의 백성들도 평화롭고 부유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일세. 그러나 만약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황위에 오른다면 그게 누구든 목국은 이 년 안에 다른 나라의 것이 되고 말겠지. 모든 관리가 파직되고 남성국 관리들이 목국에 파견되어 각 곳을 관리하겠지. 목국의 귀족들은 모두 서민으로 강등될 것이고.”

야홍릉은 싸늘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더니 평소와 다름없이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인들, 잘 생각해 보시게. 난 여러분들의 결정만 기다리겠네.”

말을 마친 그녀는 더 머무르지 않고 어서방을 나갔다.

승상과 내각 대신들은 서로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이번 일은 더 이상 다른 경우의 수가 없다는 것을 짐작한 눈치였다.

호국 공주는 야심을 숨기지도 않았다.

정적이 지난 뒤, 승상이 물었다.

“남성국은 그 어떤 나라도 감히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나라입니다. 게다가 전쟁이 일어나면 백성들도 고달프고 나라의 국력에도 큰 해를 끼칠 것입니다. 목국을 위해서라도 저는 공주 전하의 등극을 받아들일 생각입니다. 여러분들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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