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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245)화 (246/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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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화 습격을 당하다

손평은 내관을 불러 말을 전한 뒤, 근정전으로 돌아와 차를 따랐다.

이때, 황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짐이 황숙과 내각 대신들을 부른 건 아주 중요하게 선포할 일이 있어 그런 것이네. 그래서 여러분들이 증인이 되어 주었으면 하네.”

손평은 고개를 숙인 채, 황제의 뒤에 서서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올해 많은 일이 생기면서 짐은 몸이 잘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네. 요즘에는 많이 늙은 것 같아 언제 죽을지도 모르니 말이야.”

황제는 쓴웃음을 지었다.

“폐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종친 중 한 황숙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공손한 자세로 말했다.

“폐하께서는 한창때이십니다. 늙은 것과 멀지요. 만약 폐하께서 지금 늙었다고 하신다면 진정한 늙은이인 저희들은 진작 죽었어야 하는 게 아닙니까?”

“맞습니다. 폐하께서 최근에 힘든 일이 많으시겠지만 황자들도 다 성인이 되었으니 그들에게 나누어 주어 부담을 더십시오. 모든 일을 혼자 짊어지려고 하다 보면 버겁다는 느낌이 드실 것입니다. 조정에 있는 대신들도 녹봉을 거저 받는 게 아닙니다. 폐하의 걱정을 덜어드리는 게 그들의 직책이지요.”

또 다른 종친이 말했다.

황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우울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오늘 여러분들은 부른 것은 태자를 정하기 위해서네.”

그는 담담하게 말하고 손평더러 다 작성한 조서를 가져오라고 했다.

“짐은 생각을 많이 해보았지만 태자를 확정하는 게 맞다는 결론을 내렸네. 올해에 일어난 일들 중 대부분은 태자 자리를 쟁탈하다 생긴 일이 아닌가?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증인이 되어주길 바라고 부른 것이네.”

그 말에 근정전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종친들은 서로서로 눈치를 살피다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 어느 황자를 마음에 두고 계시는 것입니까? 왜 천하에 알리지 않으시는 겁니까?”

황제가 대답했다.

“그 아이가 지금 제경에 없어서 책봉 대전을 미룰 수밖에 없었고, 그 아이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크네. 조서가 정해지면 앞으로 조정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이 조서만으로 그가 바로 등극할 수 있지 않겠나? 그리고 짐은 황숙과 여러분들에게 그를 전력으로 지지할 것을 간절히 부탁드리는 바이네.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를 황제로 올리게.”

종친과 내각 대신들은 침묵에 잠겼다.

‘제경에 없다고? 그렇다면…… 대황자 야천란?’

노인들은 그동안 황자들이 했던 일과 예전에 꾸몄던 일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황위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대황자에게 돌아갈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황제가 그들더러 대황자를 지지하라고 한 것도 이해가 되었다.

야천란은 조정에서의 세력이 다른 황자들보다 강하지 못했다. 만약 야천란이 이들의 지지마저 얻지 못한다면 순조롭게 황위에 오른다고 해도 권력이 없는 꼭두각시가 될 수 있었다.

“하실 얘기가 더 있나?”

몇몇 종친들은 조정의 업무에 손을 뗀 지 오래되었다.

황제가 이렇게 물어보는 것은 예의상 질문일 뿐이었다.

그들도 황제의 결정에 뭐라고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조서를 이미 작성까지 했으니 황제의 결정을 쉽게 바꿀 수 없었다.

그들은 불만이 있어도 어찌할 수 없었다.

“다들 이의가 없다면 손평더러 조서를 읽으라고 하겠네.”

황제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그는 이들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손평, 황숙과 대신들에게 조서를 읽어 주어라.”

“네, 알겠습니다.”

노인들은 모두 무릎을 꿇었다.

손평은 조서를 펼쳐서 읽기 시작했다.

“폐하께서 말씀하신다…….”

“폐하께 아룁니다!”

대전 밖에서 한묵이 뛰어 들어와 한쪽 무릎을 꿇었다.

급박한 그의 목소리는 손평의 말을 잘랐다.

“자안궁에 자객이 잠입했습니다! 태후마마께서 놀라서 기절하셨습니다!”

‘뭐라고?’

황제는 안색이 변한 채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객을 잡았느냐? 모후는 괜찮으시냐?”

“자안궁의 고수가 쫓고 있습니다. 저는 급히 보고하러 오느라 자세한 상황을 알지 못합니다.”

황제가 차가운 목소리로 외쳤다.

“자안궁으로 이동한다!”

말을 마친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무릎을 꿇고 있던 종친들과 내각 대신들은 멍한 얼굴로 한참이나 있다가 휘청거리며 일어서서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우리도 태후마마를 뵈러 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갔다.

태후의 궁에 자객이 들었다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었다.

그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건양궁의 사람이 다 사라지자 대들보에서 한 그림자가 내려왔다. 그 사람은 책상 위의 조서를 품에 넣은 뒤에 다시 창문으로 사라졌다.

* * *

태후는 관리를 잘한 덕에 주름 하나 없이 하얀 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거기에 생긴 빨간 자국은 더욱 선명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가는 끈으로 조인 듯한 흔적에는 피가 스며 나왔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듯했다.

황제는 크게 화를 내며 자안궁의 모든 시녀와 시위들을 불러 모았다.

하지만 자객의 얼굴을 제대로 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태후가 자객에게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신은전의 대교습은 황제보다 더욱 빨리 자안궁에 도착해 있었다.

하지만 그도 자객을 잡지 못했다.

“너는 신은전의 대교습이다. 그런데 태후도 지키지 못한 것이냐?”

황제는 시퍼레진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며 화를 냈다.

“너희들을 곁에 두어도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자안궁의 시위, 궁녀, 내관들은 무릎을 꿇은 채,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숨을 죽였다.

“궁에서 수색하게 했습니다. 자객은 멀리 도망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황제가 차갑게 말했다.

“멀리 도망가지 못했을 거라고? 멀리 도망가지 못했는데 네 실력으로 왜 잡지 못한 것이냐?”

대교습은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는 묵묵히 황제의 불호령을 듣고 있었다.

황제는 실눈을 뜨고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신은전의 행동이 요즘 많이 굼떠진 것 같구나. 야영(夜影), 짐에게 해명해야 하지 않겠느냐?”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대교습이 말했다.

황제는 울분이 치솟는 것 같았다.

의심의 씨앗이 자리를 잡고 싹을 피운 순간부터 그는 예전에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조차 의심스럽게 생각되었다.

황제는 아까 건양궁에서 야홍릉이 그동안 했던 일을 떠올려 보았다. 얼핏 보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야소숙과 한씨 가문이 멸망한 것은 다 스스로 자초한 것이고 야정연과 그의 장인도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다.

하지만 야홍릉이 이러한 일들을 너무나 순조롭게 밝혀낸 게 이상했다.

‘그동안 뒤에서 홍릉이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던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자 황제는 배신당한 분노를 가라앉힐 수 없었다.

마음 한쪽에 불안감이 고개를 쳐들었다.

그는 주먹을 움켜쥐고 외쳤다.

“한묵!”

금위군 통령의 장포를 입은 한묵이 대전 밖에서 걸어오더니 한쪽 무릎을 꿇었다.

“예, 폐하.”

“이자를 감옥에 처넣고 심문하여라. 난 합당한 해명을 들어야겠다.”

황제가 말했다.

한묵은 고개를 숙이고 지시를 받았다.

“네,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는 고개를 돌리고 흑의 남자를 보았다.

그리고 부하를 불러 야영을 끌고 갔다.

야영은 반항하지도 않고 순순히 따라갔다.

황제는 화를 억누른 채, 내전으로 들어가 태후를 진찰하고 있는 태의들에게 물었다.

“어떠하냐?”

“폐하께 아룁니다. 태후마마는 괜찮으십니다.”

양씨 태의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연세가 있으셔서 크게 놀라셨으니 당분간 밤잠을 이루기 힘드실 것입니다.”

황제는 미간을 찌푸렸다.

“태후에게 안정할 수 있는 약을 준비해 드리거라.”

“알겠습니다. 곧 정신을 느슨히 할 수 있는 약을 지어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폐하께서 시간이 되시면 태후마마와 얘기를 나누십시오. 후궁의 비빈 마마들을 시키셔도 됩니다. 태후마마께서 기분이 풀어지신다면 회복이 더욱 빨라질 것입니다.”

황제는 미간을 찌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로 이때, 태후가 눈을 떴다.

“모후, 깨셨습니까?”

황제는 다급히 앞으로 걸어가 태후를 일으켰다.

“모후, 괜찮으십니까? 목의 상처가 아프지는 않습니까?”

‘상처?’

태후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목을 만져보았다.

급기야 아까의 일이 떠오른 듯, 눈을 꼭 감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자객은 잡았나요?”

“죄송합니다. 사람을 풀어 찾고 있습니다.”

황제는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태후는 길게 한숨을 내쉰 뒤, 무기력하게 말했다.

“전 곧 죽을 사람인데, 누가 절 죽이려고 한 것일까요?”

“어마마마, 그런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어마마마는 백 세까지 사실 것입니다.”

황제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태후는 실소했다.

‘백 살까지 살라고?’

올해 너무나 많은 일이 일어났다. 그녀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둘 죽으면서 그녀는 큰 충격을 받았다.

지금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전보다 훨씬 못한데 어떻게 백 살까지 살 수 있겠는가?

황제는 말없이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순간 마음속으로 깊은 무력감이 느껴졌다. 이런 느낌은 야소숙이 죽은 뒤에 가끔씩 나타나 그를 괴롭히더니 지금은 점점 더 자주 느끼게 되었다.

한참 침묵을 지킨 뒤, 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손평을 불렀다.

“손평.”

손평은 그의 앞으로 걸어가 허리를 숙였다.

“폐하.”

“8공주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8공주?’

손평은 당황했다.

그는 8공주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제가…….”

그는 머릿속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힘들게 생각해 보았다.

“지금 바로 사람을 보내 알아보겠습니다.”

황제는 고개를 끄덕인 뒤, 태후를 돌아보았다.

“모후, 제가 자릉이를 불러와 모후와 함께 지내게 하겠습니다.”

태후는 침묵을 지키다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요, 소숙이도 이젠 가고 없는데 자릉이도 감금되어 있으니…… 자릉이가 뭘 잘못했든 이렇게 오랫동안 감금당한 거로 벌은 충분하지요.”

황제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많이 놀라셨을 테니 쉬고 계십시오. 저녁에 자릉이를 보내겠습니다.”

태후는 고개를 끄덕인 뒤, 눈을 감았다.

황제는 태후의 시녀들더러 잘 모시라고 당부한 뒤, 밖으로 나갔다.

“한묵, 자안궁에 사람을 두어 잘 지키도록 하여라. 무슨 일이 일어나든 절대 모후를 놀라게 해서는 안 된다. 모후께 또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너희들의 모가지를 자르겠다!”

황제는 시선을 앞으로 돌리며 말했다.

“봉의궁으로 가자!”

“폐하.”

이때, 손평이 그의 귓가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종친 대인과 대신들이 아직 기다리고 있습니다…….”

황제는 발걸음을 멈추고 대전 밖을 보았다.

노인들이 대전 밖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폐하.”

한 종친이 수심에 잠긴 얼굴로 입을 열었다.

“태후마마께서는 괜찮으십니까?”

다른 사람들도 안부를 물었다.

황제는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나이가 많은 종친들 앞에서 화를 누그러뜨릴 수밖에 없었다.

“괜찮네. 너무 걱정하지 마시게.”

그러다 문득 방금까지 하던 일이 떠오른 그는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황숙과 대신들은 짐을 따라 다시 건양궁으로 갑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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