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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259)화 (26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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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화 그랬었군

‘감진은…… 감진도 다시 태어났나? 그랬나 보군. 그게 아니면 동제의 공자인 감진은 왜 어렸을 때 동제를 떠나 용수의 부하로 들어갔겠어? 그러니 감진이 다시 태어난 것은 영린이 대가를 치르고 바꿔온 결과일 거야.’

야홍릉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추측하면서도 황당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녀가 직접 시간을 거스른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야홍릉은 이 모든 게 다 묵백이 꾸민 황당한 속임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죽은 사람이 어찌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인가? 그만큼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는 저의 스승님이셨습니다.”

영린은 몸을 돌려 창가 앞으로 걸어갔다.

그의 얼굴은 추억에 잠긴 듯, 아련해졌다.

“그는 동제의 세가 공자였지요. 열여섯 살에 동제의 과거에 장원 급제할 정도로 재주가 뛰어났습니다.”

야홍릉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짐이 열두 살 되던 해, 그는 황자의 스승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학식보다 유명한 것은 그의 아름다운 얼굴이었습니다. 장원 급제한 뒤, 감진은 수많은 귀족 여인의 이상적인 신랑감이 되었지요.”

그때의 감진은 아주 눈부셨다.

야홍릉은 말없이 영린의 과거 얘기를 들었다.

“공주 전하는 섭정왕 영위와 짐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셨지요? 섭정왕처럼 대단한 사람이 전생에 왜 짐한테 패배했는지 궁금했겠지요.”

영린은 웃고 있었지만 그의 미소에는 후회와 고통이 가득했다.

“감진은 스승이 된 뒤, 최선을 다해 짐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짐이 등극한 뒤, 좋은 황제가 되기를 바랐지요. 하지만 짐은 뻔뻔하게도 그를 이용했습니다. 감진은 열일곱 살에 황자의 스승이 되었고, 앞길이 훤해졌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그에게 구애를 펼쳤지요. 여인뿐만 아니라 사내도 많았습니다.

그는 짐을 사 년간 가르쳤습니다. 열두 살에서 열여섯 살까지. 짐이 황자에서 황제로 등극한 뒤에도 그는 짐의 스승으로 곁을 지켜주었습니다.”

영린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짐은 그의 미색을 무기로 삼고 섭정왕을 상대하기 위해 그더러 영옥을 가르치게 했지요.”

영옥은 섭정왕의 아들로 올해 열한 살이었다.

이 년 뒤, 열세 살이 된다면 유혹에 쉽게 빠질 만한 나이였다.

야홍릉은 전생의 궁금증이 다 풀리는 것 같았다.

전생에 섭정왕이 왜 어린 황제에게 패배했는지 그녀는 항상 의아했다.

‘그랬었군.’

그녀는 막연하게 영린이 영묘언을 이용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영묘언은 순진하고 단순한 소녀여서 이용당하기 쉬웠다.

특히 누군가 작정하고 마음을 이용한다면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여인인 군주는 지켜야 하는 규정이 많아 함부로 바깥사람들과 정을 통할 수 없었다. 또 섭정왕은 적들이 딸에게 손을 뻗을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하여 항상 경계했다.

그랬기에 섭정왕은 영린이 자신의 아들에게 손을 뻗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다.

영린이 직접 말한 게 아니라면 야홍릉은 열한 살인 영옥 때문에 섭정왕이 망했다고 절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편, 감진의 신분도 놀라웠다.

황제의 스승이라니.

그녀는 감진이 전생에 이토록 고귀한 신분이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빙란각의 간판 소관이 된 것이다.

두 신분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전생에 섭정왕과의 전쟁에서는 짐이 이겼습니다. 하지만 영예롭게 이기지 못했지요. 그 대가는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며 죽을 듯한 후회와 고통 속에서 허덕이는 것이었습니다. 사는 것보다 못한 고통이었습니다.”

영린의 목소리는 정적에 잠겼다. 그는 쓸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짐은 그 뒤로 매일같이 그를 그리워했습니다. 그리움과 후회가 매일 밤 짐을 괴롭혔지요. 짐은 절망을 느꼈습니다. 황제의 자리에 올랐고 대신들이 모두 발치에 있었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습니다…….”

용의에 앉아 보내는 삶은 너무나 외로웠다.

높은 자리는 쓸쓸한 법이다.

뼛속 깊이 파고드는 쓸쓸함이 밤마다 찾아와 그를 괴롭혔다.

그는 종종 악몽에서 깨어났다. 그는 그렇게 고통, 그리움, 후회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텅 빈 대전에서 그의 곁을 지키는 것은 끝없는 적막과 외로움이었다.

“그래서 나중에 감진이 다시 태어나도록 빈 것입니까? 그렇다면 감진은 어떻게 죽은 것입니까?”

야홍릉이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

영린은 한참이나 침묵을 지키다 입을 열었다.

“음독하고 자결했습니다.”

‘자결?’

야홍릉의 미간은 더욱 깊게 찌푸려졌다.

영린은 대전 밖을 바라보았다.

맑은 그의 눈빛에는 처량한 빛이 감돌았다.

“감진이 영옥을 가르치면서 영옥은 하루하루 그에게 의지하기 시작했습니다. 감진의 학식이 뛰어난 것을 제외하고 짐이 사람을 보내 영옥에게 감진의 좋은 말을 많이 하기도 하고 수단도 사용한 것도 있지요…….”

‘무슨 수단?’

뭔지는 몰라도 아마 아이에게 잘 먹히는 수단일 것이다.

서원의 스승은 아주 엄격했지만 감진은 달랐다. 그는 우아하고 다정할 뿐만 아니라 종종 농담으로 무거운 분위기를 풀어주었다.

부잣집 귀공자처럼 거드름을 피우지 않고 아이를 잘 달랬다.

그래서 남녀를 막론하고 그와 한동안 지내고 나면 모두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이성의 감정이 아니라 그와 보내는 시간이 즐거운 것이다. 그가 학문에 대해 논하거나 인생의 도리를 얘기하는 것을 듣는 것도 즐겁고 그가 사람을 대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그에게는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저도 모르게 그를 따르고 그와 친구가 되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부족했다.

사람들은 모두 그를 좋아했지만 영린은 이것만으로 감진을 이용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심복을 파견해 영옥에게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다. 감진은 겉보기처럼 부족한 게 없는 사람이 아니라 속사정이 있다고 했다. 그가 지금 누리는 부귀영화는 모두 그가 부끄러운 짓을 해서 바꿔온 것이라고 했다.

그 이야기는 적절한 시기에 우연을 가장한 일을 꾸미기도 했다. 영옥은 점점 감진이 불쌍한 사람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그 믿음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깊어졌다.

그는 처음에 감진을 존경하고 따르던 데로부터 점점 그의 처지를 가슴 아파했다. 동시에 그에게 상처 준 사람들을 증오하며 무능한 자신을 원망했다.

이런 감정은 점점 깊어져 갔다.

“그러더니 짐이 예상한 것과 다르게 흘러갔지요. 사실 짐도 그때는 어려서 완벽한 계획을 세우지도 못했습니다. 그저 사람의 마음을 이용하는 서툰 장난일 뿐이었죠. 그런데 정말 성공한 것입니다. 그래서 짐은 뿌듯하기도 하고 으쓱했지요.

그러나 제 계획이 완벽해서 성공한 게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감진이 제 의도를 파악하고 종종 팔이나 목에 손톱으로 할퀸 자국을 낸 것입니다. 영옥은 그 상처를 보고 감진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었지요.”

영린이 서글픈 표정으로 말했다.

야홍릉은 그의 말을 들으며 침묵에 잠겼다.

‘그래서 감진은 흔쾌히 영린에게 이용당한 거라고?’

“영옥은 안쓰러운 마음을 느끼면서 감진에 대한 마음이 더 깊어졌습니다. 그의 가장 큰 소원은 얼른 커서 스승을 지켜주는 것이었지요. 얼마나 순수한 소망입니까? 그 마음에 비하면 짐은 비열할 뿐이지요.”

영린은 손을 들어 눈가의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짐은 영위를 이겨도 전혀 기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직 감진이 자결한 이유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 부분이 그에게는 가장 큰 상처이자 황제의 신분으로 사는 동안 가장 돌이키고 싶은 일일 것이다.

“짐이 열여섯 살 되던 해에 정권을 모두 움켜쥐었지만, 섭정왕의 존재는 여전히 눈엣가시 같았지요. 영옥을 이용하는 게 마음이 불편해도 섭정왕을 제거하기 위해 짐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십 대는 한창 혈기가 왕성할 때이지요. 영옥도 그랬습니다. 영옥은 감진의 팔이나 목의 상처를 몇 번 본 뒤, 짐을 찾아왔습니다. 짐에게 왜 감진을 그렇게 대하냐고 따졌습니다. 스승은 좋은 사람인데 그를 이렇게 괴롭히는 짐이 짐승보다 못한 사람이라면서요.”

영린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눈가에 눈물이 맺힐 때까지 웃었다.

“맞는 말이지 않습니까? 짐은 정말 짐승보다 못한 사람입니다. 스승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 상처를 낸 게 내가 아니지만 짐은 끝까지 모르는 척했습니다. 스승이 짐을 위해 영옥을 속이는 것을 알면서도 두고만 보았지요…….

그래서 영옥이 찾아와서 화를 내며 따질 때, 조건을 걸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영린은 그때의 광경을 잊을 수 없었다.

그때의 일이 떠오를 때마다 그는 자신의 아둔함과 비열함에 치를 떨었다.

“그는 천한 남첩일 뿐이다. 너한테 주랴? 하지만 조건이 있다.”

그때, 그는 영옥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영옥은 감진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는 감진에게 고백했고 영위와 섭정왕비 앞에서 평생 혼인하지 않고 감진만 사랑하겠다고 맹세했다.

이 일로 동제의 제경은 떠들썩해졌다. 감진은 제경 상류 사회에서 가장 큰 추문이자 비웃음거리도 되었다. 사람들의 존경을 받던 감진의 명성이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사람들은 그가 일부러 타락한 것이라고 욕했다.

스승인 감진이 자신의 몸을 함부로 굴리며 미색으로 어린 섭정왕 세자를 꼬셨다고 욕했다.

감진의 가문도 그 때문에 구설수에 휘말렸다.

영옥은 애를 쓰며 감진은 죄가 없다고, 죄가 있다면 감진을 짝사랑한 자신의 잘못이라고 했지만 누구도 그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섭정왕비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앓아누웠다.

섭정왕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폭탄 발언에 며칠 동안이나 화를 가라앉히지 못했다.

영위 또한 감진 만큼이나 욕을 먹었다.

영린을 지지하는 대신들은 이때다 싶어 섭정왕을 호되게 꾸짖었다.

“황제께서 이제는 직접 정무를 보니 군영이나 조정에 신경끄고 아들의 교육에나 힘쓰십시오. 어린 나이에 다른 것도 아니고 남자의 미색에 빠져 이게 무슨 황실 얼굴에 먹칠하는 짓입니까?”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영린은 모르고 있었다. 그가 영옥에게 ‘그는 천한 남첩일 뿐이다. 너한테 주랴?’라고 말할 때, 감진이 멀지 않은 곳에 서서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러한 추문이 제경에 퍼지자 감진은 관직을 그만두고 감씨 가문으로 돌아가 어른들에게 용서를 빌었다. 그가 가법대로 엄격하고 치욕스러운 심문을 받을 때, 영린은 조정에서 ‘학업에 열중하지 않고 황실의 체면에 피해를 입혔다’는 죄명으로 영옥을 벌하고 있었다.

감진이 집에서 벌을 받고 사당에 무릎을 꿇고 있을 때, 영위는 병권을 내놓는 조건으로 아들을 돌려받았다.

감진이 연속 사흘 동안 심문을 당하고 채찍으로 기절할 때까지 맞을 동안, 영린은 영옥의 잘못을 이용해 조금씩 영위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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