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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264)화 (265/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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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화 후환이 두렵지 않습니까

헌원용수는 야정연이 한 짓이 계완월과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기주 포정사 계한우가 야정연을 도와 한 짓도 계완월은 모르고 있었다.

계완월은 남편과 아버지가 무슨 일을 했는지 혼자서만 모르고 있었으니 참 슬픈 일이었다.

계한우가 수사 대상이 되었을 때도 야정연은 계완월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늘 밤 야정연이 천뢰에 잡혀 들어가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계완월은 아무것도 몰랐을 것이다.

미세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창문 틈 사이로 영영이 낮은 목소리로 보고했다.

“전하, 동제의 황제가 찾아왔습니다.”

예상했던 일이라 야홍릉은 별다른 표정을 짓지 않았다.

용수는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

“제가 나가 보겠습니다.”

야홍릉은 창가에 서서 그가 떠나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또 발소리가 들려왔다.

고 집사가 걸어와 공손하게 보고했다.

“전하, 정왕비가 왔습니다.”

야홍릉은 고개를 끄덕였다.

“들라 하라.”

“네, 알겠습니다.”

잠시 뒤, 검은색 피풍의를 쓴 여인이 들어왔다.

그녀는 야홍릉을 바라보며 불안하고 창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7공주……”

등불이 그녀를 비추자 창백한 얼굴이 드러났다.

정왕비는 초조하고 불안한 듯했으나 가까스로 품위를 지키고 있는 듯했다.

야홍릉은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앉으시죠.”

계완월은 야홍릉과 가까운 의자에 앉아 심호흡을 했다.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애쓰고 있는 것 같았다.

곧 정란이 차를 타왔다.

찻잔이 정왕비의 손에 닿자 그녀는 긴장한 얼굴로 손수건을 깨물며 말했다.

“7공주, 대인이…….”

“오라버니는 천뢰에 잡혀 들어갔습니다.”

야홍릉은 자신과 상관이 없는 얘기를 하듯이 평온한 목소리로 입을 뗐다.

“올케도 그동안 오라버니가 밖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녔는지 모르셨죠?”

정왕비의 안색이 더욱 창백해졌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전에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묻지 못했어요. 대인은 제가 묻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오늘 밤이 되어서야…… 소식을 들었어요…….”

“올케가 상황을 알아보러 오신 거라면 자세하게 말씀드릴게요. 그러나 오라버니를 풀어달라고 사정하러 오신 거라면 그건 들어드릴 수 없을 것 같네요.”

그러자 정왕비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는 얼굴로 야홍릉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렇다면 7공주는…… 대인을 용서하지 않을 거라는 말인가요? 왜요? 핏줄이 이어진 친남매인데 왜 이렇게까지 사지로 모는 건가요? 왜…….”

“친남매?”

야홍릉은 웃음을 터뜨렸다.

정왕비는 흠칫 놀랐다.

평소 냉철하고 차갑던 호국 공주는 한 번도 웃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웃으니 정왕비는 당황했던 것이다.

“올케는 어쩜 이리 단순하세요?”

야홍릉은 표정을 거두고 싸늘한 시선으로 정왕비를 바라보았다.

“올케가 저에 대해 모르는 것은 그렇다 쳐도 넷째 오라버니와 혼인한 지 몇 년이 되지 않았어요? 함께 살을 섞으며 산 세월도 긴데 오라버니의 마음에 대해서는 잘 아세요? 그에게 친남매의 정에 대해 물어보신 적은 있으신가요?”

입술을 깨문 정왕비는 할 말이 없었다.

“황족은 무정하다는 말이 있죠. 황위를 두고 싸우느라 형제들끼리 죽일 수도 있고 앞길을 막는 사람을 원수로 여길 수도 있지요. 올케는 저택에만 계셔서 오라버니가 무슨 짓을 했는지 잘 모를 수 있어요. 하지만 오라버니가 이렇게 된 건 다 그가 자초한 것이라는 것만은 꼭 알아주세요.”

야홍릉은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왕비는 고개를 숙인 채, 당황하고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대전의 분위기도 차갑게 굳었다.

“7공주는 황제가 되고 싶은가요?”

정적을 깨는 계완월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홍릉은 침묵을 지키다 찻잔을 들어 차를 마셨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그저 황위가 싫어하는 사람의 손에 들어가는 게 싫어 심술을 부리는 것뿐이지요.”

‘황위가 싫어하는 사람의 손에 들어가는 게 싫어서 이런다고?’

계완월은 이처럼 황당한 말은 처음 들어보았다.

물론, 여인이 황제로 된다는 것도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야씨 황족 전체가 다 싫다는 건가?’

이 문제는 계완월이 고민해야 할 문제가 아니었다.

현재 조정의 반수 이상 권력이 야홍릉의 손에 있었다.

그녀가 남자든, 여인이든, 누구를 싫어하든 말든, 여인이 황제가 될 수 있든 없든……

이것은 모두 야홍릉이 스스로 대면해야 할 문제였다.

야홍릉을 막고 반대하는 일은 조정의 대신들이 할 일이지, 계완월이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계완월은 그런 것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녀가 걱정하는 일은 정왕의 생사였다.

“7공주께서 황제가 되고 싶다면 세상 사람들에게 명성이 좋게 퍼지는 것을 원하지 않겠어요? 사람들이 7공주를 가족이나 죽이는 악독한 사람보다 너그러운 마음을 가진 황제라고 생각하는 게 더 좋지, 안 그래요?”

계완월은 심호흡을 하고 말을 이었다.

“아기의 목숨을 짓밟으며 등극해서 좋을 게 뭐예요?”

야홍릉은 무표정한 얼굴로 정왕비의 말을 듣고 있었다.

이런 말은 그녀에게 상처가 아니었다. 그녀는 명성 따위에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계완월의 마지막 말을 들은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기요?”

계완월은 고개를 숙이고 망설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 임신했어요…….”

야홍릉은 눈을 가늘게 떴다.

“7공주.”

정왕비는 고개를 들고 애절한 눈빛으로 야홍릉을 바라보았다.

“저 임신했어요. 제 뱃속에는 대인의 아이가 자라고 있죠. 그러니 대인을 살려주면 안되나요?”

말을 마친 그녀는 의자에서 내려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7공주, 제가 이렇게 빌게요. 아비 없는 아기가 태어나는 것을 7공주도 바라지 않을 거잖아요?”

야홍릉은 미간을 찌푸린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의심스럽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전 7공주를 속이지 않았어요…….”

정왕비는 고개를 숙이며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정말이에요. 믿지 못하시겠다면 의원을 불러 진찰하세요. 제가 거짓말을 한 것이라면 얼마든지 벌해도 좋고요…….”

“얼마나 됐어요?”

야홍릉이 물었다.

정왕비는 배를 쓰다듬으며 서글픈 표정으로 말했다.

“두 달 안 됐어요.”

그녀는 또 쓴웃음을 지었다.

“저도 이 아이가 잘못된 시간에 찾아왔다는 것을 알아요.”

‘일 년만 빨리 찾아왔어도 대인은 아이를 봐서 과한 행동을 하지 않았을 텐데…… 이 아이로 대인의 목숨을 살릴 수 있을까?’

그녀는 지금 아기로 도박을 걸고 있었다. 야홍릉이 아기를 봐서라도 야정연의 목숨을 살려주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었다.

야홍릉이 평온하게 말했다.

“정려, 도 의원을 불러오거라.”

정려는 바로 대전을 나갔다.

“일어나세요. 도 의원이 온 뒤, 다시 얘기하시죠.”

계완월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밤늦은 시간이라 잠자리에 들었던 도 의원은 정려의 부름에 누가 다친 줄 알고 다급히 건너왔다. 홍릉원에 들어선 그는 정왕비를 보고 예를 올렸다.

“야심한 시각에 잠을 깨워서 미안하네.”

계완월이 말했다.

도 의원은 다급히 괜찮다고 했다.

“정왕비의 맥을 짚어 보아라.”

야홍릉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도 의원은 흠칫 놀라다가 정신을 차렸다. 그는 정려더러 손수건을 가져오라고 한 뒤, 정왕비의 손목을 덮고 그 위로 맥을 짚었다.

그 전에 ‘실례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계완월은 말없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야홍릉도 침묵을 지켰다.

도 의원은 조용히 맥을 짚은 뒤, 한참 뒤에야 일어서서 말했다.

“왕비께서는 회임하셨습니다.”

야홍릉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 의원도 물러났다.

도 의원이 떠나자 대전은 또 조용해졌다.

계완월은 불안한 얼굴로 야홍릉을 바라보며 말했다.

“7공주.”

“아이를 봐서 오라버니의 목숨은 살려줄게요. 그러나 올케도 제 조건을 들어줘야 해요.”

야홍릉이 담담하게 말했다.

계완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 말씀하세요.”

“올케는 정왕부에서 전처럼 지내세요. 외출을 자주 하지 말고요. 오라버니의 심복들도 선을 넘는 행동만 하지 않는다면 저는 모르는 척 눈감아 줄 거예요. 그러나 올케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한다면…… 전 아이가 태어나서 아버지를 보지 못하게 할 거예요.”

야홍릉은 의자에 기댄 채, 담담하게 말했다.

계완월은 흠칫 놀라더니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저 같은 여인이 무슨 짓을 한다고 그래요?”

“전 그저 번거로운 게 싫을 뿐이에요. 올케가 저를 찾아왔다는 것은 오라버니의 운명이 누구에게 달렸는지, 지금 제가 얼마나 큰 권력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안다는 거겠죠? 올케는 똑똑한 사람이니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잘 파악할 거라고 생각해요.”

계완월은 저도 모르게 손수건을 꽉 움켜쥐었다.

“시간이 늦었으니 일찍 돌아가서 쉬세요.”

계완월은 고개를 끄덕이고 뻣뻣하게 일어났다.

그녀의 안색은 공주부에 왔을 때보다 더욱 어두웠다.

계완월은 야홍릉을 바라보며 머뭇거리다가 결국에는 말없이 밖으로 향했다.

대전 밖에서 시녀가 그녀를 호송해서 홍릉원 밖까지 갔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정왕부 시위는 그녀를 데리고 정왕부의 방향으로 떠났다.

멀지 않은 곳에서 용수와 영린은 말없이 그들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영린이 물었다.

“저 여인은 늦은 시간에 왜 온 것이랍니까?”

“저 여인은 정왕비입니다.”

용수는 담담하게 말한 뒤, 홍릉원의 방향으로 걸어갔다.

영린이 그의 뒤를 따르며 물었다.

“정왕비? 남편 대신 사정하러 온 것입니까?”

용수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렇겠지요.”

그것 말고 다른 이유도 없었다.

머리가 잘못되지 않은 한, 이 시국에 와서 야홍릉을 협박할 리도 없었다.

용수가 대전으로 들어가자 의자에 조용히 앉아 있는 야홍릉이 보였다.

야홍릉과 눈이 마주친 용수는 온화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애비.”

뒤따르던 용수는 오글거려 몸을 흠칫 떨었다.

“정왕비가 임신했더구나. 애를 빌미로 나더러 야정연의 목숨을 살려달라더군.”

야홍릉이 말했다.

용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하필 이 순간에 임신이라고요?”

“그래, 도 의원을 불러서 확인했어.”

야홍릉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영린은 의미심장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설마 마음이 약해져서 야정연을 살려두려는 것은 아니지요?”

야홍릉은 냉소를 하였다.

“원래도 그를 죽일 생각이 없었어.”

영린은 미간을 찌푸렸다.

“후환이 두렵지 않으십니까?”

“후환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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