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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253)화 (254/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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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화 전쟁이냐, 평화냐

조정은 겉보기에는 평화로웠으나 실제로는 위기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야홍릉은 원래 상냥한 사람이 아니었다.

친왕 몇 명이 공주부에 찾아갔다가 말 한마디 잘못한 뒤로 그들은 두 번 다시 야홍릉과 국가 대사를 논할 기회를 잡을 수 없었다.

그들이 어르고 달래도 보고 훈계도 해보았지만 야홍릉은 말을 듣지 않았다.

야모침과 야정연의 움직임 역시 야홍릉에게는 무의미한 발악일 뿐이었다.

그녀는 전처럼 사부와 호부에 일이 생겼을 때만 궁에 들어가고 평소에는 저택에 있었다. 그녀는 이삼일에 한 번씩 마차를 타고 성 밖의 군영에 가서 장군들이 현갑군을 훈련시키는 것을 보았다.

야홍릉이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자 사람들은 그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어 더욱 초조했다.

이러한 초조한 시간이 보름 넘게 지속되었다.

‘평화’가 깨진 것은 변방에서 소식이 전해 온 뒤였다.

“육연지가 금국을 팔백 리나 물리쳤답니다. 남성국에서는 양쪽에서 공격을 자행하여 금국은 지금 손해가 막중합니다!”

조정에서 승상이 대신 소식을 읊었다.

“금국은 성 세 곳과 황금 십만 냥, 미인 열 명을 바치고 이 년간 휴전하기를 조건으로 내걸었습니다.”

그 말에 조정은 정적에 잠겼다.

야홍릉은 말없이 서 있었다.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에서는 금국의 휴전 제안에 대한 아무런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변방의 전쟁은 오랫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지금 휴전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초 각로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계속 싸우다가는 백성들도 힘들고 국고도 손해가 큽니다. 또 목국이 싸우기 좋아한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금국의 병사들은 난폭하고 야만적입니다. 지금은 호되게 당해 겁이 나 저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금국이 얼마나 교활한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예전에 호국 공주 전하가 금국을 물리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그때마다 금국은 쉬면서 재정비를 하고 다시 쳐들어오지 않았습니까? 그들의 휴전 제안은 믿을 것이 못 됩니다.”

다른 대신이 말했다.

그러자 초 각로는 안색이 변해 말하고 있는 대신을 바라보았다.

“변방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아 국고의 손해가 큽니다. 변방의 백성들은 오랫동안 전쟁에 시달려 와서 제대로 살 수조차 없습니다. 그 고통은 말 두어 마디로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말을 한 사람은 병부의 한 참정이었다.

병부의 군사의 양식을 제공하기에 전쟁에 대한 이해가 초 각로보다 적지 않았다. 초 각로의 말을 들은 그는 덤덤하게 대꾸했다.

“각로 대인이 백성들을 헤아리는 마음은 진심으로 감탄하는 바이나 금국의 교활한 모습은 저희도 여러 번 봐 왔습니다. 이번 휴전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들은 앞으로도 전쟁을 선동할 것이고 변방의 백성들은 조용한 나날을 얼마 보내지도 못한 채 또 전쟁에 휘말릴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예 단숨에 금국을 무너뜨리자 말하는 겁니다. 그러면 적어도 십 년은 다시 전쟁을 일으킬 여력이 없을 게 아닙니까? 그래야 백성들이 편히 살 수 있지요.”

“금국을 무너뜨리자고요? 그게 그렇게 쉬운 일입니까? 모두가 알다시피 금국은 난폭하고 교활합니다. 지금은 육 장군이 우위에 있어 금국은 나라를 지키려고 제안을 꺼낸 것입니다. 하지만 목국이 그 제안에 응하지 않고 계속 싸운다면 금국이 어떤 비열한 수단을 쓸지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손해 보는 게 우리 목국의 병사들이 아니겠습니까?”

“그 말씀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서른 살이 안 된 젊은 관리가 입을 열었다.

“난폭하고 야만적인 적에게 뼈저린 교훈을 심어주는 게 맞습니다. 그들이 보상을 좀 주고 백기를 들었다고 해서 놔주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한다면 전쟁에서 죽은 병사들은 헛되게 죽은 게 아니겠습니까? 그들의 아내와 부모님에게 뭐라고 말한다는 말입니까?”

야홍릉은 위에 서서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나는 초 각로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네.”

야정연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

“목국은 지금 상황이 아주 어지럽네. 내우외환의 위기에 처해 있지. 그래서 전쟁은 웬만하면 안 하는 게 상책이야.”

말을 마친 그는 승상에게 시선을 돌렸다.

“승상 대인의 생각은 어떠한가?”

승상은 침묵을 지키다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전쟁을 계속한다면 목국에 이점이 없을 것 같습니다. 백성들도 힘들고 국고도 바닥이 날 것이니 나쁜 점이 더 많습니다.”

바로 이때, 젊으나 점잖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주 전하는 전에 금국과 전쟁을 치루신 적이 있는데 공주 전하의 뜻을 들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 말에 시끄럽던 대전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사람들의 시선은 저도 모르게 가장 앞에 있는 야홍릉에게 향했다.

신하들은 각각 다른 얼굴로 야홍릉이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난 특별한 의견은 없네.”

야홍릉은 팔소매를 툭툭 털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녀는 평소와 같은 무덤덤한 얼굴로 단호하게 말했다.

“목국과 금국은 지금까지 전쟁을 해왔는데, 이제 와 화해는 말도 안 되는 것이네. 하여, 내 목적은 금국이 겁을 먹게 하는 게 끝이 아니네.”

‘뭐라고?’

문무 백관은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다시 한번 그녀를 바라보았다.

“금국이 십 년 동안 다시 쳐들어오지 못하게 한다면 십 년 뒤에는 어찌하겠나? 금국은 절대 포기하고 조용히 살지 않을 것이네. 그래서 난 금국을 완전히 멸망시키고자 하네.”

대전은 정적에 잠겼다.

‘금국을 완전히 멸망시킨다고? 그게 어떻게 가능한 일이지?’

“병부는 양식을 준비해 변방의 병사들에게 보내게.”

야홍릉은 대전 안을 훑어보더니 방금 발언한 젊은 신하를 가리켰다.

“유운평(兪雲平), 오늘부터 변방의 일은 자네와 좌 참정이 전적으로 맡게. 변방에서 양식을 요구하면 무조건 들어주고 다른 사람이 군용 양식에 손을 댈 생각을 한다면 절대 가만두지 말게.”

유운평은 서른 살이 안 된 젊은 대신으로 병부의 일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그는 품급이 높지 않았지만 열정은 알아줄 만했다. 그의 행동을 보면 권력이나 사리사욕에 눈이 먼 게 아니어서 중용할 만했다.

호국 공주가 양식의 중임을 맡기자 유운평은 처음에 놀라다가 곧바로 무릎을 꿇고 지시를 받았다.

“신은 절대 전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제가 만약 사심을 채우거든 큰 벌이라도 달갑게 받겠습니다.”

야홍릉은 호부 상서에게 시선을 돌리며 담담하게 말했다.

“호부도 최대한으로 병부에 협조하게. 난 누가 권력을 이용해 전쟁사에 사욕을 채웠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으니. 겨울이 추운데 변방 병사들이 입을 옷가지는 다 보냈나?”

“전하께 아룁니다.”

병부 상서가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보름 전부터 쭉 보내고 있습니다. 반수 이상의 병사들은 겨울옷을 입었을 것입니다.”

“야홍릉.”

야모침이 쌀쌀맞게 말했다.

“금국은 전쟁에서 졌으나 힘이 약한 것은 아니다. 이번 회의는 휴전에 대해 의논하는 자리인데 너는 그렇게 쉽게 말 한마디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냐? 너의 지시로 국고에서 돈이 얼마나 빠져나갈지 아느냐? 너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야홍릉은 싸늘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부황의 명으로 섭정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변방의 전쟁에 대해서는 너보다 아는 게 많지. 선왕이 조정에서 내 명에 불복했으니 그 의도가 의심스럽구나. 여봐라! 선왕을 끌어내어 곤장 서른 대를 쳐라!”

‘뭐라고?’

문무백관들은 굳은 얼굴로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다들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던 것이다.

‘선왕을 끌어내 곤장을 치라고?’

“야홍릉, 네가 감히?”

야모침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부황의 구유가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진짜라고 해도 넌 나를 벌할 권리가 없다. 네가 정말 황제라도 되는 줄 아느냐?”

야홍릉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둘째 오라버니, 이 말은 참 유치해서 들을 수가 없군. 나는 등극하지 않아도 충분히 너를 벌할 수 있어!”

말을 마친 그녀는 야모침과 실랑이를 벌이지 않고 높게 외쳤다.

“한묵!”

그러자 은색 갑옷을 입은 한묵이 네 금위군을 데리고 대전 밖에서 들어왔다.

허리에 검을 찬 그들은 자태가 아주 근엄했다.

대전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선왕을 끌어내거라.”

야홍릉이 평온하게 입을 열었다. 그녀의 말투에는 소름 끼치는 살기가 담겨 있었다.

“곤장 서른 대를 치거라. 만약 계속 욕을 퍼붓고 소리를 지른다면 입을 다물 때까지 쳐라.”

한묵은 고개를 숙이고 잠깐 망설였지만 곧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가 손을 들자 양쪽에 있던 금위군 두 명이 앞으로 나서서 야모침의 팔을 잡았다.

“야홍릉! 네가 감히!”

야모침은 소리를 지르며 금위군의 팔을 뿌리치려고 했다.

“이건 직권 남용이야. 감히 나에게 복수하려고 하다니. 네가 감히 나에게 이런 수작을……!”

야모침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때, 그의 오른쪽에 있던 금위군이 힘을 쓰자 야모침은 위로 번쩍 들리고 말았다.

그는 불안한지 금위군을 바라보며 침이 튀도록 소리를 질렀다.

“무엄하다! 넌 웬 놈이냐? 이걸 놓지 못해?”

“뭣들 하는 게냐? 얼른 끌어내지 않고.”

야홍릉이 미간을 찌푸렸다.

금위군은 버둥거리는 야모침을 손쉽게 밖으로 메고 나갔다.

“뭐 하는 것이냐? 네 이놈! 얼른 날 놓아주지 못하겠느냐? 네 이놈! 얼른…….”

그가 버둥거리며 욕설을 퍼부었지만 금위군은 꿈쩍하지 않고 야모침을 멘 채 나갔다.

야홍릉은 무서울 정도로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조정 대신들은 당황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공주 전하.”

정신을 차린 승상이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이런 행위는 경우가 아닌 듯합니다. 선왕 전하는 조정 1품 친왕입니다. 그가 큰 죄를 지었다고 해도 폐하께서 직접 결정하실 일이고 벌을 준다고 해도 형부가 심문하고 형을 집행해야 합니다. 이렇게 격식을 거치지 않고 벌을 주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입니다.

그리고 조정에서는 발언권이 있습니다. 선왕이 말을 잘못했다 해도 곤장을 때리면 아니 됩니다.”

승상의 말에 선왕 측의 대신이 바로 맞장구를 쳤다.

“승상 대인의 말씀이 맞습니다. 폐하께서 계셨다면 선왕이 자신의 의견을 발표한 것으로 벌을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공주 전하께서는 사적으로 형을 집행할 권리가 없습니다!”

“공주 전하, 명을 거두어주십시오!”

“공주 전하, 명을 거두어주십시오!”

연이어 대신들이 앞으로 나서며 허리를 숙였다.

그들은 간청하는 말투로 말했지만 강압적인 느낌을 풍겼다.

“공주 전하, 명을 거두어주십시오!”

“나도 네 행위가 맞지 않은 것 같구나.”

야정연은 고개를 들고 싸늘한 시선으로 야홍릉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부황께서 정말 너더러 섭정하라고 했어도 둘째 황형에게 그렇게 굴 힘은 없지. 대신들이 실망할까 두렵지 않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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