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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251)화 (25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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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화 대놓고 대적하다

승상은 자신이 나서기보다는 다른 관리들에게 눈치를 주었다.

“공주 전하.”

승상과 함께 온 병부의 참정이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 옥체가 편찮으셔서 저는 대황자를 모셔오는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황실 종친 대인들의 말씀을 들어보니 폐하께서는 황위를 대황자에게 물려주실 생각이신 것 같은데 대황자 전하는 돌아오지 않으시니…….”

야홍릉은 찻잔을 들고 느긋하게 차를 마셨다.

그녀는 참정의 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전하!”

이때, 호원이 급히 뛰어오며 말했다.

“선왕께서 뵙기를 청하십니다.”

야홍릉은 고개를 들고 귀찮은 얼굴로 말했다.

“들라 하라.”

승상도 그녀의 표정을 눈치채고 흠칫 놀랐다.

‘호국 공주 전하는 선왕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군. 말하는 말투 역시 오라버니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는데. 존중하는 척도 하지 않아.’

곧 선왕이 씩씩거리며 들어왔다.

그의 뒤에는 여러 명의 시위가 따르고 있었다.

“야홍릉!”

야모침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왜 태후마마의 자안궁과 부황의 건양궁 안팎에 현갑군이 그리도 많느냐? 병사를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은 큰 죄라는 것을 모르냐? 부황의 지시 없이 제경에 병사를 들이면 반역이거늘! 넌 도대체 뭘 어찌할 생각이냐?”

그의 말에 주변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선왕은 지금처럼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추태를 부린 적이 없었다.

그는 황족 출신인지라 그래도 갖춰야 할 위엄과 예의는 항상 있었다.

그런데 요즘 상황이 운이 나쁜지 여러 번 야홍릉에게 당하고 또 떠도는 소문에 마음이 불안한 그는 예의고 체면이고 차릴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부황이 갑작스럽게 쓰러지고 건양궁과 자안궁에 갑자기 수비가 엄격해지자 황제의 얼굴을 보지 못한 그는 참지 못하고 찾아온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병권을 가진 야홍릉이 절대적인 우위에 있었다.

지금 황자와 공주 중 야홍릉만 병권을 가지고 있었다.

야모침과 야정연 둘은 왕부의 병사를 움직일 수 있었으나 야홍릉의 십만 대군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니 야모침이 어떻게 침착할 수 있겠는가?

야홍릉은 느긋하게 차 위의 거품을 덜어내며 말했다.

“태후마마가 자객에게 습격당했는데 지금까지 자객을 잡지도 못하지 않았나요? 부황의 옥체가 편찮은 틈을 타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이 뭔가를 할 수도 있으니 제가 수비를 강화한 것인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말도 안 되는 핑계 대지 마. 네가 무슨 의도인지 너만 알겠지!”

야모침은 야홍릉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야홍릉, 내가 네 야심을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 말…….”

“선왕 전하! 말씀을 삼가주십시오.”

승상이 미간을 찌푸렸다.

“부황을 뵈어야겠다.”

야모침은 얼굴을 실룩이며 야홍릉에게 말했다.

“말씀드렸잖아요? 부황께서 편찮으시니 지금은 아무도 만날 수 없다고요.”

야홍릉은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말했으나 그녀의 얼굴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둘째 오라버니가 정 효심을 보이고 싶으시다면 안될 것도 없지요. 아니면 건양궁에 남아 병수발을 드는 게 어떻겠어요?”

야모침은 당황했다.

“뭐라고?”

야홍릉은 시선을 돌렸다.

“병수발?”

야모침은 이를 악물고 시퍼레진 얼굴로 말했다.

“야홍릉, 지금 나더러 병수발을 들라고 한 것이냐? 그렇다면 왜 비빈 마마들은 부황을 뵐 수 없는 것이냐? 너 도대체 무슨 생각이냐? 부황께서 편찮으신 틈을 타 반역이라도 하여 네 야심을 만족시키려는 것이냐?”

“선왕 전하!”

승상은 벌떡 일어나 엄한 어조로 말했다.

“말씀을 삼가 주십시오!”

“승상 대인은 야홍릉의 야심을 믿지 않은 것인가? 아니면 믿기 어려운 건가? 승상은 홍릉과 거리를 두는 게 좋을 거네. 충성심이 가득한 척하는 호국 공주는 사실 아주 악독한 인간이거든. 셋째와 한씨 가문도 쟤 손에 죽었어! 어산서원의 산장 매 대인도 쟤 때문에 집안 망신당했고. 지금 쟤 목표는 나와 넷째야. 우리를 해치우고 나면 황위에 오르겠지? 정말 터무니없는……!”

야모침이 냉소를 하며 말했다.

“야모침.”

야홍릉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전혀 화난 것 같지 않았다.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야모침과 뚜렷한 대조를 이룰 정도로 그녀는 지나치게 침착한 상태였다.

“내가 널 안중에도 두지 않는데, 너무 스스로를 대단하게 여기는 게 아니야?”

야모침은 당황한 나머지 하려던 말도 잊고 말았다.

승상도 놀란 얼굴로 야홍릉을 바라보았다.

“난 너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고, 야모침.”

야홍릉은 찻잔을 내려놓더니 피식 웃었다.

그리고 한심한 눈빛으로 야모침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한 말이 맞을 수도 있어. 내가 큰 야심을 품고 있다는 말 말이야. 네가 알고 있어도, 내가 인정하여도 뭐가 달라질 것 같으냐?”

야모침은 굳은 얼굴을 실룩거리며 당황한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인정한 건가? 이렇게 깔끔하게 인정했다고? 승상과 대신들 앞에서?’

야홍릉은 일어서서 화청 문밖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뒷짐을 진 채, 야모침을 바라보며 코웃음을 쳤다.

“난 왜 야심을 품으면 안 되지? 야모침, 넌 황자이고 난 공주야. 우리 모두 야씨이고 야씨 황족의 핏줄인데 성별을 제외하고 내가 너보다 못한 게 뭐가 있느냐? 그런데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나에게 따져 묻는 것이냔 말이야?”

야모침은 제자리에 굳어졌다.

그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고 야홍릉만 죽일 듯이 노려볼 뿐이었다.

시퍼런 그의 얼굴에는 짙은 불안감이 담겨 있었다.

“목국은 여인이 황제가 된 선례는 없었지. 그러나 여인이 병사를 이끌고 전쟁터에 나간 적도 없었다.”

야홍릉이 또박또박 말했다.

그녀의 말에는 강압적인 기운과 비꼼이 담겨 있었다.

“내가 병사들을 이끌고 전쟁터에 나갈 때는 문무백관 중 반대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니 왜 황위 문제에서는 야심을 품은 게 죽을죄가 되는 것이냐? 야모침, 네가 좀 말해 보아라.”

‘뭘 말하라고?’

야모침은 범인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는 야홍릉이 인정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야홍릉은 물론이고 그와 야정연 역시 부황이 죽기 전까지는 자신에게 야심이 있다는 말을 절대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럴 용기가 없기 때문이었다.

야심은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이렇게 당당하게 드러낼 수 없었다. 황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게 야심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부자간이어도, 형제간이어도 야심을 드러내는 것만으로 죽을죄였다.

하지만 야홍릉은 그렇게 했다.

전혀 상상도 못 했던 야모침은 물론이고 승상과 다른 관리들도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들은 듣지 말아야 할 충격적인 말을 들은 기분이었다.

호국 공주가 그들에게 자신에게 황제가 될 마음이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물론 야모침에게 말을 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지만 그들도 분명히 듣고 있었다.

그녀는 황제가 되려고 하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정말로 성공한다면 그녀는 목국의 여인의 몸으로 첫 황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성공할 수 있을까?

절대적인 단점인 여인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다른 방면에서는 이미 황제가 될 준비를 거의 마친 셈이었다.

공기 중에는 정적이 한참이나 흘렀다.

승상은 말이 목구멍에 걸린 것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호국 공주더러 대황자를 데리고 오라고?

그녀가 허락할 리 있겠는가?

야홍릉도 딱히 할 말이 없는 듯했다.

“다른 용건이 없다면 승상 대인, 먼저 돌아가시게. 난 아직 할 일이 남았네.”

야홍릉은 야모침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음 달은 연말이다. 야모침, 난 다들 무사하게 연말을 보냈으면 해. 그런데 네가 굳이 이 시기에 무슨 짓을 한다면 너도 연말을 편히 보내지 못할 것이야.”

말을 마친 그녀는 야모침의 어두워진 안색을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손님 나가신다.”

그리고 안뜰로 걸어갔다.

“야홍릉!”

정신을 차린 야모침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네 야심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목국은 여인의 손아귀에 들어갈 리 없거든. 그러니 그 터무니없는 생각을 접는 게 좋을 거야. 넌 절대! 절대로 성공하지 못할 거니까!”

‘절대 성공하지 못해?’

야홍릉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냉소를 하였다.

‘못한다고? 세상에 절대로 못 하는 게 어디 있어? 다 하기 나름이지. 내가 마음먹은 일을 누가 막을 수 있겠어?’

호국 공주가 황위를 노린다는 소문이 진실로 밝혀지자 승상은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야모침도 똑똑해졌는지 더 이상 소문을 퍼뜨리지 않았다.

소문에 익숙해지면 백성들은 정말 호국 공주가 황제가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사람들도 대부분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반대가 점점 사그라질 것이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기에 정말로 그런 일이 닥치면 그들은 더 이상 황당하게 생각하지 않고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할 수 있었다.

그게 오히려 야홍릉에게 득이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야모침은 소문을 퍼뜨리는 대신 몰래 관리들을 끌어들이기로 했다.

그는 설득할 수 있는 대신들을 설득해 야홍릉을 권력 밖으로 몰아내려고 했다.

손평이 황제의 구유를 전한 뒤에 대신들은 의아한 마음을 가졌으나, 증거가 없는 이상 뭐라고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황제의 지시에 따라 호국 공주와 승상이 섭정하는 것을 받아들였다.

야홍릉은 병권과 조정 대권을 움켜쥐었고 네 장군의 변함없는 충성을 받았다. 호부와 사부도 그녀의 통제에 들어갔고 병부 한씨 가문도 그녀의 편이 되었다.

다른 대신들은 불편한 기분이 들어도 반항할 용기가 없었다.

대신들도 호국 공주가 제경에 돌아온 뒤에 놀라운 속도로 조정을 장악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돌아온 뒤로 두 황자는 설 자리조차 없었다.

오히려 둘은 야홍릉을 감당하기 힘들어 몸을 사리고 있었다.

‘호국 공주는 처음부터 황위를 노린 건가?’

대신들은 서로 다른 생각에 잠겼다.

난처한 상황에 몰린 야모침은 야정연에게 동맹을 맺자고 손을 내밀었다.

야정연은 반 시진도 생각해 보지 않고 대답했다.

둘은 이제야 야홍릉이 얼마나 독한 사람인지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녀의 수단으로 보면 황자들을 다 사지로 몰 것 같았다. 황자가 한 명이라도 살아 있다면 대신들은 공주에게 목국의 강산을 물려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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