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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265)화 (266/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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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화 하늘에 부끄럽지 않은 일

야홍릉은 일어나 창가로 향했다.

그녀는 창밖의 불빛을 바라보며 서서 말을 이었다.

“제가 그를 죽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가 제멋대로 들쑤시며 다니게 내버려 둔다는 말이 아니에요. 천뢰는 한번 들어가면 쉽게 나올 수 있는 곳이 아니지요.”

영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평생 천뢰에서 썩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지요.”

“정왕비가 오늘 밤 찾아와 애를 빌미로 사정한 것은 스스로의 생각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계획도 실패했겠군요.”

용수가 말했다.

“정왕은 심복이 적지 않지. 누가 이 계획을 세웠든 내가 그들 생각대로 놀아날 일은 없을 거야. 오히려 정왕비가 배 속의 아이와 천뢰에 있는 남편 때문에 난처한 상황일 것이지.”

만약 아이만 없었다면 계완월은 정왕의 심복의 말을 듣고 야정연을 빼낼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실패해도 죽는 게 다가 아닌가?

그들은 큰 위협이 되지 못해도 야홍릉은 그들을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이를 가진 계완월은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야홍릉이 아이를 봐서 마음이 약해질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자신의 큰 약점을 직접 야홍릉에게 갖다 바친 꼴이 되었다.

야홍릉은 원래도 야정연을 죽일 생각이 없었다. 아이가 생겼으니 더욱 죽이지 않을 것이다. 또 계완월의 고민이 뭔지도 알게 되었으니 야홍릉에게 유리한 상황이었다.

아이에게 발목이 묶인 사람은 야홍릉이 아닌 계완월이었다.

“감진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여기까지 찾아오시다니요.”

야홍릉은 고개를 돌려 영린을 바라보았다.

영린이 대답했다.

“잠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정왕부에 갇혀 있었으니 지칠 만도 했지요. 잘 보살피세요. 필요한 약재가 있다면 얼마든지 말씀하시고요.”

야홍릉이 말했다.

“누님이 갑자기 이렇게 다정하게 나오시니 황공할 따름입니다.”

영린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곧 씁쓸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아마 돌아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돌아가지 못한다고?’

용수가 물었다.

“어디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말입니까?”

“지금 아주 막막합니다. 그에 대한 짐의 감정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영원히 그와 함께하고 싶습니다. 한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아요. 제가 전생에 저지른 잘못을 보상해주고 싶습니다.”

영린이 말했다. 그는 창밖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감진은 짐이 옆에 있는 게 싫은 듯합니다.”

용수와 야홍릉은 모두 침묵했다.

이런 일은 다른 사람이 뭐라고 건의할 수 없었다.

자신도 모르는 감정을 다른 사람이 알 리는 더욱 없었다.

“그는 빙란각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모두 기녀 아니면 소관이라고 했습니다. 짐이 빙란각에 남으려면 손님을 받으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짐은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영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

“…….”

용수와 야홍릉은 어이가 없었다.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영린, 지금은 기루에 손님이 가장 많을 때입니다. 당신의 얼굴을 보니 하룻밤에도 돈을 꽤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은데 여기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얼른 돌아가십시오.”

용수가 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영린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지금 진지하게 얘기하는 것입니다.”

“강산으로 미인을 바꾸겠다는 말 따위는 하지 마십시오. 이런 일은 당신이 원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지 않겠습니까? 강산으로 미인을 바꾸려고 해도 미인이 허락해야 하는 거고요.”

“전 미인이 아니라 스승님으로 바꾸고 싶습니다.”

영린이 중얼거렸다.

‘우리 스승님을 미인 따위와 비교하지 말라고.’

“지금은 스승이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그렇다면 그런 것입니다. 그게 외부인인 당신과 무슨 상관입니까?”

영린이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대전은 정적에 잠겼다.

용수는 실눈을 뜨며 코웃음을 쳤다.

“영린, 간이 부었군요.”

영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애비.”

용수는 야홍릉을 돌아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한 나라의 황제가 후궁을 들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애비는 여인이나 앞으로 이 규정에 따르는 게 좋겠습니다.”

순간 영린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앞으로 제가 질투하지 않을 테니 그 측부들을 모두 곁에 두는 게 어떻습니까?”

용수는 야홍릉의 뒤로 걸어가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감진은 곱상하게 생기고 못 하는 것도 없지요. 칼춤은 또 얼마나 잘 춥니까? 저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출신이 낮으나 이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애비도 같은 생각이지요?”

야홍릉은 하얗게 질린 영린의 안색을 무시한 채, 창밖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그럴 생각이었다.”

“공주 전하!”

영린은 다급히 말을 바꾸었다.

“누님!”

용수는 코웃음을 쳤다.

“밤이 깊어 짐은 이만 애비와 쉬어야겠으니 자리를 비켜주는 게 어떻겠습니까?”

야홍릉은 고개를 돌리고 영린을 바라보았다.

“언제 동제로 돌아갈 생각인가요?”

“안 갑니다.”

영린은 용수를 노려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그 뒤에 뱉은 말은 놀라운 것이었다.

“짐이 언제까지 살 수 있는지 묵백 대제사가 말하지 않던가요?”

용수는 흠칫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야홍릉도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꿈에서 영린이 수명 삼십 년을 내놓고 감진을 살렸다는 것을 보았었다.

만약 영린이 일흔까지 살 운명이라면 이번 생에는 마흔 살까지밖에 못 살 것이다.

만약 쉰까지 살 운명이라면?

그럼 이번 생에는 스무 살까지밖에 못 살 게 아닌가?

황제는 신분이 고귀하나 역대 황제들 중 장수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중년의 나이에 죽은 사람이 대다수였다.

수명 삼십 년을 내놓았다는 것은 원래의 수명이 반토막 났다는 말이기도 했다.

“묵백에게 물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기운이 펄펄 넘치는 것을 보니 장수할 것 같은데요.”

용수는 말은 이렇게 했지만 더 이상 영린을 괴롭히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영린이 오래 살지 못한다면 그와 아웅다웅 다툴 시간도 많지 않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일단 쉬십시오. 시간이 너무 늦었습니다.”

영린은 바깥을 보더니 말했다.

“먼저 빙란각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당분간은 오지 않을 테니 용건이 있으면 사람을 보내십시오.”

말을 마친 그는 용수와 야홍릉의 대답도 듣지 않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대전은 또 정적에 잠겼다.

“감진은 영린이 그 때문에 수명 삼십 년을 포기했다는 사실을 아느냐?”

용수는 고개를 저었다.

“감진은 애비처럼 다시 태어난 사람입니다.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으나 진실을 모르고 있지요.”

야홍릉은 침묵을 지키다 담담하게 말했다.

“남성국 제사전은 참으로 신기한 곳이군.”

“세상에는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습니다. 다시 태어나지 않아도 우리는 신에게 경외심을 품어야 합니다. 미신을 믿으라는 게 아니라 신의 존재로 우리의 행동을 바로잡고 하늘에 미안한 짓을 하지 말자는 말이지요.”

용수가 말했다.

야홍릉은 고개를 돌리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해야 하늘에 미안한 짓을 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용수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정확한 기준은 없습니다.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으면 됩니다. 나쁜 짓을 하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하면 되지요.”

세상 사람들은 대다수가 성인이 아닌 일반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니 성인을 대하는 기준으로 사람들을 강요할 수 없었다.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애비.”

용수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목에 입을 맞추었다. 방금 목욕을 마친 야홍릉의 몸에서는 향긋한 냄새가 나서 용수는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 같았다.

“애비, 침대로 갈까요?”

야홍릉이 뭐라고 대답하기 전에 용수의 품에 안긴 것을 발견했다.

용수는 그녀를 안고 내전의 침대로 걸어갔다. 그녀를 침대에 눕힌 뒤, 용수는 그녀의 얼굴에 미친 듯이 입을 맞추었다. 입술이 그녀의 볼과 쇄골에 닿을 때, 그의 손도 익숙한 손놀림으로 야홍릉의 옷을 벗겼다.

“용수.”

야홍릉은 고개를 들고 숨을 헐떡였다. 그러나 용수의 손길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녀도 이렇게 강렬한 방식으로 다른 생각을 지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두 팔로 용수의 목을 꽉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이날 밤은 그들뿐만 아니라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생각이 많은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 * *

새해 첫날.

많은 관리가 공주부로 찾아와 명절 인사를 했다.

조정의 대신들, 현갑군 장군 아래 등급의 병사들, 귀족 여인들, 등 사람들이 새해 선물을 들고 찾아왔다.

특별한 시기인 만큼 궁에 들어가 태후에게 문안인사를 올리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떠들썩한 공주부와 비교하면 궁은 쓸쓸할 정도로 조용했다.

야홍릉은 고 집사와 한경백더러 대신을 맞이하게 하고 그녀는 귀족 여인들을 만났다.

그녀는 여인들을 홍릉원으로 데려가 접대했다.

귀족 여인들은 남편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다만 남편들이 나서기 무엇하여 안사람을 보내 야홍릉의 점수를 따자는 속셈이었다.

명절 인사라고 하지만 모여앉아 한담을 나누는 게 다였다.

그래서 의자나 탁자도 따로 준비하지 않았다.

야홍릉은 비단 탑에 앉아 있었고 정려, 정란과 첨향은 차를 따랐다.

야홍릉은 예쁘게 차려입고 온 여인들을 바라보았다.

대다수가 아는 얼굴이었다.

외출하기 불편한 황숙의 며느리들, 한 상서의 부인, 육 군왕의 부인과 여동생, 당 어사의 여식 당정주, 왕 어사의 여식, 초유의 여동생 초하, 매씨 가문의 여식 매향정(梅香婷), 승상의 여식 상관비비(上官菲菲) 등이 야홍릉을 찾아왔다.

또 신입 관리의 아내들도 있었다.

예전에는 각자 지지하는 사람이 달라 자연스럽게 파가 나뉘었던 그들은 간만에 한 데 모여앉아 얘기를 나누었다. 지금 조정의 상황을 잘 보여주는 광경이었다.

사람들은 정성껏 준비한 선물을 바친 뒤, 각자의 신분에 따라 자리에 착석했다.

야홍릉과 가장 가깝게 앉은 사람들은 고명 부인이었다.

그들은 황족의 친척 어르신들이니 신분이 높아 좌석에 앉았다.

하석은 조정 신하의 여식이거나 여동생이었고 더 아래쪽은 젊은 관리의 아내들이었다. 그들은 의자에 앉았는데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 다소곳한 자세로 앉아 야홍릉을 바라보았다.

새로운 관리들은 대다수가 야홍릉의 세력으로 실권을 가지고 있지만 품급이 높지 않았다. 그래서 나이가 들고 명망 높은 황족 귀부인들과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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