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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246)화 (247/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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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화 원수가 될 것이다

노인들은 고개를 숙이며 지시를 따랐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황제의 말이 끝나자마자 먼 곳에서 한 시위가 허겁지겁 뛰어오며 보고했다.

“폐하께 아룁니다! 황후마마께서 자결하셨습니다!”

황제는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거리는 바람에 하마터면 계단에서 넘어질 뻔했다. 다행히 손평이 그를 부축했다.

“폐하, 조심하십시오.”

순간, 황제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큰일이다’란 생각만 맴돌고 있었다.

* * *

궁에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있었지만 공주부는 조용하기만 했다.

능묵과 야홍릉은 서재에 앉아서 작성된 조서를 읽고 있었다.

조서에는 이미 옥새가 찍힌 상태였다.

언제든지 꺼내서 읽기만 하면 효력이 발생하는 조서였다.

수많은 격식 차림용 말 뒤에 결정적인 한 구절이 둘의 눈에 들어왔다.

[대황자 야천란에게 황위를 물려준다.]

“역시 태자는 대황자 야천란이었네.”

야홍릉은 의자에 기대앉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제왕의 마음이란, 그렇게 알아내기 어려운 건 아니야.”

둘은 남성국에 있을 때 이미 차기 황위를 이어받을 가능성이 가장 큰 사람에 대해 짐작해 보았다.

지금 보니 둘의 추측은 영 틀리지 않았다.

“태후가 자객에게 당하고 황후는 자결하였으니 애비의 부황은 또 충격을 감당해야 하겠네요.”

능묵은 야홍릉을 품에 안고 입술을 그녀의 귓가에 댄 채, 부드럽게 말했다.

“폐하, 황위를 빼앗을 것인가요?”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빠른 작전을 칭찬하는 듯했다.

능묵은 눈을 휘며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문질렀다.

“애비.”

“일이 내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내 통제에서 벗어난 느낌이지만, 만약 꼭 필요하다면 황위를 빼앗을 수도 있겠지.”

능묵이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애비답게 박력이 넘치십니다. 애비의 부황도 이제는 의심하기 시작할 테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야소숙이 죽은 뒤 바로 야정연에게 문제가 생겼지. 숨 돌릴 틈도 안 주고 말이야. 그런데도 날 의심하지 않는다면 부황이 아니지.”

야홍릉은 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전생에는 약간의 의심만으로 나와 내 저택의 사람들을 다 죽였어. 이번 생에도 달라지지는 않을 거야.”

의심이 많은 사람은 평생 그 병을 고칠 수 없었다.

의심이 씨앗이 마음속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한 이상, 여태까지 일어난 일들을 이어놓고 생각한다면 수많은 가능성과 무시무시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야정연이 모험을 하면서까지 야모침이 퍼뜨린 소문에 불을 지핀 이유도 바로 이것이었다.

그들은 모두 부황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었다.

이 소문들을 듣고 황제는 겉으로 내색하지 않을 것이지만 마음속으로 수없이 되뇌며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의심이 씨앗이 싹을 피우고 열매가 열리면, 약간의 불꽃만 일어도 그의 마음속의 의심은 억제할 수 없는 경계와 살기로 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생의 야홍릉은 사랑에 눈이 멀어 죽기만 기다리는 여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부황보다 빨리 모든 계획을 세우고 부황의 움직임을 미리 파악했다.

심지어 부황의 생각까지 미리 읽은 상태였다.

부녀는 결국 원수가 될 것이다.

“사람은 무력감을 느낌 때, 마음이 약해집니다.”

능묵이 태후의 궁으로 들어가기 전에 한 말이었다.

“황제가 조서를 선포하는 계획을 막기에는 태후가 자객에게 당하는 일 만한 것이 없습니다. 장양후도 죽었지, 야소숙도 죽었지, 태후의 옆에는 지금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황제는 태후가 자객에 당한 것을 보면 마음이 약해져 황후와 감금된 8공주를 떠올릴 것입니다.”

능묵의 짐작이 맞았다.

야홍릉은 그의 말을 듣자 얼마 전에 황후가 그녀의 출신으로 이야기를 꾸며 그녀를 협박하려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녀는 자신의 출신을 의심하지 않았다.

정말 그녀가 황제의 핏줄이 아니라고 해도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핏줄은 그녀가 황위에 오르는 걸림돌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시기에 황후가 쓸데없는 말을 한다면 의심이 많은 황제가 무슨 일을 벌일지 알 수 없었다.

야홍릉은 귀찮은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 결정을 바꾸었다. 태후를 죽이는 척 눈속임으로 황후를 죽인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궁은 또 발칵 뒤집힐 것이고 황제도 충격을 받아 몸에 무리가 갈 것이다.

“공주 전하. 궁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고 집사가 밖에서 말했다.

야홍릉은 말없이 고개를 돌려 능묵과 눈을 마주쳤다. 그녀는 비수를 꺼내 조서를 갈기갈기 찢었다. 그리고 종이 파편을 향로에 넣어 재가 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글거리는 불꽃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은 차갑기만 했다.

그녀가 향로 뚜껑을 덮고 밖으로 나가자 능묵은 말없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서재의 문을 연 야홍릉이 물었다.

“부황께서 또 뭐라고 하시더냐?”

고 집사는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폐하께서 전하더러 능묵 공자와 함께 궁으로 들어가라고 하셨답니다. 폐하께서 능묵 공자를 보고 싶으시다면서요.”

야홍릉은 미간을 찌푸렸다.

“알겠다.”

고 집사는 물러갔다.

야홍릉이 침전으로 돌아가자 능묵은 그녀의 뒤를 따르며 조용하게 말했다.

“역시 황제가 의심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야홍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빛은 한기를 내뿜고 있었다.

“주인님.”

능묵은 손을 뻗어 그녀의 팔을 잡고 부드럽게 말했다.

“전 간이 작으니, 이따 궁에 들어가게 되면 주인님께서 절 지켜주셔야 합니다.”

야홍릉은 입을 실룩거리며 그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네가 간이 작다고?”

능묵은 겁먹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야홍릉은 침묵을 지키다 대답했다.

“내가 있으니 누구도 감히 널 괴롭히지 못할 것이다.”

능묵은 활짝 미소를 지었다.

야홍릉은 그 미소에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능묵의 뒤통수를 잡고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이제는 준비했던 것을 사용할 때가 되었구나.”

능묵은 그녀의 애정행각에 당황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뭐, 뭘요?”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전으로 들어갔다.

야홍릉이 탁자의 서랍에서 암홍색 비단함을 꺼낸 것을 본 능묵은 바로 그녀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애비, 이것을 사용하실 것입니까?”

야홍릉은 침묵을 지키다 물었다.

“내가 너무 매정해 보이느냐?”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능묵은 그녀의 얼굴에 입을 맞추며 말을 이었다.

“뼈에 사무치는 배신을 당한 사람이 아닌 이상, 누구도 애비를 매정하다고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이런 때에 마음이 약해진다면 기회를 놓치고 도리어 당할 수도 있었다.

권력의 정점으로 가는 게 쉬울 수 없었다. 착하고 마음이 여린 사람은 복수를 할 수 없다. 마음이 약해져 조금이라도 머뭇거린다면 자신은 물론, 주변의 사람도 죽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비단 함을 연 뒤, 비수로 손가락을 그었다. 새빨간 피가 비단 함에 떨어지자 투명한 나비가 굶주린 것처럼 게걸스럽게 그녀의 피를 빨아먹었다.

야홍릉은 말없이 나비를 바라 보았다. 나비는 예술품처럼 아름답고 정교했다. 그러나 이토록 아름다운 나비가 다른 사람을 통제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야홍릉은 비단함을 품에 넣고 능묵과 함께 침전을 나섰다.

* * *

그들은 마차를 타고 음모와 위험이 가득한 궁으로 들어갔다.

아들이 죽고 권력을 잃은 황후의 죽음은 큰 소동을 가져오지 못했다.

황제는 그녀의 장례식을 거하게 치를 생각도 없었다.

“간략하게 진행하라.”

국모로 존경받다가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진 여인은 이 짧은 한마디로 곡절 많은 인생을 마감했다.

황후의 죽음에도 황제는 슬퍼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 사이에 일어난 급변은 그의 몸과 마음을 지치게 했다.

야홍릉은 건양궁에서 황제를 만났을 때, 황위를 삼십 년이나 지킨 그가 하루 새에 십 년은 늙어 보인다는 것을 발견했다.

지친 얼굴은 초췌하고 창백했다.

그는 정말로 늙었다.

그가 입고 있는 옷을 무시한다면 앉아 있는 남자는 제왕의 위엄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고 실제 나이보다 더 늙어 보이는 사람일 뿐이었다.

“부황.”

야홍릉은 무릎을 굽히며 한결같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고개를 든 황제의 눈에는 정기가 없었다.

야홍릉을 바라보는 눈길은 이상할 정도로 어두웠다.

의심의 씨앗이 싹을 피우더니 미친 듯이 자라났다.

“홍릉아.”

그는 용의에 기대며 피곤한 얼굴로 말했다.

“모후가 오늘 자객에게 크게 당할 뻔하셨다.”

야홍릉은 미간을 찌푸렸다.

“누가 한 짓입니까?”

황제는 그녀를 훑어보며 물었다.

“넌 모르냐?”

야홍릉은 침묵하다가 말했다.

“부황의 뜻은 제가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널 의심할 이유는 없지.”

황제는 찻잔을 들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너무 공교롭지 않더냐? 짐이 손평더러 조서를 읽으라고 할 때 자안궁에서 태후가 자객에게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니 말이다. 짐이 조서를 내려놓고 자안궁으로 갔지. 그러나 나올 때 또 황후가 자결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오늘 일어난 일이 너무 공교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느냐?”

야홍릉은 고개를 끄덕이고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군요.”

황제가 물었다.

“너는 단지 우연이라고 생각하느냐?”

야홍릉이 대답했다.

“의심스러우시다면 한 통령더러 조사해 보라고 하세요.”

“그를 보내긴 했지만 제대로 알아보지는 못할 것이다.”

황제는 눈을 감고 울분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지금 그의 체력은 큰 화를 감당할 수 없었다.

“홍릉아, 요즘 네가 한 남첩을 아주 아낀다고 하더구나. 데려왔지? 어디 좀 보자.”

“데려왔습니다. 지금 대전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야홍릉은 고개를 돌리고 손평을 바라보며 말했다.

“손 총관, 그더러 들어오라고 해주게.”

손평은 고개를 숙이고 나갔다.

대전 밖에 서 있던 능묵은 그를 힐끗 보더니 건양궁으로 들어왔다.

청년은 눈썹 하나하나 그린 것처럼 완벽하게 잘생겼다.

마르고 늘씬한 몸매는 검은색 장포와 잘 어울려 걸음을 걸을 때에도 그림 속 귀공자처럼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경국지색이군.’

그의 외모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황제는 그를 처음 본 순간, 강렬한 압박감이 사방에서 몰려드는 기분을 느꼈다.

황제는 저도 모르게 자세를 고쳐 앉고는 능묵이 예를 올리기 기다렸다.

하지만 능묵은 야홍릉의 옆에 서 있을 뿐, 그에게 예를 올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름이 무엇이냐?”

황제는 화를 억지로 참으며 물었다.

“왜 짐을 보고도 무릎을 꿇지 않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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