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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257)화 (258/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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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7화 동제의 공자

야홍릉은 증거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수고했네. 돌아가서 푹 쉬고 내일 낮에는 가족들과 보낸 뒤, 저녁에 궁에 들어가 그믐날 연회에 참가하게.”

야홍릉의 말을 들은 참정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궁중 연회는 규정이 많아 아무 관리나 참석할 수 없었다. 황제의 총애를 듬뿍 받는 대신을 제외하면 품급의 순서대로 참석할 수 있었다.

두 참정은 품급이 낮아 일 년에 한두 번씩 열리는 큰 연회를 제외하면 조례조차 참석할 수 없었다.

그런데 궁중 그믐날 연회에 참석하라니!

둘은 그동안의 피로가 싹 가시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호국 공주의 인정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관례대로 십이월 이십팔 일부터 새해 초엿새까지 조례를 쉬었다.

그렇기에 야홍릉은 증거를 손에 넣어도 당분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녀는 조용히 연말을 보내겠다고 말했으니 다른 사람들도 무사히 새해를 맞이하게 할 생각이었다.

새해맞이 휴가가 끝난 뒤, 계획을 실행해도 늦지 않았다.

그러나 그믐날 밤, 제경에 도착한 영린은 목국의 황제를 뵙고 싶다는 서신을 또 한 번 보내왔다. 이번 연말도 조용하게 보내기에는 그른 듯했다.

황제는 아직도 요양 중이었기에 영린의 서신은 승상의 손에 들어갔다.

승상은 사람들을 데리고 직접 동제 황제를 궁으로 맞이했다. 맑고 깨끗하게 생긴 열네 살의 영린을 마주한 순간, 승상은 깜짝 놀랐다.

문득 이 소년의 얼굴이 눈에 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이목구비가 어디서 본 듯한데.’

하지만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어디에서 보았던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는 영린을 청양궁(靑陽宮)으로 데려간 뒤, 조금 쉬고 저녁의 연회에 나오라고 했다.

연회에서 다른 대신들과 함께 대접하겠다는 뜻이었다.

황제가 요양 중이라 원래는 그믐날 연회를 간단하게 치를 생각이었다.

하지만 동제의 황제가 갑작스럽게 찾아왔으니 그의 의도를 알 수 없는 승상은 접대를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그는 예부에 지시해 저녁 연회를 성대하게 열라고 했다.

* * *

“짐의 누님은 어디 계십니까?”

영린은 탑에 축 늘어져 앉으며 물었다.

“짐은 누님과 중요하게 할 얘기가 있어 찾아온 것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야홍릉과 함께 궁에 들어온 용수가 물었다. 야홍릉은 지금 섭정권을 가지고 있기에 다른 나라의 황제가 찾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궁에 들어오는 것이 당연했다.

“애비는 지금 광양궁(廣陽宮)에서 저녁 연회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용수는 의자에 앉으며 찻잔을 들었다.

“누님이 직접 하셔야 하는 것입니까? 목국의 관리들은 뭘 하는데요? 다 멍청이들입니까?”

영린이 미간을 찌푸렸다.

“다 멍청이인 것은 아니나 대다수는 그렇죠. 감진은 정왕부에 있습니다. 좀 다쳤고요.”

용수가 말했다.

영린은 이 사실을 진작 알고 있었지만 용수의 말을 듣자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야정연을 갈기갈기 찢어 죽일 것입니다.”

용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영린은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설마 일부러 감진을 다치게 하여 목적을 이루려는 것은 아니지요?”

“허? 짐은 그 정도로 무능하지는 않습니다.”

용수가 코웃음을 쳤다.

그러자 영린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당신도 있고 누님도 있는데 야정연이 어떻게 감진을 잡아간 것입니까?”

“감진이 야정연을 따라간 것이라면 믿으시겠습니까?”

영린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왜죠?”

“짐이 그걸 어떻게 알겠습니까?”

용수는 차를 마시고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살기 싫었나 보지요.”

그러자 영린이 그를 흘겨보았다.

“그쪽이 살기 싫은 게 아니고요?”

용수는 시선을 들고 그를 바라보며 뿌듯한 얼굴로 말했다.

“영린, 짐과 애비는 지금 한창 뜨거울 때입니다. 정말 애비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짐한테 밉보이지 않는 게 좋을 것입니다.”

영린은 조용히 차를 마셨다.

잠시 뒤, 영린이 의미심장한 말투로 물었다.

“목국 황제의 상황은 심각합니까?”

용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분간은 깨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영린은 침묵을 지키다 우아하게 미소를 지었다.

“누님은 참 대단하십니다. 하지만 이런 행위는 황위를 빼앗는 행위가 아닌가요?”

황위를 빼앗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야홍릉은 자신이 원하는 결과만 이룰 수 있다면 다른 것은 다 괜찮았다.

그러나 용수는 그녀가 황위를 빼앗았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평소 생각이 없어 보이는 그지만 모든 계획을 완벽하게 짜고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누구도 야홍릉이 황제로 가는 길을 막지 못할 것이다.

또 누구도 감히 그녀에게 나쁜 평가를 할 수 없을 것이다.

날이 어두워졌다.

궁인이 와서 연회가 시작되었다고 하자 영린은 궁인과 함께 광양궁으로 갔다.

호화롭고 떠들썩한 광양궁에 도착했다.

황제가 요양 중이기에 연회의 상석은 비워져 있었다.

자안궁의 태후도 몸이 좋지 않아 떠들썩한 연회에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야홍릉과 승상이 연회를 주최했다.

헌원용수의 좌석은 야홍릉 옆자리에 배치되었다. 그의 신분은 이런 연회에 출석하기 적합하지 않았으나, 현재 대신들의 관심은 그가 아닌 동제의 황제 영린에게 쏠려 있었다.

그들은 영린의 미모에 감탄하는 한편, 그가 제경에 찾아온 의도에 불안한 마음을 품었다.

‘혹시 싸움을 걸려는 것은 아닐까? 또 전쟁이 일어나는 건가?’

이렇게 생각하니 대신들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폐하께서는 현재 옥체가 편찮으셔서 저와 호국 공주가 조정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이렇게 찾아주시니 영광일 따름입니다. 폐하는 어린 나이임에도 멋지고 분위기가 남달라 감탄스럽습니다.”

승상이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야정연과 야모침 모두 영린이 아주 잘생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쩐지 그의 눈매가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승상의 말은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그러나 승상의 말을 들은 영린은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말했다.

“영광이라고요? 짐이 보기에는 그저 무서워하는 것 같은데요.”

그의 말에 연회석이 조용해졌다.

관리들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불안한 예감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승상도 흠칫했지만 평온한 얼굴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영린은 싸늘한 얼굴로 날카롭게 말했다.

“짐에게는 형님이 한 분 있는데 동제의 귀족 가문 공자입니다. 고귀한 가문 출신인 그 형님이 최근 목국의 한 황자에게 감금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뭐라고? 이게 무슨 소리야?’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그럴 리 없습니다.”

승상은 미간을 찌푸렸다.

“목국에 다른 나라의 공자가 온 적이 없는데 황자가 감금했다니요? 어느 황자가 다른 나라의 귀한 손님을 감금하겠습니까? 잘못 알고 계시는 게 아닙니까?”

“잘못 알고 있다고요?”

영린은 코웃음을 쳤다.

“짐도 잘못 알고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양국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조정이나 백성들에게 좋을 건 없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전쟁이 일어난다고?’

신하들은 영린의 말이 사실인지 속으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정말 동제의 세가 공자를 감금한 것인지, 아니면 영린이 핑계를 꾸며서 전쟁을 발동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 정확한 판단이 필요했다.

“폐하.”

승상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느 황자를 말씀하시는지요? 증거가 있으십니까?”

“증거는 당연히 있지요. 어느 황자냐는 질문에는 정왕 전하에게 물어보는 게 좋을 것입니다.”

영린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는 야정연의 얼굴을 바라보며 독기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정왕, 짐은 감진 때문에 온 것입니다.”

짧은 한마디에 야정연의 안색이 확 바뀌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정왕이 빙란각에서 감 공자를 잡아 저택에 가두었다고 합디다. 그리고 고문도 했다면서요? 짐은 정왕이 감진을 왜 괴롭히는지 알지 못하지만, 이번 일을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정왕, 짐에게 해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영린이 ‘목국의 황자가 동제의 세가 공자를 감금했다’라고 말했을 때부터 야정연은 불안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영린이 ‘짐은 감진 때문에 온 것입니다’라고 하자 그의 안색은 창백하게 변했다. 그는 고개를 들고 열네 살짜리 황제를 믿을 수 없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야정연의 마음속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야홍릉을 돌아보았다. 이 모든 게 또 야홍릉의 음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감진은 빙란각의 소관일 뿐인데 어떻게 동제의 세가 공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절대 그럴 리 없어. 야홍릉이 중도에서 무슨 짓을 한 게 분명해…… 아니, 야홍릉은 영린과 미리 아는 사이였을 거야. 그래서…….’

야정연은 눈을 질끈 감았다. 문득 잊고 있었던 중요한 문제가 떠올랐다.

‘야홍릉은 예전부터 영린과 아는 사이였을 거야. 그래서 순조롭게 야소숙과 영린이 내통한 증거를 손에 넣었을 거고. 그게 아니라면 야홍릉이 어떻게 짧은 몇 달 사이에 그 증거를 다 찾아냈겠어? 그때 야홍릉은 어디로 갔는지 행방도 알 수 없었는데 만 리밖에 안 떨어진 동제에 있었다면 말이 되지…….’

“정왕 전하.”

승상은 미간을 찌푸린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동제의 황제가 얘기하신 게 사실입니까?”

야정연은 정신을 차리고 부인하려고 했다.

이때, 영린이 입을 열었다.

“정왕이 아니라고 한다면 짐은 정왕부로 가서 그 공자를 직접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정왕이 감진을 잘 숨겨두어서 짐이 찾지 못할 수는 있으나 짐은 절대 죄 없는 사람을 괴롭히지 않습니다. 정왕이 감진을 내놓지 않는다면 짐이 화가 나 무슨 짓을 벌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변방의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릴 수도 있고요.”

그러자 신하들은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수많은 시선이 야정연의 얼굴에 향했다.

“정왕 전하, 이게 사실입니까?”

“동제의 황제는 넷째 오라버니를 억울하게 한 게 아니네.”

이때, 야홍릉의 느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진은 내 측부라서 잘 알지. 며칠 전, 저택에서 측부들의 총애 다툼이 심해 감진은 빙란각에 돌아가 한동안 머물게 했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지. 내가 알아보니 넷째 오라버니가 데려간 것이더군.”

그러자 신하들은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자 그들은 지금 상황을 더욱 믿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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