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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247)화 (248/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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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화 결국 맞서다

능묵은 고개를 돌리고 황제의 눈을 바라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담담하게 말했다.

“공주 전하께서 무릎을 꿇으라고 하시지 않으셔서요. 저는 규정을 잘 모릅니다.”

황제는 실눈을 뜨고 어두운 얼굴로 물었다.

“홍릉아, 궁에 들어오기 전에 이자에게 황제를 알현하는 예절에 대해 가르치지 않았느냐?”

“부황, 용서해 주세요. 제가 그만 잊어버렸습니다.”

야홍릉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잊어?’

황제는 이를 악물었다.

‘잊었단 말이지?’

황제는 눈을 질끈 감고 냉소를 하였다.

“네 눈에 이 부황이 있기는 하더냐?”

“그럼 부황의 눈에는 저라는 딸이 있기는 하나요?”

야홍릉이 되물었다.

황제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짐은 너에게 생명을 주고 부귀영화를 안겨주었으며, 공주라는 고귀한 신분도, 병권도, 지금은 호부와 사부의 대권까지 주었는데 뭐가 불만이라는 말이냐? 짐이 언제 널 섭섭하게 한 적이 있느냐? 야홍릉, 말해보아라!”

야홍릉은 소름 끼치도록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

“그건 아니지요. 부황이 계셨기에 제가 태어난 것은 맞으나 제가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은 어머니께서 자신의 목숨으로 저를 살리셨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제 생명은 어머니가 주셨다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병권은 제가 전쟁터에서 사 년간 저를 위해, 부황을 위해 전쟁을 치렀기에 얻은 것입니다. 부황이 주신 게 아니라 제가 노력과 실력으로 가진 거예요.

사부와 호부의 대권은…….”

야홍릉은 입꼬리를 올리고 냉소를 하였다.

“부황께서도 왜 이 두 대권을 저에게 주셨는지 잘 아시잖아요. 부황,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권력이 너무 커서 부황께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그래서 제게서 권력을 거두어 가고 싶으시고 심지어 셋째 오라버니를 죽였던 것처럼 저도 죽이고 싶으신가요? 그래야 마음이 편하실 것 같으십니까?”

말을 마친 순간, 야홍릉은 황제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것을 들었다.

“무엄하다! 야홍릉, 무릎을 꿇어라!”

손평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고개를 숙였다.

“폐하, 노여움을 푸십시오!”

대전 안에 있던 궁인들도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조아렸다.

“폐하, 노여움을 푸십시오!”

황제는 숨을 헐떡였다. 이마에 튀어나온 실핏줄이 거대한 분노와 살기를 말해주는 듯했다. 그는 이성을 잃지 않으려고 용의의 팔걸이를 꽉 움켜쥐었다.

그는 황위에 오른 뒤로 이토록 신랄하게 조롱을 당한 적이 없었다.

또 이렇게 대놓고 제왕의 위엄에 도전장을 내민 사람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화가 나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야홍릉.”

그는 이를 악물고 입을 열었다.

“네가 원하는 게 뭐냐?”

‘내가 원하는 게 뭐냐고? 이 질문을 결국 듣게 되네.’

황제의 말이 무엇인지 부녀는 모두 알고 있었다.

“저는 황위와 목국의 강산을 원합니다.”

야홍릉은 평온한 얼굴로 또박또박 말했다. 전혀 겁먹은 기색이 없었다.

“그런다고 부황께서 주시겠어요?”

“꿈 깨!”

황제는 책상을 내리쳤다. 큰 분노로 그의 얼굴은 이미 일그러진 상태였다.

그는 얼음처럼 차가운 한기와 살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야홍릉, 이 불효막심한 자식아. 넌 죽을죄를 지었다!”

야홍릉은 시선을 들고 여유롭게 소매를 툭툭 털며 말했다.

“다른 선택지는 없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능묵은 겉으로는 무표정한 얼굴을 고수했지만 마음 같아서는 그녀에게 뛰어가 입을 맞추고 싶었다.

‘애비, 너무 멋지십니다. 목국의 황제가 될 분이 마땅히 이래야지요.’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황제는 실소를 터뜨렸다.

“짐에게 아들이 그리도 많은데 공주인 네가 황위를 차지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야홍릉은 시선을 들고 평온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야소숙은 죽었고 야정연도 곧 야소숙의 뒤를 따라가겠지요. 야모침은 황위를 물려받을 자격이 없으니 제 상대가 못 되고요. 야경함은 출신이 낮은데다 권력이 없어서 태자 싸움에 끼어들 힘이 없죠. 그리고 야명화는 나이가 어립니다. 제가 이 둘을 상대한다면 둘은 스스로를 지킬 힘도 없겠지요.”

야홍릉의 말을 듣고 있는 황제는 안색이 무서울 정도로 어두워졌다.

그는 수십 년간 황위에 있은지라 사람의 마음을 잘 파악할 수 있었다. 야홍릉이 이런 말을 그의 앞에서 직설적으로 했다는 것은 퇴로를 미리 마련했다는 말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준비가 이미 되어 있거나.’

황제는 야홍릉의 말을 듣자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뜨거운 불길이 가슴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저는 부황께서 염두에 두신 태자 후보를 알고 있습니다.”

야홍릉은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큰 오라버니는 남성국에 계시잖아요? 제가 황위에 오르기 전까지 오라버니는 돌아오지 못할 거예요.”

아까까지의 말은 모두 토대에 불과했다.

이 말이야말로 황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결정적인 것이었다.

황제는 머릿속에서 무언가 펑 하고 터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무기력하게 용의에 앉은 채, 창백한 얼굴로 손평을 불렀다.

“손평.”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하나도 실리지 않았다.

“내각 대신과 황족 종친, 승상, 태부, 육부 상서를 모두 근정전으로 불러들이거라.”

무릎을 꿇고 있던 손평은 황제의 말을 듣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야홍릉을 바라보았다.

“짐의 말을 못 들은 것이냐?”

황제는 화가 그를 발로 걷어찼다.

“지금 바로 내 지시를 전하라. 모든 대신더러 근정전으로 오라고 해!”

손평은 다급히 일어났다.

야홍릉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오늘 이 문을 나서는 사람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황제는 몸을 흠칫 떨고는 믿을 수 없는 얼굴로 야홍릉을 돌아보았다.

“야홍릉, 정녕 반역이라도 할 셈이냐?”

그는 야홍릉의 대답도 듣지 않고 높은 목소리로 외쳤다.

“한묵! 한묵!”

대전 밖에서 어지러운 발소리가 들리더니 사람들이 들어왔다.

선두에 선 한묵은 한쪽 무릎을 꿇고 말했다.

“폐하.”

그는 건양궁의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지 못한 것인지 평소와 다름없이 공손한 태도로 황제에게 예를 올렸다.

그의 뒤에서는 똑같은 자세로 무릎을 꿇은 금위병이 있었다.

건양궁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숙연해졌다.

황제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야홍릉을 가리키며 말했다.

“호국 공주를 잡아들이거라. 지금 바로! 야홍릉을 천뢰에 가두고 병권과 조정의 모든 권력을 박탈한 뒤, 서민으로 강등하여라! 짐에게는 이런 불효막심한 딸이 없다!”

한묵은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야홍릉도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옆에 있던 능묵은 조용히 야홍릉의 뒤에 가서 섰다.

“한묵, 짐의 말을 들었느냐? 짐의 지시를 들었냐는 말이다! 아직도 움직이지 않고 뭘 하는 것이냐?”

황제는 갈라진 목소리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부황, 힘드실 텐데 일찍 쉬세요. 최근에 많은 일이 일어나서 옥체가 감당하기 버거울 거예요. 며칠 푹 쉬시는 게 좋겠네요. 손 총관, 부황을 잘 모시게.”

야홍릉이 담담하게 말했다.

손평은 겁먹은 얼굴로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한묵.”

야홍릉은 밖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태후마마께 해를 가한 자객을 끝까지 찾아내 잡아 오거라. 황후마마가 갑자기 자결해서 폐하께서 충격을 받으셨으니 푹 쉬실 것이다. 건양궁 밖에 사람을 파견해 지키도록 하고 그 누구도 부황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여라.”

십일월의 날씨는 추웠지만 야홍릉의 말에 공기는 순식간에 확 차가워진 듯했다. 대전 안에 있던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한기에 몸을 떨었다.

황제는 믿을 수 없는 얼굴로 야홍릉을 바라보았다.

“야홍릉, 지금 짐을 감금하겠다는 것이냐?”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때, 한묵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하의 지시에 따르겠습니다.”

황제는 크게 놀라며 한묵에게 시선을 돌렸다.

“한묵, 너도 짐을 배신하겠다는 것이냐? 너희가 감히 짐을 배신하는 것이냐?”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말도 없었다.

그녀는 곧 뒤돌아서서 밖으로 향했다.

능묵도 그녀의 뒤를 말없이 따랐다.

“야홍릉!”

황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탁자 위의 물건을 와락 쓸었다.

“야홍릉! 짐은 네 부황이다. 네가 반역을 꾀하고 황위를 빼앗으려고 한다면 짐은 널 죽일 것이다! 널 반드시 죽일 것이다! 여기 있는 모두를 죽일 것이야!”

한묵도 일어서서 야홍릉의 뒤를 따랐다.

그는 잠깐 사이에 천 명에 달하는 금위군을 데려와 건양궁 안팎을 빽빽하게 둘러쌌다.

“야홍릉! 한묵! 모두 죽여버릴 것이다!”

대전 문이 조금씩 닫히며 황제의 노기 어린 울부짖음도 점점 작게 들렸다.

곧이어 물건들을 깨부수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 소리 역시 곧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아지더니 고요해졌다.

이번 일로 건양궁은 큰 변화를 가져왔다.

야홍릉의 계획보다 빨리 다가왔지만 상관없었다.

“신은전의 대교습은 어디에 있느냐?”

한묵이 답했다.

“형부의 감옥에 있습니다.”

“그를 풀어주어라. 그리고 공주부에 왔다 가라고 하여라.”

야홍릉이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

한묵은 고개를 숙였다.

“네, 알겠습니다.”

야홍릉은 대전의 계단에 서서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싸늘한 얼굴에서는 늘 그렇듯 아무런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한참 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한묵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 통령이 이 정도로 협조할 줄은 몰랐는데.”

한묵이 짧게 말했다.

“좋은 새는 훌륭한 나무를 찾아 둥지를 틀지요. 신은 그저 다른 사람들보다 조정의 상황을 더 잘 파악한 것입니다.”

‘더 잘 파악했다고?’

야홍릉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한씨 가문을 섭섭지 않게 대할 테니 걱정하지 말아라.”

말을 마친 그녀는 계단을 내려갔다.

그녀의 걸음은 자신의 영토를 순찰하는 제왕 같았다.

황궁은 그녀의 영역 같았고 그녀는 진작 이 영역을 지배해야 하는 주인 같았다.

계단에서 내려온 야홍릉은 발걸음을 멈추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태후마마께서 자객에 당했으니 궁중 수비를 더욱 엄격하게 해야겠다. 나중에 내가 나신과 봉우를 시켜 병사 이천 명을 이끌고 오라고 하겠으니 한묵 너는 그들과 상의해서 인원수를 배정하여라. 그리고 후궁의 비빈들이 부황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단속하여라.”

“네.”

한묵은 고개를 끄덕이고 물었다.

“전하, 폐하의 옥체에 이상이 생기셨으니 앞으로 조정 업무는 누가 책임집니까?”

야홍릉은 침묵을 지키다 대답했다.

“각 부는 원래대로 움직이고 부황의 결정이 필요한 상주서는 근정전으로 보내거라. 만약 중요한 일이 있다면 승상에게 말하고.”

“승상도 결정할 수 없는 일이라면 어떡합니까?”

‘승상도 결정할 수 없는 일?’

야홍릉은 또 침묵에 잠겼다.

야정연의 장인이 벌인 사건이 밝혀진다면, 그에 관한 최후의 결정은 황제 외엔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이는 승상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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