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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260)화 (26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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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화 뒤늦은 후회

나중에 영린은 순조롭게 영위에게서 모든 대권을 빼앗고 영위를 그의 앞에 무릎 꿇렸다. 영위는 앞으로 다시는 섭정왕부를 나서지 않고 조정의 일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다짐해서야 영린은 섭정왕을 당분간 내버려 두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너무 악독하다는 인상을 주기 싫었던 것이다.

그는 황숙인 영위를 체면 때문이라도 죽일 수 없었다.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야 그는 문득 오랫동안 감진을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측근 시위에게 물었다. 시위는 금기시된 이름을 꺼내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감 공자 말입니까? 그게…… 이미 안 계신 줄로 압니다.”

‘뭐라고?’

그 순간, 영린은 잘못 들은 줄로만 알았다.

“뭐라고 했느냐?”

‘없다고? 그게 무슨 말이지? 제경을 떠났다는 말인가? 아니면…….’

시위는 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보고 대답했다.

“감 공자는 집안의 어른들에게 연속 며칠이나 심문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감 공자에게서 사건의 진실을 알아내려고 했지만 감 공자는 입을 열지 않았지요. 집안 어른들은 그를 욕하고 때리며 사당에 며칠 동안 가둬두기까지 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나중에 섭정왕이 권력을 내놓고 집에 갇혀 지낸다는 말을 듣고야 죄를 시인했습니다. 그래서 감씨 가문에서 쫓겨나는 벌을 받았지요……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감 공자는 음독하고 자결했다 합니다.”

영린은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들은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연속 며칠이나 심문을 당했다고? 맞고 감금당했다고? 죄를 시인했다는 것은 또 무슨 소리야? 그리고 자결이라니…….’

한 글자 한 글자, 한마디 한마디가 그의 가슴에 비수처럼 박혔다.

영린은 이 모든 게 꿈만 같았다.

그는 모든 말을 감진과 이어서 생각할 수 없었다.

항상 우아하고 귀티 흐르던 감진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항상 여유롭고 차분하던 감진이었다.

봄바람같이 따스한 미소로 사람의 마음을 녹이던 감진이었다.

뛰어난 학식과 재주를 자랑하던 감진이었다.

그에게 직접 제왕의 마음과 이치를 가르쳐 주며 백성을 위해 살라고 하던 감진이었다.

그에게 사람들은 제왕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에 항상 깊이 생각해 보고 움직이라고 타이르던 감진이었다.

감진의 말 한마디 한마디, 모습 하나하나가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영린은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그는 감진처럼 도도하고 고결하던 사람이 집안 어르신의 고문을 당하며 한 번 또 한 번 고개를 숙이고 매질을 당했는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깨끗한 명성에 더러운 누명이 씌워졌을 때,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시인할 때, 자결을 마음먹고 행동에 옮길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영린은 아무것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는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과 두려움에 휩싸였다.

심장이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아파 숨쉬는 순간마저 고통의 연속이었다.

‘내 스승이 이렇게 죽었다고? 아직 젊은데 뛰어난 재능도 제대로 펼쳐 보지 못하고 죽었다고? 가장 아름다운 나이에 추잡한 음모 때문에 죽다니. 내 더러운 술수에 죽다니……!’

편전은 오래도록 정적에 잠겼다.

옛일들이 씁쓸한 영린의 목소리에서 조금씩 드러났다.

편전을 가득 채웠던 슬픔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옅어졌다.

영린은 한숨을 내쉬고 대답했다.

“이것이 바로 짐이 말할 수도 없고 말하고 싶지도 않은 과거입니다. 매일같이 과거에 얽매여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분명 짐을 미쳤다고 생각할 테니 말입니다. 그러니 누님에게 들려주는 것이지요.”

자신이 저지를 죄를 터놓는다면 혼자 속에 담고 있는 것보다 후련할 것이다.

그는 숨 막히는 후회와 고통 속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고 싶었다.

“영린, 당신은 참 짐승만도 못한 인간입니다.”

야홍릉이 평온하게 말했다.

영린은 흠칫 놀랐다.

“누님도 그리 생각하십니까? 네, 짐도 공감합니다.”

그는 피식 웃었다.

‘짐승만도 못하다. 그래, 맞는 말이야.’

야홍릉은 담담하게 말했다.

“감진은 지금 제 측부입니다. 그가 깨어난 뒤, 당신을 기억하는지, 앞으로 어떤 길을 가든지 저는 그의 결정에 맡길 것입니다. 만약 그가 공주부에 있고 싶다고 하면 저도 말리지 않을 것이고 누구도 그를 강요하지 못하게 막을 것입니다. 그의 선택을 존중해 주고 싶어요.”

영린은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기만 했다.

과거를 얘기하는 것은 후련해질 수 있는 방법이지만 또 다른 고통이기도 했다.

영린은 생각에 잠겼다.

‘감진이 이번 생에 일찍 동제를 떠난 것은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게 아니라면 떠날 이유가 없으니.’

이번 생에 감진은 아직 전생의 일을 겪지 못했다. 그는 아직 영옥을 알지도 못하고 장원에 급제하지도 못했으며 궁에 들어가 황자의 스승이 되지도 못했다.

그는 자신의 재능을 포기하고 전생의 부귀영화를 포기한 뒤, 미모로 빙란각에 들어가 간판 소관이 되었다.

‘내가 한 ‘천한 남첩’이라는 말 때문인가? 그래서 나를 벌하는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에게 벌을 주는 것인가?’

야홍릉이 편전을 나설 때, 대신들은 아직도 수심에 잠긴 얼굴로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다.

야정연은 옆에서 말없이 술을 마시고 있을 뿐, 고개도 들지 않았다.

대신들이 어떤 결과를 내오든 관심 없는 눈치였다.

동제의 황제가 죄를 물으러 왔지만 대신들이 멋대로 정왕의 목숨을 내놓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정왕 쪽의 대신들은 절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영린의 요구가 황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영린이 조금이라도 양보하여 정왕의 목숨만 요구하지 않는다면 다른 것은 다 들어주겠다고 했다.

“공주 전하.”

승상은 야홍릉이 나온 것을 보고 다급히 물었다.

“동제의 폐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승상은 이를 보더니 안색이 어두워지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하, 동제와 목국이 전쟁을 치른다면 승산은 얼마나 됩니까?”

‘승산이 얼마나 되냐고?’

야홍릉은 말없이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승산을 논하기 전에 누가 병사를 이끌고 전쟁에 나갈 것인지 의논하는 게 순서 아닌가?”

“그게…….”

승상은 당연히 야홍릉이 가장 적절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병사를 이끌 만한 사람이 야홍릉 밖에 없었다.

그녀가 당분간 조정을 떠나 있는다면 다른 사람들도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야홍릉은 전쟁터에 나갈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승상은 망설이다 물었다.

“정왕 전하께 나가라고 할까요?”

정왕이 병사를 이끌고 전쟁터에 나간다면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책임지는 한편, 전쟁에서 이긴다면 군공도 획득할 수 있었다.

야홍릉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정왕은 죄를 지은 몸이라 당분간은 제경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네.”

‘죄를 지은 몸이라고?’

승상은 심장이 철렁했다.

‘호국 공주가 이미 증거를 손에 넣었다는 말인가? 정말 정왕이 뭔가를 했나?’

사실 그도 알고 있었다.

정왕의 개입이 없다면 그의 장인이 홀로 병기 창고를 설립하고 병기를 밀매입할 용기가 없다는 것을.

반역죄에 해당하는 행동을 계한우가 알면서 범할 리 없었다.

그러나 단죄하려면 짐작이 아닌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했다.

야홍릉은 고개를 돌리고 용수에게 지시를 내렸다.

용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떠났다.

야홍릉은 좌석에 앉은 뒤, 대신들을 둘러보며 담담하게 물었다.

“그래서 논의한 결과가 무엇인가?”

“공주 전하.”

초 각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정왕은 목국의 황자이자 폐하의 친아들입니다. 정왕 전하께서 감 공자를 잡아들인 것은 감 공자가 예전에 의심스러운 행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증거가 없어 정왕 전하가 심문한 것이지요. 그거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사과할 수 있고 다른 조건도 들어줄 수 있으나 목숨으로 갚으라는 말은 심한 게 아닙니까?”

“맞습니다. 신도 이번 일이 목숨을 내놓을 정도로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감 공자가 다친 것은 우리도 죄송스러우나 태의원에 얘기해 감 공자에게 가장 좋은 약을 쓰라고 하는 게 우선인 듯합니다. 감 공자의 상처가 좋아진 뒤, 다시 감 공자에게 사죄하겠습니다. 그가 아무리 과한 요구를 얘기하든 우리는 최대한 들어줄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일로 양국이 싸운다는 것은 심한 것 아닙니까? 그리고 정왕 전하가 목숨으로 사죄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됩니다…….”

야홍릉은 말없이 대신들이 정왕의 역성을 드는 것을 지켜보았다.

즐겁기만 해야 하는 그믐날 연회는 이미 명절 분위기가 사라지고 말았다.

누구도 연회를 즐기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전쟁이 걸린 문제이니 사람들은 심각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 영린의 표정을 본 그들은 그것이 일부러 화난 척하는 게 아니라 진짜 분노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리고 영린은 충분히 금전적인 요구를 할 수 있었지만 다 필요 없고 정왕의 목숨이면 된다고 했다.

그 말인즉, 그는 정말 정왕의 목숨을 원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먼저 보상 얘기를 꺼내도 영린이 받아줄 가능성이 크지 않았다.

‘동제의 황제가 정왕의 목숨을 내놓으라고 고집을 부리며 그러지 않으면 병사를 발동하겠다고 한다면 더 좋은 해결 방법이 있을까? 동제의 황제를 제경에 묶어둔다거나…….’

“오늘은 그믐날이네. 올해 한 해를 마감하는 날이기도 하지. 나는 여러분들이 무사히 한 해를 보냈으면 했다네.”

떠들썩한 가운데, 야홍릉의 맑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싸늘한 목소리에는 위엄이 담겨 있어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조용해졌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나 이번 오늘은 조용히 지나가기 그른 듯하네. 이렇게 된 김에 선포할 일이 있다네.”

대전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승상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짐작한 듯,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공주 전하, 지금 그 얘기를 하시는 건 좀 적절하지 않을 듯합니다.”

“적절하지 않을 건 없지. 이미 망친 연말 분위기, 더 망쳐도 상관없지 않나?”

야홍릉이 말했다.

이때, 발소리가 들리더니 야홍릉의 지시를 받고 자리를 비웠던 헌원용수가 다시 돌아왔다.

그는 손에 든 물건을 야홍릉에게 넘겼다.

야홍릉은 다른 사람이 모두 볼 수 있게 그 물건을 번쩍 들었다.

“이것은 부황의 명으로 기주의 사건을 조사한 결과와 기주 포정사 계 대인이 부정당한 수단으로 심씨 가문의 재산을 빼앗은 증거네. 계 대인이 뇌물을 받고 사적으로 병기와 갑옷을 밀매입한 증거도 들어 있네. 반역을 꾀한 증거가 충분하고 그중 정왕이 연루된 부분도 있으니 직접 보시게.”

말을 마친 야홍릉은 손에 든 증거를 승상에게 전해주었다.

“승상 대인, 좀 보시게. 이 증거가 조작한 게 아닌지, 빠뜨리거나 불합리한 부분이 없는지 보시고 다른 대신에게도 보여주게.”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전의 공기는 얼어붙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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