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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263)화 (264/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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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화 애잔한 감정

감진은 흠칫 놀라더니 말했다.

“제가 부족해서 그러십니까? 그럼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공자가 하라는대로 다 할 것입니다. 저더러 춤을 추라고 하신다면…… 춤도 배우겠습니다…….”

“내가 손님을 받으라고 한다면, 그래도 하겠느냐?”

감진이 물었다.

‘뭐라고?’

영린은 시선을 들고 어리둥절한 얼굴로 감진을 바라보았다.

“빙란각은 기루이다. 이곳에는 여인만 손님을 받는 게 아니라 곱상하게 생긴 소관도 관리나 귀족의 예쁨을 받지.”

감진은 영린의 준수한 얼굴을 훑어보며 말했다.

“네 얼굴로는 빙란각에서도 최고 등급의 소관이다. 나이도 딱 좋으니 첫날밤도 비싼 값에 팔리겠지.”

담담한 감진의 말에 영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수치스러워서도 아니고, 감진이 자신을 손님 방에 보낼까 두려워서도 아니라 감진의 차분한 목소리에서 매정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를 물건처럼 가격을 매기는 감진에게서 더 이상 예전 같은 다정함이나 애틋함을 느낄 수 없었다.

영린은 주먹을 움켜쥐고 힘들게 입을 열었다.

“마, 만약 공자가 원하신다면 못할 것도 없지요…….”

퍽!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감진은 발을 들어 영린의 가슴을 걷어찼다. 무방비상태이던 영린은 그대로 벌러덩 넘어지고 말았다. 곧 그는 정신을 차리고 감진의 발을 잡으며 말했다.

“공자, 조심하십시오. 발목의 상처가 덧납니다.”

퍽!

감진은 또 다른 발을 들어 그를 멀리 걷어찼다.

“꺼져!”

영린이 다급히 말했다.

“조, 조심하십시오…….”

감진은 눈을 감고 애써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

“꺼지라고 했다!”

영린은 당황한 와중에도 감진이 드디어 화를 낸 게 기쁘기만 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야 할지 더욱 마음을 졸여야 할지, 아니면 어떻게 감진의 마음을 달래주어야 할지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이 전혀 다른 사람을 달래줄 줄 모른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멍하니 앉아 있다가 일어나 말없이 감진의 발을 다시 대야에 넣었다.

“공자께서 얼마든지 저를 때리고 욕해도 되지만 상처가 덧나지 않게 조심하십시오.”

감진은 침묵을 지키다 더는 화를 내지 않고 냉소를 하였다.

“넌 참 착하고 말을 잘 듣는 아이구나.”

영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빙란각은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아이를 좋아하지. 네가 떠나기 싫다면 내가 오후에 빙란각의 어멈더러 너를 가르치라고 하마. 빙란각에서 살 수 있는 법에 대해 말이다.”

영린은 고개를 숙인 채, 감진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감진의 옆을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만약 감진이 정말 독하게 마음을 먹어 그더러 소관이 되라고 하면 그는 흔쾌히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둘이 같이 여기서 그렇게 지내면 되지. 죽은 뒤, 함께 지옥이나 가고 말이야.’

그는 감진과 함께라면 뭐든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린은 침묵을 지키다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

“공자께서는 왜 저를 이렇게 쌀쌀맞게 대하시는 것입니까? 제가 곱상하게 생겨서 그러는 것입니까?”

감진이 평온한 눈빛으로 말했다.

“난 성격이 원래 이렇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지.”

“그렇습니까?”

“기루의 사장 중 성격이 좋은 사람을 본 적이 있느냐?”

영린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기루의 사장을 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습니다.”

감진은 피곤한지 침대에 기대서는 더는 그와 말을 섞지 않았다.

영린도 조용히 감진의 발을 씻겨주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감진의 발을 문지르며 물었다.

“아픕니까?”

걱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였다.

감진은 눈을 감고 대답했다.

“이 정도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다.”

영린은 흠칫 놀랐다.

‘그래, 이 정도 상처가 다 뭐겠어? 그가 겪은 상처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물 온도가 점차 내려갔다.

영린은 시선을 거두고 조심스럽게 감진의 발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두 다리를 침대 위에 올려놓은 뒤, 말했다.

“사람을 시켜 음식을 준비하게 하였습니다. 먼저 쉬고 계십시오. 제가 가져오라고 시키겠습니다.”

감진은 말없이 침대에 기대앉았다.

영린은 물 대야를 가져간 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두 시녀에게 음식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리고 또 깨끗한 물을 떠 왔다.

그 모습은 시중을 드는 데 익숙한 사람인 듯했다.

이런 모습만 보아서 누가 소년이 동제의 황제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영린의 시선은 감진의 아름다운 얼굴에 닿았다.

그도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스승에 대한 죄책감에 이러는 것인지, 아니면 품지 말아야 할 감정 때문에 이러는 것인지.

그는 전생에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감진이 죽었다는 말을 들은 뒤로 그는 자책과 후회 속에서 고통스럽게 살았다.

매일같이 악몽도 꾸었다.

자신이 저지를 잘못을 돌이키려고 그는 먼 곳에 있는 남성국으로 찾아가 제사전에서 무릎 꿇고 신에게 빌었다.

다시 태어난 지금, 그는 감진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잘 생각해 볼 시간이 있었다.

‘이런 감정은 세상이 받아주지 않겠지? 이번 생에도 그가 사람들의 욕을 먹으면 어떡하지?’

저녁에는 너무 기름진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시녀는 감진에게 죽 한 그릇과 포자(包子)를 가져왔다. 감진은 대충 요기를 한 뒤, 옆에 서 있는 영린에게 물었다.

“배고프면 같이 먹자꾸나. 내가 하인을 괴롭히는 줄 알겠어.”

영린은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감진의 말을 듣자 마음속이 따뜻해졌다.

그는 포자를 집어 들어 한 입 먹었다.

감진은 영린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보았지만 못 본 척했다.

방금 화를 낸 순간을 제외하고 그의 얼굴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평온하기만 했다.

둘은 말없이 음식을 먹었다.

이때, 영린이 말했다.

“공자,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상처가 아물기 전까지 침대에서 푹 쉬십시오. 무슨 일이 있으면 저를 부르시고요.”

스승이 제자를 부리는 것은 당연했다.

감진은 전생에 그의 스승이었다. 제자의 본분을 다한다고 해도 좋고 감진에게 준 상처에 대한 보상을 한다고 해도 좋았다.

영린은 최선을 다해 감진의 옆을 지킬 생각이었다.

감진이 말했다.

“빙란각에는 하인이 많다.”

그러자 영린이 대답했다.

“그들은 저만큼 최선을 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최선을 다한다고?”

감진은 비웃는 듯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너도 하인의 시중을 받아야 하는 사람인 것 같은데 네가 하인의 일을 하는 것은 힘들지 않겠느냐?”

영린은 고개를 저었다.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다 제가 원해서 하는 일입니다.”

감진은 또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 말을 믿은 것인지, 아닌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영린은 돌아서서 연고를 가져왔다. 그리고 감진의 옷소매를 들고 그의 손목에 연고를 조심스럽게 발라주었다. 그리고 발목에도 약을 발랐다.

“아까 태의가 이미 연고를 발랐습니다. 오늘 푹 쉬시면 내일 아침에 도 의원이 다시 와볼 것입니다.”

감진은 말없이 침대에 누웠다.

그는 더 이상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영린은 그의 옆에 서서 잠든 감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꿈에도 그리던 얼굴이었다.

감진의 얼굴은 창백하고 초췌했다. 정왕부에서 연속 열흘 넘게 고문을 당하며 잘 쉬지 못해서 그런 듯했다.

여기까지 생각한 영린은 야정연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었다.

‘그런데 감진은 왜 야정연에게 순순히 잡혀간 것이지?’

감진의 신분은 빙란각의 사장이지만 영린은 감진이 용수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것은 감진의 선택이었다. 감진이 용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인지 상처로 가득한 동제를 떠나려고 용수의 사람이 된 것인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용수와 야홍릉의 보호를 받는 감진을 야정연이 끌고 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감진이 스스로 따라간다면 모를까.

‘그런데 왜 따라간 것이지? 야정연이 뭘 하는지 알고 싶어서? 아닐 거야.’

영린은 고개를 저었다.

야홍릉과 용수의 능력으로는 정왕의 움직임을 파악하려면 감진을 미끼로 쓸 필요가 없었다. 용수의 능력만으로 정왕부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감진이 정왕부로 들어가면 어떤 결과가 나올 수 있지?’

영린은 생각에 잠겼다. 순간 심장이 철렁한 그는 당황한 얼굴로 감진을 바라보았다.

그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주체할 수 없었다.

감진은 자신의 얼굴에 쏟아지는 시선을 느꼈지만 너무나 피곤해서 영린과 말을 길게 하고 싶지 않았다. 곧 그는 잠이 들었다.

영린은 옆에서 그를 바라보았다.

침대 옆에 서서 한참 바라보던 그는 감진이 깊이 잠들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향을 피웠다. 더욱 푹 잘 수 있게 해주는 향이었다.

방문을 나선 그는 심복더러 문밖과 창가 곳곳을 지키라고 지시하며 절대 감진이 다치지 않게 하라고 당부했다. 그제서야 영린은 빙란각을 나섰다.

* * *

같은 시간, 호국 공주부는 등불로 환했다.

이제 막 궁에서 돌아온 야홍릉과 용수는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둘은 원앙욕을 즐긴 뒤, 정사를 벌이려는 순간, 고 집사에게서 정왕비가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왕비?”

용수는 침대에 앉아 담담하게 말했다.

“야정연처럼 잘난 척하는 멍청이에게 시집간 눈먼 여인이 왔군요.”

야정연은 잘난 척할 뿐만 아니라 여인을 사람으로 보지도 않았다.

계완월은 야정연에게 시집온 뒤, 매일같이 정왕부에 처박혀 집안일만 했다.

그녀는 귀족의 연회 같은 곳에도 얼굴을 거의 비추지 않았고 남편이 밖에서 뭘 하는지 묻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현모양처였다.

아니, 아직 아이를 낳지 않았으니 ‘현모’는 아니었다.

계완월이 원해서 이렇게 사는 것인지, 아니면 말못할 서러움을 속으로 삭이는 것인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야정연이 다른 쪽으로 어떨지 모르지만 적어도 아내를 존중하는 편이었다. 그는 첩실을 들이거나 통방 하녀를 부르지 않고 아이를 못 낳은 계완월을 구박하지도 않았다.

고집스럽고 잘난 척하는 것을 제외하고 야정연은 아내에게 나쁜 남편이 아니었다.

‘참 잘 어울리는 한 쌍이야. 자신이 잘난 줄 아는 남자에게 계완월처럼 차분하고 순종적인 여인이 딱이지.’

“들여보내거라. 홍릉원으로 데려가면 된다.”

야홍릉이 담담하게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용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애비, 마음이 약해진 것입니까?”

“그게 아니야.”

야홍릉은 용수의 머리를 떠밀며 말했다.

“야정연이 무슨 짓을 했건, 계완월과는 상관이 없어. 그녀도 황족 친척이니 내가 만남을 거절할 이유는 없지 않느냐?”

용수는 입을 삐죽거릴 뿐, 그녀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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