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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254)화 (255/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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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화 급보

야정연의 말에 그를 지지하는 대신들도 나서서 다급히 맞장구를 치며 야홍릉을 질책했다.

호국 공주는 선왕을 벌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사이, 선왕은 대전 밖에서 묶인 채, 곤장을 맞고 있었다.

퍽퍽 하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그리고 고막을 찌르는 야모침의 목소리도 같이 들렸다.

“야홍릉, 너 간이 부었구나! 부황께서 아신다면 널 가만두지 않으실 것……! 으악!”

곤장이 내리쳐질 때마다 야모침의 비명이 들렸다.

대신들은 그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

“승상 대인.”

야홍릉이 평온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녀의 말은 매정하기 그지없었다.

“전쟁터에서는 만약 누군가 장군의 의견에 토를 단다면 군법으로 벌한다네. 이건 규정이니 더는 뭐라고 하지 말게.”

승상은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조정은 전쟁터가 아니지 않습니까?”

야홍릉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서 나도 군법으로 다스리지 않고 궁의 규칙으로 벌한 것이지.”

곤장을 때리는 것은 궁에서 자주 보는 처벌 방식이었다.

이는 전쟁터의 군법보다 훨씬 약했다.

하지만 이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전하께서 궁의 규정에 대해 오해하셨나 봅니다. 공주 전하께서 섭정 대권을 위임 받으셨지만 폐하만이 황자를 벌할 수 있습니다.”

승상이 말했다.

“그런가?”

야홍릉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럼 승상 대인의 말뜻은, 부황께서 깨어나시지 않는 이상, 황자가 아무리 큰 죄를 저질러도 누구도 그 죄를 다스리지 못한다는 말인가?”

그러자 승상의 안색이 확 변했다.

“제,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그, 그러나 선왕 전하도 큰 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야홍릉은 심드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나도 큰 벌을 내리지 않고 곤장 서른 대만 치라고 한 게 아닌가? 그걸 맞아도 그저 가벼운 외상이나 당할 뿐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게.”

그 말을 들은 승상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대신들도 평소 말수가 적던 야홍릉이 말을 참 잘한다는 것을 새삼 발견했다.

그들은 반박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야홍릉의 논리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를 말발로 이길 사람이 없었다.

“됐네. 변방의 일은 이렇게 하는 거로 하고 다른 의견은 이제 받지 않겠네. 목국은 적과 화해하지 않을 것이네.”

야홍릉이 말했다.

그리고 사람들을 훑어본 뒤,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요즘 궁 밖에 유언비어가 많이 떠돌아다닌다고 들었네. 하지만 난 특별히 조치를 취할 생각은 없네. 그러나 대신 여러분은 해야 할 일을 했으면 한다네. 만약 일을 잘하지 못한다면 곤장 서른 대로 끝나지 않고 관직을 파하겠네.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으니. 조정에는 쓸데없는 사람을 남겨두지 않을 것이니 다들 알아서 하시게.”

말을 마친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승상을 바라보았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마쳤으니 나머지 일은 승상에게 맡기지. 계속들 하시게.”

그리고 그녀는 대신들의 경악한 표정도 무시한 채, 홀로 대전을 빠져나갔다.

내전을 나서자 선왕의 비명이 더욱 뚜렷하게 들렸다.

창피해서 그런지 억지로 비명을 참고 있는 듯했으나 결국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소리를 크게 지르는 게 좋아. 다른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것이지.’

오늘 이후 문무백관들은 야홍릉이 얼마나 매정한지 알게 될 것이다.

선왕도 때릴 수 있는 그녀가 다른 사람을 봐줄 리 있겠는가?

야홍릉은 예상대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전쟁터에 오랫동안 몸담고 있었던 그녀는 추진력이 강했다.

그녀는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섭정권을 가진 그녀에게 선왕이 도발적인 발언을 하며 그녀의 권위에 도전장을 내밀었으니 곤장을 받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이었지만.

그러나 그녀처럼 차가운 사람에게 그 어떤 이치도 통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호국 공주가 선왕이 전에 그녀의 소문을 퍼뜨린 일로 앙심을 품고 이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섭정 대권을 움켜쥔 호국 공주에게 감히 맞설 사람이 없었다.

야홍릉을 잘못 건드리면 큰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애초에 야홍릉이 순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닌가?

야모침의 앞으로 걸어간 야홍릉은 고개를 숙이고 그의 초라한 몰골을 바라보며 평온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가 그 자리를 원한다는 사실을 남들이 알아도 상관없어. 조용하게 연말을 보내고 싶다면 조용하라고 했지? 그런데 말을 안 들어서 이 사달이 생긴 거잖아?”

야모침은 이를 악물었다. 금위군에게 제압당한 그는 바닥에 엎드린 채,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는 창백한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야, 야홍릉, 너, 너…… 제 명까지 못 살 거야……!”

“걱정하지 말아. 네가 죽을 때, 다른 사람도 함께 보내줄 테니 황천길이 심심하지는 않을 거야.”

야홍릉은 미소를 지은 뒤, 금위군을 돌아보며 말했다.

“다들 왜 이렇게 기운이 없느냐? 힘껏 좀 쳐보아라. 선왕 전하가 아픈 느낌을 잘 느껴야 앞으로 실수를 안 하실 게 아니냐?”

그리고 그녀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엉덩이에 닿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야모침의 입에서 한 서린 욕설이 들려왔다.

야홍릉은 코웃음을 칠 뿐, 돌아보지 않았다.

그녀는 결코 마음이 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전생에 공주부의 사람들이 몰살당할 때 부녀간과 형제간의 정이 존재했던가?

핏줄은 그녀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그녀의 앞길을 막는 사람이라면 그녀는 사정없이 제거할 생각이었다.

이때, 팔에서 따스한 온기가 전해졌다.

“애비.”

“응.”

야홍릉은 고개를 돌리고 준수한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야홍릉을 바라보았다.

야홍릉의 눈에 낀 서슬 푸른 한기가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둘은 손을 잡은 채, 황궁을 떠났다.

그들의 뒤에는 나신이 붙인 친위병이 멀리서 뒤따르며 보호하고 있었다.

궁 문은 먼 곳에 있었다.

용수는 고개를 돌리고 호위무사들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제가 있는 게 이들보다 낫지 않겠습니까?”

그는 호위무사들이 시끄럽기만 했다.

그들 때문에 그는 지금 애비에게 입을 맞추고 싶어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지금 상황이 어지러우니 나신도 나를 걱정해서 저러는 거야. 앞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많을 것 같구나.”

지금은 다들 편히 지낼 수 없었다.

공주부로 돌아온 둘은 대문에 들어서기도 전에 급박한 말발굽 소리를 들었다.

야홍릉은 고개를 돌리고 바라보았다.

“공주 전하!”

젊은 사병이 말에서 내려오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급보입니다!”

용수는 서신을 받아서 야홍릉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귓가에 뭐라고 한마디 했다.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동제에서 십만 군사가 변방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황제가 이천 명의 병사들을 이끌고 목국으로 오고 있다 합니다.”

야홍릉은 침묵을 지켰다.

그녀는 이런 급보가 궁으로 가지 않고 그녀에게 먼저 전해진 게 의아하기만 했다.

그녀는 서신을 열어 보았다.

그제야 영린이 직접 그녀에게 전해주라고 당부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알겠다.”

야홍릉이 평온하게 말했다.

“동제의 황제가 서신을 보내왔다는 것은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자는 뜻이니 걱정하지 말아라. 이 서신을 궁에 가져가 승상에게 보여주어라.”

“네, 알겠습니다!”

사병은 말을 탄 뒤, 곧 떠나갔다.

야홍릉은 대문에 들어서며 담담하게 말했다.

“영린이 마침 제 때에 왔네.”

용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번 해만 지나면 직접 정무를 보는 게 아니냐? 이런 시기에 왜 온 거지?”

야홍릉이 발걸음을 멈추고 그를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네가 나 몰래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억울합니다.”

용수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애비, 증거도 없으면서 함부로 의심하지 마십시오.”

야홍릉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괜한 의심을 한 것이면 좋을 텐데.”

협박처럼 들렸지만 사실 그녀는 농으로 한 말이었다.

그녀는 헌원용수가 아무 일도 하지 않았을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다.

용수에게 사람이 많고 준비한 일도 많을 텐데 하나하나 알아볼 수 없었다.

“사청의도 곧 옵니다. 이번 달 초에 도착했어야 하는데 길에서 일이 좀 생겨 며칠 지체되었습니다. 심씨 가문의 일도 시간이 지나야 완벽하게 조사가 끝날 것 같으니 그가 이틀쯤 늦게 도착해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용수가 말했다.

사청의를 부른 것은 심한의에 대해 말해주자는 게 목적이었다.

그리고 목국에서 사청의가 할 만한 사업도 있었다.

야홍릉이 물었다.

“곧 연말인데 다른 나라 사람들이 목국 제경에 들어온다면 다들 놀라지 않을까?”

“제가 원하는 게 그것입니다.”

용수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고리타분한 대신들은 좀 놀라야 합니다.”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영린은 아마도 감진 때문에 오는 것이겠지?’

“감진은 요즘 어떻게 지내더냐?”

“괜찮습니다. 가벼운 외상을 당한 게 다입니다.”

용수는 심드렁한 얼굴로 대답했다.

감진 스스로도 괜찮다고 하니 그도 약간의 외상을 크게 여기고 싶지 않았다.

“제가 옆에 사람을 붙여 두었습니다. 지금 그를 구한다면 그가 전에 당한 고생은 물거품이 되는 게 아닙니까?”

야홍릉이 의미심장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영린이 감진의 지금 상황을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용수는 그녀의 허리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

“애비, 역시 현명하십니다.”

야홍릉은 생각에 잠겼다.

‘그래서 영린은 지금 따지러 오는 거야?’

“기주 포정사가 무기를 밀매입하여 반역을 꾀한 것이 드러났습니다. 야정연은 동제의 세가 공자를 감금했기에 동제의 황제에게 설명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야정연에게 이번에 빠져나갈 구멍이 없을 것입니다.”

용수는 침착하고 차분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에 입을 쪽 맞추었다.

“애비, 이 결과에 만족하십니까?”

야홍릉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의 얼굴을 꼬집으며 말했다.

“아주 만족스럽구나.”

용수는 싱긋 웃었다.

“그럼 저에게 어떤 상을 주실 것입니까?”

‘상?’

야홍릉은 이 말만 들으면 평소에 고분고분하게 굴던 모습과 전혀 다른 침대 위에서의 강압적인 용수가 떠올랐다.

그녀는 침묵을 지키다 물었다.

“평소 불만이 많았느냐?”

‘이게 무슨 말이지?’

용수는 눈썹을 위로 치켜세웠다.

“애비,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요즘 내가 살기가 너무 심해 몸과 마음을 다스려야겠다. 네가 정 힘들거든 빙란각에 가서 미인을 품거라.”

야홍릉은 담담하게 말하며 서재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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